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8 토 오전 미사
♣ 최상훈 티모테오 주임신부님 강론말씀 ♣
연휴를 잘 보내십니까? 그저 그래요? 연휴라고 해도 별 다른 거 없어요?
어제 저는 빗소리 때문에 3시 좀 넘어서 깼습니다.
깨고 나서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빗소리를 들으면서 한참을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차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저 비 가운데서도 존재하시는구나.
그 비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둠이 있었고 빗물이 적시지만 저 빗물 그 너머에 분명히 태양이 있을 거라는 것 이런 느낌을 받으니까 마음이 따뜻해지고 좋아졌습니다.
잠은 많이 못 잤지만 그래도 기분은 상쾌합니다.
여러분에게 염장 지르는 말을 하나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거의 아파트에 사시죠? 그러니 빗소리를 못 듣습니다. 나만 들어요. 빗소리를
여러분은 비오는 소리를 듣지 못해요. 혹시 1층에 사는 분이 계시다면 들을 수 있겠네요.
빗소리를 듣지 못하죠.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 제가 오래전에 10년도 넘었는데 저는 건축에 좀 관심이 있어서 우리나라 한 건축가 이름을 까먹었어요. 유명한 건축가인데 그 사람이 쓴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아파트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 그런 글이었습니다.
제목이 「아파트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 우리 어린이들이 충격받을까 봐 걱정인데요.
왜 그러냐 하면 규격화된 사각으로 되어있어요. 그 어떤 것도 용납을 안 해요.
곡선도 없고요, 땅의 기운도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그 아파트에 살기 위해서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무슨 일을 하십니까? 줄기차게 가구를 사고 화분을 사고 그래서 그 아파트에다가 가구로 치장을 하고 그 가구를 통해서 위로를 받아요.
그런데요. 산속에 짓는 집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곳은 가구가 필요 없어요.
왜냐하면 창문만 잘 내면 창문 밖에서 들어오는 자연의 모든 것이 내 집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에요. 가구가 그렇게 필요 없어요. 그래서 행복해져요.
젊은 부부 오늘 미사를 오셨다면은 열심히 돈 모으셔서 저 산에다가 집 하나 지으세요.
그렇게 살아야죠. 우리 인생을 한 번 사는 건데 그렇게 하며 살아야죠.
염장을 지르는거죠. 아파트에 살면 그게 없죠.
여러분, 어떻게 그 수많은 것들이 빗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청하고 빗소리 때문에 깨어 온갖 매미 소리, 곤충 소리, 새 소리 가운데서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어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 건축가가 한 그 말이 갑자기 떠올라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오늘 저는 빗소리에 깼고요, 그 빗소리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비 가운데에서 그분의 음성이 들렸기 때문이에요.
우중충한 그 가운데서도 비는 이렇게 얘기해요. 이 너머에 태양이 있다.
그래서 시편이 생각났어요.
비야 소나기야 주님을 찬미하라
추위야 더위야 주님을 찬양하라
라는 시편의 저자의 그 말처럼 우리는 모든 조건 속에서도 하느님을 만나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요. 복음 말씀이 이거예요. 오늘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제 복음을 아셔야 해요.
어제 복음은 제자들이 밀 이삭을 지나가다가 까먹죠.
안식일이라고 니네 제자는 안식일에 저런 짓을 하냐고 예수님께 따져 물어요.
그리고 예수님이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적개심을 표현하는 게 어제 복음이에요.
어제 복음이 그 내용이거든요. 오늘 복음도 똑같은 것 같아요.
말씀을 듣고 어떤 분에게는 기쁜 소식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빈정상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거.
안식일 사건 이후에 이제 그 권력자들은 노골적으로 예수님께 적대감을 드러냈다 라는 게 오늘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이렇게 평가해요.
거짓말쟁이, 선동가, 신성 모독하는 자 라고 예수님을 평가 절하하면서 어떻게해서든지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을 계획안을 세웁니다.
믿음은 말씀을 듣는 이들의 결단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여러분에게 다 좋은 게 아니에요.
다 받아들일 게 아니라는 거죠. 다 받아들일 만한 일이 아니라는 거죠.
여러분도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것은 부담스럽고 어떤 것은 마음에서 힘들고 어떤 것은 안 들었으면 좋겠고 이런 게 비일비재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믿음이란 뭐냐? 말씀을 들은 것에 대해서 내가 그렇게 믿기로 결단하는 것 이게 믿음이라는 거죠.
나에게는 좀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기로 다짐하고 결단합니다. 작정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에 위로를 얻고 그 말씀에 희망을 둡니다.
여러분 모든 조건이 당연한 거예요? 당연한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어, 이 말씀은 당연한 것이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씀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는 것 이게 믿음이야.
믿음이라는 것이 이런 거예요. 믿음 쪽에 마음을 두는 것.
왜 믿음이 필요한가? 라고 질문하신다면은 왜 행복한가?와 동의어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행복하지 못해요. 나에게 믿음이 없다면 행복하지 못해요.
행복은요. 우연한 행운이 아니에요. 우리가 행운이라는 것을 잘 생각해 보세요.
우연한 행운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행복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면 훈련과 습관으로 얻는 삶의 태도예요. 그래서 행복해지는 거죠.
어느 부부가 있었어요. 그 부인도 직장 생활을 해요 하루 종일 시달렸어요.
그리고 집으로 퇴근을 했어요. 와봤더니 가관이야. 모든 물건이 널브러져 있고 아이들은 저러고 있는 거예요. 그때 전화가 옵니다. 남편은 오늘 회식 있다고 12시 넘어서 들어오겠대.
그 부인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어요. 분노가. 그래서 행복하지 못해요.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행복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가 그것은 말씀드렸듯이 훈련과 습관으로 만들어내야 돼요.
그런데 거기서 주저앉아 버려요. 나도 몰라 나도 몰라 하면서.
그리고 분노를 표출해요. 그러면 그 분노가 자녀에게 고스란히 가는 거예요.
아이들이 울겠죠. 그 엄마의 분노는 고스란히 아기에게 전달돼요 그러면 그 불행은 전염되요.
물론 이렇게 살죠. 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요.
그런데 이것을 행동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뭐라고요?
우리가 훈련해야 되고 습관을 바꾸고 태도를 바꿔야 돼요.
그러지 않으면 계속 반복되는 불행의 연속이야.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훈련해야 돼요. 습관을 바꿔야 돼요.
이거하고 똑같아요. 저기 우리 본당 뒤에도 있는데 풀밭이 있어요.
거기에 클로바들이 많아. 셀 수 없이 세잎 클로바들이 쫙 깔려져 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굳이 네잎 클로버를 찾을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네잎 클로버를 찾고 있어요.
여러분, 네잎 클로버의 상징 언어가 뭔지 아세요? 네잎 클로버가 뭐예요? 행운이야.
그럼 세잎 클로바는 뭐예요? 행복이야.
행복은 엄청나게 널려 있는데 그 없는 네잎클로버 하나를 찾으려고 그렇게 땀 흘리고 애쓰고 있는데 그 꼴이 우리에요. 행운을 찾으려.
그런 행운은 잘 일어나지 않아요. 널린 게 행복이야. 널린 행복.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우리의 훈련 습관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는 거예요.
그래야지만 행복해져요. 어느 누구도 그냥 행복해지는 건 없어요.
그냥 그냥 행복해지는 일은 없어요. 그냥.
그래서 사회 안에서 만나는 어려움이 대응하는 우리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어려운 일은 매일 생겨요. 저도 마찬가지죠.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들이 매일 생겨요.
그러면 어떤 사람은 주님의 기도 바쳐봤지만 그 어려움이 없어져요? 안 없어져요.
성모송 세 번 바치면 그 어려움이 없어져요? 없어지지 않죠.
고통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행복은 매일 즐거워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려움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서 행복해지고 어려워지는 거죠. 내가 어떻게 대하는가.
그러니까요.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달렸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일부의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뜻밖의 행운을 얻기 위해서 점을 치거나 무당을 찾아가거나 타로를 합니다. 뜻밖의 행운을 얻으려고.
단호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그렇게 해서 행복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행복을 위해서는 내 태도에 내 태도의 변화에 달려있습니다.
내가 생활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 아시는 거지만 몇 가지 태도의 문제에 대해 말씀을 드립니다.
매일 운동하기. 10분이라도 시도해 보세요. 행복해져요. 하루에 십분이라도.
밥 실컷 먹고 소파에 그대로 드러누워 있으면 행복해질까요? 지금 웃고있는 사람 몇 사람 있는데...
운동해보기.
두 번째 시작하기 전에 TV 끄기, 스마트폰 내려놓기 시작하셔야 돼요.
태도를 변화시켜줘야돼요. 아니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나쁜 거 가르치겠습니까?
TV 끄기 몇 시부터 몇 시까지 TV를 끄기 그리고 아이는 책을 읽고 엄마는 성경을 펴는거예요.
그렇게 했는데도 행복하지 않으면 제가 책임질게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일정 시간을 정해놓고 TV 끄고, 정해진 시간 기도하기. 5분이라도 정해진 시간 기도하기
하나 더 한다면 일기를 써보기. 적어도 세 줄 정도 만이라도 오늘 있었던 일 그리고 마음 아팠던 일 세 줄 만이라도 일기를 써보기.
신부님은 일기 씁니까? 저는 일기를 쓰지는 않지만 저는 매일 강론 하면서 내 이야기를 씁니다.
내 이야기 내 이야기를 씁니다.
왜 나에게는 이렇게 행운이 오지 않는다고 너무 다그치지 마세요.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아요.
왜 나에게는 로또가 맞지 않냐고 너무 자신을 비참한 인간으로 만들지 마세요.
행운은 잘 있지 않아요. 그런데 행복은 널려 있어요. 행복은 널려 있어요.
왜 그걸 선택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그리고 계속 짜증을 내고 나에게는 왜 행운이 오지 않을까
예를 들어서 이건 말도 안 되는 건데, 왜 내 남편은 장동건이 아닐까 왜 내 여자는 송혜교가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일에 우리는 내 목숨을 건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행복이 이렇게 널려 있어요.
아침 일어나서 정해진 시간 기도하기 한번 해보세요.
이렇게까지 얘기를 했는데 아니면 말고 나도 모르겠어요.
아멘.
** 주임신부님 강론말씀과 조금 다르게 표현되었을 수 있습니다. 양지하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