불현듯 찻물이 떠오르는 아침이다. 그만큼 온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느끼게 된 감정이 아닌가 한다. 별난 기후와 관련된 일들이 이어진 금년 여름날은 다시 떠올리기 쉽지 않은 기억이다. 험지에서 자신의 책무를 이어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해야 했던 여름 일상을 생각하면 나 자신이 겪었던 일은 아무것도 아니지 하면서도 금년 여름은 개인적으로 나기 힘든 여름이었다. 습도가 높고 고온이 지속되는 그런 환경에서 노년기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에겐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냉방기 곁에 주저앉아 보내다 보면 다른 탈을 불러 더 큰 일을 겪을 수 있어 마냥 그럴 수 없는 노릇이었고. 연신 찬물도 들이키다 이 또 한 조심스러워 인내하며 견디는 고육지책으로 올여름을 넘어선 것 같다. 어제는 모처럼 잔뜩 흐린 날씨가 이어져 산막 여기저기 환경개선 작업을 종일 할 수 있었다. 수목정리 작업과 울타리에 달라붙은 각종 덩굴성 기생잡초를 정리하고 이어서 화단에 심어 놓은 각종 야생화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잡초들을 제거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장대비 영향으로 떨어져 터진 감들을 주어모아 내다 버릴 즈음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작업을 멈췄다. 시간을 보니 오후 6시였다. 산막은 해가 일찍 넘어가 어두움이 쉽게 자리 잡는 곳이다. 작업도구들을 정리하여 제 자리를 찾아 주고 실내에 들자 허기가 들어 우선 저녁을 챙기고 반려견에게도 사료와 간식을 주고 샤워를 하기 위하여 물을 틀자 어제까지만 하여도 찬물이 친숙했었는데 오늘은 그게 아니었다. 물이 머리에 닺는 순간 소름이 죽순처럼 솟아올랐다. 얼른 물꼭지를 온수 쪽으로 우선 기울고 멀리 떨어져 적당한 온도를 배분한 후 자리를 잡고 세신을 하기 시작하였더니 냉수에서 느끼던 찰나의 산뜻함은 사라지고 온수가 주는 아늑함이 다가 서자, 나도 모르게 아~~~ 드디어 가을이구나 하는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만큼 절박한 여름을 살아왔다는 증거가 아닌가 한다.
그러면서 온수의 세례를 받으며 여름날의 모든 것을 기억하며 변이의 정수를 경험한 듯 몸서리치는 자신을 발견하고 다시는 그런 여름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하는 구원의 기도문을 되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는 과당 치도 않다는 생각에 절망을 느꼈다. 나 또한 그러한 기후를 만드는 역할을 하며 평생을 살아왔으니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무제한적인 소비를 강요하는 각종 광고에 현혹되어 한 두 개 정도를 지닌 후 제품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사용하여도 되는 것을 멀쩡한데도 다시 구매하여 무제한적인 소비성향에 길들여진 삶을 살았으니 기상이변은 사실, 인간의 자책성에서 유발된 일인 것이니 더 늦기 전에 이제부터라도 고쳐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오늘 새벽 아침 모처럼 상쾌한 햇살과 공기를 마시며 맞이하였다. 실내 온도를 보니 20도에 멈춰 있었다. 줄곧 30도나 그 이상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천국과 지옥사이만 같다. 어제저녁 아름다운 노을을 보면서 오늘 일기를 가눔 할 수 있었다. 맑은 높은 하늘과 나뭇잎들을 간지럽히는 바람과 밝은 햇살과 기분 좋은 가을날씨의 온도를 느끼며 환기를 목적으로 산막의 모든 창문을 열어놓자 맑은 청정한 한기를 느끼며 더운 찻물이 떠올랐다. 일전 남원 지리산 방향에서 자란 야생차 3종을 소박한 질그릇에 담아 또 보내왔다. 우선 차그릇과 잔을 준비하고 물을 끓였다. 물주전자에 열이 가해지자 쉬 소리를 내며 요동치며 기세 좋게 굻어 올랐다. 물이 끓는 것을 보면서 그 요동의 힘찬 기세에 눌리며 순간적으로 끓는 물의 괴력을 느끼며. 물은 늘 기세의 정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걸러낸 찻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다섯 가지 맛의 향을 전해 오고 있었다. 한 모금 마시자 삶의 교훈적 사실들이 나를 다시 일깨우는 순간이 되어 모든 고뇌들을 평정의 늪으로 안내해 주는 기운을 느꼈다. 이것이 바로 차 한잔의 고마움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엉뚱한 짓만으로 일관되게 못되게 굴었던 금년 여름과 별리의 순간과 늦은 가을을 환영하는 입추의 영입임을 스스로에게 알리는 기회라 선언해 두었다. 아주 옛적에 우리 조상들은 조상의 기억을 되살리며 흠모하고 공경하던 기회를 차례(茶禮)라 불렀다. 이 기회 때마다 질 좋은 차를 달여 올렸기 때문에 생긴 용어다. 후손들은 이를 변질시켜 자신이 선호하는 제물들 골라 이것저것 올려 지금의 제사상을 만들어 놓았지만 선조들은 대부분 허례허식(虛禮虛飾)을 피했던 것이다. 심지어 딸을 시집보낼 때 잊지 않고 혼례물건으로 준비하는 것도 바로 질 좋은 차였다. 차를 비단주머니에 담아 치마 안주머니에 넣고 가는 것을 봉다례(奉茶禮)라 하였다. 시댁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차를 끓여 사당에 올린 후 절을 하며 시댁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진 부인으로 살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차나무는 옮겨 심으면 죽음으로 본분을 지키며 살겠다는 약속이며 특히 차에는 다섯 가지 맛이 깃들어 있는데 달고 맵고 짜고 시고 쓴 맛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경험하게 될 다섯 가지 맛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겠다는 약속까지 하는 의례가 바로 봉다례 의식이었던 것이다. 차 한 잔의 의미가 이토록 깊은 것이다.
즐겨 마시던 커피를 멀리하는 요즈음 특히 삼박자 커피라 부르는 긴 막대 비닐봉지에 담긴 커피는 아주 멀리하고 간혹 마시고 싶으면 아메리카 커피를 내려 아무것도 넣지 않고 블랙으로 마시는 것이 요즈음 나의 커피 버릇이다. 이것 또한 비 오는 날 문득 커피 향이 그리워질 때 마신다. 커피를 마시지 않을 때에는 녹차를 마시곤 하였다. 산막에서는 거의 야생 녹차를 즐기는 편이다. 커피는 사실 마시는 것보다 향으로 감미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눈이 내리는 겨울 동자각 주변을 걷고 있을 때 길 모퉁이 지하 다방에서 흘러나온 커피 향을 느껴을 때 그 감미로운 향의 영향으로 커피 향을 경험하면서 커피의 애호가로 변신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나이가 먹어가면서 신체적 여건에 변화가 생긴 이유로 멀리하게 된 것이다. 특히 애주가였던 분위기도 또한 내려놓았다. 이유 없이 우정 나눔이라는 핑계로 두주불사(斗酒不辭) 하던 이야기도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혹 약속이 잡혀도 저녁시간을 피하고 낮시간 이용하여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헤어지는 것으로 변하게 되었고 간혹 술 생각이 나면 딱 한 잔 들이켜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 술 먹는 모습을 안 보여 주었더니 제노도 무알콜 켄맥주를 사다 놓아 혼자 웃은 적이 있었다.
오늘은 전형적인 가을날씨였다. 하늘이 높고 가을바람이 소슬하고 장대비가 남긴 흔적들을 가을이 말끔하게 정리해 주고 있는 중이다. 잔디밭도 수분을 많이 증발시켜 걷기에 편해졌다. 10월 초순 연휴에 딸이 이웃에 함께 살고 있는 외손주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부형을 초대하여 산막에서 잠시 쉬었다가 가겠다고 하여 산막 전체를 정리하는 중이다. 평소에 그 집에서 여행을 가면 꼭 외손주를 데리고 가 딸도 아들을 데리고 영화, 음악회, 놀이공원, 여행을 갈 때 반대로 친구를 초청해 가는 사이라는 것이다. 여름방학 때 안면도 캠핑을 가면서 외손주 주혁이를 동행해 준 고마움으로 산막으로 초대하였다는 것이다. 참 좋은 이웃 나눔이라고 칭찬을 많이 해 주었다. 멋진 우정만큼 값진 것도 없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해 주었다. 주변에 멋진 우정으로 같이 성장하면 그 우정은 변함없이 진행되어 늘 좋은 결실을 서로 나눌 수 있어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이다. 특히 외아들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는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