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앞 개울 너럭바위가 있는 곳은 언제나 돼지울음이 난무하는 곳이었다. 돼지를 저승길로 보내기 위해 칼로 목을 찔러 피를 양동이에 받아내곤 하였다. 목을 찔러 돼지를 잡는 이유는 고기의 핏기를 제거함과 동시에 신선한 선지로 피순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13년째 피순대를 만든 곤양식당의 문덕희할머니 당시만해도 소를 만들 재료가 풍족하지 못하여 선지와 약간의 채소 일부를 넣는게 고작이었다. 간식거리가 충분하지 않았던 그 시절, 순대는 산골소년에게는 호사스러운 음식이었다. 탑탑하지만 조금은 단맛이 나는 피와 쫄깃쫄깃한 내장맛은 유년시절의 맛의 기억으로 자리잡았다.
여러 종류의 퓨전순대도 나와 야참이나 간식, 술안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옛 추억을 살리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다. 그 옛맛을 더듬어 찾은 곳이 사천시 완사면 소재지에 위치한 곤양식당의 피순대였다. 장터에 있는 이 순댓집은 이 지역에서는 꽤나 알려진 집이다. 장날이면 장꾼들이 간단한 요기를 해결하고 고된 일상에 순대를 안주삼아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한다. 순댓국밥 푹 고운 등뼈와 순대, 콩나물 등 각종 시래기를 넣어 끓인다. 며느리가 주방일을 보고 있었다. 할머니께 간단히 인사를 하고 피순대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덕희할머니'. 이곳에서 13년동안 피순대를 만들어 식당을 꾸려 오고 있다고 하였다. 그전에는 무엇을 하셨냐고 여쭈자 장터에서 국밥을 말아 장꾼들에게 팔았다고 한다. 이집 순대의 특징은 흔한 당면을 넣지 않고 방아, 파, 마늘, 김치 등 각종 야채와 양념을 버무린 선지를 넣어 만든 데 있다. 이렇게 만든 피순대가 인근에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외지 사람들도 많이 찾아온다고 하였다. 얼마전에는 모방송사에서도 촬영을 하고 갔다고 겸연쩍게 말씀하셨다.
허름한 선술집같은 식당은 고향에 온듯 푸근하다. 피순대의 맛은 조금 탑탑한데 비해 내장은 씹을게 없을 정도로 부드럽다. 도회지에서 나서 자란 아내는 조금 망설이는 기색이었으나 시골 촌놈인 나에게는 옛 추억을 떠올리며 소주 한 잔 하니 마음마저 따뜻해진다. 등뼈와 순대가 같이 들어간 순댓국밥도 예전 돼지를 삶은 물에 시래기를 넣어 끓인 맛과 흡사하다. 요즈음 음식에 익숙한 젊은층에게는 다소 부담이 될 수도 있겠으나 순대 본래의 맛을 보려면 한번쯤 들러 볼만한 식당이다. 김천령의 새로운 바람흔적(http://neowin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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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천령의 바람흔적 원문보기 글쓴이: 김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