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닭과 월드컵
이성상
“아빠! 들어올 때 통닭 좀 사와. 월드컵 보며 같이 먹게..” 퇴근 때인데 25살이나 된 딸 놈의 문자 메시지가 온다. 건방진 놈, 버릇없는 녀석! 이 애비를 끊임없이 시켜 먹다니.. 괘씸은 하면서도 오늘 남아공서 하는 월드컵을 더 즐겁게 보려면 나도 통닭이라도 먹으면서 봐야 제격일 것 같아서 참고 통닭집을 찾는다. 일상식이 무료 할 때 우리 집은 통닭을 가끔 시켜먹었다. 이놈 한 마리 풀어놓으면 서너식구가 거뜬히 저녁 식사겸 만찬(?)을 하게 되기도 한다. 밥들은 잘 안 먹고 자주 피자나 뭘 시켜 먹는 게 일이었다.
나는 조금 궁리를 하다가 서오능 한방통닭이 그중 나을 것 같아 차를 몰고 그 쪽으로 향했다. 어쩌면 오늘도 문을 안 열었을지 모른다는 염려도 하면서 도착을 했는데 역시 휴업중이다.
왼쪽 이면도로 입구에 있는 멋들어진 콧수염의 ‘카우보이 통닭구이’ 간판이 있는 곳인데, 가게를 열지 않았음을 보고 실망하면서 그냥 지나 올수밖에 없다. 딸네미와 마누라가 들어올 때 잊지 말고 통닭을 꼭 사오라고 했는데 실망이 클 것 같다.
그냥 들어갔다간 딸 놈 구박이 심할 것 같고. 다른데 전기구이 대체품이라도 들고 들어가야 한다.
지난번에, 며칠 지나면 주말엔 다시 열수 있다고는 했는데 이번 단속은 심한지 1톤 트럭만 덩그러니 서있다. 참나무 장작구이로 맛이 있어 많이들 찾는 곳이고 줄서서 기다리기도 하는 곳이다. 그 자리에서 꽤나 오래 장사를 해 오고 있는 것 같다. 그 동안 주인과도 친해지기도 해서 내가 가면 우선권으로 주기도 한다. 이젠 제법 기업이 된 듯 옆에 밭을 사서 주차장으로 쓰기도 하면서 성업중 이었다. 그런데 지역 그린벨트 내의 불법 무허가 업체 일제 단속이 심해 계속 못하고 있다고 깊은 한숨을 쉰다.
계절적으로 통닭이 많이 팔릴 철인데 내가 못 먹게 된 것을 떠나 그런 사정이 많이 안타깝다. 이집 주인 얘기로 이번엔 주변의 음식점이나 건물주들이 시청에 진정을 넣은 것 같다고 한다. 날씨도 더운데 야외그늘 탁자에서 저렴하게 장작구이통닭에 맥주한잔 하기가 좋아서 많이들 찾아 성황인 것에 시샘이라도 낸 것일까. 거의 3주를 못하고 있다니 손해가 많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벌과금 무시하고 그냥 할 텐데 이제는 돈 천 만원이나 부과를 한다니 별수가 없는 모양이다.
내가 이집 통닭을 자주 찾고 맛있다고 칭찬을 하는 것은 같은 식으로 만드는 옆에 집 것도 먹어 봤지만 맛에 차이가 있었다.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같은 맛을 낼 수 없는 것은 요리사의 정성과 손맛 그리고 노력도 있을 것이다. 통닭 맛이 있어 봤자 그 맛이 뭐 별게 있겠느냐, 왜 그렇게 호들갑이냐 하겠지만 입이 고급이 아니어서 그런지, 우리집 식구들이 좋아해서 인지 이젠 단골이 됐다. 그러나 나뿐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입맛은 다르지 않은지 이집을 언제나 많이 찾고 기다려서 먹거나 줄서서 사가지고들 간다. 한번은 면목동 사는 지인을 데리고 가서 맛을 보였더니 좋아한다. 집식구들 갖다 주라고 한 마리를 더 포장해 주었더니 그 집에서도 그 맛에 끌렸나보다. 가끔 그거 또 사오라고 해서 그 먼 거리 심부름에 자신이 힘들게 됐다고 엄살을 털어놓는다.
가게라고 해봐야 중고 1톤 트럭 위에 참나무 장작으로 구이를 하는 오븐을 올려놓은 것이 전부다. 한옆으론 상수리나무(참나무)가 차곡히 쌓여있다. 가부좌를 틀어대 여섯 마리씩 반듯하게 스텐 꼬챙이에 꿰어진 닭들이 오븐 속으로 들어가는걸 보면 재미있다. 털은 다 뽑힌 체 알몸이고 그걸 장작불 위에 올려서 굽는 게 우리 인간이다. 좀 매너가 아니지만 어쩌랴 먹이사슬에 하위 순번을 가지고 태어난 게 닭들의 운명인걸. 돌아가면서 차례로 구어지면서 일정하게 타는 장작불에 먼저 기름이 땀 흘리듯 뚝뚝 떨어지며 빠진다. 인삼 대추와 함께 속에든 익은 찰밥이 어우러지고 노릇노릇 색깔이 짙어 지면 오븐에서 꺼내 반을 갈라놓는다. 같이 구어 낸 철판을 적당한 온도가 되게 땅에 살짝 식힌다. 통닭을 그곳에 올려 약간 눌리면 밥이 적당히 누룽지가 되고 속살도 잘 어우러져 맛이 좋은 통닭이 된다. 포장을 하고 소스와 콜라 한 병까지 넣어 손님에게 건네면 배급받듯이 받아들고는 다들 행복한 듯 입맛 다시며 부리나케 차를 몰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쩐다? 하나뿐인 우리 집 딸이 먹고 싶다고 사다 달라는데 문을 안 열었으니... 버릇없이 키워 애비를 친구 대하듯 하고 어른 어려워하는 태도가 하나도 없다. 가끔 야단맞기도 하지만 그게 안쓰러워 풀어주다 보니 내가 딸아이 버릇을 망쳐 놨다고 아내는 내 탓으로 돌린다. 어찌됐던 우리집 상전이며 자칭 인물이기도 한 고명딸이니 소한마리인들 못 사다주겠는가. 그러나 요새 이 애비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 시집도 자기는 “늦게 갈껴!”라고 한다. 내가 좋아 할 줄 아나 보다.
그래서 은평구로 나와 양념 통닭을 사 가지고 들어가니 마누라도 좋아 한다. 저녁 차리는 수고를 덜어준 셈으로 치는지. 월드컵 우리 팀과 그리스전이 시작도 되기 전에 식구들은 달려들어 통닭은 금새 먹어치웠다. 8시반 시작과 함께 경기를 마음조리며 본다. 7분 만에 우리 팀의 이정수가 한 골을 넣었다. 우리집 꺽새 아들놈이 먼저 일어나 와아! 소리와 함께 미친듯이 고함을 질러 댄다. 집에 어른도 안중에 없다. 마누라도 그 덩치에 일어나 같이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친다. 딸내미도 아파트주민들도 난리가 났다. 결국 흥분의 열띤 응원 속에 우리 팀은 후반에 한골을 더 넣어 그 귀한 1승을 따냈다. 월드컵 원정 경기사상 2골 승리는 처음이란다.
생각을 해본다.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우린 편안히 앉아 통닭까지 먹어가며 즐기려는 마음으로 경기를 관전 했지만 우리선수나 모든 국가대표 선수들은 그 나라의 기대와 명예를 위해 죽을힘을 다해 경기에 임했을 것이다 그 동안 갈고 닦은 모든 기량을 쏟아 부었을 것이다. 열심을 다한 수고한 선수, 임원들에게 찬사와 격려를 보내면서 같이 애쓰지 못한 송구스런 마음도 가져본다. 그래서 그렇게 목이 터져라 응원들을 하는 모양이다.
서오능 장작구이 문 열면 잘 포장해 남아공으로 한 마리씩 긴급 택배로 보내주고 싶다. 몸보신으론 한여름 삼계탕도 한 몫 하지만 이 장작구이 한방통닭도 괜찮을 것 같아서다. 그렇게 같이 먹으면서 힘을 얻어 아르헨티나를 넘어 지존이라는 브라질까지 꺾으면, 그래서 내친김에 우승까지 한번 한다면... ‘천안함’상처와 답답한 현실의 이 나라에 새 기운을 넣어주는 일 아니겠는가. 그동안 한국팀은 7차례 원정월드컵서 거둔 1승5무11패의 참담한 성적이 ‘월드컵 무대공포증’이 되었었다. 출전만 하면 어른과 애들의 경기마냥 상대가 안 돼 무참하게 깨지고 오기 일 수였고, 유럽 팀,남미팀에 주눅 들어 있었다. 우리선수들 그동안 힘들게 닦아온 기량, 잘 발휘해서 우리의 능력을 보이고 승전보를 꼭 전해주길 바라고 싶다. 우리 모두의 염원을 담아 사랑과 격려를 ‘통닭소리’와 함께 보낸다.
‘서오능장작구이’,속히 모든 일이 잘 해결되어 합법적인 업소로, 예전처럼 줄서서 많이 찾는 우리 동네 맛집 통닭구이 집으로 꼭 남아주기를 바라기도 하면서...
2010년 6월12일
첫댓글 그동안도 꾸준히(?) 글 4편을 썼습니다. 그중 한편을 올립니다.16강 진출해서라고나 할까요. 시원치 않아도 많이 지적도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일에 대한 열정이 성공의 첫째 비결이라고 하는데, 이선생님의 글에 대한 열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통닭과 월드컵> 꼭 들어맞는 맛있는 제목입니다. 우리동네 통닭집도 줄을 서 있었고, 응원장 부근에는 평소보다 열배나 더 팔렸다고들 하네요. 이렇게 구순하게 생활속의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시는 선생님 글 부담없고 친근감이 가서 좋습니다. 최근에 4편이나 쓰쎴다니 부럽습니다. 월드컵은 중세 스타일의 전쟁을 할 수 없는 이 시대에 국가간의 대리전쟁인데 보는 사람도 벌거벗은 통닭을 뜯어야 속이 풀리겠지요. 잘 봤습니다.
제 글 보다 엄선생님 댓글이 참 좋으시네요. 열심히(?) 쓰긴하는데 교수님한테 핀잔 많이 듣습니다. 뭐 초보니까 당연한거 겠지만요. 내가 수필을 너무 우습게 보고 쉽게만 많이 써 댄다고 그러십니다. 내 깐엔 이렇게 많이 쓰다보면 고쳐지고 부족한것이 좀 메꿔질것 같아서 인데,안 그런가보죠? 격려로 알겠씁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모두 배우는 입장에서 저는 그렇지 못하지만, 우선 열심히 많이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가끔은 한 편의 글을 몇 개월이고 머리에 가슴에 품고 있으면서 사색하고 묶어보고 다듬으면서 고심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단란한 분위기 속에서 월드컵을 관전하는 모습이 눈에 한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아무래도 '자기화'가 없다는 말씀이겠죠. 그래도 계속 쓰다보면 좋은 작품도 나오지 않을까요? 늦은 댓글, 죄송합니다.
자기화가 없는지 '의미화'가 잘 안 되는지 아직도 솔직히 말해 잘 모릅니다.한 3년은 지나야 조금 알게 된다는 말만 굳게 믿고 성격대로 급 하게 쓰고 있읍니다. 천천히 쓰겠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