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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지옥에서 태어났다 - 『밥값』 정호승
정호승 시인의 열 번째 신작시집 『밥값』
시는 좀 더 짧아지고 통찰은 보다 깊어졌다. 등단 이래 사십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시를 써오며 이제 막 회갑의 나이를 지난 시인은 시대와 세대를 잇고 외로운 상처들을 따스한 언어로 감싸 안는다.
정호승
시인의 열 번째 신작시집 『밥값』이 출간되었다. 시는 좀 더 짧아지고 통찰은 보다 깊어졌다. 등단 이래 사십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시를
써오며 이제 막 회갑의 나이를 지난 시인은 시대와 세대를 잇고 외로운 상처들을 따스한 언어로 감싸 안는다. 실수와 실패를 부정하지 않고
아름다움과 서정으로 어루만지는 시인은 시집의 표제작에서 ‘밥값’하는 것의 의미를 통해 인간다운 삶의 길을 돌아본다.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
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
외출하실 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밥값」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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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술을 들고 싶거든 다산 주막으로 가라
강진 다산 주막으로 가서 잔을 받아라
다산
선생께서 주막 마당을 쓸고 계시다가
대빗자루를 거두고 꼿꼿이 허리를 펴고 반겨주실 것이다
(정호승,
「다산 주막」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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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함박눈을 뒤집어쓴
하얀 첨성대
첨성대 꼭대기에 홀로 서서
밤새도록 별을
바라보다가
눈사람이 된
나
(「소년」 전문)
내 짐 속에는 다른 사람의 짐이 절반이다
다른 사람의 짐을 지고 가지 않으면
결코 내 짐마저
지고 갈 수 없다
길을 떠날 때마다
다른 사람의 짐은 멀리 던져버려도
어느새 다른 사람의 짐이
내가 짊어지고 가는 짐의
절반 이상이다
풀잎이 이슬을 무거워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내 짐이 아침이슬이길 가절히 바랐으나
이슬에도 햇살의 무게가 절반
이상이다
(「짐」 부분)
제1부
봄비 / 입양 / 결빙 / 허공 / 밥값 / 득음정 / 운구하다 / 부활 / 모유 / 천사 / 고비 / 인삼밭을 지나며 / 물의 꽃 / 투우 / 설해목 / 선운사 상사화 / 거울 / 어느 벽보판 앞에서 / 비닐 하우스 성당 / 꽃 / 별들은 울지 않는다 / 새똥
제2부
물의 신발 / 전철이 또 지나가네 / 짐 / 충분한 불행 / 바닥에 쏟은 커피를 바라보며 / 죄송합니다 / 시계의 잠 / 명동성당 / 왼쪽에 대한 편견 / 휴대폰의 죽음 / 삼가 행복을 빕니다 / 풀잎에게 / 바다의 성자 / 폐사지처럼 산다 / 달팽이에게 / 도망자 / 수덕여관 / 종이코끼리 / 새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다 / 거미
제3부
새들을 위한 묘비명 / 나의 방명록 / 웃음 / 밤의 비닐하우스 / 이중섭의 방 / 다산 주막 / 성탄절 /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 /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 물의 꽃 / 벽돌 / 징검다리 / 용서의 의자 / 죽음준비학교 / 마음의 준비 / 허토의 시간 / 흰 삽 / 점자시집을 읽는 밤 / 시집
제4부
눈길 / 젊은 느티나무에게 고백함 / 광화문에서 / 타인 / 뒷모습 / 백로 / 폭설 / 늪 / 그루터기 / 최후의 만찬 /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 / 모래시계 / 부평역 / 파도 / 심우장에 가다 / 증명사진 / 목련 / 성배 / 소년
해설|김유중
시인의 말
정호승 | |
출생 | 1950년 1월 3일(1950-01-03) 경상남도 하동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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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시인 |
국적 | 대한민국 |
학력 | 대구삼덕초등학교- 계성중학교-대륜고등학교-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76년 졸) |
대표작 | 〈서울예수〉, 〈새벽편지〉 |
종교 | 천주교 (세례명: 에제키엘) |
정호승(鄭浩承, 1950년 1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본관은 동래(東萊).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 1학년 때 대구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중학교 1학년(62년) 때 은행에 다니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여 도시 변두리에서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해야 했고, 전국고교문예 현상모집에서 “고교문예의 성찰”이라는 평론으로 당선되어 문예장학금을 지급하는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68년 입학)를 들어가게 되었으며, 같은 대학의 대학원을 졸업했다.[1]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당선되어 시인이 되었으며,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되어 소설가로도 등단하였다. 한편, 인기 드라마 작가 김정수(본명 김정숙)씨와 대학 동창이며 드라마 작가 박진숙씨의 대학 1년 후배이기도 하다.
시집으로 《서울의 예수》,《새벽편지》,《별들은 따뜻하다》 등이 있으며 시선집으로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있다. 제3회 소월시문학상을 받았다.[2].
정호승의 시는 “일상의 쉬운 언어로 현실의 이야기를 시로 쓰고자 한다.[3]”는 평소의 소신처럼 쉬운 말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그려내곤 한다. 이에 1976년에는 김명인 · 김승희 · 김창완 등과 함께 반시(反詩)를 결성해 쉬운 시를 쓰려 노력하기도 했다.
“ | 나는 한번도 그 시대에 앞장서 본 적이 없었다. 어떤 평론가는 당신은 이쪽도 저쪽도 아니라고 말했지만, 이분법이 극단적으로 횡횡하던 시절에 나는 시인이 행동하는 것은 시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서정적인 시적 장치는 고운 눈으로 봐주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서정이 빠져 버렸다면 지금까지 누가 내 시를 읽겠는가. | ” |
한편, 정호승의 몇몇 시는 양희은이나 안치환 등 가수들에 의해 노래로 창작되어 음반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시편 〈부치지 않은 편지〉(백창우 작곡)는 가수 김광석의 유작앨범에 수록되었다.
“그대 죽어 별이 되지 않아도 좋다./ 푸른 강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밤하늘은 없어도/ 별은 뜨나니/ 그대 죽어 별빛으로 빛나지 않아도 좋다.… …”
〈이별노래〉는 최종혁 작곡으로 이동원이 불러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 아직 늦지 않으리.… …”
개인적 서정을 쉽고 간명한 시어와 인상적인 이미지에 담아냈다는 평으로, 소월과 미당을 거쳐 90년대 이후 가장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받은 시인으로 꼽혔다. 민중들의 삶에 대한 깊고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표출해 왔으며 관찰의 성실함과 성찰의 진지함으로 민중들의 애환과 시대의 문제를 시 속에 형상화 하였다.[1]
1987년 시선집 《새벽편지》, 1991년 《흔들리지 않는 갈대》 등은 20년 이상 판을 거듭하면서 젊은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그의 시는 민중적 서정성을 특징으로 꼽는데, 〈임진강에서〉는 민요적 운율감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 | 아버지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임진강 샛강가로 저를 찾지 마세요/ 찬 강바람이 아버지의 야윈 옷깃을 스치면/ 오히려 제 가슴이 춥고 서럽습니다/ 가난한 아버지의 작은 볏단 같았던/ 저는 결코 눈물 흘리지 않았으므로/……[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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