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불 서지학자 박병선(81세)씨는 1967년부터 13년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근무하면서 3000만종이 넘는 장서를 뒤져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과 외규장각 도서 297권을 찾아내 주불 한국대사관에 알렸다.
지난달 30일 수원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에서 만난 박씨는 "이후 10년 넘게 매일 도서관에 가서 외규장각 도서의 목차를 베끼고 내용을 요약했다"며 "점심시간에 자리를 비우면 책을 일찍 반환하라고 할까 봐 밥도 안 먹었다"고 했다..
성빈센트병원에서 만난 박씨는 암 투병 중이었다. 병인양요에 대한 한국 사료를 모으러 지난 9월 서울에 날아왔다가 격렬한 복통으로 병원에 갔다. 의료진이 직장암 4기를 선고했다. 그는 무너지거나 흐트러지는 대신 또렷하게 말했다. "내 연구를 정리하려면 아직 1년 정도 시간이 더 필요해요. 그 1년만 주어진다면 하느님께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그는 인터뷰를 세 번 거절했다. "아픈 걸 보여주는 게 싫다"고 했다.
그는 5남매 중 셋째다. 경기여고와 서울대 사범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민간인 여성 가운데 최초로 프랑스 유학 비자를 받은 사람이었다.
"나는 6·25전쟁 직후에 프랑스에 건너갔어요. 한국사람이면 당연히 병인양요에 관심을 가지지 않겠어요? 애초에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취직한 것도 외규장각 도서를 찾기 위해서였어요. 프랑스 함대가 가져간 책이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있다는 풍문을 들었거든요.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죠."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프랑스국립도서관을 그만둔 뒤에는 연금으로 생계를 꾸리며 누구도 보상하지 않는 연구를 계속했다. 그는 10권 넘는 학술서를 썼다.
"연구하고 또 연구하는 것이 평생 내 일이었어요. 결혼을 하지 않은 것도 내가 너무 에고이스트(이기주의자)라 그랬나 봐요.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될 자신이 없었던 거지요."
학자로서 그는 남들이 평생 한 번 이루기 힘든 업적을 여러 번 이뤘다. 그는 단순히 직지심체요절을 찾아낸 사람이 아니라, 이 책이 1455년에 나온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이나 빠른 금속활자본임을 증명한 사람이다.
27살에 한국을 떠난 박씨는 '지금 제일 하고 싶은 일'로 "기운을 차리고 파리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 프랑스 음식을 먹는 것, 병인양요에 대한 책을 마치는 것"을 꼽았다.
<직지심경>
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은 여러 부처와 고승들의 法語와 게송을 모은 책으로 1377년 고려 우왕 때 흥덕사에서 찍어낸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다. 짧게는 '직지심경'이라고도 한다. 구한말 주한 프랑스 공사를 지낸 콜랭 드 플랑시(Plancy·1853~1924)가 1907년 본국에 가져가 1911년 한 고서 경매장에 내놨다. 부유한 보석상이자 고서 수집가인 앙리 베베르(Vever·1854~1943)가 180프랑에 낙찰받아 훗날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유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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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병선 박사와 학자들이 지난 1972년 서울 인사동 통문관에서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직지심경의 영인본(影印本)을 확인하고 있다.
외규장각은 1782년 정조가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으로,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의 분관 역할을 했다.
박병선씨가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찾아낸 외규장각 도서는 왕실과 국가의 주요 행사 내용을 기록한 의궤(儀軌)로, 총 297권이다.
<2009.11.3 조선일보 A11면에서 요약 발췌>
첫댓글 부지런함에는 당할 자 없다 하드니...... 영훈아 정말 고맙다. 2주간의 세무조사를 어제 마쳤다. 이젠 달반 남은 교육만 끝나면 2010년에는 홀가분하게 생활할 수 있을것 같구나. 지난 1년간은 짜투리 시간마저 쪼개어 써도 모자랐으니~~ㅎㅎㅎ
아마 우리 동기들중에서 종준이 만큼 꾸준하게 자기 일하면서, 늘 자기 분야의 新지식을 배우면서 지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거야. 그런점에서 존경스럽고 종준이 같이 훌륭한 친구를 소년시절부터 잘 알고 지낸다는 것은 큰 축복인 것 같아... ㅎ ㅎ ㅎ
정말 대단한 한국인입니다. 한국 문화재 찾기 위해 일부러 프랑스 박물관에 취업을 한 것을 비롯하여....
좋은자료 잘 보았습니다. 박병선 박사님이 파리의 집으로 돌아가실수있기를 간절히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