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베리 따기 / 셰이머스 히니]
8월 하순, 일주일 내내 비와
햇빛을 흠뻑 맞고 나면 블랙베리가 익었다.
처음에는 여럿 중에서도
딱 한 알, 윤기 나는 자줏빛 덩어리 하나가 유독
붉고 푸르게 단단해졌다, 매듭처럼.
그 첫 번째 열매를 먹으면 과육이 달았다.
진한 포도주인 양 여름의 피가 그 안에 있어
혀에 얼룩이 남고 열매를 따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이어서
붉은 것들에 검은색이 오르면 굶주린 욕망이
우리로 하여금 우유통, 콩 통조림 통, 잼 통을 들고
달려 나가게 했다. 장화는 찔레장미에 긁히고
젖은 풀들에 물이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목초밭, 옥수수밭 감자밭 이랑을 돌며 열매를 따
딸랑거리는 밑바닥은 덜 익은 것들로 채우고
그 위는 눈알처럼 불타는 굵고 검은 열매들로 덮어
통들을 가득 채웠다. 손은 가시에 찔려 화끈거리고
손바닥은 *푸른 수염의 사나이처럼 끈적거렸다.
우리는 싱싱한 베리 열매를 헛간에 저장했다.
그러나 큰 통이 가득 찼을 때 우리는 발견했다.
우리의 저장물을 포식 중인
솜털 같은 회색 곰팡이 균을.
과즙도 악취가 났다.
일단 덤불을 떠나자 열매들이 발효해
달콤했던 과육은 신맛이 났다.
나는 그때마다 울고 싶었다.
공평하지 않은 일이었다.
깡통 가득 들어 있던 먹음직한 열매들이
썩은 냄새가 난다는 것은
매년 나는 그것들이 그대로 보존되기를 바랐으나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푸른 수염의 사나이-여섯 아내를 죽인 프랑스 전설 속 남자
문학은 '은유metaphor'이다. 은유는 그 안에 많은 의미의 층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해석이 달라진다. 문학이 주는 울림과 깊이가 은유에 있다. 직설적인 표현과 구호가 지배하는 사회는 획일적이고 얕다. 사람들이 은유를 이해할 인내와 상상력을 잃어버릴 때, 그들이 선호하는 지도자들은 직설적인 구호를 남발한다. 은유는 풀꽃이고, 찔레장미이고, 블랙베리의 검붉음이다. 어린아이일 때부터 우리의 마음과 영혼의 세계는 은유로 가득했다.
이 시를 읽으면 어릴 때 따 먹던 손과 입술을 파랗게 물들이던 오디 열매가 떠오른다. 아껴 먹으려고 남겨 두면 금방 흰 곰팡이가 피었다. 그래도 여름마다 오디를 따러 뒷산으로 달려갔다.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된 풍경 속에서 달콤한 열매가 입술과 혀를 붉게 물들인다. 과즙, 피, 욕망 같은 단어들이 베리열매를 따는 순수한 행위와 대비되며 감각을 자극한다. 그러나 삶의 쾌락은 파국을 내포하고 있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달고 신선한 열매는 시큼한 냄새로 변한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의 운명이고, 관계의 종말인지도 모른다.
은유와 상징, 운율, 시적 묘사 등이 완벽에 가까운, 야생 블랙베리 따는 일상의 일을 통해 인생의 이해에 접근한 명시이다. 우유 통, 콩 통조림 통, 잼 통은 목초밭, 옥수수밭, 감자밭의 리듬으로 이어진다. 가시에 찔리고 장화가 찢기면서 숲과 들판을 다니며 따 모은 베리 열매이지만, 기쁨과 수고는 아랑곳없이 곰팡이가 핀다. 모든 좋은 것에는 허무한 마지막이 있다.
셰이머스 히니 (1939~2013)는 예이츠와 함께 아일랜드의 위대한 시인이다. 조국의 역사와 자연에 바탕을 둔 시를 썼지만 동시에 인생의 보편적인 주제가 담긴 명시들을 남겼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기에 심리적 갈등을 겪었으나 아일랜드의 독특한 자연 풍경에 영향을 받아 서정성과 음악성이 깃든 시들을 발표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옥스퍼드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시를 가르쳤으며, 시집으로 『자연주의자의 죽음 Death of a Naturalist』『어둠으로 통하는 문Door Into the Dark』 『겨울나기 Winering Out』가 있다. “나는 말할 권리를 위해서 시를 썼다. 계시로서의 시, 자아 발견으로서의 시를"이라고 밝혔다.
해마다 여름이면 베리 열매는 다시 열리고 우리는 또다시 통을 들고 달려 나가리라. 그것이 썩지 않고 신선하게 보관되기를 바라면서. 또한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면서 기대와 실망의 반복, 그럼에도 다시 기대를 거는 것이 삶이다. 절망하지 않게 되기를 희망하면서 당신이 따러 다니는 열매는 무엇인가? 희망 편에 인생을 걸고 당신은 지금 어떤 베리 열매를 따 모으는 중인가?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중에서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