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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주일 예배
본문<마>17;9~13
제목; 그제서야
오늘은 종려 주일이고 내일부터는 고난 주간입니다
주님이 멍에를 푼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많은 무리가 주님이 입성하는 길에/ 마21:8,9입니다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에서 유래된 것이
종려주일입니다..그런데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마21:2은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여러분..주님은 멍에에 매여 있는 어미 나귀가 아닌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그래서 힘이 없고
사람을 태우기에 버거운
그러나 아직 멍에를 매지 않은 나귀새끼를 데려오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주님께 쓰임 받으려면 매인 것에서 풀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매였고
무엇에 집착하며 미련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 모두를 성령의 불로 태우고 보혈로 씻어
풀어야 합니다
풀어야 나귀 새끼처럼 아직은 연약해도
여전히 되었다함이 없고 부족해도 쓰임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에게도
믿고 푸는 적용
매인 것을 푸는 결단의 순종을 다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고난 주간을 앞에 둔 종려 주일의 의미는
믿고
푸는 적용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스스로가 만든 룰과 틀 안에
매여있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고집과 아집의 멍에에 똘똘 뭉쳐 있는데
이것을 내려놓고
풀어, 주님이 주신능력을 쓰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세속을 풀어야 하고 옛 습관과 옛 사람의 모습을
풀어야
새 영으로 창조되고 새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려면 주의 말씀을 경청하고
반응하여
적용하고 적용한 것을 결단하되 실천으로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먼저 하나님께서 예수께 허락하신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 말씀은 오늘 본문17;5절에서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즉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예수님이 하시니
너희는 예수의 말을 들어라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들어야 할 메시지를 예수님이 가지셨으니
우리는 그 분의 말씀만을
듣고 경청하며 겸손함으로 나아가
주의 말씀을 듣고 그 분의 말씀에만 의지하며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꼭 예수님의 메시지여야 하느냐하면
그 이유는 그 안에 생명과
구원과 진리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요
또한 우리가 들어야 할 메시지를 예수님만이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대언자일뿐
자기 이야기를 해서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다는 것이요
반드시 귀 있는 자가 되어 성령이 교회들인 저와
여러분에게 하시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의 말씀에 귀 기울여하는 데
그것이 설교를 듣는 일임을 기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산 아래로 내려오십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도
말씀을 다 하시고 산 아래로 내려 오셨는데
오늘도 변화산에서 산 아래로 내려오시는 예수님이십니다.
-9절입니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여러분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당시에 유대인들은 정치적 메시야만을 소망하고 있었는데
변화산에서 신비한 체험을 이야기 하면
예수님의 구원사역에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염려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이후
예수의 구속사역이
분명히 밝혀질 때까지는 침묵하라 명하신 것입니다.
이 때 베드로는 산꼭대기에서 살고 싶어 했으나
예수님은 산 아래로 내려가십니다.
고난과 아픔, 질곡에 싸인 사명의 땅,
고통의 땅으로 내려오십니다.
우리도 이렇게 모였다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예배로 모였다가
복음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바로 사도 행전적
초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신앙 고백이 없는 사람에게는
할 말,
안 할 말을 가려서 경계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그 길에는 방해자 훼방꾼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변화산 기적에 대해 침묵하라 하라하신 것입니다.
12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구약을 읽어본 저와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엘리야처럼 고난 받은 선지자들이
혹은 제사장이나 다윗 같은 왕들이 다 고난 받는 것처럼
인자이신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러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하시며
세례요한이 오리라 한 그 엘리야였음을
증거하십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세례 요한이
구약에서 예언 된
주님이 오실 길을 닦는 선지자 엘리야인 것을 알지 못하고
그를 박해하여 결국은 죽이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신 것을 모르고 박해하고 죽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땅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는데
그 분이 너무 초라하니까 무시하고 죽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다가온 사람이 너무 초라하고 볼품이 없으면
그의 소리를 듣지 않고
무시하고 심지어 몰아내기까지 합니다.
지금도 이와같은 일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변장하고 오신 예수일 수 있으니
모시어
섬기고 잘 대접하는 일이 바로 막9;41절의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아멘
그러니까 잘 섬기고 잘 대접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큰 교회,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에만 은혜가 있는 게 아니라
개척교회에
혹은 작은 더 많은 은혜가 있을 수 있으며
참으로 존중받고 위로받으며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만끽하고 싶으면
개척교회가 혹은 작은 교회가 더 풍성하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큰 교회 목사, 박사 목사..유학파 만이 설교의 능력과
실력이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 늘 날마다 시시때때로 기도하며 섬기는
작은 교회 목사들이
더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작은 교회 목사가 한얼산이나 오산리 기도원의 주 강사로 사역하는 일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제가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어찌 생각하고 있습니까?
교회의 직분도 있어야 인정받고
사회적인 직함이나
명예, 혹은 가방끈이 좀 길어야 인정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무시하며 상처 주는 일이 모두다
예수를
다시금 십자가에 못 밖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까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안이 닫쳐 있음으로 알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알지 못하면 무시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잘 듣고
잘 알아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안에 있어야 하고 주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13절입니다.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여러분..세례요한이 누구입니까?
길 닦는 자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요 신약의 길을 예비한 자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말씀을 듣고 [그제서야] 깨달았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제서야] 깨닫게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제자들은 아직 그리스도의 메시야 되심을 이해하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제서야] 엘리야와 세례요한의 관계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설명을 하면 당시의 서기관들은
먼저 엘리야가 와야
메시야가 온다고 가르쳤는데
제자들의 시각으로는 아직 엘리야가 안 왔는데
메시야가
곧 예수님이 오셨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이 때 주님이 이미 엘리야가 왔고 그가 예언한 세례 요한도
길 닦는 자로 왔으며
지금 너희들 앞에 선 내가 바로 그 메시야이다..아멘
말라기 3장1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아멘
그리고 말라기4;5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여러분..이 말씀은 엘리야가 예언한 길 닦는 자 세례요한도 왔고
세례요한이 닦은 길을 통해서 내가 왔으니
내가 곧
너희가 그렇게도 고대하며 갈망하던 메시야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은 구약의 예언을 통해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약속을 이루시고
완성키 오신 예수님이시란 뜻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제서야] 이 모든 관계를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어야
비록 [그제서야..]즉 말씀을 들은 후에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왔을 때가 [‘그제서야’]입니다.
예수님께 붙어만 있으면
즉 말씀 앞에 바로 서면 [‘그제서야’] 깨닫고 살아나게 됩니다.
여러분에게고 [‘그제서야’]라고 할 때가 속히 오기를
고대하며 축복합니다
예수님께 붙어있는 여러분에게 [‘그제서야’]하는 깨달음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하시는 모든 일에 [그제서야] 하는 순적함과
형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나 자녀와 일터의 모든 문제에도
[그제서야] 하는 형통의 복이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알콜중독자나
마약 중독자도 돌아 올 수 있는데
자기 죄를 모르는 사람은 주께로 돌아오지를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기가 죄인임을 다 압니다..그러나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죄인인지를 설명하라 하면 모릅니다
그래서 오지 않습니다
복음이 들어가고 성령의 인치심이 없으면 죄를 모르고
그 죄를 인식하지를 못하니 회개도 할 줄을 모릅니다
반성이나 후회하는 것과
회개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회개를 모르면 양심에 화인 맞은 자입니다
요즘 세상에
특히 정치인들 중에는 그런 자들이 너무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 죄를 모르면 [그제서야]가 없기에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이 옴으로
[‘그제서야’]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제서야’]하며 깨달아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가장 먼저 나는 100%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없으면 이것이 깨달아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도 당신은 죄인입니다. 하고 말하면
수긍하고
인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말씀을 듣지 않았기에
[‘그제서야’]가 없고
그래서 그들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기는 하되
말씀을 믿고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수긍하고
인정하는 것과 깨닫는 것은 다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제자들이 말씀을 듣고 [‘그제서야’]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깨닫는데도 과정이 필요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을 돕는 분이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성령께서 귀를 여시고
눈을 뜨게 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늘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소망하며
성령 충만을 위해
간절함으로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 말씀 듣는 과정을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의 사건을 통해
말씀을 깨달으라고 주시는 선물입니다.
말씀을 들어야 [‘그제서야’]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기 위해 산에서 내려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받은 은혜를 토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은사도 토해내고
달란트도 토해 내야하고 간증으로 토해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두를 영혼구원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일을 위해
산에서 내려 오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것의 영적 의미는
교회에 모였다가
받은 은혜와 말씀을 통해 허락하신 주님의 메시지를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전하라는 것으로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여러분..전하는 것은,
전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먼저
그 말씀대로 살아야 전할 수 있고
소구력도 있는 것입니다
나는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그냥 전하는 것은
생명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고난의 약재료를 구원사역에 사용하기 위해
산에서 내려와
멍에와 집착과 고집의 산에서 내려와
세상으로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 이제
오늘의 제목 [그제서야]로 말씀을 정리합니다.
세상과 세속에 찌들려 살다가 문득 정신차리고 돌아와 보니
그제서야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흑암과 혼돈과 허공의 광야를 지나다 보니 [그제서야] 말씀이 들립니다
해와 달과 별이 떨어지는 환난과
풀무물의 연단을 지난 후에 [그제서야]말씀이 들려지고
[그제서야] 말씀의 깊이를 깨닫게 되었다는 고백이 뒤따라야 합니다
여러분...왜 연단이 주어지고
우리에게 왜 광야의 훈련이 필요했습니까
그제서야 말씀이 들려지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말씀이 들려져야 합니까?
말씀이 대안이기 때문입니다..말씀을 들어야 살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백성이 망하는 이유도
호4;6은 말씀을 모르니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이 없어서라 했고
왜 이토록 배부르고 등 따신 시대에 보임직하고 먹음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한 곳이
지천인 이 시대에 왜 목마름이 가중되는가 하면
아모스8;11은 빵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씀이 없는 기갈이라 했기 때문에
여러분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이 내 발에 등이되고 말씀이 내가는 길의 빛이 되아
말씀이 내 인생의 네비로 내 삶의 이정표가 되어야
그제서야 방황도 멈추고
똑바로 걷게 될 것이며 옳은 길로 바르게 가니
‘그제서야’승리하게 될 것을 믿고 늘 청종하고 반응하며
적용하되
결단한 것을 실천 순종으로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