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 제일 금강산 산행기
프롤로그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 이천 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 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 만 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 지 몇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다
금강산은 부른다. (그리운 금강산 - 한상억 작사/ 최영섭 작곡)
2006. 10월경 직장 산악회에서 2박3일로 금강산을 가기 위하여 예약을 마쳤으나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여 남북관계가 급랭되는 바람에 취소되었고 2005. 5경에도 친구 몇몇이 가기로 하였으나 개인 사정들로 인하여 가지 못하는 등 금강산을 2번 갈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또한 2008. 5월 제철에 금강산을 가려고 하였지만 중국 황산 산행으로 6월 28일에야 드디어 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삼세번만에 가네요. ㅎㅎㅎ
2008. 6. 28(토)
6. 27(금) 저녁 10:30경 잠실 종합운동장 집결 장소에 도착하니 야구경기를 관람하고 나온 사람들이 포장마차 앞 인도에 종이박스를 깔고 앉아 술판을 벌려 놓고 왁자지껄 흥겨웁게 놀고 있다. 사방을 둘러 봐도 도착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아 한쪽 구석에 앉아서 보니 운동장 톨게이트쪽에 모두 나와 있다.
10:50경 화진포까지 데려다 줄 버스가 도착하였는데 가는 사람이 달랑 우리 5명뿐이네.
버스에 올라 잠시 얘기를 나누고 각자 편한 좌석을 잡아 잠을 청한다. 홍천 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화진포 어느 팬션 주자창에 도착한 것이 6. 28. 02:30경이다.
버스에서 새우잠을 자고 05:00경 일어나 고양이 세수와 양치를 하고 화진포 아산휴게소로~~~
화진포 아산 휴게소에서 홍천, 사천팀과 반갑게 만나 발권을 하고 통일을 여는 사람들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남측 출입사무소로 향한다.
소속을 마치고 황태 해장국 아침을 먹고 북측으로 들어가는 버스에 갈아타고 비무장지대를 통과하여 북측군사분계선을 넘어설 때 초소에서 무장을 하고 선 어리지만 인민군의 모습을 보니 긴장이 되기도 한다.
남측출입사무소에서 전체
10:00경 북측 출입사무소에 도착하여 소속을 위하여 버스에서 내리니 북한 가요 “반갑습니다” 가 활기차게 스피커를 통하여 흘러나오고 있다. 북한 사람들을 코 앞에서 직접 보기는 처음이라 동물원의 원숭이 구경하듯 살펴보면서 수속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라타 금강산으로 향한다.
도로 오른쪽에는 금강산의 끝물이라는 구선봉이 왼쪽에는 이름 모를 봉우리가 있었는데 그 모습 또한 기묘하다 토양이 마사토라 나무가 살지 못해서인지 황랑한 느낌이 온다. 남강다리를 건너자 양옆으로 논밭이 나타났고 초췌한 북한 주민들의 모습도 보인다.
10:30경 온정각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만 풀고 바로 세존봉으로 가기 위하여 셔틀버스를 타고 신계사터를 지나 구룡연지구에 도착한다.
목란관을 지나고 양지다리, 금수다리를 지나면서 금강산의 계곡의 진수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삼록수를 지나 만경다리를 거쳐 금강문을 통과하고 새로 지은 듯한 흔들다리를 지나면서 계곡이 점점 넓어진다.
금강문을 통과하기 전 가판대에서 특산물을 팔고 있는 여자 안내원 둘 중 키가 크고 살결이 흰 한명이 눈이 띠어 함께 사진 촬영할 것을 권하자 살짝 빼는 듯 하면서 포즈를 잡아주어 한 장면 담기도 한다.
역시 남남북녀여~~
목란관
무대바위
북측 여 안내원과 함께 ㅎㅎㅎㅎㅎ
선녀들이 내려와 춤을 추웠다는 무대바위를 지나자 옥류담이 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담의 크기가 작은 실내수영장 정도 되는 것 같다. 옥류담 왼쪽 너럭바위에는 이 곳을 찾았던 옛 풍류객들의 이름들이 수 없이 새겨져 있다. 봉황이 날아 가는 모습이라는 비봉폭포를 지나 조선 3대 폭포 중 으뜸인 구룡폭포에 도착한다.
구룡폭포의 모습은 용이 휘감아 내려는 듯한 모습이였고 그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사자목을 지나 구름이 휘감고 있는 세존봉으로 향한다.
옥류담
비봉폭포
구룡폭포
사자목
숲길을 지나 철계단을 지나는데 정체되고 허기가 져 힘이 빠지기 시작하지만 전망대를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 금강산의 산신이 마음이 동하였는지 잠시 구름을 걷어내주고 집선봉을 잠시 보여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기도했겠만 아쉽게도 다시 구름이 주위를 덮는 것이 야속하였지만 금강산을 다시 찾아 오라는 뜻으로 생각하고 스릴만점의 수직 철계단을 내려온다.
세존봉 정상
살짝 보인 집선봉과 백련, 연주, 합수목폭포
철계단을 내려오자 금강산 산신도 아쉬웠던지 잠시 세존봉의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반월소와 동석을 지나 금강송이 울창한 평지를 지나 영춘대에 도착 대기하고 있던 셔틀버스를 타고 온정각으로 돌아온다. 금강산호텔에서의 만찬 후 포장마차에서 거한 둿풀이를 마치고 각자 배정된 숙소로 향하면서 금강산에서의 첫날밤을 보낸다.
수직 철계단
세존봉 둿면
2008. 6. 29(일)
비가 오면 온천을 하기로 하였는데 날씨가 어제보다는 나은 듯하여 수정봉을 오르기로 하고 셔틀버스를 타고 수정봉으로 향한다. 전날 세존봉 등반시에는 다른 팀과 섞여 혼란스러웠는데 오늘은 우리팀 민간인 2명과 현대아산 협력직원 1명뿐이다.
수정봉 초입에서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금강산 구조대원 1명, 안내원 남자2명, 여자 2명과 만나 정겨운 분위기에서 수정봉을 오르기 시작한다.
계절폭포를 지나 자라바위를 지나 작은 철계단을 올라서 뒤를 바라보니 넓은 바위지대가 보였는데 선수암이라고 한다. 사람 모습을 한 작은 바위가 정상부근에 올려져 있다. 암비둘기 바위를 지나 수정문에 도착하였는데 하나의 바위가 마치 문과 같은 형태로 이루어졌고 일제 때 일본사람들이 수정을 캔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기도 하다.
계절폭포(날개님이 날으신 곳이네요. ㅎㅎㅎ)
자라 바위
선수암
암비둘기 바위
수정문
선수암을 지나면서 내리기 시작한 비가 수정봉 정상에 올라섰는데도 그치질 않아 해금강과 만물상의 풍광을 볼 수 없었지만 그 덕분에 북측 사람들과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든다.
인생사 세옹지마란 것이 이런것일까?
수정봉에서의 남과 북
온정각에 도착 각자 자유시간을 가진 후 16:00경 북측출입사무소를 통과하는 것으로 아쉬운 금강산 산행을 마친다.
에필로그
돌아가신 아버님 고향이 이북이라 저에게는 금강산이 새삼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북측 출입사무소를 통과할 땐 눈물이 맺히기도 하였습니다.
금강산에 참석하신 여러분 고생하셨습니다.
세존봉에서 접선봉능선과 비로봉을 수정봉에서 만물상과 동해바다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 보다 더 귀한 것을 보시고 느끼셨을것입니다.
그리고 통일에 우리 산악회도 조금이나마 기여하였다는 것에 대하여 뿌득한 마음입니다.
다시 금강산을 기약하며......
2008. 7. 4.
몽블랑
첫댓글 공무원 산악회 회장님이 쓴 후기도 올려 봅니다.우리가 다녀온지 몇주 지나지 않았는데 순수한 관광객 그것도 쉰이 넘은 아녀자가 피살 되어서 마음이 더 아픕니다.산행 하는 도중에 북측 요원들하고 이야기 하여 보니 남측에 대한 지나친 적대감을 엿 볼수 있었으며,,.돌아 오면서 같은 민족으로 빈부격차가 너무 심하여 서글픔을 느껴야 했습니다.북한 동포들 들녁에서 남루한 옷차림에서 부터 들녁에서 일하는 모습까지 마음이 싸하게 아렸습니다.
뜨란채님. 금강산 구경 새롭게 잘 했읍니다. 저희는 97년도에 금강산 오픈 하기전 뉴욕에서 11명이 다녀 왔읍니다. 금강산, 묘향산, 칠보산, 구월산을 다녀 왔지요. 아주 좋았읍니다.[ 글 재주가 없어서 잘 표현을 못합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