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3:27-31).
사도는 21-26절까지에서 복음의 핵심과 진수를 말씀했습니다. 본문에서는 지금까지 전한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는가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문답(問答)형식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도 사도가 묻고 있는 질문에 겸허한 마음으로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① 첫 번째 질문이,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하고 묻습니다.
㉠ 자랑할 것이 있는 사람은 말해 보시오, 이렇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있을 수가 없느니라” 하고 답변합니다. 복음을 진정으로 이해했다면, 자랑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사람 편에서는 자랑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 “자랑”이라는 문제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기가 쉽습니다만, 하나님 앞에서는 치명적(致命的)인 병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자기중심적인 교만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하면 즉각적으로 파렴치한 윤리적인 죄를 생각합니다만,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 온” 최초의 죄는, 윤리적인 죄가 아니었습니다. 자랑하고 교만하여 하나님같이 되려는 신학적인 죄였던 것입니다.
㉢ 성경은 “자랑”을 철저하게 깨뜨리고 있습니다.
㉮ 천국의 대헌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산상수훈에서 주님의 첫 말씀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 5:3)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가난”은, 하나님 앞에 내 놓을 것이나 자랑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철저한 가난뱅이를 의미합니다. 신앙이란 무슨 일을 행해야 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깨닫고 인정하고 고백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 누가복음에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하신 비유가 있는데,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 자기행위에 대한 자랑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었으나 세리는 오직 한마디,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 뿐이었습니다. 윤리적인 면으로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는 비교되는 것조차 용납이 되지 않는 처지였으나 주님은,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8-29) 하십니다.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하고 말씀합니다. 자랑이 에덴에 침입했을 때, 하나님과 분리를 가져왔습니다. 가정에 침입하면, 불화가 일어나고, 교회에 침입하면, 분쟁이 일어납니다. 자랑은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 “복음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값을 지불 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값없이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하면, 사람들이 기뻐하고 감사해할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타락했다는 것은 자기중심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나타내려는 교만, 자기를 과시하고 자랑하려는 인간의 자존심 때문입니다.
② 두 번째 질문(質問)은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하고 묻고 있습니다.
㉠ “무슨 법으로냐”는 말은 “무슨 원리(原理)에 의해서냐?” 하는 뜻입니다.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게 된 것이, 사람의 행위의 원리에 의해서란 말이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하고 대답합니다.
㉡ “하나님의 의”란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하나님의 의”입니다. 인간 편에서 이것을 받는 길은 “오직 믿음”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일에 인간이 무엇인가 보충(補充)해야 된다든가, 무슨 공로를 세워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감사 합니다” 하고, “믿음”의 손을 내 밀어 받을 뿐입니다.
㉢ 바울 당시에도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 하신 복음에다가 할례를 보태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왜 그랬는가?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갈 6:13) 한, “자랑”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하고 단호하게 배격합니다.
③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28상) 합니다.
㉠ 사도는 구속사에서 있어서 가장 큰 난제인 주제(主題)를 제기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28상)이라는 주제입니다. 갈라디아서 2:16절에서도,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하고 이 주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구속사에 있어서 근원적인 난제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만 해결이 되면, 하나님께 돌아갈 수도 있고, 화목하게도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 사도가 여기까지 증거한 핵심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즉 사람이 의롭게 되는 길이 열렸다는 복음입니다.
㉮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이 가능하다는 점과,
㉯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여졌는가 하는 점과,
㉰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는 점을 증거했습니다.
㉱ 그리고 “자랑할 데가 있단 말이냐” 하고 질문을 던집니다.
④ 그런 후에,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認定)하노라”(28) 하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 “인정하노라”는 뜻은,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사도는 이신칭의(以信稱義)에 대한 “원리적”(原理的)인 면은 여기서 끝맺고 있습니다. 4-8장은 3장에서 말씀한 원리에 대한 “상론”(詳論)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⑤ 사도는 세 번째로,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29상) 하고 묻습니다.
㉠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29하) 하고 답변합니다. 사도는 3:22절에서,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사도는 이를 상기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얻는 데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아무런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⑥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30) 하고 말씀합니다.
㉠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므로, “의롭다함”을 얻는 방도, 즉 구원을 얻는 방법도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같은 원리가 적용이 된다는 것이며, 그 원리는 오직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 성에 가서 하나님 말씀 전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심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 복음을 전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자, 할례자들이 힐난 했다고 사도행전은 전해주고 있습니다(행 11:2-3). 그들은 하나님은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며, 무할례자도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⑦ 사도는 끝으로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31상) 하고 묻습니다.
㉠ 21-30절 안에 “믿음”이라는 말이 몇 번이나 강조되어 있는가를 보십시오. 9번이나 등장합니다. 그러면 어떤 의문이 제기될 수가 있는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아무런 차별 없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면 율법은 무참히 무시를 당하고 폐하여졌단 말이냐 하는 의문입니다.
⑧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31하) 하고 답변합니다.
㉠ 이 점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과, 율법”을 싸움을 붙이듯 합니다. 아닙니다. 복음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율법도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율법을 폐하고 주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굳게 세우시고 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 그러면 복음이 율법을 어떤 방법으로 세워주었는가? 율법은 죄를 범한 인간을 법대로 처벌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입 닥치고 있으라” 하고, 율법을 폐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요구대로 정죄를 하신 것입니다.
㉢ 그런데 우리를 내어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죄를 자기 아들에게 담당케 하시고 우리 대신 자기 아들을 정죄하였다는 것이 이제까지 말씀한 복음의 요약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고 계셨습니다. “때가 차매,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우리를 대신하여 그에게 정죄하시므로”(갈 4:4, 8:3) 율법의 요구를 응해 주셨던 것입니다.
⑨ 구약시대 짐승을 속죄제물로 드리던 제사법에 비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속죄제물로 내어주셨다는 것은, 율법을 얼마나 높이 세워준 것입니까?
㉠ 율법은 범인인 우리를 십자가에 못을 박으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내어주시다니 율법은 최고의 대접을 받은 셈입니다.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피 흘림이 없이 죄인들을 의롭다고 여겨주셨다면 그것은 분명 율법을 무시한 것이요, 폐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들에게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의”는, 율법을 폐하고 주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굳게 세우시고 주신 의임을 명심하십시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