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리아나의 현재를 통해서 이승만의 위대함을 본다🌐
어제 백악관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젤렌스키가
고성을 오가는 논쟁 끝에 어떤 타협점도 찾지 못하고 회담이 끝났다.
우크라이나의 현실을 보면서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힘이 약한 주권 국가의 운명이 제국들의 담판으로 결정되는 시대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불길한 신호들이다.
전 세계 패권을 쥐락펴락하는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강 건너 불구경일 수가 없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백악관 두 정상의 논쟁에 대해서 잘했다 잘못했다는 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무의하다.
어차피 전쟁을 바라 보는 양국의 입장 차이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기정 사실이었다.
문제는 왜 그 논쟁이 '백악관'이어야 했는가에 있다.
젤렌스키의 용감함을 칭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그의 감정적이고 오만해 보이는 트럼프와의 설전을 본
미국인들에게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李承晩(이승만)과 트루먼
1947년 해방 정국 속에서 힘 없는 나라의 건국을 위해 노력했던 이승만도 어쩌면 그와 비슷한 절박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은 지혜로웠다.
그는 미국 대통령이나 행정부 관료들과 논쟁을 피하고 미국 시민들에게 직접 호소했다.
그는 1947년 1월 14일 미국 방송기자 이튼과의 인터뷰에서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군정의 무모한 좌우합작의 본질을 공개했다.
그의 인터뷰가 라디오 방송을 타고 미국으로 중계되자 미국 시민들은 분노했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공산주의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현실을 깨닫고 미 행정부를 압박했다.
이승만이 목소리를 높인 것이 아니라, 미국 시민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스와 터키에서도 공산주의 위협이 가시화되면서 미국 내 반공의 여론이 들불처럼 확산되는 데
이승만의 호소는 분명한 기여를 했다.
이승만이 당시 트루먼 행정부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구체적 근거는 없지만,
1947년 3월 12일 냉전의 시작이자 공산주의와의 대결을 선언하는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됐다.
이승만이 미국에 체류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1947년 4월 미국에서 귀국하는 이승만의 모습은
이전과는 질적으로 차원을 달리는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국민들에게 각인되었다.
말 그대로 이승만은 미국을 다룰 줄 아는 당시 유일한 정치인이었던 것이다.
그의 노련한 정치 감각은 1953년 휴전협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하루속히 전쟁을 끝내려는 미국과 영국에 맞서 이승만이 꺼낸 카드는 '반공포로 석방'이었다.
당시 반공포로 석방이 주는 충격이 얼마나 컸으면 면도를 하던 처칠이 놀라서 면도칼을 바닥에 떨어뜨렸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다.
반공포로 석방은 '자유'의 가치를 전 세계인들에게 호소하면서 한 나라의 '안보'를 얻어낸 말 그대로 기적에 가까운 협상 카드였다.
덕분에 전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나라가
가장 가난하고 힘 없는 약소국과 대등한 조건에서 안보협정 조인에 성공한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당시 1953년 대한민국 1인당 국민총생산(GNP)는 고작 67달러. 우리보다 낮은 나라가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을 때의 이야기다.
그러니 세계 안보협약 중에서 가장 불평등한(?) 조약이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승만은 1953년에도 미국이나 영국의 정치인들과의 논쟁 대신 '언론'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켜 나갔다.
여론과 의회 민주주의에 기초한 미국과 영국의 정치 체제의 속성을 정확히 알고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오랜 시간 미국에 생활하면서 조지워싱턴, 예일, 하버드라는 미국 최고의 명문 대학을 석사부터 박사까지 졸업하면서
쌓아 온 이승만의 내공이 바탕이 되지 않고선 이룰 수 없는 결과물이기도 했다.
어느덧 한반도에서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70여 년이 됐다.
강대국들의 놀이터처럼 계속됐던 약탈과 침략의 역사가 끝나고 한반도에서
진정한 평화 체제가 안착된 것은 이승만이라는 탁월한 정치인의 존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승만의 선물처럼 우리에게 안겨준 평화와 안보를 바탕으로 박정희의 경제개발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에 누가 토를 달 수 있겠는가.
주권은 말로만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정치인의 한 마디 말이 정국을 바꿀 수 있다.
그에 의해 힘 없는 약소국의 운명도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젤렌스키의 모습을 보며 그 옛날 대한민국 하나만을 위해 동분서주 헌신했던 이승만의 모습을 본다.
우크라니아 모습은 대한민국의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다.
부디 이제 더 이상 이 나라에서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비난하고 왜곡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
이제 영화 '건국전쟁2'를 제작하면서 다시 이승만을 보고 있다.
이승만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자료를 보면 볼수록 정말 대단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현명했으며, 이승만의 원맨 플레이 덕분에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을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무엇보다 그는 대한민국만을 생각한 진정한 애국자였다.
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가 꿈꾼 세상은 아직 온전히 오지 않았다.
(김덕영 영화감독)
**카톡으로 받은 글 편집**
[출처] 🌐우크리아나의 현재를 통해서 이승만의 위대함을 본다🌐|작성자 소중한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