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군맹평상(群盲評象)
무리 군(群), 소경 맹(盲), ‘군맹’이라함은 ‘소경의 무리’라는 뜻이고, 평할 평(評), 코끼리 상(象), ‘평상’이라함은 ‘코끼리를 평가하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군맹평상”이라함은 “소경의 무리가 코끼리를 평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경들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평한다는 말은 많이 들어 온 이야기이다.
군맹평상은 불경 (涅槃經:열반경)에 나오는 말이다.
옛날 왕이 대신을 불러 “코끼리를 소경들에게 보여주라”고 명했다.
대신은 코끼리를 끌어내어 소경들에게 그 코끼리를 만져 보게했다.
그런 후에 왕이 직접 소경들 앞에 나서,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 지를 각자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맨 먼저 코끼리 잇빨을 만져본 소경이 대답했다.
“코끼리는 큰 무우처럼 생겼습니다”
다음에는 귀를 만져본 사람이 말했다.
“아닙니다 코끼리는 키처럼 생겼습니다”
이번에는 머리를 만져본 소경이 대답했다.
“.코끼리는 큰 돌처럼 생겼습니다”
그러자 코를 만진 소경이 대답햇다.
“코끼리는 절구공이처럼 생겼습니다ㅣ”
이번에는 다리를 만져본 소경이 말햇다.
“아닙니다 코끼리는 절구통처럼 생겼습니다”
다음에는 등을 만진 소경이 대답햇다.
“코끼리는 평상(平床)처럼 생겼습니다.
그러자 배를 만진 소경이 말했다.
“코끼리는 장독처럼 생겼습니다.
끝으로 꼬라를 만진 소경이 말햇다.
“코끼리는 밧줄과 같이 생겼습니다”
이처럼 자기가 만진 코끼리의 부위에 따라 평가가 여러가지로 달랐다.
코끼리에 대한 여러가지 평가를 들을 들은 왕이 말했다
“들어라, 이 소경들은 코끼리의 형상을 제대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코끼리 말고 다른 짐승을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코끼리는 불성(佛性)을 비유해서 말한 것이고, 소경은 어리석은 중생들을 비유해 말한 것이다. 모든 중생들이 불성를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말의 유래와는 달리, 우리가 쓰고 있는 군맹평상은 “자기의 좁은 소견으로 사물의 전체를 평가하려는 어리석은 행위”를 가리킨다.
인간이 알면 과연 어느 정도 알 것인가? 한자를 잘 알고 한문에 능통한 사람일지라도 6만여자에 달하는 한자 전부를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사서오경(四書五經)과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다 읽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고전에 등장하는 한자는 1만자가 채 안되기 때문이다.
진리의 바다는 무한하다. 인간의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진리의 한계는 미미한 것이다. 그래서 사과나무 아래서 사과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萬有引力)을 발견한 뉴톤 같은 천재도 “나는 진리의 강 가에서 자그마한 돌맹이 하나를 주었을 뿐이다”라고 술회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유학을 다녀왔고 학력도 높아 자기는 모든 것을 안다고 우쭐대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손바닥 가지고 하늘을 가리려고 하는 우매한 사람이다. 막대기를 가지고 바다의 깊이를 재려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시각장애인들의 코끼리에 대한 평가가 각기 다르듯이 사람들의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지방에 큰 산이 있는데 햇볕이 잘드는 남쪽산은 나무가 잘 자라서 숲이 볼만했다. 그래서 남쪽마을 사람들은 이 산을 비옥한 육산(肉山)이라고 불렀다. 반면에 그늘지고 음지인 산의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나무가 자라지 않는 돌산인 석산(石山)이라고 불렀다. 같은 산인데도 거주하는 장소에 따라 산의 명칭이 다른 것이다.
이러한 것은 개인의 평가에도 마찬가지이다. 승진이나 전보 시에는 근무성적평가가 중요한 변수가 된다. 종전에 공직사회에서 근무성적평가는 상사가 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손바닥 비비는 사람을 ‘인절미 잘 빚는 사람’이라고 불렀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들어와 다면평가제(多面評價制)로 전환되었다. 다면평가제란 상사의 평가외에 부하와 동료들의 평가 및 고객(민원인)의 평가등이 종합된 평가를 말한다. 중국에서는 다각도에서 인물을 평가한다고 하여 이를 ‘360도 평가’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어쨋든 여러 측면에서 평가를 하는 것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에 도움이 되는 인사평정제도라고 생각된다.
공자께서 동산에 올라가서는 노나라가 작다는 것을 느꼈고, 태산에 올라가서는 천하가 작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를 등태산이소천하(登泰山而小天下)라고 한다.
무릇 리더는 거시적 안목에서 전채를 조망(眺望)하는 능력을 갖추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방면의 다양한 인재를 등용해야한다. 편파적이거나 정분에 의한 인사는 조직의 활력과 능율을 떨어뜨리는 주원인이 된다. 그리고 조직의 리더가 측근의 몇사람 말만 들어서는 판단이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 조직구성원 전체의 다양한 의견들을 들은후 이를 종합하여 판단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각장애인의 코끼리에 대한 평가를 모두어 보면 전체적으로 온전한 코끼리 한마리가 그려지는 것과 같다.
참고로 군맹무상(群盲撫象)이라는 말이 있다. “소경들이 코끼리를 더듬다”라는 뜻으로 군맹평상과 의미가 같다. 맹완단청(盲玩丹靑)이라는 말도 있다. “소경들이 단청구경을 한다”라는 뜻으로 사물을 감정할 능력이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2023.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