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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6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Of the Lord, By the Lord, For the Lord
본문 : 에베소서 6장 11절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온몸을 덮는 갑옷을 입으십시오. <새번역>
오늘 제목을 듣자마자 많은 분들이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떠올렸으리라 생각됩니다. 남북전쟁중이었던 1863년 11월 19일, 미국 펜실베니아주 게티즈버그에서 했던 연설인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연설 중 하나이자, 가장 위대한 연설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바로 이 연설에서 그 유명한 문구가 등장합니다.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그래서 이 문구를 통해 링컨이 꿈꾸던 정부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인종 간 평등의 첫 문을 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연설이 있기 몇 달 전 더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아브라함 링컨의 이런 연설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기도의 결과, 하나님이 주신 지혜였다는 것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1863년 4월 30일 선언문을 하나 발표합니다. 그 선언문의 제목은 바로 ‘1863년 4월 30일 미합중국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에 의해 선포된 기도와 금식에 대한 선언문’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이 사람의 힘으로 해결되지 못할 전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금식하며 기도하기로 결정했고,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간절히 기도하자고 선언문을 발표한 것입니다. 마치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에스더’처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링컨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기 이전에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를 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그리스도인 여러분! 우리도 링컨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직분 이전에 한 명의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동일하게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를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기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입니다.
지난 6월 ‘여호와께 돌아가자’ 라는 주제로 우리는 여호와께 돌아갈 것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돌아가기로 한 것이 바로 말씀 앞에 서는 것이기에 우린 7월 한 달 동안 ‘다시 말씀 앞에’ 서기로 결정하고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Born Again’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이제 펼쳐진 8월부터는 본격적이고 구체적으로 ‘말씀’에 대해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하나님의 전신갑주’ 라는 말씀을 입어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결코 ‘옷’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그 옛날 군인들이 전쟁을 앞두고 반드시 입어야 했던 ‘갑옷’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말씀’으로 무장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시작으로 정의의 가슴막이, 평화의 복음을 전할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을 입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라는 ‘말씀’으로 무장하기 위해, 무장하기 전에, 우리가 반드시 명심하고 가슴에 새겨야 할 3가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바로 ‘Of the Lord, By the Lord, For the Lord’라고 정한 것입니다.
첫째, ‘Of the Lord’입니다.
말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대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줄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17절, 새번역>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해석한 설교가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변형시킨 조언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한 구호가 아닙니다. 말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좋은 명언이 많이 있습니다. 좋은 글귀들도 많고, 좋은 영상들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명언과 글귀와 영상들을 보면서 힘을 얻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명언과 글귀와 영상들은 대부분 ‘희망’이나 ‘사랑’, ‘용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기원하고 있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기원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포기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포기하지 않으셨기에 독생자 아들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희망의 기지입니다.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어보셔야 할까요? 네. 그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 자체로 ‘사랑’이신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사랑의 편지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용기를 내라! 임마누엘!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있기에 용기를 내어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먼저 등장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우리 인간들의 ‘사용설명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말씀인 것처럼 보이는 것에 속지 않으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설교를 듣는 시간보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가능하다면 영어성경으로, 히브리어 성경 직역본이나 헬라어 성경 직역본으로 말씀을 읽어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어려운 말이라 이해하기 어렵다면 쉬운 성경을 권해 드립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듣기 쉽기에 어떤 설교를 선택해서 듣는 것보다, 직접 성경을 펼치거나 들으며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랑한다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시편 1편의 기자처럼 주야로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많이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한 가지 말씀으로도 그 깊이를 느낄 때까지 묵상하는 삶!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방법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자와 읽지 않은 자의 결과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한 자의 결과가 어떠한지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외면했던 이들의 결과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것을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율법책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그것을 공부하여, 이 율법책에 쓰여 진대로, 모든 것을 성심껏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네가 가는 길이 순조로울 것이며, 네가 성공할 것이다. <여호수아 1장 8절, 새번역>
다시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말씀 앞에 서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앞으로 가셔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부터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시 서는 태도입니다.
둘째, ‘By the Lord’입니다.
영어로 ‘by’는 참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전치사입니다. 그 중 대표적으로 ‘~에 의해서’, ‘~를 통해’, ‘~옆에’, ‘~까지’, ‘~을 타고’ 이렇게 5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 옆에’, ‘하나님까지’, ‘하나님을 타고’ 라고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중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바로 ‘하나님을 타고’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타야 한다는 것입니다.
by bus, by train, by subway처럼 교통수단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말씀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읽고 묵상한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묵상이 적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말씀 묵상은 곧 힘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으로 끝나면 공부가 되지만, 적용하게 되면 말씀이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함’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 새번역>
예수님의 말씀도 언제나 우리에게 ‘생각해보라’, ‘공부해보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라’, ‘하라’로 우리에게 적용을 권면하셨습니다. 말씀은 결코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앎이 아니라 삶이 되어야 합니다. 혹시라도 매일 다시 말씀 앞에 서는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매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이가 있다면 가장 먼저 ‘적용’을 점검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읽는 것으로 끝나고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기에 생기는 현상일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한 구절을 읽고 묵상하며, 적용하는 황소걸음 같은 우직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타고 이 땅을 다니셔야 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순간순간 일어나는 모든 일에 다 말씀을 적용하기는 너무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적용을 하고자 노력해 나갈 때 어느 순간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실 것입니다.
셋째, 'For the Lord'입니다.
말씀을 읽는 이유도, 말씀을 적용하는 이유도, 사실 말씀이 존재하는 이유도, 말씀이 필요한 이유도 모두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다시 말씀 앞에 서는 것은 가까이 보면 나를 위한 것이지만 멀리 보면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라고 하는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적용할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마태복음 5장 16절, 새번역>
이 구절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소금으로 살아가고, 빛으로 살아갈 때 우리로 인하여 이 땅의 부패가 사라지고, 어둠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그런 행실들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이 단순히 우리만 판단 받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를 위해 말씀을 읽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유익과 만족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이들에게 선물처럼 모두 주어지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장 33절, 새번역>
‘먼저’라는 목적을 깨달은 그리스도인이야말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말씀 앞에 서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라는 분명한 ‘목적’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바울의 고백을 한 번 들어보십시오. 어디까지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결정해야 하는 것인지 그의 고백을 닮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제정신이 아니라면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제정신이 아닌 것이며, 우리가 정신이 온전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을 위해 그런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3절, 쉬운성경>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기 전에 반드시 명심해야 할 3가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미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온몸을 덮는 갑옷을 입으십시오. <에베소서 6장 11절, 새번역>
악마의 간계에 맞서는 것도 중요합니다. 온몸을 덮는 갑옷을 입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이란 단어입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말씀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성경을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셔야 합니다. 한 구절씩이라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만드셔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 부활 주일 이후로 계속해서 권면하고 있는 ‘기찬말 3분 프로젝트’를 권면해 드립니다. 어느새 신명기를 시작으로 여호수아, 룻기, 사사기, 사무엘상 31장까지 도착했습니다. 기도하셨다면 이미 112일, 무려 336분을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112곡의 새로운 찬양을 들으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다시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타고(적용하며) 살아야 합니다. 읽고 묵상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살아내는 것’임을 증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행함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을 공부하는 그리스도인에서 말씀이 삶이 된 그리스도인으로 업그레이드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을 읽고 적용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라는 목적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해서 다시 한 번 시작해 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인생의 가장 위대한 결정을 내려 보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다 채우심’의 은혜를 경험하는 인생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이제 본격적으로 전신갑주가 무엇인지 정말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나눌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나누었던 3가지를 명심하셔야 전신갑주를 진짜 입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 8월 한 달 동안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에베소서 6장 11~17절’, 딱 이 7구절을 계속해서 읽고 묵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배워 가는 대로 적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8월이 다 지나갈 그 때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전신 갑주를 모두 다 Full로 장착하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결단찬양 - 주의 말씀 앞에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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