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내고향 상화도
 
 
 
카페 게시글
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인생을 너무 일찍 누설한 시인 <허수경>
밍널 추천 0 조회 168 12.09.17 14: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스물한살 때 허수경의 시를 읽었다.
허수경의 시를 처음 읽은 후로 몇년 간은 그녀의 시를 바라만 봤던 것 같고
그 다음 몇년간은 그녀의 시를 베껴 쓰기만 했던 것 같고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그녀의 시를 낱알로 쪼개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허수경은  스물네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실천문학을 통하여 등단을 했다.

1. 그믐밤


여게가 친정인가 저승인가 괴춤 전대 털리고 은비녀
도 빼앗기고 댓가지로 머리 쪽찌고 막걸리 담뱃잎 쩔어
미친 달빛 눈꼬리에 돋아 허연 소곰발 머리에 이운 곰보
고모가 삭정이 가죽만 남은 가슴 풀어헤치며 6.25 이
후 빼앗길 것 몽땅 빼앗긴 친정에 왔는데 기제사때 맞춰
왔는데 쑥대밭 쇠뜨기도곤 무성한 만단정회여 고모는
어느 녘에서 이다지도 온전히 빼앗겼을거나 빼앗김만이
넉넉한 빼앗김만이 남아 귀신 보전하기 좋은 우리집이
여.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실천문학사,1988)




2. 사식을 먹으며


그리 모질게 매질을 당하고도 솟증이 돋아 입탐을 하
네 돼지비계 두둥실 떠 있는 순대국이나 한 사발 가슴
녹여내며 들이키고 싶으이 방아냄새 상긋한 개장국에
밥을 말며 장정들 틈에 끼여 앉아 주는 대로 탁주도 뿌
리치지 않고 싶으이 제 아무리 매질 오질토록 닥쳐 봐라
내 입맛 하나 온전히 다칠 수 있으랴 두레마을의 아낙으
로 살점 일구어내고 연애도 달덩이 같은 아들도 낳아
이보시게 아들도 이녁들에게 매질당하게 키우것네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실천문학사, 1988)



위 두 편의 시에서 보다시피, 허수경의 시는 감칠맛이 있다. 어린 나이에 쓴 시들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볼 때 현대시에서는 보기 드물게 우리말을 잘 사용하는 시인이였고 그녀의 고향인 진주의 애상적인 정서까지 묻어 나오는 것은 더욱 그녀의 시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첫번째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의 백미는 다음의 시이다.



3. 폐병쟁이 내 사내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몰골만 겨우
사람꼴 갖춰 밤 어두운 길에서 만났더라면 지레 도망질
이라도 쳤을 터이지만 눈매만은 미친 듯 타오르는 유월
숲속 같아 내라도 턱하니 피기침 늑막에 차오르는 물 거
두어주고 싶었네
산가시내 되어 독오른 뱀을 잡고
백정집 칼잽이 되어 개를 잡아
청솔가지 분질러 진국으로만 고아다가 후후 불며 먹
이고 싶었네 저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을 재워 선한 물
같이 맛깔 데인 잎차같이 눕히고싶었네 끝내 일어서게
하고 싶었네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내 할미 어미가 대처에서 돌아온 지친 남정들 머리맡
지킬 때 허벅살 선지피라도 다투어 먹인 것처럼
어디 내 사내뿐이랴



위의 시는 김지하의 도피를 돕던 시절에 쓰여졌다는 풍문이 있다.

얼마나 무서운 시란 말인가, 그리고 얼마나 발칙한 계집이란 말인가

산가시내 되어 독오른 뱀을 잡고 백정집 칼잽이 되어 개를 잡아
청솔가지 분질러 진국으로만 고아다가 ... 저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을 재워
선한 물 같이 맛깔 데인 잎차같이 눕히고싶고.. 끝내 일어서게 하고 싶...다는

허수경은 일찌감치 인간세상의 이치를 다 궤뚫어 버린 것만 같다.

그리하여 그녀의 두번째 시집 <혼자가는 먼집>은 첫번째 시집과 비교하여 믿기지 않을 만큼의 변신을 한다.
첫번째 시집이 남도의 가락같은 구수함이 있었다면 두번째 시집은 마치 유행가의 가사처럼 통속적이고 그 통속함에 슬퍼 구슬피 흐느끼고 있다.



4. 울고 있는 가수



가수는 노래하고 세월은 흐른다
사랑아, 가끔 날 위해 울 수 있었니
그러나 울 수 있었던 날들의 따뜻함
나도 한때 하릴없이 죽지는 않겠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돌담에 기대
햇살처럼 번진 적도 있었다네
맹세는 따뜻함처럼 우리를 배반했으나
우는 철새의 애처러움
우우 애처러움을 타는 마음들
우우 마음들이 가여워라
마음을 빠져나온 마음이 마음에게로 가기 위해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일들은 나를 울게 한다
울 수 있음의 따뜻했음
사랑아, 너도 젖었니
감추어두었던 단 하나, 그리움의 입구도 젖었니
잃어버린 사랑조차 나를 떠난다
무정하니 세월아,
저 사랑의 찬가
(혼자가는먼집,1992,문학과지성사)



5. 혼자 가는 먼 집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으이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혼자가는먼집,1992,문학과지성사)


가족사와 시대와 이 땅의 아픔에 대하여 어린마음으로 울고 노래하던 시인은 이제 그 아픔을 감당 못하고 킥킥거리며 몸을 흔들고 술을 마시고 기타를 치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녀는 이야기 한다. "인생을 너무 일찍 누설하여 시시쿠나......그게 바로 창녀 아닌가, 제 갈 길 너무 빤해 우는 거..."(뽕짝의 꿈 중,혼자가는 먼집) 그리고 그녀는. 인생을 너무 일찍 누설한 죄로 어느 것에도 마음 붙일 수 없던 그녀는 한국 땅을 떠나 독일로 가 선사고고학 공부를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돌아오지 않음"이 나에게는 예사로와 보이질 않는다. 돌아올 이유가 없어서 돌아오지 않는다기 보다는 아직도 마음이 아프고 돌아오는 것이 두렵기에 돌아오지 못하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허수경이 독일로 떠난 지 8년 만에. 그녀가 부재 중인 한국에서 그녀의 세번째 시집이 나왔다.


6. 어느날 애인들은


나에게 편지를 썼으나 나는 편지를 받아보지 못하고 내
영혼은 우는 아이 같은 나를 달랜다 그때 나는 갑자기 나이
가 들어 지나간 시간이 어린 무우잎처럼 아리다 그때 내가
기억하고 있던 모든 별들은 기억을 빠져나가 제 별자리로
올라가고 하늘은 천천히 별자리를 돌린다 어느날 애인들은
나에게 편지를 썼으나 나는 편지를 받지 못하고 거리에서
쓰러지고 바람이 불어오는 사이에 귀를 들이민다 그리고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2001, 창작과비평사)


7. 그날의 사랑은 뜻대로 되지 않았네


고향 언저리에서 나지 않는 열매들이 추억을 채우네
이국의 푸성귀들이 내 살을 어루네
사랑은 뜻대로 되지 않았으며
입술은 사랑의 노래로 헤어졌네
과거는 소멸되지 않았으나 우리는 소멸했네

오 오 나는 추억을 수치처럼 버리네
내 추억에서 나는 공중변소 냄새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2001, 창작과비평사)


기존 허수경 시들에서 묻어나던 남도가락의 정서와 한국적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어휘들이 증발해 버린 것이 세번째 시집의 특징이다. 나는 허수경의 세번째 시집을 읽으며 "한국어로 쓰여진 외국 시"라는 표현까지 하려 한다. 그러나 이 세번째 시집에 대하여 나쁘다, 좋다,라는 표현은 하고 싶지 않다.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그녀의 시만이 지닌 매력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며 나쁘다,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그녀가 이 곳을 아직도 아파하고 또한 정붙이고 있는 그 이국의 정서에 순화되어 그곳의 글을 쓰느 것 또한 재주이다, 싶어서이다. 물론 그녀의 시를 후하게 보는 데에는 첫번째 시집과 두번째 시집을 나 스스로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어쨌든 그녀의 시는 여전히 가슴아프고 안쓰러운 부분이 있다.


허수경은 매번 시집이 나올 때마다 기존의 것과는 상당히 달라진 스타일을 선보이는 시인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네번째 시집은 첫번째 시집만큼 좋을 수도 혹은 세번째 시집만큼 알곡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의 시심에 바탕으로 깔린 정서와 깊음에 대해 나는 신뢰한다. 그녀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드러내고 자신을 감추지만 시인은 어쩔 수 없이 작품이 작가 스스로의 모습 그대로이다. 아직도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바라만 보는 그녀가 인생을 너무 일찍 누설한, 하늘의 죄를 씻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파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