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오코스연구소 게시글에는 아래 글 말고 관련자들의 바이오코드가 표기되어 있음. 회원들은 <여기>를 보시오. 1895년 을미년 10월 8일, 명성왕후 민자영이 경복궁 곤녕합에서 일본인 낭인들에게 끌려나와 마당에서 난도질 끝에 죽었다. 무능한 고종 이재황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작전에는 그의 아버지 대원군 이하응, 유길준, 조선군 국군1대대장 우범선, 2대대장 이두황, 3대대장 이진호, 군부협판 이주회, 국왕 친위대 부위 윤석우, 일본공사관 통역관 박선, 문신 구연수, 궁중수비대 출신 조선병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마지막 칼은 일본인 토오 가쓰아키가 휘둘렀지만 실제로 이들을 시킨 건 대원군 등이었다. - 명성왕후 민씨를 죽인 칼. 칼 주인은 토오 카츠아키. 그는 "민비를 벨 때 그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번민하다가 이 칼을 쿠시다 신사에 기증했다. 120cm. 칼집에는 '단칼에 늙은 여우를 베다'란 명문(一瞬電光刺老狐)이 새겨져 있다. 고종의 부인인 명성왕후 민씨는 무당 박창렬(이름은 이래도 여자)을 들여앉히고 그가 시키는대로 벼라별 짓을 다 했다. 그런 끝에 그는 일본인 낭인에게 칼 맞아 죽고, 조선은 망하고, 이씨 왕가는 풍비박산했다. 그 때 고종은 러시아의 힘을 믿고 어떻게든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보려고 애를 썼다. 일본군과 대원군 몰래 1897년 2월 11일, 고종 이재황은 전격적으로 러시아 공사관으로 달아났다. 러시아에 의지해 일본의 간섭을 막아보자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그가 믿고 의지하려던 러시아는 라스푸틴이라는 희새의 사기꾼에 의해 망해가고 있었다. 조선이 신령군이라는 여자 무당에 의해 망할 때, 러시아도 라스푸틴이라는 요망한 자가 궁중을 장악, 망해가는 중이었다. 그러니 러시아가 어찌 일본과 싸워 이길 수 있었겠는가. 결국 러일전쟁이 일어나 러시아는 패퇴하고 만다. 그 이면에 라스푸틴이 있다. 러시아라는 나라의 기초를 빼내고 대들보를 들어내고 마침내 불을 지른 사나이 라스 푸틴, 고종 이재황의 실낱같은 희망마저 앗아가고, 대한제국을 일본의 먹잇감이 되도록 만든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자다. <미국 대사관은 2007년 외교전문에서 최태민 목사를 한국의 라스푸틴으로 비유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후보는 한국의 라스푸틴인 <최태민에게 지배당하고controlled 있다>고 언급했다.> 그럼 라스푸틴이 어떤 존재인지 보자.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Grigori Yefimovich Rasputin, 1869년 1월 22일(구력 1월 10일)~ 1916년 12월29일(구력 12월 16일))은 제정 러시아 말기의 파계 수도자이자 자칭 예언자였다. - 발기 때 길이가 33cm에 이르는 길고 잘 생긴 성기를 가졌다는 라스푸틴. 오른쪽 사진은 얼어붙은 강에서 건져올려진 그의 시신. 그의 성기는 나중에 상트 페테부르크의 한 병원에서 전시되었는데 죽으느 시신에서 때어냈음에도 길이가 23cm였다고 한다. 시베리아 튜멘주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노비흐. 공부하기 싫어하여 문맹인 채 굴러다녔다. 라스푸틴은 원래 '탕아'라는 뜻의 별명이다. 그도 라스푸틴이란 별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나중에 성으로 삼았다. 이후 15년 동안 러시아 일대를 떠돌면서 수도승을 자처했다. 그리스, 이스라엘, 터키도 돌아다녔다. 그는 1903년 당시 제정 러시아 수도인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나타났고, 혈우병으로 고생하는 황태자를 기도 요법으로 병세를 완화시켜 신망을 얻었으며, 귀족 대접을 받게 되었다. 당시 극심한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알렉산드라 황후는 라스푸틴 없이는 하루도 견디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자 라스푸틴은 이를 이용하여 황제 니콜라이 2세를 사실상 허수아비로 만들며 폭정을 일삼았다. - 라스푸틴에게 놀아나는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왕비를 그린 풍자화. 이러한 라스푸틴을, 니콜라이 2세의 딸들은 별로 탐탁치 않게 여겼으며, 특히 장녀 올가 로마노바는 라스푸틴을 죽여 없애야 러시아가 평화로워진다고 하면서 그를 궁정에서 몰아내려 하였다. 하지만 라스푸틴은 알렉산드라 황후의 강력한 지지(성적인 지지까지 받았던 듯)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올가가 쉽게 건드릴 수 없었다. 라스푸틴은 러시아의 농민들에게 생계유지조차 어려울 만큼 가혹한 세금(세율이 무려 90%)을 거둬들여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웠으며 이에 농민들이 항의하자 즉각 농민들을 쏴죽였다. 피의 일요일이라는 사건이다.(이 분노가 나중에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 공산주의 혁명으로 폭발한다) 특히 1915년 니콜라이 2세가 제1차 세계대전에 직접 참전하면서 궁중을 비우자 러시아는 완전히 라스푸틴의 천하가 되었다. 이때부터 라스푸틴의 폭정은 전무후무한 수준으로 뻗어나갔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모든 일반 농민들은 물론이며 심지어는 황제파의 귀족들마저 황제에게 등을 돌리고 만다. 사실상 러시아를 파멸시키는 수준의 악정을 끊임없이 자행했다. 라스푸틴의 반대 세력이던 펠릭스 유스포프 공작(니콜라이 2세의 조카딸 이라나의 남편),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푸리쉬케비치가 라스푸틴의 전횡으로 인해 반란이 일어날까 두려워 그를 처치하기로 모의하고, 궐석재판을 집행하여 라스푸틴에게 사형을 선고한 후 라스푸틴을 잔치로 초대했다. 그들은 준비한 청산가리를 라스푸틴에게 먹였다. 그러나 라스푸틴은 치사량이 넘는 청산가리를 먹었음에도 기타에 맞춰 춤을 추었는데, 그의 기행은 2시간 반 정도 계속되었다. 보통 치사량의 청산가리를 먹으면 5초 이내에 죽는 게 상식이다. 그러자 유스포프 공작이 그를 총으로 쏜 뒤 강철 지팡이로 머리를 마구 때리고 양탄자에 싸서 얼어 붙은 네바 강 물에 빠뜨렸다. 이 때 라스푸틴의 몸에는 실탄이 4발이나 박혔다. 나중에 황비 일행이 라스푸틴의 상태를 보니 그는 독살도 총살도 아닌 익사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실탄을 맞고 강철 지팡이에 머리를 맞을 때도 그는 멀쩡히 살아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라스푸틴의 영구를 네바 강에서 건져 올릴 당시 네바 강 표면의 얼어붙은 얼음에서 라스푸틴의 손톱자국이 발견되어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라스푸틴은 처형되기 전에 편지를 썼는데, 내용은 그의 예언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 편지를 남긴다. 나는 내년 1월 1일이 오기 전까지 살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러시아의 국민들과 러시아의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만일 내가 내 형제와도 같은 러시아 국민들의 손에 죽게 된다면 러시아 황제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왕조는 앞으로도 수백 년을 더 지속할 것이니까. 그러나 내가 만일 특권층, 귀족들의 손에 죽어 그들이 나의 피를 솟구치게 만든다면 그들의 손은 앞으로 25년간 피에 젖은 상태로 유지될 것이다. 그들은 러시아를 떠날 것이며, 25년간 형제들이 서로 죽이고 미워하게 될 것이고, 끝내 러시아에는 귀족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러시아의 황제여, 만일 당신이 나 그리고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게 된다면 당신은 다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만일 당신의 일족 중 누구라도 내 죽음에 연루된다면 2년 내에 당신의 일족, 가족과 자식들까지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러시아 민중들에게 죽음을 당할 것이다. 나는 가지만 나는 내가 사라진 이후 황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할 책무를 느낀다. 반성하고 신중히 행동하라. 당신의 안전을 생각하고, 당신의 일족들에게 내 피의 앙갚음이 있을 것임을 알려라. 나는 죽을 것이며 더 이상 살아있는 자들과 함께하지 못한다. 기도하고 기도하며 마음을 굳게 가지며 당신의 가족을 생각하라. -그리고리 라스푸틴 * 라스푸틴은 문맹이었기 때문에 이런 문장을 결코 구사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이 유서는 가짜라는 설이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는 영국 정보부가 라스푸틴 암살에 관여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라스푸틴의 예언대로 몇 달 후에 블라디미르 레닌이 주도하는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제정 러시아는 붕괴되었으며 로마노프 왕조도 단절되었다. 황족은 대부분 죽거나 추방되었다. 정작 그를 직접 죽인 유스포프 공작 부부는 수명대로 살았다. 유스포프는 1967년, 이리나는 1970년까지 살았다. * 서비스 1. 독일 디스코 밴드 Boney M이 부른 노래 <라스푸틴> 들을만하다. 2. 서양에서는 워낙 유명한 인물이라 우리나라 사극 단골인 장희빈만큼이나 자주 영화화되었다. 20세기폭스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 <아나스타샤>에 라스푸틴은 흑마술사로 등장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인기 곡 <In the dark of the night>. 라스푸틴이 노래한다. 3. 한국의 라스푸틴 최태민과 2대 라스푸틴 최순실 - 최태민. 1912년 5월 5일 ~ 1994년 5월 1일. 일제 때 황해도경 순사로 인생을 시작하였다. 1947년까지 인천경찰서 사찰주임 경위로 일했다. 최태민은 그의 7번째 이름. 결혼은 6번 했고, 1970년대에 난치병을 치료한다며 서울과 대전에서 활동. 자칭 단군, 미륵이라고 했다. 자칭 영세교 교주라는 설도 있다. 세력도 없는 1인 종교. 박정희 씨의 부인 육영수 씨가 문세광의 총에 맞아죽은 뒤 의도적으로 접근, 심신미약 상태의 박근혜를 사로잡았다. 이에 박정희는 최태민의 생식능력 제거 명령을 내리는 등 강력조치했는데, 이후에도 최태민-박근혜 사이는 조금도 멀어지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정보 보고로 이루어졌는데, 이때문에 박근혜가 아버지 박정희에게 김재규를 음해하고, 멀리하라고 권하여 결국 10.26 사건까지 났다는 주장이 있다. 1980년 신군부는 최태민을 강원도로 쫓아냈지만 이후에도 그는 박근혜 주변에서 맴돌며 육영재단, 영남대학교 운영에 관여했다. 1990년에 최태민이 박근혜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자 박근혜의 동생 박근령과 박지만의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누나에게서 최태민을 떼어내 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이뤄지지 않았다. 최태민은 역삼동에 살다가 1994년에 죽는데, 그때 나이 81세였다. 이후 박근혜가 정계에 입문한다고 하자 박정희의 최측근이자 혁명동지인 김종필 씨가 "최태민의 자식까지 있는 애가 무슨 정치를 한다는 거야?"라고 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 근무 여성 증언에 최태민이 자고가곤 했는데, 다음날 변태 성기구와 각종 피임 기구가 널려 있었다고 한다.(근거 제시 안한 글) 에에 박근혜는 DNA 검사를 받겠다고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성관계는 DNA로 검사로는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 - 최순실. 1956년 6월 23일~죽을지 모른다고 주장하나 아직 살아 있음. 본명 최필녀, 그 다음에 최순실, 마지막으로 최서원으로 개명, 현재 공식 성명은 최서원이지만 언론에서는 계속 최순실로 부른다. 박관천 전 경정(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 최순실-정윤회 건을 조사하다가 해임당하고 고발당해 구속됨)은 "우리나라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 정윤회, 3위 박근혜"라고 말했다. 최태민의 딸이자 영생교 2대 교주로 추정된다. 꿈을 통한 예지력이 있아며 아버지 최태민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학력은 고졸. JTBC 서복현 기자가 그의 태블릿 pc를 입수했는데, 여기서 순실파의 국정농단 사실이 적나라하게 쏟아져 나왔다. 박근혜는 신군부 등장으로 청와대에서 나온 뒤 최태민과 최순실이 사는 강남으로 이사했다. 모두 5분 거리에 있었다. 최태민이 육영재단에 깊이 관여했는데, 당시 어린 최순실을 육영재단 부설 유치원 원장으로 임명했다. 당시 최태민은 육영재단 직원 140명을 해고하고 그의 친인척으로 채웠다. 몇 년 사이에 최태민은 박근혜를 이용해 큰 재산을 모았다. 박근혜를 만나기 전, 최태민 일가는 단칸방을 전전하는 신세였다고 한다. 2대교주 최순실은 정윤회와 재혼했는데, 박근혜가 정치를 시작하자 정윤회를 비서실장으로 넣어 컨트롤했다. 문고리 3인방이라는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은 이들이 발탁한 것이라고 한다. 자신이 미륵임을 사칭했던 최태민에 이어 최순실도 미륵을 저처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명칭을 '새누리'로 바꾼 것도 이른바 신천지의 우리말인데, 현재 신천지라는 종교단체는 영세교의 분파라는 주장이 있다(연관성 확인 못함. 영세교 최태민, 영생교 조희성, 신천지 이만희) 또 미르 재단의 미르와 K-스포츠의 K 즉 ㄱ을 합치면 미륵이 된다는 음모론도 있다. 심지어 국정원 로고조차 이들의 입김이 작용했으리라는 추정이 있다. 국정원 업무와 아무 상관도 없는 미르 즉 용과 호랑이 이미지가 들어가 있다. 한편 인터넷 상에는 세월호 관련 의혹도 돌아다니고 있다. 2014년 4월 15일, 최신실-정윤회 비리 등을 조사하던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조응천을 해고하는데, 이튿날인 16일에 세월호 사고가 났다는 것을 연관지어 생각하는 음모론이다. 조응천이 최순실-정윤회 건을 폭로할 것에 대비해 더 큰 사건으로 덮어버리려 했다는 것이 음모론의 요지다. 이제 곪아 있던 수십년 종기가 터졌다. 우리 국민은 냄비같은 성정을 갖고 있어서 경로당 수준의 잡담으로 날새다 또 어떤 뱀의 혓바닥에 이 국면이 넘어갈지 모른다. 그간 말 한 마디 못하던 교수란 자들이 이제야 뛰쳐나와 하야 운운하는데 같잖은 소리다.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비겁한 목소리에 불과하다. 어리석은 사람드이 박근혜의 탄핵, 하야를 주장하는데 탄핵은 국회 의석 분포 상황으로 볼 때 불가능하다. 설사 어찌어찌 하더라도 대통령이 하야하면 뚝심으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황교안 총리가 권한대행이 된다. 박근혜보다 똑똑하고 집념이 강하고 침착한 극우 인사다. 황교안이 권한대행이 된다면 망해가는 러시아를 일으켜 세운 블라드미르 푸틴처럼 문재인, 안철수 쯤은 어린 애 손목 비트는 것처럼 쉽게 제압할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다. 김칫국 먼저 떠먹지 말고 자중하기 바란다. 라스푸핀의 역사적 책무는, 결과적으로 제정 러시아를 파멸시키고 러시아 국민을 공산주의 학정에 내몰고, 2차 대전에서 2900만명이 죽게 만든 것이었다. 명성왕후 민씨의 총애를 입어 라스푸틴처럼 굴었던 박창렬(昌烈(昌烈 ;신령군이란 작호를 받음))이란 무당은 기어이 민씨를 일본인 자객에게 무참히 죽게 하고, 조선을 망하게 하고, 조선 백성을 36년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그러고도 나라를 반분시켜 육이오전쟁 등 고난의 역사를 이끈 악마다. 이런 박창렬과 라스푸틴에 비하면 최태민-최순실 부녀의 악행은 이렇게 끝날 수 없는 일이다. 저들 최씨 일가의 저주를 풀려면 냉정하게 시국을 진단하고 말끔하게 풀어내는 지혜가 있어야 하는데, 여야 지도자들에게서는 그런 게 일절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는 국민이라도 똑똑해야 하는데, 우리 국민은 늘 역사 앞에서 엉뚱한 짓을 저지르다가 역사의 응징을 받곤 해왔으니 역시 기대할 바가 없다. 한번 더 아픔을 겪어야 할 것으로 본다. |
출처: 알탄하우스 원문보기 글쓴이: 알탄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