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계신 분들은 한자를 매우 멋있고 혹은 어렵고 권위있고
학식있는 문자로 생각하더군요. 저는 한자문화권에서 태어나,
9살때까지 한국어는 한 마디도 못 배우고 한자와 중국어를 모국어로
배웠고 말해 왔습니다. 저의 경험에 따르면 한자는 결코 일부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대단한게 아닙니다.
'推'라는 글은 한국에서 '추'로 읽히는데, 이것은 그렇게 대단한
글이나 낱말이 아닙니다. 중국에서 3살짜리 아이면 말할 수 있는
낱말이자, 중국어 회하 초급이면 익히는 글입니다. 그냥 단순히
우리말에서 '밀다'라는 뜻입니다.
'毁'라는 글은 한국에서는 '훼'로 읽히는데, 이것도 그냥 제가 5살때
중국에서 살면서 자주 썼던 단어입니다. 골목 골목을 뛰어놀며
"저 새끼 잡아서 패버려!"라는 말을 할때 자주 썼던 낱말이고,
중국어 회화 초중급이면 배우는 낱말입니다. 그냥 단순히 '부셔버리고
헐어버린다'라는 뜻입니다. 제가 학교에 가서 교과서에서
읽기 전까지는 '조져버려'와 같은 비속어로 알고 있었던 낱말입니다.
'追'라는 글도 한국에서 '추'로 읽히는데 이것도 그냥 3살짜리 아이면 알게
되는 단순히 중국어의 한 낱말에 불과합니다. '따라가다', '쫓아가다'
라는 뜻입니다.
한국은 이상한 나라입니다.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한국아이가 쓰는'부셔버려!'라는 글은 무식한 글이고,
5살짜리 중국아이가 쓰는 '毁他!'라는 글은 유식한 글이 되는 곳이
한국입니다. 제가 12살때 중국어, 특히 광동어 방언으로 된 욕과 비속어
잡담을 한자로 공책에다 잔뜩 써놓은 적이 있는데, 그것을 한자 서예를
가르쳤던 한국 선생님이 와서 보더니 "이놈 참 유식하고 똑똑하네"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 한국은 이상한 한자 숭배 풍조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한자를 알면 바르게 낱말의 뜻을 이해하고 쓸 수 있다고 하였는데 그것도
좁은 식견에서 나온 말에 불과합니다. 중국아이들도 사실 작문을 할때
낱말 선택을 바르게 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제가 중국고등학교 교사들과
이야기해 본 결과이고, 몇몇 성적이 중위권에 있다고 하는 학생들이
쓴 작문을 읽어보고 느낀 점입니다.
한자까지 배워가면서 그 낱말의 뜻을 짐작하고 바르게 쓸 바에는 차라리
한글로만 써진 낱말을 가지고 그 뜻을 바르게 쓰는 훈련을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시간을 절약합니다.
그리고 한자가 없으면 조어, 즉 낱말만들기가 불가능할 것 같지만,
사실 우리말로도 조어가 충분하게 됩니다. 단지 우리가 한자어를
높이 보고 우리말을 낮게 보는 습관때문에 한자어로 만들어진 낱말들을
선호하는 풍조가 생겨서 우리말로 만들어진 새로운 낱말들이 빛을
못 볼 뿐입니다.
저는,
한국아이가 쓰는 '푸른 하늘이야'이라는 문장과
중국아이가 쓰는 '是靑天'이라는 문장이
같은 수준으로 존중받을 수 있을때, 비로소 우리말이 빛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