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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르술라 베닌카사(1618년 10월 20일)
나폴리에서 태어난 우르술라 베닌카사(Ursula Benincasa)는 신비로운 은총에 힘입어 무염 시태(無染始胎) 성모 마리아의 테아티노 수녀회를 창시하였다. 그녀는 탈혼 상태의 황홀경에서 체험한 환영 때문에 몬테 산텔모(Monte Sant'Elmo)에 있는 수녀원에서 나와 로마로 길을 떠났다. 목적은 하느님의 계시로 그곳에서 교황 그레고리우스(Gregor) 13세의 마음을 움직여 근본적인 교회 개혁을 위한 조짐을 야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그로 인하여 아홉 명의 고위 성직자와 신학자 그리고 성 필립 네리 (Philipp Neri)가 속해 있는 위원회로부터 엄한 시험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를 못했다. 우르술라 베닌카사 수녀는 다시 자기 수녀원으로 돌아왔다. 거기서 그녀는 참회와 속죄 속에 다음 단계의 삶을 준비하며 보냈다.
지상에서 이미 그녀는 엄청난 연옥의 고통을 견디어 내야만 했다. 병든 수녀 크리스티나(Christina) 곁에 있는 그녀는 크리스티나가 연옥에 대한 공포에 싸여 있는 것을 알았다. 겁에 질린 크리스티나를 도우려는 마음으로 그녀는 하느님께 이 죽어 가는 동료를 연옥의 형벌에서 구해 주시고 대신 자기가 그 형벌의 짐을 지도록 해주실 것을 간구했다. 주님께서는 그녀의 청을 들어주셨다. 죽어 가는 사람은 순간적으로 모든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 성스러운 평화 속에 잠겨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같은 순간에 이 수녀는 무서운 연옥의 고통에 빠져 1618년 10월 20일 죽기까지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 성 필립 네리(1622년 5월 26일)
이 위대하고 독창적이며 쾌활한 로마의 종교 생활 개혁자는 사제직에 있으면서 민중의 온갖 계층에 영향을 끼쳤으며, 충고와 실제적 행동으로 모든 사람을 구하려고 애쓴 성인이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순수한 신비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환영과 황홀경에 대해 불신감을 지니고 있던 그는 수녀회의 경건한 수녀들이 자신에게 성인들과 연옥의 불쌍한 영혼들이 나타났음을 주장할 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불쌍한 영혼들의 위대한 벗이며 구원자였다. 그는 자신이 실천한 모든 선한 희생 봉사를 다른 사람을 위해 바쳤는데, 선행 공덕의 절반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바쳤으며, 절반은 연옥에서 신음하는 불쌍한 영혼들, 특히 이미 스스로 참회하고 죽은 영혼들을 위해 바쳤다. 그 영혼들은 자주 이 사제에게 나타나 그의 기도로써 하느님께 자신이 완전히 위탁되기를 간청하기도 하고, 연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그에게 감사하기도 했었다."
1. 마리아 카타리나 제거(1637년)
클라라회 수녀 마리아 카타리나 제거 (Maria Katharina Seger)는 연옥에서 신음하는 불쌍한 영혼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찬 거룩한 수녀이다." 뮌헨에서 그녀는 클라라회에 가입했다. 그녀는 경건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슈타이어마르크(Steiermark)의 그라츠 (Graz)에 자기 수도회의 새 수녀회를 창설하도록 위임을 받았다. 그녀는 그 수도원의 첫 수녀원장으로 취임하여 거기서 선행을 많이 쌓았다. 그녀는 항상 기도와 참회를 통해 불쌍한 영혼들의 정화 기간을 줄이려고 애썼다. 하느님의 허락으로 그녀에게 자주 죽은 이들이 나타나서 그녀의 도움을 청하곤 했다. 마리아 카타리나 수녀는 이 죽은 이들이 천국에 들도록 애썼는데, 그들이 마침내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그들은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으며, 이번에는 이 영혼들이 수녀원장과 그 수녀원의 일을 돕곤 했다. 불쌍한 영혼들에 대한 연민에 찬 그녀의 사랑에 대한 영원한 대가로서 이 수녀는 경건한 죽음을 맞이한 후에 1637년 천국으로 인도되었다.
1. 마리아 빌라니(1670년 3월 26일)
1584년 나폴리에서 백작 지오반니 디 폴라(Giovanni di Polla)의 딸로 태어난 베아트리체(Beatrice)는 어릴 때 이미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속죄의 삶을 살고 불쌍한 연옥 영혼들을 구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녀는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나폴리에 있는 도미니코 수녀원에 들어가서 곧 수련기를 마치고 뛰어난 영성 생활을 보임으로써 출중한 인물로 부각되었다. 그녀는 엄격한 수녀회 규칙을 매우 사랑했기 때문에 스스로 나폴리에 있는 친척의 도움을 받아 다른 수녀원을 창설했다. 여기서 그녀는 점점 더 은혜로운 능력을 지닌 신비주의자로 성장했다. 그녀는 여러 번의 탈혼 상태의 황홀경의 체험, 하느님의 현현,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결합, 예수님의 심장의 상처를 받은 성흔, 예언의 능력과 마음을 읽는 능력 등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금욕적 생활 속에 쓰여진 신비로운 저서들에는 예를 들 면 「진정한 사랑의 거울(Specchio del vero amore)」, 「영혼의 일기 (Giornalista di sua vita)」, 「성찬식에 대하여 (Pancration Electorum)」,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Paradisus vitae) 가 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과 요한 복음에 대한 주해서는 아직 발행되지는 않았지만 동시대의 도미니코회 신학자 도미니코 그라비나에 의해서 소개되어 내용은 이미 알려져 있다."
이 저서들 속에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바친 나폴리의 수녀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을 위해 그녀는 매일같이 선행을 실천했다. 불쌍한 영혼들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매우 극진한 것이었 다. 그녀는 하느님께 이 불쌍한 영혼들의 고통을 자기에게 돌려 주실 것과 자기에게 허락하신 죄 사함을 불쌍한 영혼들의 죄 사함에 허락해 주시기를 간구했다. 다른 신비주의자들과 같이 마리아 빌라니 (Maria Villani) 수녀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대속의 고통을 스스로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그녀는 언젠가 위령의 날에 수녀원장으로부터 원고를 정리해 달라는 위탁을 받았다. 그녀는 이제 하루 종일 오직 불쌍한 영혼들을 위한 기도에만 전념할 수가 없게 된 것을 주께 탄식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기도에 전념하기를 원하자 주께서 그녀에게 나타나 약속하시기를 그녀가 맡은 일에 순종하여 글을 쓰는 매 행마다 한 사람씩의 영혼을 연옥에서 구제해 주겠노라고 하셨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에서 하느님에게 중요한 것은 선행의 크기 가 아니라 선행을 하게 만드는 사랑의 정도가 중요한 것인 줄을 깨닫게 되었다."
1.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1690년 10월 17일)
1647년 프랑스의 오팅(Autun) 교구에 있는 로테쿠르(Lautecour) 에서 태어난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Margarita Maria Alacoque)는 왕실 법무관 클로드 알라코크(Claude Alacoque)의 딸로서 1671년에 파레르모니알(Paray-le-Monial)에 있는 성모 방문 수녀원에 들어갔으며 그곳에서 수녀원장의 보좌로서 그리고 수련 기간 중의 지도자로서 활동했다. 그녀는 주로 예수 성심(聖6)의 현현을 통해서만 그리고 예수 성심의 공경을 널리 퍼뜨리도록 그녀에게 맡겨진 의무를 통해서만 세상에 알려졌다. 이 성녀에게 불쌍한 영혼들의 환영(幻影)과 현시(顯示)가 있었지만 사실상 남아 전해지는 것은 많지 않다." 이러한 연옥 영혼들의 환영과 현시 속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진리는 현세에서 연옥은 매우 진지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과 연옥에서 정화 중에 있는 불쌍한 영혼들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또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는 현세에서 중요한 지위에서 일하다 죽은 두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이 두 사람 중의 하나가 오랜 기간 동안 연옥의 형벌을 받도록 심판을 받았으며, 그녀를 위해 바쳐진 모든 기도와 그녀를 위해 봉헌된 추도 미사가 다 허사가 된 것처럼 그녀에게 현시되었다. 오히려 위에 언급한 죽은 이에 의해서 억압당하며 폐해를 입었던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죽은 후에 하느님께 선택되었다. 억압과 쾌 해를 당한 것 때문에 이 가족들에게는 죽은 사람의 영혼의 안식을 위해 추도 미사를 봉헌할 만한 재산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주께서는 그들을 전술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도와 주셨던 것이다.
어느 날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는 바로 얼마 전에 죽은 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이 중에 둘은 수녀회의 수녀였고 나머지 한 사람은 일반 신자였다. 주님께서 그녀에게 나타나 물으셨다. "이들 세 사람 중에 누구를 내가 곧 연옥에서 구제하기를 원하느냐?" 성녀는 대답했다. "주여, 당신의 뜻에 합당한 이를 결정하소서. 주님께 영광이 되게 하소서." 곧 이어 주 께서는 그 성녀가 보는 가운데 일반 신자를 구하셨다. 주께서 성너에게 수도회의 수녀들에게 당신이 동정을 덜 쏟은 이유는 그들에게는 천국에 들어갈 방도가 많이 있으며, 그들은 지상에 사는 동안에 특히 수녀회의 규칙을 준수함으로 해서 죄과를 쉽게 면할 수 있노라고 말씀하셨다.
한 다른 수녀가 성녀에게 나타났는데 그녀는 놀랍게도 기도의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하느님에 의해서 금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지상에 사는 동안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고통과 역경을 참고 의지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에 항상 모든 재난이 자신을 피해 가도록 만들고 가능하면 인생을 쉽고 편안하게 이끌려고 한 것이 잘못이었다.
한 번은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자신이 있던 수녀원 출신의 한 수녀가 나타나서 매우 간곡하게 자신이 연옥의 무거운 고통에서 벗어나게끔 기도로 도와 줄 것을 간청했다. 그녀가 벌을 받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를 성녀가 묻자, 그녀는 자신이 이제 매우 큰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데 그 이유는 세상에 사는 동안 편안함을 좋아한 나머지 수녀회 규칙의 준수를 게을리 하고 수녀원의 시험에 참가하는 일에도 빠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다시 성모 마리아께서 그녀를 도와 주시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십중 팔구 자신은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져 버렸을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성녀가 한 번은 지극히 거룩한 성체 성사를 봉헌하는 중에 기도를 올리고 있을 때, 한 불쌍한 영혼이 불길에 휩싸인 채 나타났다. 그 불길은 성녀 자신까지도 그 화염 속으로 이끌어 들일 만큼 거세었다. 이 불쌍한 영혼을 보자 성녀 마르가리타는 곧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예전에 그녀를 영신적으로 인도해 주었으며, 그녀가 완전한 길로 나서도록 애를 써 주었던 바로 그 수도회의 수사 신부였다. 주님께서 특별한 은총을 내리시어 이 죽은 성직자로 하여금 예전의 참회자에게 나타나게 허락하시고 그녀에게 도움을 간청하도록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그는 성녀에게 자신이 이제 이처럼 고통을 당해야 하는 이유는 자신이 지상에서 주어진 모든 일을 하느님께 대한 순수한 사랑에서 행하지 않고
오히려 일을 함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영예를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외에도 그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평등하게 올바로 실천하지 못하고 어떤 특정한 인물에 편중된 애착을 지녔었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석 달 동안 이 죽은 성직자가 성녀에게 나타났는데 이 불쌍한 영혼은 마침내 성녀의 끊임 없는 기도와 보속을 통해서 연옥으로부터 벗어나 천국의 지복으로 들어갔다.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는 매우 과도하게 보속의 실천에 대한 열정에 빠져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수녀원장은 그녀가 건강을 해칠까 두려워 이러한 열정을 완화시키도록 종용했다. 어느 날 그녀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하여 육체의 죄악들을 보속하는 채찍질을 자신에게 가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녀는 열성이 지나쳐서 허가받은 참회가 보속을 위한 시련의 정도를 훨씬 넘고 말았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불쌍 한 영혼들이 그녀에게 나타나 그녀가 자신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는 커녕 더 증가시키고 있다고 한탄했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그녀는 이 훈계를 잘 이해하였다 순종이 최상의 고행 임을 그리고 순종에 반해서 일어난 일은 설사 그것이 그것 자체로는 아무리 선하고 헌신적인 것이라 해도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음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불쌍한 영혼들이 나타난 이 예들은 수련기가 지난 수녀의 지나친 열성에서 비롯된 환상적이며 과장된 생각들일 것인가? 아니면 우리 인간에게 보통은 주어져 있지 않은 특별한 은총에 의한 통찰이 진실로 그 영역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인가? 어떤 경우든 예수 성심의 현현과 계시가 그녀로 하여금 교회를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도왔으며 그녀의 뛰어난 희생적인 신앙 생활이 내세의 정화 상태를 명확히 바라볼 수 있었으므로 더욱 올바르게 계속되었을 가능성을 긍정해야 할 것이다.
1. 가스파르 데 올리덴(1740년)
가스파르 데 올리덴(Gaspar de Oliden) 신부는 성 카예탄 폰티 에네 (Cajetan von Tiene)의 테아티노 수도원 출신으로서 스페인의 신학자이자 금욕주의자이며, 교황 비오(Pius) 6세로부터 높이 칭송을 받은 바 있는 저술가이다." 그는 스페인의 기프스코아 (Guipúzcoa) 지방의 엘고이바르 (Elgoibar)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마드리드(Madrid)에서 테아티노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1683년 1월 6일에 서원을 마친 수도자로서 입회되었다. 그는 살라만카(Salamanca)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친 후, 이탈리아로 보내어졌으며, 그곳에서 매우 열심히 영혼을 돌보는 일을 수행했는데, 특히 불쌍한 영혼들을 위한 사도가 되었다. 그는 특히 "거룩 한 사랑의 실천"을 위해 진력하였는데, 이 거룩한 사랑의 실천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실천한 선행 공덕이 갖고 있는 "보속"과 "대도(代禱)"의 가치를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관대하게 포기하도록 결심하게 하는 일이었다. 많은 회합과 강연을 통해 가스파르 데 올리덴 사제는 신자들이 이러한 "숭고한 사랑의 실천"을 결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교황 베네딕도 13세(1724-1730년 재위)는 여러 차례 가스파르 데 올리덴 사제가 그러한 내용을 강조하는 회의에 참석하였다. 그 교황은 이 신부를 '연옥의 대사' 라고 즐겨 불렀다. 1728년 8월 23일 교황 베네딕도 13세는 가스 파르 데 올리덴 신부에게 '숭고한 사랑의 실천'을 실행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1788년 12월 11일의 이러한 사랑의 실천을 위한 모임에 풍성한 속죄의 특은을 허여해 준 사람은 교황 비오 6세였다. 그리고 교황 비오 9세와 레오 13세는 이것을 추기경 회의의 훈령을 통해서 여러 번, 곧 1852년 9월 20일, 1854년 11월 10일, 1885년 12월 19일에 확인해 주었다. 가스파르 데 올리덴 사제 외에 특히 성 알퐁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Alfons Maria de Liguori)가 '숭고한 사랑의 실천'을 확장하는 데 진력하였다. 또 1932년 1월 26일에는 사도좌로부터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숭고한 사랑의 실천'에 앞장 섰던 신자들에 대해 그들이 고해 성사를 받고 성지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교황의 뜻대로 기도할 경우, 죽은 이들을 위해 행해지던 사죄의 특은을 똑같이 받았다. 1968년에 새로 만들어진 사죄에 관한 소책자에는 유감스럽게도 그에 대해 더 이상 상세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가스파르 데 올리덴 신부는 1725년 팔마 데 마요르카(Palma de Mallorca)에 새로 설립된 카예타노(Cayetano) 수도원의 초대 수도 원장이 되었다. 여기에서 역시 그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한 '숭고한 사랑의 실천'을 권장하는 일에 온갖 열성을 다 기울였다. 그래서 마요르카의 요한 페르난데스 자파타(Johannes Fernandez Zapata) 사제는 2년 후인 1727년 12월 12일 교황 베네딕도 13세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가스파르 데 올리덴 사제가 이제는 마요르카에서도 "불쌍한 영혼들을 돌보는 데 전력을 다하는 불쌍한 영혼의 대사이며 위로자가 되었다고 쓸 수 있었다. 그곳 마요르카에서 그는 연옥에 관한 대화(Dialogos del Purgatorio)」라는 중요한 책도 썼는데, 그것은 1732년 알칼라(Alcala)에서 출판되었다. 1740년 그는 축복받은 사제의 임무를 다 마치고 눈을 감았다. 그는 틀림없이 그와 그의 많은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연옥에서 해방되었거나 연옥의 고통 기간이 단축되고 고통이 경감된 영혼들로부터 큰 감사를 받으며 천국의 영광 속으로 영접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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