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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64 - 실종 1
S#1. 강의실 내부 / 낮
강의실에서 보이는 창밖. 햇살이 아주 눈부신 기분... 또는 바래가 난 기분의 밖.
안을 보면. 학생들이 열서너명 앉아서 시험을 치고 있는 중이다.
교실 앞에서는 조교로 보이는 학생이 아이들을 감독하며 서성거리고 있고.
모두 시험지에 코를 박다시피 하고 공학자들을 이용하기도 하면서 전자과 시험을 치는 모습.
그 중에 민재가 있다. 민재는 빠른 속도로 답안지에 수식을 적어나가고 있는 중.
보지 않는 상태에서 손을 뻗어 옆의 공학자를 집으려다가 필통을 건드린다.
떨어지려는 필통을 집으려다가 공학자가 옆의 복도로 굴러 떨어진다. 조용한 가운데 요란한 소리.
민재 당황하며 자리에서 빠져나와 주저앉아 공학자를 집으려는데. 어디서 들려오는 또르르 구르는 소리. 고개를 들어 보면...
경사진 교실 바닥, 책상들 사이로 어린애들용 피리가 하나 또르르.... 굴러내려오고 있다. 조용한 가운데 그 소리가 유난히 요란하다.
민재, 이상해서 피리를 보다가 무시하고, 공학자를 집어들고 일어서다가 굳는다.
강의실에는 아무도 없다. 방금 전까지 시험을 치던 학생들도... 칠판 앞의 조교도 없다.
민재 자기 책상을 본다. 자기 책상 위에는 방금전까지 자기가 쓰던 답안지가 있다.
민재 당황하여 답안지를 잡아채어 본다. 답안지는 하얗게 비어있다. 아무것도 씌어져있지 않다.
S#2. 민재의 방 / 아침
침대에서 자던 민재, 벌떡 일어나 앉는다. 꿈이었다.
민재, 멍청한 기분으로 잠시 앉아있다가 후다닥 침대 옆에 놓았던 자명종 시계를 들어본다.
저만치 책상 앞에서 책을 챙기고 있던 정태가 돌아보며.
정태 : 지금 여덟시야. 좀 더 자.
민재 : (부리나케 침대에서 내려오며 당황해서) 이 시계 이거 왜 이래. 여섯시에 맞춰놨는데 왜 안 울렸지. 내가 끄고 잤나?
그럴 리가 없는데. 이거 고장난 거 아냐? (시계를 흔들어보는데)
정태 : 내가 꺼놨어.
민재 : 뭐야.
정태 : 너 며칠 잠 못자구 있었잖아. 좀 더 자라구 내가..
민재 : 너 왜 부탁하지두 않은 짓을 하구 그래.
정태 : (뭐라 말하려는데)
민재 : 내가 최소한 여섯시에는 일어나야 그 일을 처리하구 세미나 준비를 할 수 있었단 말야. 하아참... 그걸 왜 니 맘대루 꺼.
(급히 옷을 주워들며 책을 챙기며...)
정태 : (웃고 있다가 자기도 좀 기분이 나빠지며) 자식 진짜루 성질내구 그러네. 야임마. 난 널 생각해서..
민재 : 글세. 날 생각해줄거믄 내 시계 좀 니 맘대로 끄지 말라구...난 지금 하루에 한시간만 더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그러다가 자기도 좀 심했다 싶어서) 내가 요즘 좀 여유가 없다. 그냥 이해해라.
옷을 대충 껴입으며 입구로 달려나가려다가 부리나케 돌아와서 잊어버린 뭔가를 주워들고 다시 달려나가는....
정태, 그런 민재를 찌푸리고 보고 있다.
S#3. 정문 진입로
민재, 자전거에서 일어선 자세로 빠르게 페달을 밟는다.
출근 차량을 통제하고 있는 백곰. (중앙선에 정해진 위치)
민재, 진입로를 통과하면서 백곰을 스칠듯 커브를 튼다.
백곰, 허어...해서 돌아보는데 민재는 어느새 행정동쪽으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S#4. 대강당 옆 언덕길
민재, 자전거를 타고 헐레벌떡 올라오고 있다.
비탈을 오르느라 안간힘을 쓰는 민재, 갑자기 비틀비틀하다 선다. 자전거 체인이 빠져 버렸다.
민재,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체인을 이어보려고 애를 쓴다. 잘 안되고.
이마에 땀을 훔치는 민재. 아침부터 덥고 짜증스럽다.
어디선가 어잇, 어잇하는 기합소리가 들려온다. 강당뒤 공터에서 검도부학생들이 20명 정도 줄을 맞춰서서 연습을 하는 중.
민재, 신경쓰지 않고 자전거를 끌면서 뛰듯이 언덕을 올라간다. 그 위로 들리는.
민재 : (E) 거기 재료공학과 금속강성 연구실 맞죠?
S#5 센터 랩
민재가 컴퓨터의 이메일 화면을 보면서 핸드폰으로 통화중.
민재 : 거기 김종석씨 안계세요? 아니 분명 그 랩에 계신 분인데요. 잘 모르시나본데 옆에 분한테 좀 물어봐주실래요?
(기다리면서 초조하게 메일박스를 이리저리 위아래를 마우스로 끌어보며) 여보세요? 없다구요. 아니..저 (저쪽 전화가 끊긴 듯)
여보세요... (하다가 화가 나서 핸드폰을 끊는다)
경진이 들어서다가 보고..
경진 : 어이구. 아침부터 어째 목소리가 살벌하게 울리네. 너 아침 안 먹었지? 내 빵 좀 나눠줄까? 삶은 계란도 있는데...
경진은 가방을 둘러메고 양손에 빵이며 우유며 계란 봉지 등을 줄레줄레 들고 있다.
민재, 경진의 말에 대꾸할 여유가 없다. 수첩을 와랑와랑 뒤지면서.
민재 : 도대체 이놈의 랩은 어떻게 된 게 같은 랩원들두 서로 잘 몰라.
경진 : (기웃거리면서) 뭐야. 아침 인사만 좀 곱게 해봐. 내가 도와줄수 도 있지.
민재 : (수첩 거칠게 놓으며) 오늘 아침까지 메일을 보내준다고 그랬다고. 그럼 보내줘야 될 거 아냐.
경진 : (짐짓 편들어주며) 누가아. 대체 누가 그렇게 이민재 비위를 건드려.
민재 : 삼진산업 말이야.
경진 : 자동차 오토도어락을 만드는데 말이지.
민재 : 그래. 거기 스프링이 말썽이라구 하잖아. 평균수명보다 빨리 끊어지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재료공학과에 금속공학을
전공하는 학생한테 자문을 구했거든. 첨에 몇번은 메일을 잘 보내주더니... (자기 분에 못이겨 설명을 하다가... 문득 경진을 보고..)
경진 : (빤히 보고 있다)
민재 : (자기가 한심해진다) 지금 몇시냐.
경진 : 일분전에 시계를 보니까 여덟시 사십사분이더라. 지금은 아마 사십오분이 되있을 거야.
민재 : 세미나 열시부터지.
경진 : 그렇지. 오늘은 민재 니가 발표구.
민재 : (자기 책상 위를 거칠게 뒤적여서 세미나 자료를 찾는데)
경진 : 근데 너 아침만 안 먹은 게 아니구. 아침 세수도 안했지? 세수를 하고 나면 좀 세상이 밝아지지 않을까. 세수 비누 빌려줘?
민재, 멈추고 경진을 돌아본다.
S#6. 화장실
세면대 위로 쏟아지는 물줄기.
민재, 찬물을 받아서 세수를 하는 중이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거울을 보면서 중얼중얼.. 세미나 발표 연습...
민재 : 대기권에서 radio signal은 진행할 때 굴절 및 반사를 경험합니다. 이러한 굴절율 및 반사정도는 온도, 습도, 공기의 밀도등에 의해
정해지는데 대부분...
잘 생각이 안난다. 기억을 더듬는 민재.
민재 : 굴절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계속 막힌다) 그러니까..
석우 : (E) 습도.
민재 : (돌아보면 석우가 화장실 안에서 나온다)
석우 : (민재의 옆 세면기에서 물을 틀어 받으며 손 씻으면서) 고도가 올라가면 refraction index가 줄어들지.
거기 따라서 시그널의 전송방향도 굴곡을 갖는거야.
민재 : 예...
석우 : 발표한 다음에 질문도 받을텐데 그래갖구 되겠어?
민재 : ......
석우 : 아무리 5년차라두 학부생인데, 학부생한테 세미나 맡긴건 니가 처음이야. 서교수님이 기대를 많이 하시더구만.
(물을 잠그고 대충 옷에다 손을 닦으며 돌아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던데. 그런가?
민재 : (조금 오기가 나서) 준비는 열심히 했습니다.
석우 : 열심히 하는 건 누가 못하나. 제대루 해야지.
석우, 먼저 나간다.
민재, 좀 기분이 나빠서 세면기에 물을 잠그고.. 뒷춤에 끼어둔 수건을 꺼내 손을 닦다가 멈춘다.
문득 옆의 세면대를 돌아본다. 석우가 물을 받아 씻었던 세면대에 물기가 하나도 없다.
민재, 자기 세면대를 본다. 물이 여기저기 튀어있다. 그 물기를 손으로 훔쳐서 보고, 수건으로 닦고...
석우가 썼던 세면기를 손으로 훔쳐본다. 역시 물기가 하나도 없다. 수도꼭지도 말짱하다.
민재, 이상한 기분으로 석우가 나간 문을 돌아본다.
S#7. 엔진랩 부근 / 낮
지민이 팔랑거리는 걸음으로 오고 있다. 자현이 항상 일하던 천막을 기웃거려 보고... 자현은 없다.
S#8. 엔진랩 앞쪽 연구실
지민이 문을 조금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
살금살금 들어와서 비좁게 놓인 책상들 사이사이 작업하는 학생들을 둘러보는데..
동현 : 누구 찾는데?
지민 움찔해서 돌아보고.
지민 : 자현이 언니요. 추자현.. 저 후밴데요.
동현 : 저 구석에 가봐요. 저기 왼쪽 구석.
지민 : 네 고맙습니다. (꾸벅 절하고 가려는데)
동현 : 아 그리고..
지민 : (돌아보면)
동현 : (좀 낮은 목소리) 안좋은 일이면 나중에 보는 게 좋을거에요. 방금 내가 어제 작업한 걸 다시 해놓으라고 시켰거든.
지민 : (언뜻 이해가 안가서) 네?
동현 : 그래서 지금 거품물고 쓰러지기 직전이라고..
하면서 돌아서는데 입가에 재밌다는 미소가 떠오르고 있다.
// 자현의 책상 쪽
지민이 다가와 보면, 자현이 컴퓨터 앞에서 온갖 인상을 쓰며 앉아있다.
지민 : 언니. 자현언니.
자현 : 뭐야. (벌컥 돌아보다가) 어 지민이 왔냐. 왜.
지민 : 언니 오늘 저녁 시간있어?
자현 : (화가 나있는 상태) 나한테 시간이 어딨냐. 그놈의 시간 좀 나한테 몇시간만 줘봐. 나두 숨 좀 쉬구 살게.
지민 : (이그..해서) 언니 선물 따로 준비 못했지?
자현 : 선물? 뭔 선물.
지민 : 오늘 대욱이 오빠 생일이잖아. 그래서 모이기루 했잖어어.
자현 : 아니 그놈은 왜 하필 오늘이 생일이야. 허구헌날 놔두고 왜 고르고 골라서 오늘 같은 날....
지민 : 언니이..
자현 : (머리칼 북북) 알았어. 저녁에 가도록 해볼게. 근데 선물은 먼 말라죽을 선물이야. 지 태어난 게 나하구 뭔 상관이 있다고.
지민 : 어이그 그럴 줄 알았어. 그럼 만원만 줘. 합동으로 같이 준비하게.
// 동현 쪽. 랩의 저쪽 구석에서 들려오는 자현의 외치는 소리.
자현 : (E) 내가 미쳤냐. 내가 그 넘 애인이야? 마누라야? 내가 왜 그놈땜에 만원씩 내야되냐고오...
동현, 예상했다는 듯 혼자 웃는다.
S#9. 위성센터 세미나실
실내에 불이 켜진다.
민재, 프로젝션 스크린 앞에 서있고 서교수, 석우, 대희, 경진등 랩원들이 자리에 앉아있다.
민재 : 제 발표는 여기까집니다. (꾸벅 인사하고)
서교수 : (고개 끄덕이며) 수고했어. 열심히 준비했네?
경진 : (흐뭇하고)
서교수 : (돌아보며) 질문할 사람 있으면 하지?
민재, 석우쪽 보면 석우는 무표정하게 자료를 넘겨보고 있다.
해범 : (손들고) 웨이브가 진행하면서 저항에 의해 속도가 감쇄되고 진행방향이 굴절되는 이유를 좀 더 설명해줄래요?
민재 : 예. 그건 웨이브의 주파수하고 전리층에서 이온화된 전자밀도랑 관계가 있는 겁니다. 고도가 높을수록 전자밀도가 증가하니까
진행방향이 휘게 되구요, 그 휘는 정도가 주파수와 반비례하죠.
대희 : (쉬운 질문이라 웃으며) 전리층의 자유전자가 일으키는 플라즈마 공진하고 관계있다는 얘긴데...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됩니까?
민재 : 복잡한 계산은 생략하구요... 맥스웰방정식에서 플라즈마상태에서의 이퀴밸런트 유전율이 공진주파수 이상에선 주파수에
반비례해 증가하고 그 이하에선 마이너스값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민재, 자신에 넘쳐 석우를 보는데 석우는 여전히 자료만 보고 있다.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다들 두리번거리며 누군가 싶은데 민재가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파워를 끈다.
민재 :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 민재 문득 눈을 찌푸린다. 민재의 시선에서 보이는 앞의 모습.
서교수 등이 앉아 있는 광경이 너무 많은 조명이 들어온 듯 하얗게 바래가 나 보인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이제 좀 괜찮다. 그 사이 진행되고 있는 앞의 대화들..
서교수 : 다른 질문 없나? 김석우씨, 어때?
석우 : (고개 들고) 예. 제가 보기에도 많이 공부한거 같습니다. (민재에게) 그래두 간단한거 하나만 확인할까?
민재 : 예.
석우 : 전리층은 보통 지상 50킬로미터에서 시작해서 500킬로미터까지 피크전자밀도를 가지는데..그때 플라즈마 공진주파수는
얼마쯤으로 계산하지?
민재 : (자신있게) 아, 예. 그건... (하다가 막힌다) 그게... 대략의 수치가...
민재, 다시 주위가 하얗게 되어보인다. 머리 속이 하얘지는 느낌으로. 민재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느낌.
그렇게 잘 안보이는 시야로 석우의 모습이 잡힌다.
석우 : (어이없는) 뭐야? 그런 기초적인 내용도 모른다는거야?
민재 : (뭔가 대답하려 하지만 잘 안된다)
석우 : 민경진. 대답 해봐.
경진 : (내키지 않은) 그때 플라즈마 공진주파수는 0.9에서 9메가헤르쯔로 계산됩니다.
석우 : 그래서?
경진 : 9메가헤르쯔 이상에서는 대체로 전리층을 투과해서 위성통신이 가능해지지만 이 이하에선 전리층을 뚫지 못해서
모두 지상으로 반사됩니다.
민재의 시선으로 그들이 주고받는 대사며 모습들이 희뿌옇게.. 과조명으로.. 소리도 점점 웅웅거리다가 제대로 돌아온다.
석우가 민재를 보고 있다.
석우 : (민재 보며) 이제 기억나?
민재 : ....예.
석우 : 그럼 그런 원리를 이용하는 실례는 어떤 게 있지?
민재 : (간신이 대답한다) 국제 HAM 통신하고 HF 단파방송, 대륙간탄도미사일 감지시스템 등입니다.
대답하면서도 스스로 어쩐지 멍청해지는 기분이다.
S#10. 센터 랩
경진이 자기 일을 하는 척하면서 한쪽을 본다.
거기 민재가 급하게 프린트를 뽑아내고 있다. 종이가 한 장씩 나오는 것을 기다리기가 초조한 듯.
경진 : 너 훌륭했어. 진짜야.
민재 : (힐끗 보고 다시 종이를 잡아채는) 자료만 한번 더 훑어봤어두 그런 기초적인 질문에서 막히진 않았을거야.
경진 : 아이구 아니다. 그건 확실히 석우선배가 비겁했던 거라구. 별로 중요하지두 않은 숫자 가지구 따져들면 그걸 누가 대답하냐.
그럴거면 책이며 컴퓨터가 왜 필요해. 인간 머리에 다 넣구 다니지.
민재 : (프린트되어진 것들을 챙기며 건성으로) 넌 외구 있었잖아.
경진 : 나야 그게 전공인데 뭐. 너야 여기 랩 연구 시작한지 몇 달 되지도 않았고.. 그리고...
민재 : 경진아.
경진 : 어 왜.
민재 : 나 위로해주지 않아두 돼. 지금 몇시야.
경진 : (김 새서 시계 보며) 다섯시 10분 전. 자기 손목 시계 볼 시간두 없냐. 인제부터 한번 가르쳐줄때마다 백원씩 받을까부다.
민재 : 나 영성모터 사장님 좀 잠깐 만나구 와야 되거든. 그러니까... (하며 돌아서다 보면)
석우 : (들어서면서) 니들 센터 홈페이지 어떻게 된거야.
경진 : 홈페이지가 뭐요.
석우 : 월요 미팅때 내가 말했잖아. 거기 Q&A 코너 느이 둘보구 책임지라구 그랬지? 인공위성이나 천체물리에 대한 질문 올라오면
그때그때 대답해주라고 했잖아.
경진 : 아 그거야 물론 책임지고....(하다가 민재를 슬쩍 보고는) 책임지려고 하고 있죠..
민재 : (아차..하는 얼굴)
석우 : 어떻게 된거야?
경진 : (괜히 바쁜척 컴으로 가며)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민재 : 제 잘못입니다. 경진이가 자료를 다 찾아줬는데 제가 올리는 걸 깜박 잊었습니다.
경진 : (가만 서고)
석우 : (경진과 민재를 번갈아보고는) 이민재.
민재 : 예.
석우 : 내일 오전에 ETB 미팅 준비는 어떻게 되가고 있어.
대희 : (옆에서 보고 있다가 민재가 안됐어서) 그건 제가 알아서 정리해놓겠습니다.
석우 : (대희를 보고) 이민재가 맡은 부분은 지금 다시 챙겨봐. 잊어버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대희 : 예.
석우 다른 쪽으로 가고. 대희와 경진 슬쩍 민재를 본다.
민재, 말없이 서있다가 저도 모르게 시계를 본다.
S#11. 도서관 전경 / 밤
창마다 환한 도서관의 밤 전경.
S#12. 도서관내 서가 / 밤
서가를 훑으며 자료를 꺼내보는 민재.
E (핸드폰 벨소리)
민재 : (얼른 받아서 주위의 눈치를 보며 작은 소리로) 여보세요? 어. 영준이구나. 동문회? 그게 내일이야? 어떡하지?
나 요즘 시간이 없는데.. 어.. 정태는 될거야. 그래. 내가 전해주께. 미안하다. 담에 꼭 나갈께.
전화끊는 민재. 다시 저널을 펼쳐든다. 찾던 페이지를 열고 아예 바닥에 쪼그려 앉는 민재 집중해서 들여다본다. 그때 울리는 벨소리.
민재, 다른 학생과 눈이 마주치자 미안하단 의미로 꾸벅 해보이고 얼른 전화를 받는다.
민재 : 여보세요? 아,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은 학교에 너무 급한 일이 생겨서요. 내일 점심시간이 비니까 그때 제가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네. 물론이죠. 이쪽은 준비가 다 됐습니다. 자료는 제가 정리해서 갖구 있습니다. ..그럼요. 예. 내일 뵙겠습니다.
민재, 전화를 끊는데 곧장 다시 벨소리가 울린다. 근처에 있던 학생들, 노골적으로 찌푸리는 표정.
미안해진 민재, 아예 전화기를 꺼서 가방에 넣어버린다.
S#13. 박교수 랩 / 밤
시디며 자료등을 잔뜩 든 규한이 급하게 랩으로 들어선다.
보면, 지원, 마이클이 나갈 준비들을 하고 있다.
규한 : 어어 뭐야. 벌써들 가는거야? 지금 몇신데..
마이클 : 오늘 대욱이형 생일파티야. 규한이 형도 같이 가자.
규한 : 생일같은 소리 하구 있네. 마이클 너 찾아놓으라는 거 어뜩했어.
마이클 : 그거 모레까지 하면 돼. 아직 시간 많아.
규한 : 너 시작도 안한 건 아니지. 그리고 지원이 넌, 내가 부탁한 프로그램 다 됐어?
지원 : 정확하게 말하자구. 넌 부탁한 게 아니라 강제로 떠맡긴 거잖아.
규한 : 아아. 글세 그거 다 됐냐고.
지원 : 내가 맡은 건 내가 알아서 해. (남희에게) 선배는 같이 안가실래요?
남희 : (싱글거리며 보고 있다가) 난 안가두 되잖아. 할 일도 있고. 축하한다고 말이나 전해줘.
지원 : 그럴게요. (입구로)
마이클 : 그럼 모두 바이.. 내일 봐요.
규한 : (화나서 남희에게 가며) 선배. 이거 분명히 이번 주말까지 끝내야 된다고 하셨죠. 끝내야된다..말만 해놓고 그렇게 무책임하게
보고만 있음 어뜩합니까. 최소한 작업분담은 해주셔야죠.
남희 : (여전히 웃는 얼굴) 작업분담은 팀장이 하는 걸로 되있잖아.
규한 : 아니 구지원이 하는 거 보세요. 팀장 말을 아주 우습게 알잖아요. 이래서는 작업이 진행이 안되죠.
남희 : 이규한. 팀장의 책임이라는 건 말이지. 팀원들에 대한 리더십까지 포함하는 거 아니니? 아무래도 어려워? 내가 다시 맡아줄까?
규한, 불퉁해서 남희를 보다가 거칠게 자기 책상으로 간다.
남희, 생글거리며 일어나며.
남희 : 나두 먼저 들어갈게. 논문 자료들이 내 방에 다 있거든. (책을 챙기다가) 아 참. 규한아.
규한 : 왜요.
남희 : 내일 오후에 중간 브리핑해줘야겠다. 오후 다섯시 괜찮지?
규한 : (불끈) 아니 지금 자료들이 반도 안넘어왔는데...(하다가 멈추는)
남희 : 힘들면 언제라두 말해. 나두 시간은 없지만 그 일 하나 정도는 더 해낼 수 있으니까..
규한 : ....그러죠. 힘들면..
남희 : 그래. 그럼 수고.
남희 경쾌하게 나간다.
규한, 으이그..해서 자기 컴퓨터를 보다가 거칠게 자료들을 뒤지는..
S#14. 민재의 사무실 앞 / 밤
자전거에서 빠진 체인이 덜그덕거리고 있다.
지쳐있는 민재, 체인이 빠진 자전거를 질질 끌며 걸어오고 있다. 입구로 가려다 보면 입구의 옆에 빈박스가 세 개 정도 흩어져 있다.
민재, 박스를 잘 챙겨서 얹어놓는다. 그러는데 안에서 왁자하게 들리는 웃음소리.
민재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S#15. 민재의 사무실 내부
민재, 어리둥절해서 들어선다.
모여 있는 아이들, 마악 케잌에 생일초를 꽂으며 떠들던 중이다. 나이 몇이냐, 그거보다 더 되보인다... 하며 시끄러운 아이들.
지민 : (민재 보고) 어. 민재 오빠다. 어서와요.
경진 : (나서며) 너 핸드폰은 왜 꺼놓은거야? 니 번호 찍다가 손가락 부러지는 줄 알았다.
민재 : (테이블 보고) 이게 다 뭐야..? 무슨 일이야?
경진 : 넌 사장이 되갖구 직원 생일도 안챙겨주냐? 오늘이 대욱이 생일이잖아.
민재 : (대욱 보며) 생일이야?
대욱 : 미안해요. 형. 허락도 없이... 밖에서 해도 되는건데...
자현 : 짜샤. 나가서 돈 쓸 일 있냐? 여기두 분위기 좋구만. 근데 빨랑 좀 시작하자. 나 오늘 밤새야 된단 말야.
정태 : (민재에게) 너 연락 안되길래 일단 우리끼리 시작했어. 이리 와.
지원 : (민재에게) 안그래도 막 생일초 키려던 참이야.
자현 : 자자, 불 붙이자. 마이클, 라이타 있냐?
마이클 : 노우. 생일초는 성냥으로 붙여야 돼. 그래야 소원 이뤄져. 누구 성냥 없어? 매치.
시끌벅적하게 생일초에 불을 붙이는 아이들.
지원, 웃다가 고개 들어 보면 민재, 한쪽으로 빠져나와 책상 위에 자료를 챙기고 있다.
지원, 옆에 있는 정태를 살짝 건드린다.
정태, 지원이 눈짓하는거 보고 민재쪽을 돌아본다.
정태 : 이민재. 뭐해?
민재 : (자료들고 다가와) 미안해. 니들끼리 놀아. 오늘밤 안에 처리해야 될 일이 있어.
자현 : 이거봐. 나두 컴퓨터 켜놓은 채루 달려온 사람이야. 여기 안바쁜 사람 있냐? 없지?
아이들, 그럼! 나도 바빠, 숙제 많아! 떠들썩하고.
경진 : 이런날 개인행동 하면 두고두고 욕먹는다, 이민재.
정태 : 그래. 오늘밤은 그냥 푹 쉬는게 어때?
민재 : 미안하다. 정말 급한 일이야. 아 참 대욱아.
대욱 : (아이들에 묻혀있다가 돌아보며) 예.
민재 : 모레쯤 성도기계에서 직원이 오기로 했어. 샘플이 별로 맘에 안든대.
대욱 : ......어디가요?
민재 : 자세한건 나도 몰라. 암튼... 디자인도안 추가로 해놓은거 있지?
대욱 : 예.
민재 : 쓸만한 걸로 몇 개 골라서 모레까지 정리해 놔.
대욱 : 알았습니다.
민재 : 그래. 그럼...
민재, 나간다
썰렁해서 쳐다보는 아이들. 해성은 폭죽을 마악 터뜨리려는 자세로 아이들의 눈치를 본다.
지원, 정태와 눈이 마주치면 정태도 어깨만 으쓱할 뿐이다.
마이클 : 뭐야아. 민재형이 분위기 다 망쳤어.
지민 : 바쁘다잖아... 어쩔수 없지.
해성 : 이거...지금 터뜨려?
경진 : 아니 초 끄고.. 그렇지? 순서가 초 끄고 폭죽 맞지?
자현 : 강대욱! 빨랑 불어 임마. 빨랑. 촛농 떨어지면 케잌 못 먹잖아!
자현이 밀어대는 통에 대욱, 얼결에 촛불을 불어 끈다. 아이들 와아 박수를 쳐주는데 아무래도 김이 새있다.
자현이 먹자..고 떠들고.. 애써 분위기들 살리려 하는 와중에 경진이 슬그머니 일어선다.
정태도 거의 동시에 일어서려다가 경진을 보고는 도로 주저앉는다.
S#16. 사무실 밖
민재, 문 앞에 잠시 서있는 상태. 안에서 애들이 와아 떠드는 소리. 폭죽 터지고 소리지르고..
문이 열리며 경진이 슬그머니 나선다.
앞의 민재와 시선이 마주치고, 경진 문을 닫고. 그리고 민재의 앞을 가로막는다.
경진 : 너 방금 아주 한심했어.
민재 : ..(귀찮다)
경진 : 너 바쁜 거 알어. 아는데 다른 날두 아니구 대욱이 생일이야. 그거 한두시간 같이 있어주지 못하니?
민재 : 미안하다구 했잖아. 미안하지만 니들끼리 놀아달라구.
경진 : 하나두 안 미안하면서 그런 말 하는게 아니지. 그럼 듣는 사람들이 더 삐지지.
민재 : 나 지금 바루 가봐야돼. 그래서..
경진 : 그래서 나의 우정어린 충고도 들어줄 시간이 없다는 거야?
민재 : 니가 무슨 충고를 하려는지 알어. 아는데.. 나 정말 시간없어.
경진 : 너 대욱이한테 생일 축하한단 말 한마디두 안했어.
민재 : (울컥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며) 나 오늘 이 사무실에서 해야 될 일이 태산이야. 그런데 일하러 온 사무실에 친구란 녀석들이 잔뜩
모여서 파티라는 걸 하고 있는거야. 나로선 최대한 배려해서 사과하고 빠져나왔어. 더 뭘 어떻게 하란 말야.
경진 : (보다가) 그러니까 넌 지금 우리가 다 귀찮다는 얘기구나. 알았어. 그럼 들어가서 모두한테 다 없어지라구 할까. 그럼 되겠냐?
민재 : (짜증나지만) 그냥 내 앞에서 비켜주기만 하면 돼.
경진 : (끄덕인다) 오케이. 원하시는대로. (비켜서준다)
민재 경진을 스쳐서 몇걸음 걷다가 돌아본다.
경진, 무표정한 얼굴로 민재를 향해 짧게 경례를 붙여주더니 다시 사무실로 들어간다. 닫히는 문.
민재 한숨을 쉬고 돌아서려다가 멈춘다. 본다. 아까 잘 쌓아 놓았던 박스들이 그 전의 모양 그대로 흩어져 있다.
민재, 이상해서 보다가 박스 하나를 들려다가 에이 그냥 던져버린다.
문득 추위를 느낀다. 어깨를 부비며 빈 공간을 돌아본다.
에이.. 떨치는 기분으로 무심코 자전거를 끌어내서 타려다가 아참..해서 자전거의 지지대를 다시 내려서 세운다.
민재, 우울하게 혼자 걸어간다. 민재의 모습이 사라지고 난 뒤, 다시 보여지는 자전거.
체인이 멀쩡한 상태로 감겨져 있다. 아까 확실히 보이던 늘어진 체인이 아니다.
S#17. 강의실 / 낮
민재, 책상에 놓인 노트에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그 위로.
이교수 : (E) 이민재.
민재 : (못 듣는다)
이교수 : (E) 이민재.
민재, 그제야 고개를 번쩍 들고 앞을 본다.
이제 보여지는 강의실 내부 모습. 아이들 모여있고. 민재의 옆자리에는 정태가 있고. 뒷자리에는 해성이도 보이고.
민재 : 예?
이교수 : 나와서 해봐.
민재 : (어리둥절)
이교수 : 지금 우리들이 얘기한 방식대로 한번 풀어보라고.
민재, 정태를 돌아본다. 정태는 민재를 보지 않고 뒷자리의 해성과 책을 보며 뭔가를 얘기하고 있다.
민재, 얼떨떨한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간다. 칠판 앞에 서서 분필을 쥔다. 하얗게 비어있는 칠판. 뒤를 돌아본다.
이교수는 민재를 보고 있고. 아이들도 민재를 보고 있다. 정태와 해성도 민재를 본다.
민재 다시 칠판을 보지만 뭘 해야 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민재 분필을 든 채 칠판을 보다가.
민재 : 죄송합니다. 못 들었습니다.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보면 이교수가 있던 자리에 이교수는 없다.
민재 후딱 뒤를 돌아본다. 빈 강의실이다. 아무도 없다. 순간 맨 앞자리 책상 위에 달랑 놓여져 있는 피리가 눈에 띈다.
S#18. 민재의 방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던 민재, 후딱 잠이 깨어 상체를 일으킨다. 스탠드 불빛만이 있고. 정태는 침대에서 잠들어있다. 깊은 밤이다.
민재, 이마에 배인 땀을 의식하고 닦는다. 어쩐지 숨이 가빠져 있다. 얼굴을 부비고... 그리고 켜져 있는 모니터를 바라본다.
순간 요란하게 울리는 자명종 소리. 민재 움찔 놀라서 보고 자명종을 찾아 끈다.
정태가 잠결에 뒤척인다. 민재..... 뭔가 불안하다.
S#19. 캠퍼스 정문 부근 / 아침
백곰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처장이 모는 차가 들어선다. 백곰 멋지게 경례를 해보인다.
처장 미소지으며 지나가고...
백곰 뒤에 오는 차들을 정리하다가 돌아보는데. 저 앞에 처장의 차가 멈춰져 있다.
기웃해서 보면... 처장의 차 앞 길 가운데에 누군가 서있다. 민재의 뒷모습.
// 민재쪽.
민재는 길 가운데에 자신이 서있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핸드폰으로 얘기를 하고 있다.
민재 : 오늘은 약속이 있는데요. 내일 어떨까요. 내일 점심시간이요. 예.. 그 학생이 디자인 샘플을 몇 개 가지고 나온다고 했으니까요.
내일 직접 보시구 결정을 해주시면 되겠는데요.
민재의 뒤에서 처장이 크랙션을 누르지도 못하고 보고만 있다.
백곰이 부리나케 달려온다.
민재 : 우리 학교에 석학의 집이라고 있습니다. 거기서 뵙죠. 예. 열두시 정각.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끊는데)
백곰 : 어이 학생... 어이..
민재 : (무심히 돌아본다)
백곰 : (헐레벌떡 뛰어와) 뭐하구 있는거야. 길 한가운데서.
민재, 그제야 자기가 막고 있는 처장의 차를 알아본다. 당황해서 처장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처장, 맘좋게 웃으면서 고개 끄덕여준다.
백곰 : 이거봐 여기는 차도. 저기는 인도. 차도는 차 다니는 길. 인도는 인간이 다니는 길.
민재 : 죄송합니다. 정신이 없어서.. 내가 왜 여기 서있지.
백곰 : (민재를 끌고 인도쪽으로 가며 처장에게 경례를 하여 보낸다)
처장의 차가 지나쳐가고..
백곰 : 이민재. 전자과. 왜 그래? 아침부터.
민재 : 그러게요. 하하. (어색하게 웃는)
백곰 : 또 밤새구 연구를 했구만. 좋아요. 다 좋은데 사람이 죽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는거야.
그러니까 제발 잠이 덜 깼을 때도 인도와 차도는 좀 구별해줘. 알겠지?
민재 : 예. 인도와 차도.. 예. 하하. (꾸벅꾸벅 고개 숙여보이고 가는)
백곰, 불안해서 가는 민재를 본다.
S#20. 전자과 복도
민재 여전히 뭔가를 생각하며 걸어간다. 코너를 돌아가다가 마주오던 해성과 부딪힌다.
해성은 복사물을 잔뜩 안고 있다가 놓치고.
민재 : 어어 미안해요. (이런...해서 흩어진 복사물을 주워주는데)
해성 : (같이 쭈그려 앉아 몇 개를 줍다가 히히 웃는다)
민재 : (보면)
해성 : 어쩐지 오늘은 아무 사고가 없다 했거든요.
민재 : 예?
해성 : 이상하게 난 복사 할 때마다 사고를 쳐요. 복사기가 고장나든가, 부수를 잘못 알든가. 아니면 뒤집어놓거든요.
민재 : 뒤집어놓다뇨.
해성 : 열심히 몇십장씩 복사를 했는데 나중에 보면 하얀 종이인거에요. 뒤집어서 복사를 했나봐요.
민재 웃으면서 복사물들을 챙겨준다.
S#21. 이교수 랩 / 낮
만수, 중희와 함께 앉아 뭔가 지겨운 작업에 붙들려 있고 한쪽엔 명환과 민재가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명환 : 시뮬레이션 결과가 아주 좋아 보이지?
민재 : (반가운) 그런데요. 기대했던 거 이상이에요.
명환 : 이 회로도대로 세팅하면 비용절감도 크고 작업효율도 이전에 비해 30프로 정도는 높아질거같애.
민재 : 아저씨가 들으면 무척 좋아하시겠어요. 괜히 쓸데없는 짓 한거 아닌가 걱정을 많이 하던데.
명환 : 아냐. 아주 훌륭하다고 전해. 특허신청부터 빨리 하시라고 하고.
민재 : 예. 선배님. 이거 FTP로 보내주실래요?
명환 : 그러지 뭐.
민재 : (다이어리 뒤지며) 그 아저씨 연락처가... 여기 어디 적어놨는데.
중희 : (돌아보고) 이사장. 한껀 올린거야? 축하해.
만수 : (이때다 싶어) 민재 너, 그러다 학위 따기 전에 벤처 재벌되는거 아니냐? 너 성공하면 알지? 난 무조건 그 회사 전무이사다.
중희 : 후배가 고생해서 닦아놓은 회사에 낙하산을 타겠다구? 정만수, 철 좀 들어라.
만수 : 낙하산이라뇨. 스카우트죠. 쟤는 연구실 귀신이라서 저같은 처세의 달인이 옆에서 거들어야 된다구요.
중희 : 처세가 아니라 권모술수겠지. 협잡이든가.
만수 : 아니 선배. 지금 인간 정만수를 어떻게 채점하시는 겁니까? 제가 기껏 그정도밖에 안됩니까?
명환 : (작업하던 채) 정만수. 4시까지 하던거 못끝내면 각오해. 밤새 교대로 감시하면서 화장실도 안보낼거야.
만수 : (삐죽거리면서 다시 작업하고)
명환 : 민재야.
민재 : 예?
명환 : 센터 일은 할만 하냐? 석우선배 밑에 있기 만만치 않지?
민재 : 아뇨. 잘해주세요.
명환 : (웃고) 겉으론 깐깐하고 엄해 보여두 석우선배만큼 후배 잘 챙겨주고 든든한 선배가 없어. 그러니까 잘 배워.
민재 : 예에...
민재, 웃으며 대답하지만 씁쓸한 표정이 스친다.
S#22. 전자과 복도
민재, 시디를 들고 기분이 좋아서 걸어온다. 아까와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중이다. 코너를 돌아가는데 해성과 부딪힌다.
해성은 복사물을 들고 있다가 놓친다.
민재 : 어어.. (하다가 어이없어 웃고 쭈그려 앉아 주워주며) 복사할 게 많은가봐요.
해성 : (앞에 쭈그려 앉아 줍다가 히히 웃는다) 어쩐지 오늘은 아무 사고가 없다 했거든요.
민재 : 예..(하다가 좀 이상해서 본다)
해성 : 이상하게 난 복사 할 때마다 사고를 쳐요. 복사기가 고장나든가, 부수를 잘못 알든가. 아니면 뒤집어놓거든요.
민재 : 뒤집어놓는다는 건... 뒤집어서 복사를 해서.. 나중에 보면 하얀 종이라는 건가요?
해성 : 그래요. 바로 그거에요. 열심히 몇십장씩 복사를 했는데 나중에 보면 하얀 종이인거에요. 뒤집어서 복사를 했나봐요.
민재 : (어느결에 손이 멈춰있다가) 저기요.
해성 : 네?
민재 : 혹시 우리 아까도 여기서 부딪치지 않았나요?
해성 : 우리가요? (무슨 소린가해서 보는)
민재 : 그러니까 삽십분쯤 전에... 여기서..
해성 : (멀뚱하게 보는)
민재 : 오늘 복사 몇번이나 하는 거에요?
해성 : 오늘 복사는... (생각해보더니) 이게 처음인데요.
민재, 웃으려 하다가 다시 본다.
해성은 전혀 장난이 아닌 얼굴로 민재가 이상한 질문을 했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
S#23. 위성센터 랩 / 낮
경진이 종이커피를 세잔 위태롭게 들고 들어선다. 한잔을 대희의 책상 앞에 놓아주며.
경진 : 점심식사 후에 후배가 대접하는 최고의 커피입니다.
대희 : 어 고마워.
경진 : 평소에 귀찮은 동전이 쌓이시면 언제라도 민경진에게 처리를 부탁해주세요. 이렇게 시시때때 그 보람이 나타날 겁니다.
대희 : (어이그...하는 얼굴로 웃는)
경진이 돌아보는 곳에 민재가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경진, 턱을 세우고 두잔의 커피를 들고 민재에게 다가간다.
경진 : 이민재씨. 혹시 커피 마실 시간이 있으시면 한잔 드시겠습니까?
민재 : (모니터에 정신을 팔고 있다)
경진 : 아 네. 그럴 시간이 없으시군요. 그럼 이 커피 두잔은 시간이 남아도는 이 몸이 마셔드리지요. (돌아서려는데)
민재 : (모니터를 보는 자세로) 경진아.
경진 : 아이구 남의 이름을 부를 시간이 있으시다니.. 왜요?
민재 : 너 혹시 내 컴퓨터 만졌니?
경진 : ....너 지금 나한테 시비 거냐?
민재 : (장난하는 얼굴이 아니다) 여기 내 메일박스에서 메일이 몇 개 없어졌어.
경진 : 니 메일박스에서 무슨 메일이 없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니꺼 무서워서 건드리지도 않는다.
봐라. 지금도 이렇게 일미터 밖에 서있잖냐.
민재 : (경진을 본다. 멍한 얼굴이다) 우리 학교의 재료공학과 선배한테 받은 메일... 그것만 싹 없어졌어.
경진 : 재료공학과 선배? 그게 무슨 메일인데.
민재 : ...내가 어제 설명해줬잖아. 삼진산업에 스프링 문제.. 그거 재료공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선배한테 금속재질에 대해서
알아봐달라구 했다고..
경진 : (생각해본다) ..나한테 그 얘길 해줬다구?
민재 : 무슨 소리야. 어제 나한테 다 들어놓구.
경진 : (멀거니 보다가) 그럼 내가 듣구 잊어버렸나부지. 그런데.
민재 : (뭔가 초조해지고 있다) 내가 학교 비비에스에 도움을 청하는 글을 올렸었거든. (대희에게) 그랬드니 먼저 연락을 해왔드라구요.
그래서 계속 메일을 주고받았죠. 어제도 새로 찾은 재질에 대해서 메일을 보내준다고 해서 기다렸거든요. 근데 안왔드라구요.
(경진에게) 내가 이 얘기 했잖아.
경진 : (여전히 모르겠는 얼굴로 보고 있다)
민재 : 근데 오늘 와보니까 그 선배한테서 온 메일만 없어요. 하나도 없다구요.
대희 : 연락해보지 그래. 전화해보면 되잖아. 그 선배한테.
민재 : 해봤어요.
대희 : 그런데.
민재 : (잠시....) 그 랩에 그런 사람이 없대요.
대희 : (어이없어 본다)
경진 : 그럼 이제까지 메일은 누가 보낸거야.
민재 : 그러니까.. 메일 주소는 확실히 그 랩이 맞는데.. 그 주소가.. (옆의 수첩을 뒤진다) 여기 어디 적어놨는데..
경진과 대희 서로 시선을 마주치고 민재를 본다.
민재, 당황하는 기분으로 수첩을 이리저리 뒤지다가 두 사람의 시선을 느낀다.
민재 : (다시 수첩을 뒤지다가..뒤지는 손길이 느려지며) 적어놨는데.. 분명히.. 근데...없는데요. (그러다가 후딱 경진을 본다)
경진 : (멀뚱이 마주 보아준다)
민재 : 지금 몇시지?
경진 : (자기 손목시계를 봐준다) 한시 십오분.
민재 : (아이구...해서 머리를 감싼다)
경진 : (조심스레) 왜
민재 : 오늘 점심때 약속.
경진 : 약속이 있었어?
민재 : 어.. 삼진 사장님하구. 이걸 어뜩하지. 아... 어떻게 그걸 잊었지?
민재,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서 버튼을 눌러댄다.
경진과 대희 다시 서로 마주본다.
S#24. 민재의 사무실 / 낮
대욱은 컴퓨터 앞에서 작업중이고 다른쪽 테이블에서는 지원과 정태가 가까이 앉아서 서류들을 늘어놓고 작업중이다.
문이 열리며 민재가 들어선다. 지쳐있고 어쩐지 멍해있는 모습.
정태 : 어쩐 일이냐. 이 시간에. 너 랩에 잡혀있어야 되는 시간이잖아.
민재 : (아무 대꾸없이 대충 의자를 끌어다 주저앉는다)
지원 : 니 사무실 좀 빌려쓰고 있었어. 정태가 여기 자료를 놔뒀다 그래서.
민재 : 어..
대욱 : 성도기계에서 부탁한 추가 디자인이요.
민재 : (멍하니 대욱을 돌아본다)
대욱 : 이거 대충 마무리되가거든요. 오늘 밤이면 정리가 끝날 거 같은데. 내일 거기 사장님하구 만난다구 했죠.
민재 : 내일... 어.
대욱 : 나두 나가야 되요?
민재 : ...그렇지. 니가 디자인한건데. 직접 설명해줘. (전혀 기운이 없다)
정태 : (민재의 기색을 살피며) 너 어디 아프냐?
민재 : (정태를 보더니) .....그런가봐.
정태 : 어이그 자식. 거봐라. 니 몸이 무슨 신소재루 만든 로봇이냐. 몸살이 날만두 하지.
민재 : (멍하니 정태를 보다가 대욱을 돌아본다) 대욱아.
대욱 : 예?
민재 : 너 삼진산업 알지?
대욱 : 어디요?
민재 : 자동차 오토도어록 만드는 데.
대욱 : ....그런데가 있었어요?
민재 : (정말 미치겠는 심정으로 잠시 진정을 하다가) 정태야. (더 말이 안 이어진다)
정태 : 불렀으믄 말을 해.
민재 : (차근차근 말하려 애를 쓰는) 삼진산업이라는 데가 있어. 자동차 도어록을 만드는 아주 작은 중소기업인데..
스프링에 문제가 있다고 그랬어. 그래서 내가 우리 학교의 재료공학과의 금속강성랩에 있는 어떤 선배한테 자문을 구했다구.
그래서 그 선배가 몇번 메일로 신소재에 대해서 나한테 보내줬어. 실험결과도 보내주고. (다시 말이 끊긴다)
정태 : (찡그려 듣고 있다가) 그런데.
민재 : 그런데. 오늘 내 컴퓨터에 보니까 그 메일들이 한 개도 없는거야.
대욱 : (역시 멍청하게 듣고 있다가) 지운 게 아니구요?
민재 : (참으며) 아니. 지울 리가 없잖아. 그런 걸. 그리고 난 오늘 삼진산업의 사장님하구 점심때 만나기루 했어.
그런데 내가 그 약속을 잊어먹었거든.
정태 : 지금 무슨 얘길 하는거야.
민재 : 그래서 내가 그 회사루 전화를 했지. 사과할려구. 내가 그 전화번호를 외구 있어서 그냥 눌렀지. 그런데.. 그 번호는 결번이래.
정태 : (지원을 돌아본다)
지원 : (민재의 말을 듣고 있다)
대욱 : 번호를 잘못 외구 있었겠죠 뭐.
민재 :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래서 수첩을 뒤졌는데 그런 회사의 전화번호는 적어놓은 게 없어.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그런 회사가 없대. (이제 민재는 일어서서 서성이며 얘기하고 있다. 복기를 하듯) 나 지금 재료공학과 금속강성랩에 찾아갔다 오는
길이야. 근데 그 랩에는 박사 2년차인 김종석이라는 사람이 없다는 거야. 나하구 메일을 몇번씩이나 주고받은 사람인데.
모두 언뜻 이해가 안되서 보고 있다가.
지원 : 니가 주고받았다는 메일 주소 확인해봤어?
민재 : 엉. 그런 주소는 없대. 우리 학교 어디에도.
지원 : 서버쪽 문제일 수도 있잖아.
민재 : 학교엔 그런 메일이 등록된 적도 없다는데.
지원 : (정태를 돌아본다)
정태 : (말없이 민재를 찡그리고 보고 있다)
민재 : 그런데 어떻게 삼진산업이란 데도 없을 수 있지? 대욱아. 넌 그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어?
대욱 : (그냥 고개를 젓는)
민재 :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몇번이나 너한테 그 회사 얘기 했거든.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는 회사다.
그랬더니 니가 나보구 비비에스에 글 올려보라구 했어. 도움 줄 사람 찾는다는 글을 올려봐라. 니가 그랬어. 나한테.
대욱 : (헛기침을 하는) 저.. 글세. 내가 그렇게 얘기를 했다면 기억이 나야 될텐데.. 그게..
민재 : 기억이 안나? 모르겠어?
대욱 : (고개를 젓는)
민재, 어처구니가 없어서 다시 의자에 주저앉는다.
정태 : 민재야.
민재 : (보는)
정태 : 너 지금 몸살이야.
민재 : ....그래. 아무래도 나 어디 아픈가봐.
정태 : 약 사먹자.
민재 : (순순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정태 : 일어나. 같이 가자. (먼저 일어나며 지원에게) 나 좀 나갔다 올게.
지원 : 다녀와. 이건 내가 정리하고 있을게.
정태 : 좀 늦을지 몰라. 이 놈 침대에다 넣어놓구 올게.
지원 : (웃어보이는)
정태. 민재를 끌어 일으켜 밀고 나간다. 그들이 나가고 문이 닫기고...
대욱 : (지원에게) 근데 민재형. 지금까지 무슨 말을 한겁니까.
지원 :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말을 하는 본인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 모양인데.
대욱, 설레설레.. 다시 모니터를 향해 돌아앉는다.
S#25. 박교수 랩 / 밤
박교수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들어선다. 내부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규한이 혼자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박교수 : 어라. 오늘 우리 랩이 왜 이렇게 썰렁하지.
규한 : (그제야 교수가 들어온 것을 알고 대충 인사하며) 보시다시피 오늘 아침부터 저 혼잡니다.
박교수 : 그래. 보니까 그러네. 다들 어디갔지?
규한 : 저도 그게 너무나 궁금한데요. 정말 이런 상황에서 이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박교수 : 뭐가?
규한 : 이번 주말에 프리젠테이션이요. 그때까지 이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간이라구요. 그러니까 교수님.. 그 시간을 좀 일주일만
미뤄주실 수는 없을까요.
박교수 : 물리적이라.. 물리적인 시간.. 음.. (생각해보며) 그건 아주 어려운 말인데. 규한군.
규한 : (불퉁) 예.
박교수 : 자네 시계 갖구 있나?
규한 : (벽시계를 보며) 지금 아홉시 십칠분인데요.
박교수 : (같이 벽시계를 본다) 이 시계 잘 맞나?
규한 : 잘.. 맞을걸요.
박교수 : 좋아. 그럼 그 시계를 잘 들여다봐.
규한 : 이 시계를요?
박교수 : 그렇지. 딱 일분만 들여다봐.
규한 : 왜요?
박교수 : 어허. 지금 강의실 외 강의를 하는 중이에요. 하란대루 해봐 어서.
규한, 할수없이 시계를 들여다본다. 벽시계의 초침이 채칵채칵 돌아가는 것을 지루하게 보여주며...
박교수 : (E) 일분 됐나?
규한 : (E) 아뇨. 아직 멀었는데요.
박교수 : (E 잠시 후) 아직 안됐어?
규한 : (시계를 보며) 아직 30초두 안됐습니다. (그러다가 박교수를 돌아본다)
박교수 : (싱글거리며 규한을 보고 있다) 시계를 보라니까..
규한 : (다시 시계를 보는)
박교수 : 아직두 일분이 안됐지?
규한 : ....예.
박교수 : 일분이란 건 그렇게 긴 시간인거야. 이제 알겠나?
규한 : (돌아본다)
박교수 : 하루는 몇분이지?
규한 : 60 곱하기 24... 1440분인데요.
박교수 : 아이고. 1440분이나 돼? 너무 길다. 아아. 하루는 너무 길어. (문으로 나가며) 이렇게 긴 하루를 어떻게 보내냐. 아아 너무 길어.
징그럽게두 길어.
박교수 나가고 문이 닫긴다. 규한 어이없어 보고 있다.
S#26. 민재의 방 / 밤
불이 꺼진 방. 정태의 침대는 비어있고. 아래칸의 민재가 잠들어있다.
어디선가 조그맣게 들리기 시작하는 피리소리.
민재 깊은 잠을 못 들고 뒤척거리다가 이쪽으로 돌아눕다가 번쩍 잠이 깬다. 눈을 뜬 채로 어두운 앞을 보고 있다.
조금씩 커지는 피리소리.. (아이들용의 피리로 동요 정도를 연주하는)
민재, 점점 공포 같은 것을 느낀다.
그러다가 민재의 시선이 한곳을 향하는 순간, 민재 벌떡 일어나 앉는다. 믿기지 않아서 그곳을 바라본다.
민재가 보는 곳에.. 의자 혹은 책상 위에 피리가 덜렁 얹혀져 있다.
민재, 벌떡 일어나 피리를 향해 조심스레 다가선다.
다음 순간//
잠이 들었던 민재, 꿈에서 깨어난다.
민재 잠이 깬 것을 느끼는 순간 후딱 일어나 앉는다. 꿈에서 보았던 피리 있던 곳을 돌아본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다.
민재, 휘청거리며 일어나 그곳을 살펴보고 벽으로 가서 전등불을 켠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이층 침대에서 자던 정태가 환해진 불빛때문인지 뒤척거리며 돌아눕는다.
민재, 혼란에 빠져서 벽에 힘없이 기댄다.
S#27. 정문 진입로
씬3과 거의 비슷한 앵글.
민재, 자전거에서 일어선 자세로 빠르게 페달을 밟는다.
출근 차량을 통제하고 있는 백곰. (중앙선에 정해진 위치)
민재, 진입로를 통과하면서 백곰을 스칠듯 커브를 튼다.
백곰, 허어...해서 돌아보는데 민재는 어느새 행정동쪽으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S#28. 대강당 옆 언덕길
씬 4와 거의 비슷한 분위기.
민재, 자전거를 타고 헐레벌떡 올라오고 있다.
비탈을 오르느라 안간힘을 쓰는 민재, 갑자기 비틀비틀하다 선다 자전거 체인이 빠져 버렸다.
민재,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체인을 이어보려고 애를 쓴다. 잘 안되고.
이마에 땀을 훔치는 민재. 아침부터 덥고 짜증스럽다.
어디선가 어잇, 어잇하는 기합소리가 들려온다. 강당뒤 공터에서 검도부학생들이 연습을 하는 중.
민재는 역시 그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검도부 학생들은 열명 내외로 줄어 있는 상태.
민재, 체인이 빠진 자전거를 끌고 언덕을 급히 올라간다.
S#29. 캠퍼스 일각
자전거를 타거나 어울려서 오고가는 학생들 모습..점심시간이다.
S#30. 석학의 집
민재, 들어와서 두리번 거린다 점심때라 북적거리는 실내.
미순이 쟁반을 들고 바쁘게 지나가는데.
민재 : 안녕하세요?
미순 : (정신없는) 그래, 민재 너 오랜만이다. 바쁘다며?
민재 : 혹시 저 찾아온 손님 없어요? 여기서 약속했는데.
미순 : 어. 저쪽에 양복입은 사람한테 가봐. 아까 너 찾는거 같더라.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예에~ 갑니다, 가요.
민재 : (웃으며) 바쁜 시간인데 왜 혼자 하세요?
미순 : 언제는 둘이 했냐? (분주히 가고)
민재, 이상한 기분으로 미순쪽 보면서 손님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간다.
민재 : 성도기계에서 오신 분 맞죠?
양복 : (일어나며) 이민재씨?
민재 : (인사하고)
S#31. 강의실
수업 기다리고 있는 정태, 해성등 학생들.
정태, 시계를 보고 비어있는 옆자리를 본다.
해성 : (다가와서) 민재 안와? 이 저널 돌려줘야 되는데. 민재 사무실에서 빌려온 책이거든.
정태 : (뒷문쪽 한번 보고)
해성 : 근데 너 이 기사 봤어? 되게 재미있더라구. (옆자리에 앉으며) 이게 뭐냐하면 말야...
이교수, 들어온다. 곧바로 교탁 앞에 서며.
이교수 : 지금까지 우리는 Subsumption Architecture와 Motor Schema,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 로봇 Architecture의 특징과 장단점을
공부했어. 이제 그 내용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력과 창의성을 테스트해볼 때가 됐겠지?
아이들, 낮게 괴로운 신음소리 내고.
이교수 : 학기 초에도 잠깐 언급했다시피 이번 중간고사는 축구로봇의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팀 프로젝트로 대치할거야.
2인 1조나 3인 1조, 각자 마음에 맞는 동료들하고 과제를 준비하면 되는데..(둘러보다가) 거기 이민재 자리 아니니?
해성 : (이교수 시선이 자기에게 오자 어리둥절하고)
정태 : ....맞습니다.
이교수 : 결석인가?
정태 : 저기... 금방... 올겁니다.
이교수 : 일단 지각은 한 셈이군. (출석부에 체크한뒤) 과제물 마감은 다음주 금요일까지. 여러분은 지금까지 배운 AURA, 아틀란티스등의
아키텍처를 복습해서 새로운 제어용 아키텍처를 설계하면 돼.
이교수 말이 계속 되는 동안 정태는 불안한 기분으로 뒷문 쪽을 자꾸 되돌아본다.
S#32. 석학의 집
민재, 카운터에서 수화기를 들고 있는데 신호음만 갈 뿐 저쪽에서는 받지 않는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민재, 포기하고 테이블 쪽으로 온다.
양복 : 디자인 맡았다는 학생하고 연락이 안됩니까?
민재 : (미안한) 시간하고 장소를 알려 줬는데.. 이상하네요.
양복 : 아직 준비가 덜 된거 아니에요?
민재 : 그건 아닙니다. 어제 분명히 거의 다 됐다고 했거든요.
양복 : 그런데 왜 안오는 겁니까? 나 이거..언제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답답한지 냉수를 벌컥벌컥 마신다)
민재 : (일어나며)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제가 그 친구 일하는 작업실에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양복 : (못마땅하지만) 30분 안에 되겠어요? 오후에 다른 약속도 잡혀 있어서 말이죠.
민재 : (꾸벅 인사하고) 충분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S#33. 공장동 뒤편
학교 버스, 트럭등이 모여있는 차부. 자현과 동현이 트럭을 대놓고 자동차 부품을 싣고 있다.
자현, 짐칸 위에 서서 동현이 주는 부품을 받아 싣다가 달려오는 민재를 발견한다.
자현 : (반가운) 어이~ 이민재. 어디 가냐?
민재, 자현을 보고 지나치려다 다시 돌아서 트럭 옆으로 온다.
자현 : 밥은 먹구 날아다니냐? 난 아직 점심도 못먹고 이 짓이다. (동현 눈치 보고 장난스럽게 헤헤 웃고)
민재 : (동현에게 꾸벅 인사한다) 자현아. 너 대욱이 못봤어?
자현 : 누구?
민재 : 대욱이 말야. 오늘 업체 사람하고 미팅하는데 그녀석이 디자인한거 가져 오기로 했거든.
근데 나타나지도 않고 연락도 안돼. 혹시 오늘 이 근처에서 대욱이 못봤어?
자현 : (의아한) 대욱이가 누군데?
민재 : (짜증나는) 지금 잔뜩 화난 업체사람 달래놓고 그녀석 찾으러 나온 길이야. 나도 열받아서 농담할 기분이 아니라구.
자현 : 글쎄 그게 누구냐니까?
민재, 치밀어오르는 걸 참고, 가던 길로 계속 달려간다.
동현, 가는 민재 뒷모습 보면서.
동현 : 뭔 일인지 몰라도 굉장히 급한 모양인데 왜 쓸데없이 장난은 치구 그러냐? 알면 가르쳐주지. (부품 주고)
자현 : 선배님은 무슨 말을 고렇게 하십니까? 장난은 저 녀석이 치구 갔다구요. 내 참.
자현도 화가 나서 부품을 짐칸 한쪽에 아무렇게나 쾅 하고 던진다.
S#34. 공장동 복도
민재, 입구에서부터 뛰듯이 걸어온다.
문이 열린 곳이면 들어갔다 나오고 잠긴 곳은 기웃거리면서 열심히 찾고있지만 대욱은 보이지 않는다.
S#35. 산디과 복도
산디과 복도임을 알 수 있는 팻말 정도 보이고..계단을 뛰어 올라온 민재, 복도로 접어든다.
마침 재료를 안고 지나가던 산디과 학생에게 뭔가 물어보는 민재. 학생, 어딘가 방을 가리킨다.
민재가 방 호수를 확인하며 다가와서 어느 방 앞에 멈춘다. 노크하는 민재.
S#36. 산디과 / 학부생 작업실
들어서는 민재. 각종 포트폴리오가 벽에 걸려 있고 각자 작업대 위에는 아직 작업중인 작품들이 놓여 있다.
민재, 두리번거리다가 한쪽에 혼자서 색칠 작업을 하고 있는 여학생을 발견하고 다가간다.
민재 : 저기... 말씀 좀 묻겠는데요.
여학생 : (돌아보며) 예?
민재 : 여기 강대욱 자리가 어딥니까? 아니, 것보다 대욱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아세요?
여학생 : 강대욱이요?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
민재 : (답답하지만) 1학년이에요? 그럼 잘 모를수도 있겠네요. 그 친구는 여기 산디과 4학년이거든요...
여학생 : 저도 4학년인데.. 그런 사람 모르겠어요.
민재 : (어이가 없다)
여학생 : (마침 들어서는 동기를 보고) 명석아. 너 우리 과에 강대욱이라구 알어? 이분이 강대욱이란 사람을 찾아왔대.
남학생 : (다가오며) 강대욱? 모르겠는데? 우리 과래?
여학생 : 어. 우리과 4학년이라는데?
남학생 : (민재를 보고) 우리가 4학년인걸요. 그런 애 없어요.
여학생 : 혹시 휴학생 아니에요? 우리가 모르는 휴학생이나 아님 복학생일수도 있죠.
민재 : (돌아버릴거 같지만 최대한 또박또박) 바로 어제까지 학교 다니던 학생이에요. 여기 산디과 4학년이라구요.
근데 모른다는게 말이 됩니까?
S#37. 석학의 집
급하게 들어오는 민재.
손님이 앉아있던 자리엔 정태와 해성이 있다.
정태 : (일어서며) 야 임마. 너 수업도 빼먹고 어딜 돌아다니다 와?
민재 : (미순 보고) 여기 계시던 손님은요?
미순 : (옆 테이블 치우면서) 방금 갔다. 나중에 다시 연락한다고 전해달랬는데 표정보니까 그럴 사람같진 않드라.
민재 : (실망스러운) 예.... 누님, 저 콜라 한잔 주실래요?
미순 : 그려.
민재 : (자리에 앉는다)
정태 : 뭐야? 무슨 일이냐구?
민재 : (마른 세수하며) 모르겠어. 나두 무슨 일인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 대욱이 찾으러 갔다가 허탕만 치고.. 이상한 소리만 들었다구.
정태 : 대욱이?
민재 : (일순 굳으며) 너까지 왜 그래? 너두 대욱이 모른다고 하려구?
정태 : 그게 누군데? 나 모르는 니 친구야?
민재, 못미더운 표정으로 정태를 쳐다본다.
정태 : 그 친구때문에 무슨 문제라두 생겼어? 그런거냐?
민재 : (계속 정태를 보고)
해성 : (눈치보다가) 저기....방금 수업 시간에 이교수님이 중간고사 리포트를 내줬어. 축구 로봇을 이용한 아키텍처를 설계해 보라구
하셨거든. 내 생각엔 우리 셋이 한조가 됐으면 하구. 정태도 그러자고 했어. 그래서 스터디 계획을 짰으면 하는데..
(하다가 심각한 민재 표정 보고) 계속 얘기해도 돼?
민재 : (갑자기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린다)
정태 : (가만히 보고)
해성 : (영문을 모르겠다)
민재 : (계속 웃으며) 장난치고 너무 지독한데.. 야아. 정말 너무해.
정태 : 이민재.
민재 : (간신히 실소를 멈추는) 누구 아이디어냐? 보나마나 경진이겠지. 아아. 다들 대단하다. 졌어. 졌다구.
미순 : (콜라 가져다 놓고) 뭐가 그렇게 혼자 즐거워?
민재 : (웃으며 콜라 마신다) 얘들이요... 며칠전에 대욱이 생일파티때 나만 빠졌다고...단단히 삐졌나봐요.
다들 편먹고 사람 하나 간단히 바보 만들어 버리네요.
미순 : 대욱이가 누구여?
민재 : (돌아보며) 뭐에요? 누님까지 한편으로 끌어들인거에요? (정태 보고) 아주 철저하게 준비했구나. 미안하다. 그날은 내가 잘못했어.
하지만 정말 급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구. 이해해주라.
미순 : 글쎄, 대욱이가 누구냐니까?
민재 : (낄낄대며) 됐어요. 다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하셔두 돼요.
민재, 콜라잔을 입에 댄다.
자신을 지켜보는 정태, 미순, 해성을 보면서 민재, 점차 웃음기가 사라진다. 장난하고 있는 표정들이 아니란 느낌이 강해지고...
민재 : (잔을 천천히 놓고) 산업디자인학과 4학년, 미스터 동아리 회원 강대욱...이야. 정말 아무도.. 몰라?
대답없는 세 사람.
민재, 거의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