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주선사와 끽다거 - 동아시아선학연구소 편저 / 불교춘추사 / 2003.8.8
■ 다선일미 茶禪一味 - 동아시아선학연구소, 명원문화재단 편저 / 불교춘추사 / 2005.6.7
2001년 10월 19일 중국 하북성 조현 백림선사에 「한중우의 조주고불 선차기념비」건립되었고, 그 기념으로 「한중선다일미학술연토회」가 열렸고, 그 때 발표된 내용을 중심으로 『조주선사와 끽다거』가 출간되었고, 뒤 이어 열린 한중학술회의, 남전보원 학술회의 등을 통하여 발표된 내용을 모은 것이 『다선일미』이다.
(1) 차와 선은 정말 같나?
茶禪一味라...다선일미로 읽든, 차선일미로 읽든. 책의 제목은 '다선일미'라 하였지만 말하기 편하게 '차선일미'라고 읽자. '茶와 禪은 같다'라는 말로 널리 쓰이는 말이다. 어디에서 널리 쓰이느냐?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 나도 이 쪽엔 발을 들이밀 생각이 없었다. 차와 선이 같든 말든 내가 차 마시는데 신경쓸게 뭐 있으랴 싶었지만, 그러면서도 슬금슬금 가다보니 자주 부딪치게 되는 철조망 같은 거다. 넘지 말라는 철조망인지 넘어오라는 유혹의 철조망인지 구분은 안되지만. 차는 말그대로 차이겠고, 선은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편이다. 참선이라고 말하는게 편하다. 차는 불가와 떨어져 생각할 수 있지만 선은 불가와 떨어져 생각하기 어렵다. 결국 불가와 차를 넘나드는 경계에 있는 곳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차선일미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1. 차 = 선
2. 차 < 선
3. 차 ↔ 선
1. 차와 선은 똑 같은 것이다.
1-1 차를 마셔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선을 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1-2 차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듯이, 선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2. 차는 선의 여러가지 맛 중에서 한 가지 맛이다.
3. 차와 선은 다르다.
차는 有이다. 즉 色이다.
선은 無이다. 즉 空이다.
차와 선은 다르지만 반야심경에 이르기를 색즉시공이라 하였다. 따라서 차선일미이다.
책에서 말하는 뜻은 1-1의 의미이다. 두 권의 책에서 약40편의 글이 소개되고 있지만, 3의 의미는 『다선일미』중 한 편의 글에서만 소개 정도로 언급되었다. 2의 의미로 해석된 예는 없다. 하지만 차선일미라는 말이 일반인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2의 해석이 유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차를 선못지 않게 중요하게 여기는 수행자에게만 '차선일미'가 의미가 있는 것이고 일반인이게는 차선이 일미이든 이미이든 중요하게 여길만한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2) 커피는 선과 다른가?
차선일미라는 문구의 의미를 중국의 차인들은 일본의 다도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송나라에 원오극근이라는 스님이 있었다고 한다. 원오극근은 '벽암록'을 펴내기도 하였다. 그 제자 중에 일본에서 온 스님이 있었다. 학위를 받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그 스님에게 '차선일미'를 적어주었고, 그 스님은 일본에 돌아가서 항상 벽에 걸어두고 차를 즐겨 마셨다. 그의 다풍은 리큐에게까지 이른다. 리큐는 히데요시와 더불어 일본을 통합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하지만 임진왜란 도발 한 해 전에 히데요시에게 죽음을 당한다. 리큐는 그렇게 죽었지만 그의 사상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 다도의 핵심을 이룬다. 이에 중국은 다도의 원류를 일본에서 찾으려 한다. 한국에서는 사찰에서 차를 가까이 두고 마시기는 하였지만 차에서 선의 정신을 찾은 것은 19세기 초의에 이르러서다. 따라서 차선일미의 사상도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라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였다.
원오극근에서 위로 올라가다보면 당나라에 걸출한 스님 한 분이 있다. 부처님이라고 받들어져 古佛이라고 칭하는 조주 선사이다. 우리가 불교라는 것을 이해할 때 쉽게 참선 수행을 생각하게 되고, 화두라는 것을 떠올린다. 화두 출제의 1인자가 조주이다. 無!를 외친 자가 조주선사였다. 일체중생 실유불성이라 하여 모든 생명있는 것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사상은 널리 알려진 바다. 어느 날 한 스님이 궁금하여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없다! 無! 라고 대답한 것이 화두가 되었고 지금도 구도자들에게는 가장 애용하는 화두이다. 그 조주가 말한 것 중에는 '喫茶去'라는 말이 있었다. 불법을 묻는 스님들에게 '차나 한 잔 마시거라'라는 말도 답을 대신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차 속에서 불법을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차는 깨달음을 구하는 유용한 방편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불가에서는 차를 마시는 일이 흔한 일이었다. 밥먹고 입가심으로 마시기도 하고, 공부하다 졸리거나 심심하여 마시기도 하고, 일하다가 쉬면서 한 잔 마시기도 하고 밥 대신 먹기도 하였다. 일상의 일이었다. 이런 일상의 차마시는 일을 불법이라고 한 것은 조주의 할아버지 스승뻘 되는 마조도일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마조도일은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이다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면 차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어 보인다. 조주가 커피를 많이 마셨다면 '喫커피去'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차선일미'는 '커피선일미'가 되지 않았을까. 내가 아직 차를 잘 모르니 이런 우문을 던지는 것이려니 한다.
(3) 중국은 죽지 않는 대마?
우리 역사에서 차문화의 중심은 사찰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전하는 것이 거의 없다. 조선시대에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한 것도 원인이 되었고, 일제 강점 시기는 우리 문화가 초토화되다시피 단절되었고, 해방 후에도 개발 중심의 국가정책은 과거 문화의 상당부분이 '미신'이거나 그와 유사한 것으로 치부되어 콘크리트로 대체되었다. '국풍 81'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우리 것을 찾기가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 것을 바라볼 식견이 있어야 했지만 제대로 구축된 것이 없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차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사람들은 일본에서 차를 배워온 사람들이었고, 다도 또한 일본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일본 다도의 중심에는 불교가 있었고, 그 맥은 중국의 원오극근, 조주, 마조, 달마로 거슬러 올라가 자칫 중국 불교가 바로 일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굳어질 오해될 소지가 많아졌다. 그런 연유가 조주가 주석하였다는 백림선사에 선차기념비를 세우게 된 원동력이 되지 않았는지 추측을 해본다. 책에서 일본을 경계하는 문구가 심심찮게 보이기 때문이다. 송대의 원오극근이 차선일미 정신이 일본에 전해지기 이전에 이미 당나라의 조주가 있던 시절에 신라에 전해진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조주와 동문수학한 도윤 선사가 신라인이었고, 그 전에 육조 혜능의 법통을 이은 선사 중에 무상선사가 신라인이었다는데 중점을 두고, 그 사실을 선차기념비에게 못박아두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의 차선일미 정신은 중국에서 직수입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차문화 역사를 이야기할 때 최초가 언제였느냐는 질문을 자주 한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것으로 대렴이 중국에서 가져와 심었다는 문구가 있고, 가락국 제례에 차가 쓰였음(2세기)을 추측하게 하는 문구가 있으나, 많은 이들이 대렴이 가져왔다(9세기)는 설을 중요시한다.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 허황후가 인도로부터 차를 가져왔다고 적고 있지만, 그 기록은 최근 1918년의 것이고 이를 뒤받침할 말한 역사 자료가 없어 참고자료로 사용할 뿐이다. 여기에서 대렴의 중국도래설이 중요시되었던 것과, 선차기념비를 백림선사에 세워야 했던 것은 중국을 통해 우리의 것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일면이 있지 않나 하는 불온한 의심을 품어본다.
(4) 말하자면...
『차선일미』의 표지 사진을 보자. 널찍한 마루방. 두 스님이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밖으로는 나무와 하늘이 보인다. 산사의 모습이다. 마음이 맑아지는 풍경이다. 차를 한 잔 마시면 자연속으로 빠져들 것 같은 유혹을 던져준다. 두 스님 사이에 놓여진 다탁을 보자. 통나무다탁. 다관, 숙우, 퇴수기, 찻잔이 하나둘셋넷. 잔받침 하나둘셋넷, 마시던 스님 두 분은 잠깐 어디 가셨나. 가실 때 방석도 들고 가셨나. 차통이 보인다. 스님 뒤에 다과쟁반, 한 참 뒤떨어져 포트가 있다. 다시 생각할 것도 없이 사진 한 장을 위해 연출한 장면이다. 바퀴달린 다탁이면 주르륵 밀고 왔을테니까 조금 편하겠지만, 바퀴 없는 다탁이면 꽤 수고하셨겠다. 차선일미라는 것도 이와 같은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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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우의 조주고불 선차기념비명
달마대사가 동토에 와 교외별전,불립문자,직지인심,견성성불로 표현되는 불심인을 전한 이래 육조 혜능에 이르러 남종 돈오문이 열렸다. 또한 마조의 즉심즉불卽心卽佛, 도불용수道不用修, 평삼심시도平常心是道를 내용으로 하는 홍주선이 만개하여 그 문하에 수많은 용상대덕이 배출되어 전등의 심지를 이어 나갔다.
마조의 상족인 남전보원 문하에 고불古佛로 불려지는 조주종심이 있으니, 신라 구산산문가운데 사굴산문의 개창조인 도윤과는 동문수학한 법형제이다. 그리고 도의,홍척,혜철,범일,무념,현욱 등도 또한 마조의 상족인 서당,마곡,염관,회휘 등에게 인가받고 귀국하여 선문을 개산하니, 이들이 신라 구산선문의 개산조들이다. 이들 선맥이 모두 마조 홍주선의 동류지설을 잇고 있다. 특히 조주의 끽다거, 세발거, 구자무불성, 정전백수자 등의 공안이 화두의 효시일 뿐만 아니라, 한국선 납자들의 실참 화두로 참구되고 있기에 조주는 분명 한국선의 조사로 숭앙받고 있는 것이다.
백림선사는 조주고불의 조정으로 조주차의 전통을 이어받아 차향이 넘쳐나고, 조주선의 본찰로 선기가 무궁한 도량이다. 현 백림사 방장 정혜대사의 자비 은덕에 힘입어, 한국 불교춘추사와 명원차문화재단의 공동발원으로 '한중우의 조주고불 선차기념비'를 조주탑 옆에 나란히 세우게 되니, 이는 불조사의 은혜에 보답함이며, 한중 불교 황금유대(정의)를 공고히 다짐이다. 이 비를 세움으로써 '선차일미', '임운자재'의 생활선의 선풍을 발양하여 새로운 시대 인류의 정신문명으로 승화시키고자 발원한다.
비명에 이르기를,
우뚝하게 높구나, 선종이여! 법계 소식을 알리는 시작이다.
칠불이 수기하니, 석가가 홀로 높다.
달마, 혜능이 서천과 동토를 꿰뚫었고 한 송이 꽃에 다섯 잎이 피어나니,당조로부터 조계선의 천하가 되었다.
조주고불의 은혜를 누가 있어 갚으며 뜰앞의 잣나무 천하에 가을 소식을 알린다.
개에게 불성이 없음이며 오묘한 뜻 갖추었고, 오대산 노파 길 일러줌에 친소가 없다.
천 칠백 공안 가운데 '끽다거'가 으뜸이니 온 적이 있는 온적이 없든 모두에게 차나 한잔 하세.
오고 감에 걸린 원주에게도 차 한 잔 마시게 하니, 선다일미는 고금이 함께 찬양함이로다.
한중의 불교는 한 뿌리이니 예로부터 한 집안이며, 선풍을 함께 하니 법맥 또한 서로 전함이다.
정중무상은 일찌기 서촉 땅의 주인 되어 문하에 고족으로 마조 도일이 있다.
마곡은 무념에게 인가하고 서당은 도의에게 전하고
염관은 범일을 배출하여 사자상승 법계를 이었다.
태고는 청공에게 법을 받으니 임제의 법손이며 조주와 도윤은 동문의 법형제이다.
오늘 백림사에 와서 조주선의 조정을 참배하니
종풍은 의구하며 전탑의 면모 또한 일신됨을 본다.
오늘을 보고 옛을 회상하니 오로지 일편 선심뿐이니
비를 세워 영원히 잊지 않고 도의가 오래도록 푸르게 하리라
대한불교 조계종 백양사 방장 서옹선사 송왈,
여래가 누워 있음이여 상서로운 모양이 아니며
온 기틀과 큰 쓰임 성인도 측량하기 어렵다.
세 치의 연한 혀가 방과 할을 뛰어 넘으니
조주선사의 차 한 잔 영원히 끊이지 않도다.
불기 2545년 10월 19일 불교춘추사 경립
동참자 명단 이서옹 임진제 차동광 김의정 서무공 최석환
첫댓글 차에 관한 좋은 내용 잘 배웠어요...감사합니다..여의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