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가져가지 못하는 꽃송이
김용택
나뭇잎에 바람이 인다.
새 잎 돋던 날들이 엊그제였는데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 들린다.
새들은 날아다니며 울고
강물은 흘러와서 흘러간다.
길가에 하얀 토끼 풀꽃이 피고
붉은 자운영 꽃도 피었다
너희들을 생각하며 시를 쓰다니,
나는 이 짓이 정말 싫구나.
어떻게 멀쩡한 정신으로
미선아, 효선아 이름 부르겠느냐
아직 꽃피기 전인 너희들에게
세월 따위
인생 따위
사는 것이 다 그런 것이라는
우리들이 죄인이라는 말 따위, 울분과 통탄 따위 그 모든
역사 이전의 너희들에게
정말 이 짓이 싫다.
학교에 가고
집에 가고
친구 집에 가고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친구와 선생님들을 흉보며
길가에 핀 토끼풀꽃과 자운영 꽃을 꺾어
내 밀 던 손위로 느닷없이 지나가버린,
그리하여 새들이 울며 날고
풀잎들이 아우성으로 달려오던 그 날,
바람도 가져가지 못한 꽃잎으로
너희들은 아직도 그 길가에 있는데
나희들이 어찌 가버린 세월이겠느냐
꽃을 좀 더 가슴 가까이
얼굴 가까이 들어 올리며 너희들은 웃으려 하는구나.
아! 꽃 쥔 손을 우리들에게 내미는구나.
엄마, 아빠 이 꽃 가져
선생님 이 꽃 받으세요.
효선아
이 꽃 받아
미선아
이 꽃 받으라니까
왜 그러고 서 있니?
학교야, 친구들아
이 꽃 받아
왜 모두들 꽃을 안 받는 거야.
왜 꽃만 보고 서 있는 거야.
이 꽃 받으라니까.
바람도 가져가지 못한 꽃송이가
눈시울에 그렁그렁 맺혀 있구나.
2016.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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