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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표 동시조집 『참 이상해』 해설
자연과 인간을 일깨우는 동심 노래
윤삼현 (아동문학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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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재미, 간결한 언어, 겨레의 호흡과 말 맛이 어우러진 동시조는 기본적으로 짧은 문학양식이란 점에서 아동문학의 본질을 충족시킨다. 상큼한 순수 동심 서정을 깔고 음악성이나 비유나 구체적 이미지 구사를 통해 표현 효과를 높이는데 매우 탁월한 잇점을 지니고 있는 양식이 동시조다. 더욱이 주목할 점은 이 장르가 세계에서 유일한 우리 만의 문학형식이란 점에서 오롯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서 여러모로 매력이 많은 장르가 틀림없다. 시조는 낡고 고루한 문학이 결코 아니다. 최근 동시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실제 동시조를 창작하는 문인도 늘고 있는 추세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대체로 1930년대 창작된 심 훈의 「달밤」이 동시조의 출발점으로 알려져 있다. 동시조 쓰기가 본격 흐름을 타게 된 것은 1980년대 초부터다. 전통문학 진흥을 위한 국민동시조 창작 운동이 불을 지피기 시작했고, 때 맞춰 『동시조문학』 동인지가 최초 광주에서 발간되면서부터다. 현재는 전국에서 많은 시조시인과 동시인들이 합류해 다투어 동시조를 창작하고 있다. 동시조가 갖는 문학적 의미와 가치를 인식하고 공유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권희표 시인의 동시조집 『참 이상해』는 우리 고유의 가락을 살리면서 그 안에 다양한 동심을 탄력있게 배치해놓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물결을 타 넘듯 시조 가락을 모르면 결코 동시조는 성공할 수 없다. 설사 시조 가락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유쾌발랄한 동심 언어를 부리는 솜씨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거나 순수 동심을 그려내는 자질이 미흡하다면 동시조로서 성공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걸림돌을 거뜬히 뛰어넘어 권 시인은 가락으로나 동심으로나 성공한 동시조를 알토란처럼 빚어내어 상을 차렸다. 이는 겨레시에 대한 시인의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인의 순연무구한 동심과 천진한 상상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이런 은밀한 비밀을 엿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믿음으로 주목되는 몇몇 작품을 살펴본다.
2
우리들
꿈이랑 숨은 끼를 깨우며
초록 잔디 운동장에
폴폴 나는 고추잠자리
날갯짓
사이사이로
번뜩이는 동심 미소
산비둘기
참새랑 멧새가 겅중대며
초록 잔디에
씨앗을 심어 놓은 동화·동시
잠자리
날갯짓 바람타고
동화동시 꽃이 만발하다
고추잠자리
축구 골대, 정글짐, 미끄럼틀,
소나무, 느티나무, 벚나무에 앉아 쉬며
우리랑
놀던 이야기
읊조리는 동화학교.
-<동화학교> 전문
‘동화학교’는 원초적 동심세계를 다루고 있다. 1연의 초록 잔디 운동장, 2연의 새들과 잠자리의 날갯짓, 3연의 놀이터와 나무들 쉼터를 통해 학교가 온전히 동심으로 볼록볼록 숨을 쉬고 있다. 여러 빛깔의 동심이 한데 어우러진 통합된 학교, 그 곳은 기초인간학을 다루는 이른바 <동화학교>이다. ‘초록 잔디’는 동심 감각에 호소하고 아무 걱정 없이 어린 날 뛰어놀던 폭신폭신한 풀밭을 연상케 한다. 혹은 상큼한 초록크레파스 내음, 친밀감 가득한 초록빛 물감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이 모두 동심을 적시는 감각적 경험의 세계와 뿌리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동심 주체들로 하여금 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특별한 동일체로서 호소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잠자리 날갯짓, 산새 멧새들의 움직임은 역동성을 유발한다. 힘차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장면은 시각적 효과가 커 이미지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데 잇점이 적지 않다.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그려지는 이런 움직임에서 동심의 변화성이 읽혀진다. 힘찬 에너지가 느껴진다. 놀이터가 없는 학교는 존재의미가 없다. 그만큼 놀이문화는 동심을 만족시키는 절대기준이 된다. 어린 동심 주체에게는 놀이와 쉼터가 필수적이다. 놀이는 직접적인 생존활동은 아니다. 그러나 놀이는 생활상의 이해 관계를 떠나서 스스로 참여하는 즐거움과 흥겨움을 동반한 자유롭고 해방된 자발적 활동이다. 동화동시 꽃이 만발하는 ‘동화학교’, 동심의 기본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키기에 부족함 없는, 어린 동심에게 삶의 가치와 재미를 제공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공감력이 큰 학교이다. 학과공부보다 더욱 소중한 인간을 배우는 학교가 ‘동화학교’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 위 시의 미덕이다.
등에 업힌 가방이
쩍 벌린 입 속에
60점짜리 시험지
메롱 하고 혀 내민다.
그 아인
자랑스러울까?
폴짝폴짝 뛰어가게
엄마가 열린 가방 속
점수를 보시고서
눈망울이 왕방울
엄마! 왜 그래?
의아한
아들 눈을 보고서
웃을까? 화를 낼까?
-<웃을까 화를 낼까> 전문
‘웃을까 화를 낼까’는 단순한 시험결과에서 비롯된 경험 차원의 시가 아니다. 위 시는 60점짜리 시험지를 가방에 넣고 집에 돌아오면서 왕방울 만한 눈을 하고 시험지를 들여다 볼 엄마를 상상하는 장면을 표면적으로 그린 시다. ‘웃을까? 화를 낼까?’ 화자의 진술에서 엄마에게 꾸중을 들으면 어쩌나 하는 고민과 걱정이 묻어 있고 슬며시 시적 분위기는 긴장을 유발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한 개인의 경험 차원으로 국한될 시가 결코 아니란 점이 부각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가정에서 겪는 이른바 ‘점수경쟁’이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고 이는 ‘입시지옥’이라는 사회적 문제로 확대된다. ‘60점짜리 시험지/메롱 하고 혀 내민다’에 숨겨 있는 시적 상상력을 따라가보면 분명히 수많은 이 땅의 새싹들이 어려서부터 점수경쟁에 내몰려 학교가 끝나자 마자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쫒기듯 내달려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가정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교육문제를 향한 강렬한 현실인식을 담고 있다 할 것이다.
누구를 그릴까?
엄마 얼굴 아빠 얼굴
머릿속에 그려보다
눈 그리고 코 그리고
어머나!
그림 속에 엄마가
윙크를 하네
그림 속에 엄마를
엄마가 보시고서
어쩌지!
아빠한테 윙크하고 싶은데……
좋아서 배시시 웃는 아빠
멋지게 그려줬지요.
-<엄마 윙크>전문
정적인 엄마의 사랑과 동적인 아빠의 사랑이 날줄 씨줄로 단단히 짜여진 가정은 어린 동심 주체에게는 무한한 신뢰의 공간이다.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들은 천진한 동심을 맘껏 구가할 수 있다. 나아가 자아에 대한 확인과 발견을 바탕으로 세계와 긍정적 대응이 가능해지며 균형감각을 확보함으로써 흐트러짐 없는 삶의 태도를 유지해 나간다. ‘엄마 윙크’는 바로 그러한 애정이 투사된 따뜻한 가정을 다룬 시다. 화자는 얼굴을 그린다. 그리다보니 엄마 얼굴이 되었다. 윙크를 하는 엄마 얼굴이다. 그림을 본 엄마는 이왕이면 아빠에게 윙크를 하고 싶어진다. 눈치 챈 화자는 윙크를 받고 환하게 웃는 아빠 얼굴을 다시 그린다. 아빠, 엄마, 어린 화자 셋이서 벌이는 혈육간 애정이 따뜻하고 모자람이 없다. 사랑으로 크는 아동이 역시 성인이 되어 사랑을 베풀 수 있다고 한다. 이웃을 사랑하고 환경을 아끼며 배려와 존중을 실천하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사랑의 가치를 깨달으며 성장한 균형감각의 인격체에서 나오기 십상이다. ‘엄마 윙크’처럼 사랑 충만한 가정은 청정해역 같은 오염이 없는 최상의 가정상이라 할 수 있다.
비 내리는 밤이면
별들은 잠을 잘까?
등굣길 거미줄에
출렁이는 별자리
전학 간 내 친구 꿈속에 오듯
별들도 살짝 왔었을까?
-<별들의 외출> 전문
동심의 프리즘으로 보면 온 우주가 친구며 삼라만상이 정겨운 대화의 대상이다. ‘별들의 외출’은 동심의 눈에 포착된 대자연을 친구로 만들어버리는 놀라운 마법을 부린 시다. 그 마법은 천진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비 내리는 밤이면/ 별들은 잠을 잘까?’, ‘전학 간 내 친구 꿈속에 오듯/ 별들도 살짝 왔었을까?’ 이런 싯구에서 어린 동심 주체가 벌이는 생생한 꿈과 발랄한 상상력이 얼마만큼 크고 넓은 것인가를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별을 향한 관심은 우주적 상상력을 촉진하고 우주적 상상력은 다시 별을 따뜻한 친구로 확인하게 하는 미적 재미를 안겨준다. 모든 세상 밖 사물들에게 인격을 부여하여 그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어나가면서 동심 주체는 보다 성숙된 시야를 확보하게 된다. 대자연에서 삶을 배우고 대자연 속 모두와 숨결을 나누기를 갈망하면서 영원한 그리움을 품게 되는 것이다.
할아버지 앞에 서면
웬일인지 울보가 되요.
무엇이든 다 들어주고
내 편 같은 할아버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렴”
그 뿐인데 눈물이 나요.
엄마도 웃으시고
아빠도 웃으시고
할머니만 할아버지께
눈 흘기며 내 편들어줘요.
“할머니- 할아버지- 미-워”
“오냐오냐, 그래그래.”
-<참 이상해>전문
동심은 아름답고 순수하다. 그리고 새처럼 발랄하다. 그들의 행동은 순수직관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때로는 웃음을 자아낸다. ‘참 이상해’가 그렇다. 무엇이든 다 들어주고 자기 편 같은데 할아버지는 어느 때는 모질고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매운 구석이 있다. “한번 더 생각해 보렴”이 말에는 속으로 손자에의 따뜻함을 숨긴 채 겉으로 다소 엄격함을 보이는 할아버지의 속뜻이 숨겨 있다. 바로 그 부분이 손자로서는 퍽이나 원망스러운 것이다. 결국 손자는 “할머니-할아버지- 미-워” 이 한 마디를 터뜨리고 만다. 바로 이 대목이 독자에게 원시적 동심과 웃음을 선사하게 된다. 내 편이다가도 갑자기 내 편이 아닌 듯한 할아버지가 어린 화자는 혼란스럽다. ‘참 이상해’ 제목이 그래서 공감을 확보한다. 할아버지의 비판적 응원, 할머니의 전폭적 응원 이 모두가 손자 사랑의 동심원으로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임을 이미 독자는 잘 알고 있다.
학교 가는 길
가랑잎이 뒹굴뒹굴 뒹굴다가
가만사뿐 걸어가니
바스락 말 걸어온다
마음을 울리는 인사
소곤소곤 귀엣말
발걸음 멈추고서
귀 기울이어 더 듣자하니
가랑잎도 내 말 듣자고
내 눈을 쳐다본다
한 움큼 안아 올리니
싸그락 웃어준다.
-<가랑잎의 귀엣말>전문
자연은 신비한 생명력의 세계이다. 시인은 자연의 질서에 호응하며 가랑잎에서 동심적 재미를 발견하고 있다. 발걸음 멈추면 가랑잎 속삭임이 들리는 친밀한 거리에 둘은 위치한다. 너무 멀리도 아주 가까이도 아닌 적절한 거리에서 둘은 호흡하고 있다. 이른바 심미적 거리이다. 뒹구는 가랑잎, 바스락 소리는 가랑잎의 생명력을 암시한다. 시에 나타난 배경은 온통 자연과 인간의 정겨운 만남, 그것 뿐이다. 어디에도 경쟁과 속도, 불안과 긴장 같은 문명적 요소는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따뜻한 관계맺기, 소통, 공감이라는 긍정적 동심의 세계가 화면 전체에 순수 생명력으로 촉촉이 젖어 있다. 화면 밖에서 이를 지켜보는 독자에게도 자연과 인간의 반갑고 따뜻한 만남이 주는 그윽한 정서를 제공한다. ‘한움큼 안아 올리니/ 싸그락 웃어준다’ 이 결구에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훤히 뚫린 소통의 열림을 맛보게 된다. 상대의 정서와 나의 정서가 만나 공유되는 공감의 순간, 이 공간이야말로 인간과 자연이 하나되는 등가적인 의미를 울림있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고추바람 매섭게
몰아치는 밤에도
열대야에 날벌레에
시달리는 밤에도
쉼 없이 불 밝히느라
깜박깜박 병이 났나?
날이면 날마다
한 밤도 거르지 않고
외로이 불 밝히느라
심술이 잔뜩 났나?
요즈음 우리 할머니
깜박깜박 흉내 내나?
-<낮에 뜨는 가로등>전문
이따금 골목길에 낮에도 불을 켠 가로등을 목격할 때가 있다. 예사로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위 시의 화자는 정서적 충격이 만만치 않다. 정서적 충격을 각각 두 개의 연에 배치해 놓고 있다. 1연에서 낮에도 불을 켠 엉뚱한 행위에 대하여 추운 밤, 더운 밤 가리지 않고 쉼없이 불을 켜느라 병이 난 것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2연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한 밤도 거르지 않고 불을 켜느라 심술이 난 것으로, 그리고 그 행위를 요즘 할머니 깜박깜박 정신을 놓는 치매 증세에 비유하고 있다. 낮에 뜨는 가로등을 할머니 기억력 감퇴 증세와 빗댄 상상력이 놀랍다. 평생을 자식과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찾아온 치매증세는 안타깝기 이를 데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에서 치매로 고통 받는 노인 수는 약 65만 명이다. 심각한 문제는 이 수가 해가 갈수록 늘어날 거란 전망 때문이다. ‘낮에 뜨는 가로등’은 표피적으로 낮에 불을 켜고 있는 엉뚱한 가로등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시인이 들려주고 싶은 깊숙한 얘기는 할머니 치매 증세에 가 닿아 있다. 치매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점을 시인이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까닭이다.
언니는, 언니는
참말로 이상해.
병속에 가둬두고
소원을 바라다니?
종이학 날아다녀야
소원을 물어오지
병속에 꼭 갇힌 종이학
바램을 들어줄 수 없어서
얼마나 애달팠을꼬
속 답답한 종이학
언니야, 뚜껑을 열어줘
소원을 물어오게.
-<종이학>전문
종이학 천 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예부터 학은 하늘을 나는 모습이나 청정한 울음소리나 신선과 관계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고귀한 동물로 인식되어 온 것이다. 학은 하늘을 날을 때 그 기품이 더욱 빛을 발한다. 종이학 또한 마찬가지다. 화자의 마음 속 하늘에 떠오른 학이 힘차게 날개를 저어 하늘을 날을 때 소원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은 더욱 강화된다. 피아제의 이론에 의하면 초등학생 저,중학년 정도의 발달 단계는 구체적 조작기에 해당한다. 이 단계는 사물간의 관계를 관찰하고 자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신의 관점과 상대방 관점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아마도 위 시의 화자가 이에 해당할 거라 추측된다. 그러므로 화자는 병 속에 갇힌 종이학을 관찰한 뒤 날아다녀야 할 학이 병 속에 갇혀있다면 소원을 물어오지 못할 거란 상대의 입장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종이학을 가두어 버린 언니가 그래서 이상한 것이다. 그리고 2연에서는 좀더 적극적인 생각을 주문하기에 이른다. ‘언니야, 뚜껑을 열어줘/ 소원을 물어오게’라는 강한 권유형 대화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 또한 닫힘, 막힘으로부터 열림, 뚫림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동심의 본능적 원리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우산 속에 얼굴이 들면
곧 생각에 잠기지요.
엄마 생각 친구 생각
꼬리를 물고와요.
두두두 빗방울들도
추억을 불러다줘요.
-<우산 속>전문
우산은 비를 피하게 해주는 도구다. 그러나 시 속에 장치된 우산은 상징적 공간의 의미로 의비변화를 꾀한다. 우산 속은 마법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빗소리도 들리고, 생각을 불러오기도 하고, 엄마, 친구와의 온갖 추억들도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공간이 된다. 우산 속에서 화자는 매직적 상상력에 빠져든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엄마의 사랑이 우산 속을 채운다. 이 특별한 서정의 공간에서 친구의 생각에 잠겨도 본다. ‘두두두 빗방울들도/ 추억을 불러다줘요.’에서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즐거운 동심과 추억을 불러다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음을 엿보게 된다. 추억을 가져다 주는 빗방울이나 기분 좋은 엄마, 친구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우산이나 공히 물큰한 동심 동력원이 틀림없다. 그리고 ‘우산 속’은 매우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인 동시조의 전형을 보인다. ‘꼬리를 몰고 오는 생각’, ‘두두두 떨어지는 빗방울’의 감각적 이미지가 선명한 동심 장면을 그려놓는데 크게 기여를 하고 있다.
요놈 봐라
궁둥이를 툭 건드리니
도망가는 척 팔딱 뛰네
다시 툭 하니
폴딱 뛰어 되돌아선 메롱!
허허허 이번엔 아예
벌러덩 누워 날 좀 보소네
코를 톡톡 다독이니
어쭈구리 이놈보소
제자리서 폴짝폴짝
장난스레 쳐다보네.
요놈이 아예 손자인 양
내 응석을 부리고 있네.
-<종이개구리>전문
‘종이개구리’는 허구적 화자인 성인이 특별한 경험을 들려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서 색다른 동시조다. 따라서 시어가 어른스럽고 해학적이다. 시적 진술이 매우 익살스럽고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이런 시적 전략은 웃음과 즐거움, 발랄한 기쁨을 추구하는 동심적 본능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시상을 세우는 첫 연에서부터 과감한 익살로 출발하고 있다. ‘요놈 봐라/ 궁둥이를 툭 건드리니/ 도망가는 척 팔딱 뛰네’에 드러난 것처럼 첫 연은 시조의 율격을 다소 파격하고 있다. 그와 반면에 해학성은 생생하게 살아나는 효과가 있다. 애당초 시인이 해학성에 목적을 두기로 전략화하였기 때문이다. 화자는 종이개구리를 놀이의 대상으로 삼아 한바탕 즐거운 축제를 벌이고자 한다. ‘허허허 이번엔 아예/ 벌러덩 누워 날 좀 보소네’ 첫 연 종장은 그런 익살스러움을 고조시키는데 성공한다. ‘허허허’ 화자의 어이없다는 투의 웃음소리가 멋지게 역할을 하고 있다. ‘어쭈구리/ 이놈 보소’,또한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증폭시키는 용수철 역할을 하고 있다. 허구적 화자가 벌이는 이 축제의 압권은 마지막 종장에 있다. ‘요놈이 아예 손자인 양/ 내 응석을 부리고 있네’에서 나타난 것처럼 화자는 톡톡 튀는 종이개구리를 통해 손자의 응석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손자는 그지없는 피붙이요 사랑의 대상이다. 가족 구성원 간 응집된 사랑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질 수 없는 우리 민족의 특징이요 미덕이다. ‘종이개구리’는 내면 깊숙이 응축되어 있는 손자에 대한 사랑을 종이개구리를 통해 유쾌한 해학을 담아 드러내놓은 퍽 이채로운 작품이다.
3
동시조집 『참 이상해』는 권희표 시인의 원초적 동심세계를 잘 보여준다. 이 세상을 커다란 학교로 볼 때 권 시인이 추구하는 학교는 동화학교이다. 생명력 있는 자연이 꿈틀대고 천진한 호기심의 어린 동심 주체가 숨결을 토하는 통합된 학교이다. 동심을 향해 삶의 의미와 재미를 제공하는 사랑과 공감력이 큰 학교, 그 공간을 시인은 노래한다. 시인의 밑바탕에 깔린 시의식, 그 원동력은 사랑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동심원을 넓혀 사랑은 확대되고 있다. 할아버지로서 손자를 향한 사랑 또한 따스한 온기로 가득하다. 그런 맥락에서 집단 공동체의 출발점인 가정에 대한 소중한 의미를 시인은 줄기차게 노래한다. 어떤 작품에서는 현실인식이 드러난다. 교육문제, 노인문제, 장애아동문제, 폐쇄적 사회문제 등이다. 그는 해학성을 갖추고 있다. 해학성은 동심의 본능과 원리를 살리는 감각적인 동시조를 낳게 한다. 이는 시인의 매우 유용한 장점으로 떠오른다. 유쾌한 해학성은 발랄한 즐거움, 낙천적 아동상, 톡톡 튀는 현대 아동상에 걸맞는다. 그만큼 공감대가 넓은 창작의 잇점이 있다. 이번 동시조집 발간을 계기로 보다 넉넉한 울림으로 동심을 깨우는 후속 작품집이 나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