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헌금
예전 본당신부를 할 때, 교구 사제들과 만남의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주일 헌금액을 올릴 수 있느냐는 대화 중에 어느 신부님께서 이렇게 자신의 체험담(?)을 말하더군요. ‘여러 방법을 다 활용해봤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헌금함 앞에 사제가 서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새로운 방법이 아니라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것을 “눈을 들어 보고 계셨다.”(21,1.2 참조) 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하는 모습을 바라보신 까닭이야 근본적으로 그 사제가 말한 의도와 전혀 달랐으리라 여겨집니다.(발췌: 2024년 11월 25일,김준수 아우구수티노 신부님 강론 글)
“천주교는 다닐만하다. 헌금으로 천 원만 내도 누가 아무 소리 없으니 부담이 없다”라는 말이 들립니다. 웃지 못할 농담 같은 말속에 진담 현실이 상당 포함된 것 같습니다.
00 신부님께서 특강을 오셨습니다. 신부님은 사회 복지에서 일하시는데 아주 입담이 좋으신 분이시랍니다. 신부님 말씀이, “신자들이 천 원을 내면 따귀를 맞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헉.”
“하늘나라에 성부*성자*성령 세 분이 계시고, 거기다 성모님*성요셉 최소한 5인 가족이 계시는데, 천 원을 내면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
비유가 좀 황당당하고 듣기에 따라서 불같이 화를 낼 법 한데 특강을 듣던 신자들이 모두 와 하고 웃었습니다. 이 이상한 말씀에 신비의 힘이 작용했나 봅니다. 날 이후 눈에 띄게 천원 신자가 없어졌고 눈에 띄게 주일 헌금이 늘었습니다. 헌금 앞 앞에 서 있는 방법보다 훨씬 강도가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김국영 나의 대모님은 오랫동안 식당에서 일하셨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있었으나 오래전 헤어졌으니 사실상 과부로 사셨습니다. 80년대 중반에 견진 대모님이 되신분이라 서로 잘 아는 형편입니다. 대모님은 주일 미사 헌금은 늘 새로운 달이 시작될 무렵 은행에 가서 빳빳한 만원 신권으로 바꿔 두고 꼬박꼬박 만원을 봉헌하셨습니다. 성탄과 부활 대축일에는 다섯 배로 올라갑니다. 물론 여러 시설과 단체에 후원도 하셨습니다. (후에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시면서 거의 줄였습니다만). 새벽 4시면 일어나 아침 묵상과 기도를 봉헌하였고 매일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암으로 투병 생활 일 년 여만에 돌아가셨는데, 요양원 관계자들이 “이런 분 잘 없다”라고 서로 극찬하였습니다. 돌아가신 지 몇몇 해 대모님의 봉헌금 속에 담긴 오롯한 신앙을 떠올리며 나의 하느님 사랑과 신앙을 반성해 봅니다.
입력:최 마리 에스텔 수녀/2024년 1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