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조처음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갑자기 병이 들어
누워서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요한을 불렀습니다.
"너와 내가 만난 지도 어연 십년이 가까워 오는 구나!
내가 몸이 좋아져야 할 터인데
나이가 있어서 어쩔 수가 없구나! 내가 죽더라도
이 할머니를 잊지 말고 친 할머니처럼 모셔라!
그리고 교회(敎會)를 열심히 다니고 힘이 들면
주님께 기도(祈禱)를 하도록 하라."
할아버지는 이 말씀을 유언(遺言)으로 남기시고
조용히 하늘나라로 떠나 가셨습니다.
얼마 있다가 할머니도 세상을 뜨시고
요한은 또 다시 혼자가 되였습니다.
요한은 "내가 살아 갈 길은 오직 배워야 한다."
라고 스스로 결심을 했습니다.
밤에는 학교에 나가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낮에는 장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를 극진히 모셨습니다.
서울역 앞에서 장사를 할 때 깡패들에게
시달림을 받으며 참고 견디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대학(大學)에 진학(進學)을 하고
그리고 졸업(卒業)을 하고
신학교(神學校)에 들어갔습니다.
신학교(神學校)를 졸업하고 전도사(傳道師) 생활을 하고
목사(牧師) 안수(安受)를 받고
목사(牧師)가 되어서 목회(牧會)를 했습니다.
어느 날 TV 프로그램에 자신(自身)을 찾는
기사(記事)가 실렸습니다.
(아래글중에서)
세월은 지나고! 그러나 흔적(痕迹)은 남는다.
글 조 처음
싸움은 치열(治熱) 했습니다.
우리의 전세는 경상도 낙동강(洛東江) 가에서
강물에다 많은 피를 흘러 내려 보내면서
동족(同族) 간에 비참(悲慘)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피아간(彼我間)에 심한 타격(打擊)을 입으면서
밀고 밀리는 전투(戰鬪) 속에 UN군이 개입(介入)을 하면서
우리군은 북으로 진격(進擊)을 했습니다.
겨울을 지나면서 우리의 국군(國軍)이 압록강(鴨綠江) 변에
도착(到着)해서 겨우 숨을 내 쉴 때에 중공군(中共軍)이
모든 전선(前線)에 개입(介入)을 해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내려와
우리는 작전상 이라는 이유로 후퇴(後退)를 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 강변에 이르렀을 때에
통일(統一)이 되었다고 생각을 했었고
전쟁(戰爭)이 끝났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중공군(中共軍)이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내려오고
그로 인해 우리 국군(國軍)과 유엔군은그해 1*4후퇴(後退)를 했습니다.
신의주를 버리고 남으로 평양(平壤)을 내 주고
후퇴(後退)를 거듭했습니다.
평양(平壤)에 거주(居住) 하던 많은 사람들이
평양(平壤)이 수복(修復)이 되여 고향(故鄕)으로 돌아 왔지만
중공군(中共軍)의 개입(介入)으로 다시
피란(避亂) 보따리를 싸들고 후일(後日)을 기약(期約)을 하며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피란길을 나섰습니다.
평양(平壤)에서 출발(出發)한 사람들은
살길을 찾아 진남포로 가기 시작 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진남포에는 피란민(避亂民)을 태우기 위해
미군(美軍)의 커다란 수송함(輸送艦)이
피란민(避亂民)을 태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진남포에는 미군(美軍)의 수송선(輸送船)이
피란민(避亂民)을 수송(輸送)하려고
군함(軍艦) 외에 많은 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요한도 어머니를 따라 피란(避亂)길에 올랐습니다.
평양(平壤)에서 평양(平壤)을 뒤로 하고
진남포를 향해 어머니를 따라 걷고 또 걸었습니다.
발이 얼고 시리고 귀가 찢어지듯이 추운 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하게 걷고 또 걷기만 했습니다.
간간히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고요한 적막(寂寞)을 깨뜨렸습니다.
걷고 걸어서 드디어 진남포 항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기 위하여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습니다.
노인(老人)들 어린 아이들 그리고
중년에 이르기 까지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보따리를 내려놓고
순서(順序)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요한과 어머니도 함께 왔던 두 사람의 누나도
모두가 서로 헤어지거나 떨어지지 않으려고
서로 서로 간에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요한의 아버지는 형과 함께 이남(以南)으로
며칠 전에 먼저 떠나고 남은 가족은 헤어지면서
이남(以南)에서 만나자고 약속(約束)을 굳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배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갑자기 두 누나가 없어 졌습니다.
어머니는 요한을 혼자 남겨 두고
누나를 찾으려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그 때에 요한 네 가족(家族)이
배에 오를 순서(順序)가 되였습니다.
누나들을 찾으러 간 어머니는 오지 않고
요한은 혼자 울고만 있었습니다.
이 때 옆집 아저씨가 요한을 두 팔로
덥석 안고 배위에 올라 놨습니다.
"너라도 어서 가자! 여기 있으면 죽는다."
배에 오르자 배는 크게 고동(鼓動)소리를 울리면서
서서히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진남포항은 눈에서 멀리 그리고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배는 서해안(西海岸)을 따라 남으로 내려 왔습니다.
어느 곳에서는 바다 한가운데서 군함(軍艦)들이
육지를 향하여 함포사격(艦砲射擊)을 하고 있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곳에서는 함포(艦砲)와 비행기(飛行機)에서
내려 퍼 붓는 폭격을 맞아서 그런지
멀리서 안개 같이 희고 뿌옇게 연기가 보였습니다.
배는 영종도를 뒤로 하고 남으로 내려 왔습니다.
배는 전라도(全羅道) 부안(鳧鴈) 땅에 도착(到着)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배에서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요한도 사람들을 따라 내렸습니다.
요한을 배에 태운 아저씨가 요한을 달래면서
위로(慰勞)를 했습니다.
"얼마 있으면 어머니가 다른 배를 타고 이리로 오실 거야!
그리고 어디 있을 아버지와 형도 만나게 될 거야!"
사람들은 임시(臨時) 로 만든 부안 어느 초등학교에
피란민(避亂民) 수용소(收容所)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을 수용(收用)을 했습니다.
요한도 그 아저씨를 따라 학교(學校) 교실(敎室)에서
기거(寄居) 하며 새우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이집 저집을 다니면서 얻어먹으며
어머니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오지 않았습니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지나갔습니다.
사람들은 살길은 찾아 뿔뿔이 헤어지고
남은 사람들도 어디로 인가 떠나갔습니다.
요한은 누구를 따라 갈 사람도 없었고 모
두들 자기들의 식구(食具)들도 있는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요한을 반겨 줄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떠나고 아무도 없는 피란민(避亂民)
수용소(收容所)에는 몇 집만 남았습니다.
요한은 거리에 나와서 이집 저 집을
기웃거리며 깡통을 들고 구걸(求乞)을 했습니다.
그 때 누구인가 요한을 어느 중국(中國)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잔심부름이나 하라고 했습니다.
이곳에서 요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곳에서
어머니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매일 같이 물을 길러 오고 주방(廚房)에서
주방(廚房)장의 잔일을 도와주며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면서 주방(廚房)장이
요한을 구박(毆縛)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폭언(暴言)을 하고 심하면 구타(毆打)를 했습니다.
어느 때는 불에 달아 있는 프라이팬으로
요한의 머리를 처서 화상(火傷)을 입고
붕대를 감고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主人)은 주방장을 나무라지도 않고
도리어 요한을 나무랐습니다.
주방장이 심하게 구박(毆縛)을 하고
또 중국집 주인(主人)의 횡포(橫暴)에
헤어나기 힘들고 견디기 어려워서
주인(主人)과 주방(廚房)장이 잠이 든 사이에
몰래 그 집을 빠져 나와서
무작정(無酌定)하고 걸었습니다.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게 걸었습니다.
그리고 지나는 트럭을 세우고 트럭 운전사(運轉士)에게
사정이야기를 하고 아무데나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고마운 운전사는 요한을 남원(南原)역에다 내려 주었습니다.
요한은 남원역에서 역무원(驛務員) 몰래
기차(汽車)를 타고 서울로 올라 왔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한 요한은 춥고
몸이 떨려서 무작정(無酌定)하고 걸었습니다.
산을 향하여 걸었는데 지금의 후암동인
해방촌(解放村)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곳에서는 이북에서 피란민들이 내려와서
천막이나 판자(板子)로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니 문이 열러있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방안에
방석(放釋)이 여기 저기 여러 개 놓여 있었습니다.
요한은 방석(方席)을 몇 개 집어 아래에 요처럼 깔고
몇 개를 들어서 배위에다 놓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 곳은 교회(敎會)였습니다.
한참이 지났는데 어느 할아버지가 요한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요한은 겁이 났습니다.
하도 매를 맞아서 이번에 또 매를 맞을 까봐 일어나
무릎을 꿇고 무조건(無條件)하고 잘못했다고 빌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말을 하셨습니다.
"여기는 교회(敎會)인데 너는 누구냐? 어디서 왔느냐?"
요한은 지난 이야기를 자세히 이야기 했습니다.
진남포에서 배를 탄 이야기며
부안에서 피란(避亂)살이며 중국집 이야기 등을
빼놓지 않고 지나간 일을 말했습니다.
한참을 듣고 있던 할아버지는
요한을 물끄러미 처다 봤습니다.
"말을 들어 보니 너의 말씨는 평안도 말씨에다
고생(苦生)을 많이 했구나. 갈 곳이 있니!"
요한은 없다고 힘을 주며 말을 했습니다.
밥만 먹여 주면 무엇이 던지
열심(熱心)히 일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종탑(鐘塔)을 가리키며
“너는 오늘 부터 여기서 있으면서
매일 같이 종을 치라” 고 했습니다.
요한은 할아버지에게 넙죽이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같이 열심히 종을 쳤습니다.
요한은 할아버지의 양아들이 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교회(敎會) 옆집에 할머니와 단 둘이
사시면서 고향(故鄕)이 함경도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같이 서울역 앞에 나가서
구두를 수선(手選)을 해서
두 내외분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몇 달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요한을 불러 앉히고
너는 아직 어리니 공부(工夫)를 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날 요한은 지금의 초등학교(初等學校)
전신(全身)인 국민학교(國民學校) 3 학년(學年)에 편입(編入) 되어서
요한은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工夫)를 시작(始作)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서 요한은
중학교(中學校)에 진학(進學)을 하고
올해에 2학년이 되였습니다.
공부도 잘해서 전체(全體)에서 우등(優等)을 했습니다.
할아버지 내외는 친 손주처럼 돌보며
사변(事變) 통에 잃어버린
자식(子息)들의 생각이 살아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갑자기 병이 들어
누워서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요한을 불렀습니다.
"너와 내가 만난 지도 어연 십년이 가까워 오는 구나!
내가 몸이 좋아져야 할 터인데
나이가 있어서 어쩔 수가 없구나! 내가 죽더라도
이 할머니를 잊지 말고 친 할머니처럼 모셔라!
그리고 교회(敎會)를 열심히 다니고 힘이 들면
주님께 기도(祈禱)를 하도록 하라."
할아버지는 이 말씀을 유언(遺言)으로 남기시고
조용히 하늘나라로 떠나 가셨습니다.
얼마 있다가 할머니도 세상을 뜨시고
요한은 또 다시 혼자가 되였습니다.
요한은 "내가 살아 갈 길은 오직 배워야 한다."
라고 스스로 결심을 했습니다.
밤에는 학교에 나가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낮에는 장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를 극진히 모셨습니다.
서울역 앞에서 장사를 할 때 깡패들에게
시달림을 받으며 참고 견디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대학(大學)에 진학(進學)을 하고
그리고 졸업(卒業)을 하고
신학교(神學校)에 들어갔습니다.
신학교(神學校)를 졸업하고 전도사(傳道師) 생활을 하고
목사(牧師) 안수(安受)를 받고
목사(牧師)가 되어서 목회(牧會)를 했습니다.
어느 날 TV 프로그램에 자신(自身)을 찾는
기사(記事)가 실렸습니다.
1·4후퇴(後退) 때 해어진 아버지와 누나가
요한 자신을 찾는다는 내용(內用)이었습니다.
요한은 아버지에게 연락(連絡)을 해서
모두들 꿈같은 해후(邂逅)를 했습니다.
형과 누나는 모두 서울에서 일류(一流)대학(大學)을 나와서
행복(幸福)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이렇게 혼자서 고생을 하며 지낼 때에
이 사람들은 말도 못할 행복을 누렸구나!
하고 눈시울이 뜨거워 졌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늦게나마 주님께서 만나게 해 주시고
시련(試鍊)으로 당굼질을 하게하여
주의 종을 삼아 주심을 감사드리며
오늘이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이제 세월이 흐름을 어찌 감당(勘當) 하리요.
모두들 세상을 떠나시고 이제 나만 홀로 남았으니
이제 나도 원로(元老) 측에 드는 구나!
라고 요한은 생각을 했습니다.
세월은 쉬지 않고 흐릅니다.
이 세상에서 태어나고 삶을 살다가
언제든지 사람은 누구나 가리지 않고
세상을 떠나갑니다.
그리고 흐르는 세월(歲月) 속에서
태어나고 살다가 죽습니다.
6월에 일어 난 6*25사변(事變)도
우리 가족을 흩어지게 하고 헤어 졌다가
다시 만나게 한 1*4후퇴(後退)도
모두 흐르는 세월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사이에 나는 끼어 있었고 인내(忍耐)하면서 살았습니다.
세월은 시간이고 끝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세월은 지루 하지만
저 하늘나라의 세월은 절대로 지루 하지 않고
언제 지난지도 모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6월은 지루하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감사(感謝) 합니다. 종(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