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과 수필
자서전 쓰기를 하면 쓰고 싶은 내용도 있고, 쓰고 싶지 않은 내용도 있습니다. 좋은 이미지가 아닌 불편한 사건은 지우고 싶습니다. 자신을 영웅적으로 보이게 하는 사건을 쓰고 싶어 합니다. 더 정의롭고, 정직하고 효심이 넘치는 내용으로 채우고 싶어 합니다.
나의 삶이 글로 형상화된다는 점에서는 자서전이나 수필이나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나의 인생’이 소재가 되어서 글쓰기를 하면 수필도 자서전처럼 쓰고 싶지 않은 부분도 나타납니다.
나의 인생은 어떻게 만들어져 있을까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 온 생애가 나의 인생입니다. 그 동안에 겪었던 경험들이 모여서 총체적으로 나의 인생을 어떤 유형으로 만듭니다. ‘어떤 유형’이라고 하였습니다. 개개인이 만든 인생도 유형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이 살아 온 사회-문화가 배경이 됩니다. 가족 관계도 나의 인생이 어떤 유형이 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군인이 아버지인 사람, 목사님이 아버지인 사람, 도시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을 아버지로 둔 사람, 그리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의 가치관이 약간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심리 영역도 관여합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상으로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상적인 자아가 형성된 까닭이지요. 사실은 대부분이 착각에 의한 것이지만 본인은 착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간 유형이 만들어 집니다.
자서전을 쓸 때는 자신을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유형의 인간’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착각인 줄을 알고 썼다면 거짓이 됩니다. 사실인 줄 믿고 썼다면 거짓은 아닙니다. 수필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필도 자기의 삶을 글로 옮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글을 읽는 분께서 자신을 생각해 봅시다. 나는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사회 질서를 잘 지키고, 직장에 열심히 다니면서 가족 건사도 잘 한다고 믿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유형에 속합니다. 다른 사람도 내가 나를 보듯이 볼까요? 그렇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내가 설령 나를 그런 사람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더라도 글로 표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자신을 꼼꼼이 들여다 본 일이 있습니까? 아마도 착하다고 믿는 나는 내가 속한 사회에서 바라는 데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쉽게 말씀을 드리면 욕 안 들으려고) 이것을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인생이 바로 이 세상이 바라는 삶으로 살아가는 유형의 인간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수필을 쓸 때도 나를 유형적으로 인간으로 쓰게 됩니다. 사회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간으로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자아(=개개인의 특성을 갖춘 자기 자신)는 인간 유형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나는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사회가 바라는 인간 유형이 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독창성은 없어져 버립니다.
자서전과 수필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자서전은 대표적으로 인간 유형으로 기술하는 글이라고 하였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400년 경의 기독교 신학자)는 자서전인 ‘고백록’을 썼습니다. 이 글에는 기독교인으로서 끊임없이 회개하는 유형의 인간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인생의 초기에는 무지하였다는 것과, 구원을 향하여 나아간 바른 길, 그러면서도 반복되는 일탈, 다시 다른 사람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노력, 갱신, 깊은 사유, 유혹, 고통, 분투, 마지막으로 회개를 하여 구원을 받는 인간 유형이 거대한 서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인으로 살아가야 할 인간유형을 제시 하였습니다. 자서전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방식으로 쓰여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l
사르트르는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면, 그러니까 자아를 글로 그대로 표현하면 구토가 난다고 하였습니다.
유형적 인간과 현실 사이에는 갈등이 내재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둘 사이에는 메워지지 않는 틈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틈에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개개인의 삶이 있습니다. 수필은 틈에서 만들어 지는 삶을 솔직하게 표현합니다. 개개인이 겪는 자신만의 삶을 표현합니다. 누구와도 닮지 않는 자신만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주문일 것입니다. 그대로 모두 표현한다면 사르트르처럼 구토를 일으킬 지도 모릅니다.
수필에서는 아무리 자기를 드러내려 하여도 드러내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일 수도 있고, 더 근원적인 원형(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근원적인 심리)일 수도 있습니다. 수필쓰기는 설령 드러내지 못하더라도 찾아가는 길을 탐구하는 작업입니다. 선승이 아무리 수행을 하더라고 자기를 찾지 못하듯이 영원히 자기를 드러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고, 자기 치유입니다.
첫댓글 수필은 쓸 수 있겠지만 자서전이라는 이름은 너무 거창한, 자전적 수필이 쌓여가면 후일 남겨지는 자서전이 되겠지요.
저도 죽기전에 딱 한권만 수필집을 낼것입니다
연도별로 달라져가는 삶을 그대로 그릴테니 이것도 어쩜 저의 자서전이라 할수있겠지요
ㅎㅎㅎ 최선생님 말씀처럼 자서전 하니~ 너무 거창하긴하네요
그냥 수필집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