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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공주 체중감량사] 김은령
S#1. 정전, 궁궐
회랑으로 둘러싸인 조정에 연회가 한창이다. 풍악이 울리고 무희들이 춤을 추고 있다.
연회 상 앞 중심에 왕과 중국 사신이 나란히 앉아 있고, 곁에 왕비와 태자도 앉아 함께 연회를 즐기며 웃고 있다.
구석 자리에 앉은 뚱뚱한 화평공주(18세가량)만이 앞에 놓인 한과를 양손에 잡고 열심히 먹고 있다.
풍악이 그치고 무희들이 곱게 끝인사를 한 후 들어간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화평공주의 우적거리며 먹는 소리만이 가득하다.
모두 무안해 하고, 보다 못해 공주 옆에 앉은 태자가 가만히 공주의 팔을 잡으면
공주가 음식을 입에 물고 왕을 바라보다가 먹던 것을 멈춘다.
왕 : 자리를 옮기시지요.
왕과 사신, 왕비, 태자가 차례로 일어나 자리를 옮기기 시작한다.
공주도 따라 일어서다 접시에 담긴 하나 남은 색한과를 발견한다.
잡기 위해 팔을 뻗는다. 잘 닿지 않아 쭉 뻗다가 갑자기 중심이 쏠리면서 앞으로 넘어진다.
큰소리와 함께 공주의 무게를 못 이긴 교자상 한쪽이 무너지고 연회상이 엉망이 된다.
모두 공주를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타이틀 <화평공주 감량사> 뜬다.
S#2. 왕 처소/저녁
왕비가 화가 나서 왕에게 말한다.
왕비 : 화평공주로 인해 왕실의 체통이 깎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시녀들을 시전으로 보내 엿과 떡을 사들여 온 것은 물론,
연회에서도 무게를 못 이겨 기물을 훼손한 것이 수차례입니다. 이래서는 왕가 여인들의 기강이 서지 않습니다.
왕 : 화평이는 하나밖에 없는 내 누이요, 더구나 그 아이에게 먹을 것을 줄이라는 것은 선왕의 유지를 어기는 일이 아니요.
왕이 생각에 잠기는 위로...
S#3. 왕 처소
내레이션이 흐르는 위로 몽타주가 함께 흘러간다.
<인서트-정빈 처소, 회상>
정빈이 힘겹게 해산하고 있고, 정빈의 처소 밖에는 김내관과 시녀들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힘을 쓴 정빈, 화평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들리는 “마마, 정빈마마” 시녀장의 울부짖는 소리.
왕(E) : (늙은 노인이 힘들게 말하는) 화평이가 태어나던 날, 아이의 머리가 너무 커 정빈의 하혈이 멈추지 않았지.
그렇게 어미를 잃고 동물들과 벗하며 큰 내 가여운 아이다.
<인서트-궁궐 정원 일각, 회상>
화평공주(약5세)가 개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곁에서 시녀장이 지켜본다.
뒤로 시녀들이 나무쟁반에 먹이를 받쳐 들고 서 있다 떨어지면 즉각 대령한다.
왕(E) : 어미는 없고, 애비는 늙고, 하나뿐인 오라비마저 나이차가 나니 궁 안에 동무하나 없던 화평이는 늘 외로웠지,
그래도 먹을 때만큼은 누구보다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인서트-왕 처소, 회상>
상 위에 산해진미가 가득하다. 늙은 왕과 5세가량의 화평공주가 겸상을 해서 수라를 들고 있다.
왕의 앞에 놓인 접시위에 대하가 한 마리 놓여 있다. 공주가 대하를 냉큼 손으로 집어 들고 활짝 웃는다.
<현재로>
병색이 완연한 늙은 왕이 누워 있다.
왕 : 가여운 화평이...내가 없어도 화평이 좋아하는 거 다 먹게 해주어라.
왕의 고개가 푹 떨어지고 숨을 거둔다.
S#4. 공주의 정방(淨房, 목욕소)/저녁
문 틈 사이로 뽀얀 수증기가 새어 나온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물이 나무 욕조 안에 차 있고, 수면에는 장미꽃 잎들이 떠 있다.
속치마 차림의 화평공주가 나무 욕조 안으로 입수하자 욕조 밖으로 뜨거운 물이 넘쳐 난다.
곁에서 시중들던 시녀장과 시녀 홍단이 익숙한 듯 살짝 뒤로 피했다가 다시 와 공주를 비단 천으로 씻겨 준다.
공 주 : 놀랐느냐? 많이 젖지는 않았느냐?
시녀장 : 이젠 익숙합니다, 마마.
공 주 : (실망해서) 이번에도 물이 넘치는 걸 보니 몸태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은 것 같구나.
홍 단 : 아닙니다, 마마. 지난 번 보다 넘쳐 난 물의 양이 적었사옵니다.
공 주 : (반색하며) 그래? (시녀장에게) 자네도 그리 생각 하는가?
시녀장 : (대답 안하고 공주의 몸을 열심히 닦기만 하는)
공 주 : 괜찮다. 직언을 잘하는 그 성품을 내가 괴느니라.
시녀장 : 욕조에 물을 조금 덜 담았는데도 같은 양이 넘쳐 난 것으로 보아 오히려 옥체가 조금 더 강건해 지신 듯합니다.
공 주 : 자네가 말하지 않아도 내 이미 알고 있네. 나이가 들수록 식탐이 늘어 가는데 어찌 몸태가 줄겠는가?
홍 단 : 하오나 마마, 마마의 피부는 백옥과도 같고 입술은 붉은 장미와도 같습니다. 천하제일의 미녀에 뒤지지 않사옵니다.
공 주 : (좋아하며) 너의 농이 심하구나.
홍 단 : 진정이옵니다. 한나라의 초선도 강건하였으나 동탁과 여포 두 사람의 영웅이 동시에 연모했답니다.
마마는 제가 본 누구보다도 고우시옵니다.
시녀장 : 온수를 더 가져 오거라.
홍단이가 문밖으로 나간다.
공 주 : 저 아이와 이야기하면 늘 즐거워지는구먼.
시녀장 : 듣기 좋은 말은 독이 될 때가 많사옵니다. 마마도 이제 몸태를 줄이시고 혼례 올릴 대비를 하셔야 합니다.
공 주 : 혼례? 아이 참, 자네도...
부끄러운 상상을 한 공주가 얼굴이 붉어져 나무 욕조로 쑥 입수하는 바람에 또다시 물 넘치고
시녀장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난다.
S#5. 궁길/밤
초롱불을 들고 홍단이 앞장서고, 그 뒤를 시녀장이 따라 간다.
홍 단 : 공주 마마의 부마가 될 사람은 정말 불쌍하옵니다.
절구 같은 허리를 안은 사내가 제대로 구실이나 할지...(호호호 웃으면)
시녀장 : 네가 감히 공주 마마를 능멸하는 것이냐?
홍 단 : 공주 마마의 별칭이 절구 마마인 것은 궁 안의 꼬마들까지 다 아는 비밀 아닌 비밀이옵니다.
시녀장 : (인상 쓰며) 주리 틀리고 싶지 않으면 그 입을 닫거라.
S#6. 궁궐 숲속 길
화평공주가 시녀장과 홍단을 대동하고 산책중이다.
새소리(E)를 듣고 숲속으로 가면 나무 가지에 참새가 걸려 있다.
공주 : 저걸 어째 저걸...(걱정스럽게 보다가) 안 되겠어, 내가 올라가겠어.
시녀장 : 마마, 위험하옵니다. (홍단을 보며) 네가 오르거라.
홍단 : (겁에 질려) 무섭사옵니다.
공주 : 내가 하겠다. 모두 물러 나거라.
시녀장 : (말리며) 마마!
공주 : (좀 더 강하게) 어서!
하는 수 없이 시녀장과 홍단이 뒤로 물러나자 공주가 나무에 오르기 시작한다.
제법 튼튼한 가지를 밟고 한 단계 올라선다. 가지가 부러질 듯 휘청 거리다가 멈춘다.
공주가 다시 더 위의 가지로 발을 옮기고 짹짹거리는 새에 손이 닿자마자 버티던 가지가 부러진다.
느린 화면으로 공주가 새를 안고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모두 기겁을 하며 놀라는데 좀 떨어진 곳에서 번개같이 모진이 달려온다.
모진이 공주를 받아 안고 무게를 못 이겨 땅바닥에 쓰러진다.
공주의 눈에 출중한 외모의 모진만이 가득하다.
그러나 공주에게 깔린 모진은 무게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빼려 하는데 움직이지 못한다.
시녀장과 홍단이 달려와 공주를 일으키자 모진이 허리를 잡고 일어난다.
땅바닥에 모진의 손수건과 금단추가 떨어져 있다.
홍단이 금단추와 손수건을 주워 금단추는 감추고 손수건만 모진에게 건네준다.
손수건을 받는 모진의 눈빛이 떨리고 홍단이 짧은 미소를 흘린다.
시녀장 : 공주 마마 괜찮으시옵니까?
공주 : (모진 보며)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존함을 물어도 될는지요?
모진 : (홍단을 보던 시선 거두고) 시종무장 백기루 대감의 차남 백모진이라고 하옵니다.
아버님께 화급을 다투는 서찰을 전하고 나오던 중 마마의 위급함을 보고 달려들어 무례를 범하였습니다.
공주 : 아니 아닙니다. 무례라니요. 큰 화를 면하게 해주신 은인이십니다.
모진 : (정중하게 인사하며)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허리를 부여잡고 절룩거리며 가는 모진이 공주의 시선으로 늠름하게 보인다.
공주 : (손바닥의 새를 쓰다듬으며) 고맙다. 네가 좋은 분을 만나게 해주었구나. (날려 보내며) 이제 조심해서 날아가거라.
새가 날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공주 : (놀라서 새를 주우며) 날개를 다쳤구나, 얼마나 아플꼬...걱정마라. 내 너를 꼭 고쳐주마.
S#7. 시종무장의 집, 모진 처소
모진이 자리에 엎드려 누워 끙끙 앓고 있고, 의원이 허리를 만져보고 있다.
백무장이 곁에 앉아 있다.
의원 : 도대체 얼마나 무거운 것이 짓눌렀기에 이리도 심히 응혈이 되었나? 쯧쯧쯧..쌀가마라도 옮기신 겁니까?
백무장 : 심한가?
의원 : 어혈이 심해 적어도 닷새는 운신이 불편하실 것입니다.
의원이 허리에 침을 놓고 모진은 비명을 지른다.
S#8. 궁궐 일각/밤
홍단과 내관이 마주 서 있다. 내관의 손바닥에 모진의 금단추가 놓여 있다.
내관 : 닷 냥.
홍단 : (다시 빼앗으려 하며) 내 놓으시게.
내관 : (뒤로 빼며) 어허, 돈독이 올랐나? 왜 이리 독해? 장물은 팔 데도 마땅치 않을 텐데?
홍단 : (돌아서며) 가겠소.
내관 : 여섯 냥 드리리라.
홍단 : 긴말에 입 아프니 다음부턴 헛수작 마시오.
S#9. 공주 처소/밤
침상에 든 공주가 잠이 안와 뒤척인다. 천정에 모진의 미소 짓던 얼굴이 떠오르자 부끄러운 듯 이불을 확 뒤집어쓴다.
S#10. 궁궐 정원 일각
차양 아래 봉들이 반원형으로 박혀 있고 봉에 새장이 달려 있다.
참새와 비둘기 등 여러 종류의 새들이 새장 안에서 지저귄다.
바닥에는 나무 우리가 있고, 그 안에 개와 고양이가 들어 있다.
화평공주가 시녀장, 홍단과 함께 온다.
내의녀가 앉아 붕대를 감은 개의 다리를 살펴보다 일어나 공주에게 인사한다.
공 주 : 다들 어떠한가?
내의녀 : 갑돌이의 다리는 많이 좋아졌고, 을숙이와 병군이는 이제 날 수 있게 되었사옵니다.
공 주 : (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부러진 다리 때문에 많이 답답하지? 조금만 참거라. 참, 모진이는 어떠한가?
내의녀 : 날개에 부목을 대고 빻은 약초로 상처를 감싸주었습니다.
공 주 : 잠시 볼 수 있겠는가?
내의녀가 의자를 놓고 봉 위로 올라가 새장에서 참새를 꺼내 공주에게 준다.
공 주 : (새를 쓰다듬으며) 모진아, 기운이 하나도 없구나.
S#11. 왕 처소/밤
왕과 공주가 함께 다과를 하고 있다.
왕 : 며칠 전 큰 변을 당할 뻔 했다 들었다. 다시는 나무에 오르지 말거라.
일전에도 다리 다친 개를 구하려다 화를 당하지 않았느냐?
공 주 : (왼손을 들어 보이며) 화라니요? 살짝 물려 흉이 좀 진 것뿐입니다.
왕 : (화가 나서) 흉이 졌다고? 당장 그 개를 죽이라 명하겠다.
공 주 : 오라버니, 아니 폐하. 제발 그리 마옵소서. 인간이 던진 돌에 맞아 상처가 깊은 개였습니다. 근원은 인간들에게 있습니다.
왕 : 공주는 누구보다도 귀한 내 누이야. 공주를 상하게 하는 것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용서치 않을 것이다.
공 주 : (빙그레 웃는)
왕 : 공주의 용모가 예전보다 날렵해진 듯하군. (중얼거리듯) 내 눈이 또 침침해진 것인가?
내 관 : 시녀장의 말로는 공주 마마께서 근래 식욕을 잃고 불면에 시달리고 있으시다 합니다.
왕 : (놀라) 당장 어의를 불러라.
내 관 : 잠시 말미를 주시고 공주 마마께 증상을 들어 보시옵소서, 폐하. 이는 익히 아는 병인 듯싶사옵니다.
공 주 : (얼굴이 붉어지면서) 밤에 잠이 오지 않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쿵쾅거리고
산해진미를 봐도 예전만큼 동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얼굴로 열이 확 오르고 몸이 꼬이며 어디로 숨고 싶습니다.
그러다 푹 하고 한숨이 나옵니다.
내 관 : (웃으며) 혹 달에도 별에도 누군가의 얼굴이 비추진 않으시옵니까?
공 주 : (깜짝 놀라) 이 병을 아시옵니까?
왕 : (미소를 띠우며) 내 어린 누이가 여인이 되었구나.
왕이 느끼하게 웃고, 공주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양손으로 가린다.
S#12. 공주 처소 일각/밤
공주, 물끄러미 보름달을 바라보고 서있고, 곁에 있는 시녀장과 홍단.
홍단이 하품하자 시녀장이 눈짓한다.
S#12-1. 모진 처소/밤
모진이 창밖의 보름달을 보고 서 있다.
백무장(E) : 화평공주는 폐하의 지극한 자애를 받고 있는 왕실의 실세니라,
차남인 너를 택한 것은 하늘이 내려준 천재일우의 기회야.
큰 보름달이 화평공주의 웃는 얼굴로 변하고 점점 커져 모진에게 다가오자 무서운 듯 고개를 도리질한다.
달이 홍단의 얼굴로 변한다. 모진이 홍단이 주워 준 손수건을 가만히 코에 대고 향내를 맡는다.
S#13. 몽타주(화평과 모진의 데이트장면)
-꽃밭
화평공주와 모진이 나란히 꽃밭을 산책하고 있다.
공주가 모진의 다리를 베고 누워 행복하게 미소짓고, 모진은 다리가 저린지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
-공터 일각
화평공주가 까르르 웃으며 하늘 높이 그네를 타고 있다.
공주의 뒤에서 모진이 힘에 겨워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그네를 밀고 있다.
-계곡
공주가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웃고 있고, 모진도 따라 웃다가 공주의 굵은 다리를 보고 우울해진다.
바람이 불어 모진의 모자가 물에 떠내려가자, 홍단이 치마를 걷어 부치고 계곡물로 뛰어든다.
홍단, 모진의 모자를 주워들고 모진을 향해 활짝 웃으면
모진도 홍단의 늘씬한 종아리를 보고 홍조를 띄며 환하게 웃는다.
S#14. 정전, 궁궐
화평공주와 모진의 혼례식 날이다.
무희들이 춤을 추고 있고, 풍악이 울리는 가운데 예복을 입은 모진이 서 있다.
잠시 후 활옷(혼례복)과 가체로 모양을 낸 화평공주가 문을 지나 걸어 들어온다.
공주의 뒤에는 홍단을 포함한 대 여섯 명의 시녀들이 있으며
앞에 선 두 명의 시녀는 큰 양산을 씌워 햇빛이 공주의 얼굴에 들지 않게 하고 있다.
왕과 왕비가 흐뭇하게 앉아 지켜보는 가운데, 앞에 서 있던 모진과 공주가 마련된 중앙 자리에 앉는다.
공주는 배시시 웃지만 모진의 표정은 어둡고 시선은 홍단에게 머무른다.
S#15. 공주 처소/밤
초야를 치루기 위해 곱게 단장한 공주가 수줍게 앉아 있다.
모진이 연거푸 술을 들이켠다. 술 주전자에 술이 떨어졌다. 술에 잔뜩 취한 모진이 그대로 곯아떨어진다.
공주는 어쩔 줄 모르고 있다가 살며시 모진을 흔들어본다.
모진 : (술에 취한 눈으로 공주를 보고) 이 놈의 멧돼지~ 활로 쏴버리겠다.
공주가 흠칫 놀라서 모진을 흔들던 손을 놓고, 모진은 쿨쿨 잠들어 버린다.
S#16. 대전
모진이 죄인 차림으로 의자에 결박되어 있다.
왕이 왕좌에 앉아 있고, 곁에 상좌평과 시종무장, 내관이 서 있다.
왕 : (손으로 의자 손잡이를 내리치며) 감히 초야를 치루기를 거부했단 말인가?
상좌평 : (곁에 서서) 이는 왕실을 능멸하고자 한 계획적인 처사이옵니다. 엄중히 다스리시옵소서.
왕 : 내 이 놈을 가만 두지 않으리. 그 가문 또한 삼대를 멸하리라.
시종무장 : (고개를 푹 숙이며) 폐하, 본시 어린 시절부터 숫기가 없는 아이였습니다, 통촉하여 주십시오.
모진아 얼른 잘못을 빌거라.
모 진 : (벌벌 떨고 아무 말도 못한다)
왕 : (의자 손잡이를 쾅 치면서) 내 니 놈의 사지를 찢어 죽이리라.
내 관 : 폐하, 공주 마마 납시옵니다.
화평공주가 급하게 들어와 모진의 옆에 꿇어 앉아 머리를 조아린다.
공주 : 폐하, 모든 것은 소녀의 잘못이옵니다. 소녀를 죽여주시옵소서.
왕 : 그게 무슨 말이냐?
공주 : 술에 취하여 제가 곤히 잠들어 버렸사옵니다. 제가 깨기를 기다리다 이사람 또한 잠이 든 것이옵니다.
왕 : (안타깝게) 공주.
공주 : (은장도를 꺼내 들며) 만일 지아비를 벌주시면 소녀 또한 자결하겠사옵니다.
왕이 어쩔 줄 모르다 공주가 눈물을 뚝뚝 흘리자 어찌 못하고 고개를 휙 돌린다.
두려움에 벌벌 떨던 모진이 슬쩍 공주의 모습을 훔쳐본다.
S#17. 궁궐, 연꽃이 있는 정자
모진과 공주가 정자에 마주보고 앉아 있다.
모진 : (공주를 보지 않고) 면목이 없소.
공주 : 말을 물가에 데려 갈 수는 있으나, 물을 먹게 할 수는 없지요.
서방님이 나무에서 떨어지던 저를 받아주신 그 날, 마음 깊이 맹세한 것이 있사옵니다.
모진 : (그제야 공주를 보면)
공주 : 서방님을 기쁘게 해드리겠다, 그것이 제 다짐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방법을 모릅니다.
어찌하면 매일 서방님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모진 : 내가 무엇이라고 이리도...
공주 : 혹 제가 실언을 한 것이 있사옵니까?
모진 : 아니오.
공주 : 그럼, 침상이나 진지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옵니까?
모진 : 내게는 과분하오.
공주 : 저는 침상이 정갈하고 안반상이 그득하면 행복합니다. 서방님은 어이하면 기쁘십니까?
이제까지 궁 안에서 섬김만 받고 자라왔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서방님께서 알려 주시옵소서.
모진 : 이러지 마시오.
공주 : (고개를 숙이며) 제발 알려주시옵소서.
모진 : (주저하다가) 나는... 못난 놈이요, 그대의 성정이 이리도 고운 것을 알지만 나는...나는...
(공주의 몸매를 죽 훑어보고) 미안하오.
공주가 안타깝게 모진을 바라보지만 모진은 먼 곳만 응시한다.
S#18. 궁궐 일각/달 밝은 밤
공주가 시름에 가득 찬 얼굴로 걷고 있고 좀 떨어진 곳에서 시녀장이 뒤따른다.
쪽문 너머로 모진이 화급하게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보인다.
공주 : 자네는 여기 있게.
공주가 모진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 간다.
S#19. 궁궐, 연꽃이 있는 정자/달 밝은 밤
모진이 정자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다리 건너 쪽을 초조하게 바라본다.
홍단이 어둠 속에서 가리개를 뒤집어쓰고 다가온다. 모진이 달려가 홍단의 손을 덥석 잡는다.
모진 : 나와 주어 고맙네. 저번처럼 오지 않을까 염려되어 가슴이 타들어 가는 듯했네.
홍단 : (손을 빼면서) 자꾸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모진 : 안 되는 일인 줄 알고 있어. 그러나 그대가 그리워 죽을 거 같네.
홍단 : 시녀는 왕의 여인이옵니다. 부마님의 정부인은 그 왕이 가장 총애하는 막내 누이고요, 두렵지 않으시옵니까?
모진 : (와락 안으며) 죽어도 좋아, 이리 살 바에는 차라리 그대와 함께 죽고 싶어.
홍단 : (모진을 밀어내며) 공주 마마가 그리도 싫으시옵니까?
모진 : 풍만한 몸태를 보면 숨이 가빠지네.
홍단 : (까르르 웃고는) 이리도 눈에 약해서야 장부라 하실 수 있습니까?
모진, 도포 자락 안에서 백동비녀와 옥가락지를 꺼내 홍단에게 건네준다.
홍단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난다.
모진 : 일전에 약속한 옥지환과 백동비녀네. 사가 시절 노복을 통해 어렵게 구했어. 마음에 드나?
홍단이 가락지를 끼고 활짝 웃으며 모진의 가슴에 안긴다.
모진 : 기쁜가?
홍단 : (가락지를 보면서) 예.
모진 : 그대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어.
홍단 : 진정이옵니까?
모진 : 물론이야. 내 속에는 그대뿐이야.
모진이 홍단을 꼭 안는다.
좀 떨어진 곳에서 공주가 모진과 홍단을 바라보고 서 있다. 공주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S#20. 부마 처소/밤
공주가 앉아 있다. 모진이 들어오다가 공주를 보고 놀란다.
모진 : 이 야심한 시각에 웬일이시오?
공주 : (차갑게) 나비가 꽃을 향해 날아오지 않으니 꽃이 뿌리를 뽑고 걸어올 밖에요.
서방님께서는 이 밤에 어딜 다녀오시는지요?
모진 : 잠시 산책을 하고 왔소.
공주 : 혼자 가셨습니까?
모진 : 그, 그렇소.
공주 : (일어나며) 서방님에게서 여인들이 쓰는 사향 냄새가 납니다. 이 몸이 사랑에 눈이 멀어 코도 병이 났나봅니다.
S#21. 곡식 창고
어둡고 음침한 창고, 홍단이가 결박되어 곡식 가마니 틈에 앉아 있다.
시녀장이 공주를 안내하여 창고 안으로 들어온다.
시녀장 : 네 목숨 하나는 궁에서 아무 가치도 없느니라. 요망한 것, 감히 부마님을 연모하다니.
홍단 :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 꼿꼿이 세우고) 그분이 절 연모했을 뿐입니다.
공주 : (원망 섞인) 내 너를 아꼈거늘....어찌하여 그리했느냐?
시녀장 :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겠사옵니다. 너는 괴질에 걸렸느니라.
공주와 시녀장이 돌아서 가려한다. 홍단이 그들의 뒤에 대고 말한다.
홍단 : 소녀의 어미는 제게 먹일 젖이 돌지 않아 핏덩이인 절 목 졸라 죽이려 했습니다.
초경도 하지 않은 저를 노리개로 팔아버리려 했습니다.
이미 죽어도 여러 번 죽은 목숨, 겁날 것도 무서울 것도 없는 년입니다. 하오나 죽기 전에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시녀장 : 듣지 마시옵소서. 간교한 농간을 부릴까 두렵사옵니다.
공주 : (시녀장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하면)
홍단 : 구중궁궐 시녀가 모두 몇인 줄 아십니까? 저 하나 없애면 서방님의 눈이 공주 마마만을 향할 것 같습니까?
아니면 그때마다 모든 여인들을 없애실 작정입니까? 그리하면 남자는 더 도망갈 뿐이옵니다.
시녀장 : (화 버럭 내며) 네 이년, 네년이 짧은 명줄을 더욱 재촉하는 구나!
홍단 : 어제까지도 강건했던 제가 괴질로 갑작스레 죽었다는 것을 부마님께서 믿으실 것 같습니까?
저를 죽였다는 사실이 언젠가 부마님께 알려지면 마마님은 영원히 그분의 사랑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공주 마마께 지니고 있던 작금의 미안한 마음조차 증오로 변할 것입니다.
시녀장 : 닥치거라!
공주가 충격을 받아 멍한 표정으로 나가고 시녀장이 뒤를 따른다.
S#22. 공주 처소
공주가 누워 끙끙 앓고 있고 시녀장이 공주의 이마에 물수건을 얹어 준다.
내관(E) : 황제폐하 납시오.
시녀장이 일어서 뒤로 물러서면 왕이 들어와 공주의 곁으로 와 앉는다.
왕 : 며칠째 물 한 모금 못 넘기다니 이게 무슨 변괴냐? 의관은 뭐라 하느냐?
시녀장 : (한숨 쉬고) 병이 아니옵니다. 부러 먹지 않으십니다.
공주 : (기운 없이)..그만 하게...
시녀장 : 신첩은 마마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두려운 것이 없사옵니다.
왕 : 무슨 말이냐?
시녀장 : 실은 (하는데)
공주 : (사지를 떨면서 발작을 일으키는데)
왕 : (다급한) 화평아, 화평아! 당장 의관을 부르거라!
S#23. 왕 처소
안색이 창백한 공주와 왕이 단둘이 마주 앉아 있다.
공주 : 닷새나 곡기를 끊었지만 몸태는 달라지지 않았나이다.
어이하여 저를 이렇게 만드셨습니까? 왜 제게 하루 여섯 번의 식사를 주셨습니까? (울기 시작한다)
왕 : 화..화평아...(한숨 쉬고 안타깝게) 가여운 내 누이...이일을 어찌 할꼬? 내 그놈을 당장 물고에 처하겠다.
공주 :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가운 목소리로) 죽인다고 풀릴 분이 아니옵니다.
왕 : 그럼 어찌해야 네 마음을 달랠 수 있겠느냐?
공주 : 약조해주시옵소서. 부마에 관한 모든 처분은 제가 내리겠사옵니다.
왕 : 어찌할 셈이냐?
공주 : 살려두겠습니다. 살려서 나를 원할 때 죽이겠사옵니다.
S#24. 후궁 처소/밤
자리옷을 입은 왕이 후궁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고, 후궁이 머리를 만져준다.
후궁 : 요부가 되고자 하신다?
왕 : 물고를 내도 시원찮을 부마 놈의 마음을 훔치고 싶다는 구나. 병신 같은 놈도 서방이라고 첫정이 들은 듯싶다.
후궁 : 부마가 큰 죄는 지었어도, 한 사내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으시옵니까?
왕 : (벌떡 일어나 앉아) 후궁인 네가 감히 공주를 능멸하는 것이냐?
후궁 : (치마를 올리면서) 사내가 갖고 싶고, 품고 싶을 때, 그것이 여인입니다. 공주 마마를 보면 사내가 동할 것 같습니까?
왕이 후궁에게 다가가면 후궁이 살짝 피하며.
후궁 : 사내를 후리는 것도 기술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진정 공주 마마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왕 : 그게 누구냐?
후궁(E) : 천하 박색이라도 고자가 벌떡 성나는 미색으로 만들어 주는 비밀 속의 인물, 바로 제 스승입니다.
S#25. 궁궐 근처 일각/새벽
말을 몰고 와 궁을 바라보고 있는 지책사의 뒷모습이 보이고.
S#26. 왕 처소
지책사가 왕의 앞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왕 : 명빈을 가르쳤다 들었다.
지책사 : 타고난 자질이 워낙 뛰어나 불에 기름만 부었을 뿐입니다.
미천한 소인의 재주로 노고가 깊으신 폐하의 일상에 작은 기쁨을 드릴 수 있어 무한 영광으로 사료 됩니다.
왕 : (심드렁하게) 밤마다 자네 덕은 좀 보고 있네. 내가 왜 불렀는지는 알고 왔겠지? (내관에게) 공주를 들라 하게.
화평공주가 천천히 걸어 들어와 쿵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는다.
지책사가 고개를 들어 공주를 바라본다. 놀란다.
왕 : 견적이 나오느냐?
지책사 : (어두운 표정과 함께 한숨을 내 쉬고는) 사태가 예상보다 심각합니다.
왕 : 못하겠다는 것이냐?
지책사 : 단시간에는 진척이 힘듭니다.
왕 :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S#27. 작은 별궁, 궁궐 내
지책사(E) : 우선 궁내에 수하 서너 명과 함께 기거할 거처와 음식, 의복과 기타 경비를 조달해 주십시오.
지책사, 일꾼들이 짐을 옮기는 것을 지시하고 있다. 옷 보따리와 꾸러미들이 집안으로 옮겨지고, 마당에 절구통이 세워진다.
S#28. 공주 처소
공주가 두 팔을 벌리고 속치마 차림으로 서 있고 시녀 2명이 공주 곁에 서 있다.
정난이 공주의 팔을 실로 재고 자로 옮겨와 그 치수를 종이에 적고 있다.
지책사(E) : 공주의 몸을 파악하여라. 특히 둔부와 팔뚝의 치수는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정난이 공주의 허리를 재려 한다. 공주가 숨을 참으며 허리가 가늘어 보이기 위해 애쓴다.
정난 : 공주 마마, 숨을 편히 쉬시옵소서.
공주 : (얼굴이 빨개지며) 편하오.
정난이 겨드랑이 부분을 툭 한번 건드리자 공주가 웃음을 터뜨리며 배가 불뚝 튀어 나온다.
공주가 무안해 하고, 정난이 허리 치수를 잰다.
(시간경과)
지책사(E) : 진지로 드시는 반찬의 용례와 먹는 양을 기록하여라. 다과도 빼놔서는 안 된다.
공주가 식사를 하고 있고, 정난이 먹는 음식을 기록하며 살피고 있다.
S#29. 지책사 처소(이하 감량관)
탁자에 지책사와 정난이 앉아 있다.
지책사 : 지금부터 이곳은 공주 마마를 위한 감량관이다. 너와 나는 공주 마마의 몸태를 다스리고 교태를 가르칠 것이다.
봐서 알겠지만 쉽지 않다. 성공한다면 한 밑천 잡게 될 것이나 실패할 시에는 우리 둘 다 사약을 받게 될 것이니
정신을 바짝 차리거라. 치수는 재왔느냐?
CG처리 - 효과음과 함께 웃음 없이 뚱한 공주의 전체적인 실루엣이 360도 방향으로 보이고.
정 난(E) : 허리가 세자 한 치가 조금 넘습니다. (자막 : 약36인치) 둔부는 물론 사지도 보통 여인의 두 배 가량 됩니다.
또한 웃는 모습과 말투에 교태는 거의 없는 듯하고, 강직하고 분명한 성품 탓에 배우기도 다소 어려울 듯합니다.
S#30. 공주 처소/밤
지책사와 공주가 마주 앉아 있고, 가운데 술상이 차려져 있다.
지책사가 막걸리를 띄우고 그 위에 붉은 소주를 붓는다.
지책사 : (공주의 잔과 자신의 잔에 술 따르며) 이리 마마께서 술 한 잔을 주시오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이 술이 무엇인지 아시옵니까? 자중홍, 민가에서는 혼돈주라고도 불리우는 술입니다.
공 주 : (한 모금 마시고) 나쁘지 않군.
지책사 : (단숨에 한 잔을 다 마시고) 내일부터는 힘든 여정이 될 것이옵니다. 심기는 단단히 다지셨는지요?
공 주 : 물론이네.
지책사 : 이 술은 막걸리 맛이 나옵니까, 홍주 맛이 나옵니까?
공 주 : (한 모금 더 마시고) 막걸리 맛이기도 하고 홍주 맛이기도 하고 혹은 두 맛 다 아니기도 하군.
지책사 : 사랑과 미움이 섞여도 이와 같사옵니다. 사랑이기도 하고 미움이기도 한 ...마마는 진정 복수를 하고 싶으시옵니까?
공 주 : 그렇네!
지책사 : 잃어버린 자존감을 찾으신 후 그를 처단하실 자신이 있사옵니까?
공 주 : ...(잠시 망설이면)
지책사 : 조금의 사랑도 섞지 않을 자신이 없다면 시작하지 마시옵소서. 그를 치기 전에 마마의 마음이 다치실 수 있사옵니다.
공 주 : (화난) 자네는 내가 허언이나 하는 사람으로 보이는가? 복수 외에 다른 것은 섞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말게.
S#31. 감량관 외경/새벽
S#32. 감량관 내실/새벽
흰 무명 바지와 저고리 차림의 공주가 서 있다.
공주의 앞에는 큰 나무 바구니가 놓여 있고, 그 안에는 단단하게 뭉쳐진 진흙이 담겨 있다.
공주가 발판을 딛고 올라가 큰 나무바구니 안의 진흙 안으로 정난의 손을 잡고 올라선다.
정난이 손을 놓는다. 진흙이 공주의 무게만큼 내려간다.
정난이 다시 손을 잡고 공주가 진흙 통에서 나오자 정난이 내려간 진흙의 깊이를 대나무 자로 잰다.
정난 : 예상대로 두 치가 조금 넘습니다.
지책사 : 따라오십시오.
S#33. 불당, 감량관 안/새벽
땀에 전 공주가 힘겹게 백팔 배를 하고 있다. 숨을 헐떡이며 버겁게 절을 올리다가 힘겨워서 잠시 동작을 멈추자,
지책사가 죽비로 바닥을 찰싹 때린다.
지책사 : 두 번 더 하십시오.
공주가 힘겹게 두 번의 절을 마치고 바닥에 대자로 뻗어 버린다.
공 주 : 물...물 좀 주시게.
지책사 : 숨을 고르시고 반식경 후에 드십시오. 일어나십시오.
공 주 : (일어나려고 하지 않자)
지책사 : 그만 두시는 겁니까?
그 말에 힘겹게 공주가 일어나 앉는다.
상의를 탈의 한 지책사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양손을 각각 양 무릎 위에 놓고 눈을 감고 복식 호흡을 한다.
지책사 : 따라하십시오.
공주가 앉고 정난이 곁에서 공주의 자세를 바로 잡는다.
정난 :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시면서 배를 불룩이 내미시고, 내쉬면서 배를 등가죽까지 죽 끌어당기십시오.
천천히 하실수록 좋습니다.
공주 : (눈을 감고 복식호흡)
정난 : 배로 깊이 숨을 마시고 내뱉는 이 호흡은 몸 안의 탁한 기운을 내보내고 신선한 기운을 받아 들여
순환을 돕고 피를 맑게 합니다. 마음을 고요히 가다듬고 몸태가 줄어들어 단아해진 공주 마마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상상하십시오.
눈을 감고 공주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선행되면서 꽃밭에서 뛰노는 모진과 공주. 공주의 모습은 실루엣으로 얼굴은 잘 안보인다.
사랑스럽게 공주를 부르면서 다가오는 모진, 늘씬한 자태의 공주가 연못에 얼굴을 비추자 저팔계의 얼굴(C.G)이 드러난다.
깜짝 놀라는 공주.
날카로운 죽비 소리와 함께 잠이 들었던 공주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다.
지책사 : 주무시면 안 됩니다.
공 주 : (무안하여) 안 잤소. 다만 생각이 깊어져서...
정 난 : 침을 닦으시지요.
공주가 턱까지 내려온 침을 닦는다.
S#34. 감량관 내실
지책사와 공주, 정난이 앉아 있고 가운데 찻상이 마련되어 있다.
공주가 허겁지겁 차를 마시려 하자 지책사가 찻잔을 빼앗는다.
정난이 두 손으로 잔을 들고 코 밑에 살짝 가져다 댄다.
지책사 : 향을 맡으십시오.
입술을 살짝 벌리고 찻잔 입구에 살며시 가져다 댄다.
지책사 : 입안으로 넣을 듯 말 듯 감질나게 다가가십시오.
살며시 윗입술을 찻잔에 대고 입안으로 차를 머금는다.
지책사 : 나비가 꽃에 앉듯 찻잔에 입술을 얹고 입안으로 머금으십시오.
정난의 가느다란 발목이 보이고, 시선을 따라가 보면 정난이 몸을 살짝 비틀어 섹시한 자태로 앉아 있다.
정난, 붉은 입술로 관능적으로 차를 삼키면 그 모습을 보던 공주의 얼굴이 붉어진다.
지책사 : 해보십시오.
공주가 찻잔을 들어 따라하려고 어설프게 입술을 벌리고 차를 마신다. 곧 뜨거움에 찻잔을 확 떨어뜨린다.
지책사 : (자신 앞에 놓인 다른 찻잔을 주며) 그냥 드십시오.
갈증이 난 공주가 차를 벌컥 벌컥 마신다.
공 주 : 식사 언제 하는가?
정난이 상에 놓인 단자를 하나 집어 공주에게 준다.
공 주 : 다과 말고 안반상을 받고 싶다.
지책사 : 이것이 진지입니다.
공 주 : 이것을 먹고 어찌 버틴다는 것이야?
지책사 : 치욕을 잊으셨습니까?
공 주 : (처연하게 단자를 집어 들고 보면)
정 난 : 서른 번씩 씹어 드사옵소서, 이 단자는 검은콩 다섯 되를 세 번 쪄 말린 후 대마자 석 되와 함께 가루를 내고
찹쌀죽과 섞어 반죽한 것입니다. 한 번에 두 덩이씩 배가 부르도록 먹고 일체 다른 것은 먹지 않으셔야 합니다.
한 번 먹은 후 7일 동안은 음식을 먹지 않아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으며
갈증이 나면 대마즙을 먹어 장부를 자양하면 됩니다.
공 주 : 7일이나 곡기를 끊는다는 말이냐? 그리 하다가는 죽는다.
지책사 : 죽기를 각오하신 것이 아닙니까?
공주가 화난 표정으로 단자를 씹는다.
S#35. 감량관 마루
공주가 엎드려 걸레질을 하고 있고, 지책사가 죽비를 들고 곁에 서 있다.
지책사, 천천히 대강대강 걸레질을 하고 있는 공주를 보다가 한 손으로 배 부분을 들어 올려 엉덩이를 높이 치켜들게 만든다.
공주가 화들짝 놀라 옆으로 넘어진다.
공 주 : 어딜 만지는 게냐?
지책사 : 이곳에서는 제 말을 따르기로 하셨습니다. 숙이십시오.
공주가 다시 걸레질을 하기 위해 엎드리자 지책사가 공주의 배 부분을 들어 올려 엉덩이를 높이 치켜 올린다.
무심한 표정으로 공주의 몸을 가다듬는 지책사와 달리 공주는 그의 손이 닿는 것이 몹시 부끄러워 얼굴이 발그레 해진다.
지책사 : 상체를 숙인 걸레질은 척추와 내장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고 허리를 가늘게 합니다.
몸태가 큰 시녀가 거의 없는 것은 이러한 이치입니다.
공주가 숨을 몰아쉬며 힘들게 걸레질을 한다.
지책사 : (죽비로 바닥을 내리 치면서) 더 빨리!
공주가 죽을힘을 다해 걸레질에 속도를 낸다.
지책사 : (공주의 걸레질에 구령을 붙이며) 하나 둘 하나 둘!
S#36. 세답방
홍단이 나무 막대기로 빨래를 퍽퍽 때리면서 힘들게 빨래를 하고 있다.
시녀장과 빨래감을 바구니에 가득 담은 시녀 두 명이 다가온다.
홍단,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시녀 두 명이 빨래감을 홍단의 앞에 쏟아 버린다.
시녀장 : 간사한 것, 네가 공주 마마를 기만한 일은 죽어서도 용서 받지 못할 것이다.
마마의 명으로 너를 살려두나 앞에서도 뒤에서도 너를 볼 것이야. 만일 그간의 일에 대해 한마디라도 내뱉으면
넌 물론 네 사가의 식솔부터 칠 것이니 명심 하거라.
S#37. 궁궐 일각
홍단이 나무바구니에 빨랫감을 잔뜩 담아 들고서 걸어간다.
갑자기 홍단을 확 잡아끄는 손. 홍단, 놀라서 바라보면 모진이다.
모진, 홍단의 끌고 인적이 없는 곳으로 가서 홍단의 손에서 나무바구니를 빼앗아 내려놓고 덥석 끌어안으려 하는데
홍단이 거세게 밀어낸다.
모진 : (손을 잡으며) 보고 싶었네. 그간 내관에서 과중한 업무를 내려 그대를 찾기가 수월치 않았네.
나를 보지 못해 근심이 많을까 노심초사 했네.
홍단 : (손을 뿌리치며) 놓으십시오. 보는 눈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홍단이 빨래 바구니를 들고 가려 하자 모진이 품에서 은장도를 꺼내 준다.
모진 : 백제 제일의 장인이 만든 은장도일세. 월궁항아와 같은 그대를 나 없는 곳에서도 지켜줄 것이야.
공주가 온정에서 돌아오면 그대를 다시 궁중 시녀로 옮기라 청할 것이네.
홍단이 은장도만 확 채어 갖고 돌아서 가버리고 모진은 홍단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좀 떨어진 곳에서 시녀장이 몰래 두 사람을 지켜본다.
S#38. 감량관 마당
지책사와 정난이 곁에서 보고 있고, 공주가 땀이 흥건한 채 찐쌀을 절구에 놓고 빻고 있다.
점점 손에 힘이 떨어지면서 기운을 잃어 간다.
잠시 후 시녀장이 쪽문을 통해서 들어와 공주에게 소곤거리면,
그 이야기를 들은 공주의 표정이 분노로 달라지면서 절구공이를 번쩍 들어 올려 무서운 힘으로 절구를 빻기 시작한다.
꿍꿍 소리가 감량관에 울려 퍼진다.
S#39. 몽타주
-큰 나무 바구니에 담긴 빨래를 두 발로 세차게 밟고 있는 공주. 지책사가 죽비를 들고 곁에서 보고 서 있다.
-정난과 함께 큰 이불 빨래의 양쪽을 잡고 온몸을 돌리며 비틀어 짜고 있는 공주. 곁에서 지책사가 보고 있다.
-요가의 학자세를 취하고 있는 공주, 지책사, 정난, 시녀1,2.
- 나무덩쿨로 만든 훌라후프를 돌리는 공주. 지책사, 정난, 시녀1,2도 곁에 서서 함께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다.
-정난이 앞에 서고 지책사와 공주가 댄스 에어로빅을 따라 하고 있다.
잠시 후, 지나가던 내관과 시녀들도 하나 둘씩 에어로빅에 합류하고.
S#40. 감량관 내실
향이 피워져 있고, 정난이 누워 있는 공주의 몸에 침을 놓고 있다.
공주의 팔과 배꼽에 침이 꽂혀 있고, 다리의 발목 부분에 침을 놓고 있다.
정난 : 삼음교는 비경락의 혈로 수분대사를 돕고 습한 기운을 조절합니다.
공주 마마는 수의 성질이 강한 분으로 이 혈을 다스려 수분대사를 돕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부터 깊은 혈을 건드려야 하니 몹시 아프실 겁니다.
공주가 아파서 이를 악물고 곁에 놓인 이불자락을 꼭 쥐어 잡는다.
S#41. 공주 처소/밤
공주가 누워 있다. 좀 떨어진 곳에 정난도 누워 자고 있다.
공주의 배에서 계속 울려 퍼지는 꼬르륵 소리(E)
공주가 슬며시 일어나 정난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간다.
S#42. 감량관 부엌/밤
공주가 어두운 부엌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달빛을 받으며 떡과 과일 같은 음식을 미친 듯이 먹고 있다.
목이 메어 가슴을 쾅쾅 치는데 검은 그림자가 공주의 앞에 드리운다.
공주, 고개를 돌려 깜짝 놀라는데.
(점프)
시녀장, 곁에서 공주의 등을 퍽퍽 때린다.
시녀장 : 어찌하여 다시 음식을 탐하십니까?
공주 : 아프네, 그만 하시게.
시녀장이 물을 건네면, 공주가 벌컥벌컥 들이 마신다.
공주 : 더 하다간 살보단 내가 먼저 없어질 거 같네.
공주의 손이 떡을 잡는데, 시녀장이 공주의 손을 잡고 거칠게 끌고 나간다.
시녀장 : 따라 오십시오.
S#43. 궁궐 서고/밤
아무도 없고 캄캄한 서고 안.
홍단(E) : 놓으십시오, 돌아가겠습니다.
소리를 따라 가보면 모진과 홍단이 서고 구석에 마주 서 있다.
모진 : (홍단의 손에 금비녀를 놓아주며) 이것은 그냥 비녀가 아니야, 대대로 우리 집안 여자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귀한 것이네.
어머님께서 하사하신 것을 내 특별히 낭자를 위해 남겨 두었어.
홍단 : 혼인을 한 부인에게 전해야 할 물품을 한낱 스쳐가는 계집에게 주시다니요?
모진 : 스쳐가는 계집이라니? 그대는 내 평생 단 하나의 여인이야.
홍단 : 온정으로 떠난 공주마마의 안위가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모진 : 차라리 그곳에서 오지 않았으면 하네. (홍단을 자리에 앉히며) 내가 해주겠네.
홍단, 마지못해 자리에 앉으면 모진이 홍단의 뒤로 가 머리에 비녀를 살며시 꽂아주고는 뒤에서 와락 끌어안는다.
홍단 : (앙탈부리며) 놓으십시오!
홍단과 모진, 서로 끌어안고 장난치며 웃기 시작한다.
공주와 시녀장이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흥분한 공주가 책장의 책을 밀어 책이 떨어지고. 툭 책 떨어지는 소리(E)가 난다.
놀란 모진이 벌떡 일어나 소리 나는 쪽으로 오면 바닥에 서책 한 권과 공주가 들고 있던 떡이 떨어져 있다.
S#44. 감량관 내실
지책사가 정난의 종아리를 때리고, 정난은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는다.
그 모습을 보는 공주의 얼굴이 일그러지다가 스스로 일어나 치마를 들어 올리며 지책사의 앞에 종아리를 내민다.
공주 : 나를 때리거라!
지책사 : (더 세게 정난의 종아리를 치면)
공주 : 내가 맞아야 한다니까!
지책사가 매질을 멈추고 공주를 보면, 공주가 지책사가 들고 있던 회초리를 빼앗아 스스로 자기의 다리를 세게 내리 친다.
공주 : 식탐 하나를 조절 못하는 한심한 인간! 부인 대접도 못 받는 한심한 인간! 나 같은 인간은 살 가치가 없어!
공주의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세게 때리고, 공주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점점 공주의 다리에서 피가 번져 나와 붉은 줄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을 보던 지책사, 일어나 공주의 손을 잡고 말린다.
공주 :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며) 다시는....다시는...몰래 먹지 않겠다.
공주, 지책사의 손을 뿌리치고 나가 버린다.
S#45. 공터
공주가 돌에 앉아 있고, 정난이 곁에 쭈그리고 앉아 공주의 다리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있다.
지책사가 곁에 서서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고 있다.
정난 : 의녀를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흉질까 두렵습니다.
공주 : 필요 없다.
지책사, 정난에게 물러가라 손짓하면 정난이 약을 들고 간다. 지책사가 공주 곁에 나란히 앉는다.
지책사 : 분이 풀리길 원하신다면 이런 힘든 노고 따윈 그만두시고 그의 사지에 말을 달아 찢어 죽이십시오.
공주 마마가 원하시는 것이 그것 아닙니까?
공주 : 그렇지 않다. 반드시 그를 후회하게 만들 것이다. 내게 했던 냉대와 모욕을 돌려줄 것이야.
지책사 : 절실함이 있으시옵니까? 공주 마마의 생명을 걸어도 좋을 만큼입니까?
공주 : 그것은....
지책사 : 그렇지 않다면 그만 두십시오.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분이 스스로 고통을 택하는 것은
목숨을 걸 정도의 절실함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공주 : 단 한 순간이라도 나를 원하는 그를 보지 못 한다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지책사 : (공주를 보며) 정녕 목숨을 거시겠사옵니까?
공주 : 그렇다.
지책사 : (일어서며) 분명 목숨을 걸겠다고 하셨습니다. 일어나십시오.
공주가 일어선다.
지책사가 등 뒤에서 긴 칼을 빼어 들고 공주의 곁에서 조금씩 뒤로 물러난다.
지책사 : 그 자리에 가만히 계십시오.
공주, 겁에 질리지만 이를 악문다. 지책사가 칼끝을 공주 쪽으로 겨눈다.
지책사 : 어떤 경우에도 저를 믿고 움직이지 마십시오. 발끝은 물론 눈동자도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지책사가 칼끝을 공주에게로 겨누고 공주에게 달려든다.
공주의 얼굴에 칼끝이 거의 닿으려고 하는 순간, 지책사가 소리친다.
지책사 : 이제부터 공주 마마는 제가 주는 음식 외에 다른 음식은 모두 구더기로 보일 것입니다. 붉은 해!
칼끝이 공주의 눈 바로 앞에 멈추고 공주는 그대로 바닥에 기절한다.
지책사가 쓰러진 공주를 안아 든다.
S#46. 공주 처소/밤
공주가 눈을 감고 누워 있고, 정난이 곁에 앉아 있다.
공주 : (깨어나 눈 뜨고) 어찌 된 것이냐?
정난이 공주에게 약과를 하나 건네면 공주가 역겨운 듯 고개를 돌린다.
공주 : 구더기가 끓는 음식을 왜 내게 주느냐? 이것도 감량책의 하나이냐?
정난 : 잘 된 듯하옵니다. 마마께 책사님이 행하신 시술은 서역에서 배워온 최면 요법이라는 것입니다.
공주 마마처럼 강한 식탐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그 요법이 힘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공주 : 지책사의 정체는 귀신이냐? 도대체 음식을 먹은 사실은 어찌 알았단 말이냐?
정난 : (빙긋 웃으며) 혈색과 맥이 다르시옵니다. 또...
공주 : 무엇이냐?
정난 : 갑작스레 많은 음식을 먹은 오장에서 소리와 냄새가 빠져나와 음식을 드셨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사옵니다.
때마침 울리는 공주의 방귀소리(E)
공주 : 참고자 했으나 되지 않았다.
S#47. 산속 일각, 돌계단 앞과 산길
공주가 양다리로 계단 하나를 올랐다 내렸다 반복하고 있다. 힘이 들어 땀을 비 오듯 흘리고 눈도 풀렸다.
그만둘까 싶은 공주, 지책사를 보면 계속하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공주, 계단오르내리기를 다시 시작한다.
눈이 풀린 공주가 다리가 꼬여 넘어지고 발목을 접질린다. 발목이 아파 일어서지 못한다.
지책사가 놀라서 다가와 공주 앞에 주저앉는다.
지책사 : 업히십시오.
공주 : (망설이면서)...견디기 힘들 것이야.
지책사 : 상처 부위를 살피려면 서둘러 내려가야 합니다.
공주가 업히자 지책사가 일어서서 걸어간다.
공주 : 다리가 떨리진 않는가?
지책사 : 이 정도 무게도 지탱치 못한다면 사내라 할 수 있습니까? 쌀 한 섬도 지지 못하는 자는 장부가 아닙니다.
공주 : 내가 아직도 쌀 한 섬 무게란 말인가? 이제 좀 줄었나 싶었는데..
지책사 : (피식 웃으며) 절반까지는 아닌 듯해도 조금 줄었사옵니다.
공주 : 진정인가?
지책사 : 예.
공주 : (신이 나서) 어린 시절 아바마마 말고 날 업은 사내는 자네가 처음이야.
지책사 : 앞으로도 다른 이에게는 업히지 마십시오.
공주 : 무슨 말인가?
지책사 : (조금 무안한 듯) 무예에 능통한자가 아니면 허리가 부러질 수 있사옵니다.
공주 : (약간 토라져) 자네, 말이 심하구먼. 당장 내려주게.
지책사 : 다 오면 깨울 터이니 한숨 주무십시오.
공주가 슬며시 지책사의 등에 완전히 기대고 편안히 목을 양팔로 감는다.
S#48. 감량관 마당 일각
공주가 큰 나무를 오르고 있다. 한발 한발 떨어질 듯 위로 오른다.
거미줄에 나비 한 마리가 걸려 날갯짓을 하고 있다.
공주, 조심스럽게 나비를 거미줄에서 떼어 내고 나비가 하늘로 날아오르는데 휘청한 공주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나무 밑에서 지책사가 공주를 받아 안는다.
공주의 무게 때문에 잠시 휘청하지만 곧 늠름하게 중심을 잡는다.
(인서트/ 플래시백)-모진이 공주를 받아 안다가 밑에 깔려 괴로워하던 모습
(현재로) 공주가 지책사의 품에 포옹하듯 안겨, 서로 민망한 눈길로 보다가 떨어진다.
지책사가 나무 밑에 먼저 앉고 공주도 곁에 나란히 앉는다.
공주 : (얼굴에 홍조를 띄우고) 거미줄에 나비가 걸려 있는 것이 안쓰러워...
지책사 : 거미는 굶어 죽어도 안쓰럽지 않으시옵니까?
공주 : 그것은 생각지 못했네.
지책사 : 삼라만상이 모두 그러하옵니다. 인간의 깊이로는 알 수 없는 흐름이 있어 거스르면 거스를수록 엉켜 버립니다.
공주 : 자네는 식견도 남다르고 무예도 출중한 듯 보이네. 내 이번일이 끝나면 자네를 전하께 무관으로 천거 하겠어.
지책사 : 마마의 은혜에 감읍할 따름이오나 저는 한 곳에 고여 있으면 썩어 버릴 놈입니다.
공주 : 이번 일이 끝나면 도성을 떠날 생각인가?
지책사 : 대국으로 떠날 생각입니다.
공주 : (표정이 어두워지며) 다시 보기 힘들겠군.
지책사 : (곁에 있는 노란 들꽃을 하나 꺾어 자신의 주먹으로 안보이게 싸서 공주의 코끝으로 가져가면서) 무슨 향이 나옵니까?
공주 : 농을 하는가? 꽃내음 아닌가?
지책사 : 공주 마마의 성정은 이 작은 들꽃과 같습니다. 비록 꽃이 가려 보이지 않더라도 하늘이 준 꽃의 향은 변치 않습니다.
공주에게 손에 쥐었던 노란 들꽃을 건네면 공주가 받아든다.
지책사 : (일어서며) 이제 달리실 시간입니다.
지책사가 먼저 달려 나간다. 공주가 들꽃을 머리에 꽂고는 뒤를 따라 달려 나간다.
S#49. 산과 들 일각 (몽타주)
-들꽃이 활짝 핀 벌판을 달리는 공주와 지책사
-꾸불꾸불 산길을 달리는 공주와 지책사
-강가를 달리는 공주와 지책사
S#50. 감량관 마당 일각
마당 안으로 들어오는 공주와 지책사의 발이 보이고 헐떡거리는 숨을 고르는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땅바닥에 발목에 묶어 놓았던 모래주머니들이 떨어진다.
몸무게를 재는 진흙 통으로 공주의 발이 들어선다. 진흙이 예전보다 훨씬 조금 내려간다. 아직 공주의 상체는 보이지 않는다.
정 난(E) : 가시지요.
S#51. 폭포
물줄기가 쏴아 소리를 내며 흘러내린다. 물줄기사이로 하얀 소복을 입은 날씬한 공주가 물을 맞으며 앉아있다.
폭포에서 좀 떨어진 곳에 지책사와 시녀장, 정난이 공주를 바라보며 서 있다.
지책사 : 물은 정화의 의미를 지닙니다. 오늘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며 보다 중요한 것은
갑작스런 감량으로 탄성을 잃은 공주마마의 피내에 자극을 주기 위함이니 춥고 아프시더라도 참으시옵소서.
물줄기가 춥고 아픈 공주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S#52. 대전
왕이 용상에 정좌해서 앉아 있고, 김내관이 곁에 서 있다.
중국 전통 복장을 한 중국 남자 한명과 모진이 마주 서 있다.
중국인 : 大哥 你從那裏來 (대가 니종나리래) - (자막) 형님,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모진 : (더듬거리며) 我從百濟王京來 (아종백제왕경래) - (자막) 나는 백제에서 왔습니다.
중국인 : 如今那裏去? (여금나리거) - (자막)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모진 : 아..저...아...왕...
왕 : 그만.
모진 :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면)
왕 : 쯧쯧, 도무지 쓸모가 없구나.
공주(E) : (중국어로-한국어자막) 돌 하나 풀 한포기도 제 각기 쓰임이 있습니다.
중국인 : (중국어로) 삼라만상이 모두 제 각기 쓰임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모진을 보며-일본어로)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이죠.
공주 : (일본어로-한국어자막) 세상에 이유 없이 태어난 생은 없지요.
공주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모두 고개를 돌리면
베일을 덮어써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자태의 공주가 서있다.
왕 : 오, 왔구나.
왕이 일어서고 공주가 모진을 지나쳐 왕과 함께 나간다.
모진 : 저 분이 누구십니까?
내관 : (한심하다는 듯) 아무리 정이 없기로 안사람도 알아보지 못하십니까?
(책을 던져주며) 확실히 숙지하여 다음 물품 교역에서는 제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는 폐하의 어명입니다.
중국인과 김내관이 모진을 비웃으면서 나간다.
모진 : (혼잣말로) 안사람...공주?
S#53. 왕 처소
왕이 공주와 마주 앉아 있다.
왕 : 장하다, 이리 아리따운 여인이 되다니...진정 장하다.
공주 : 모든 것은 폐하의 자비로운 은혜 덕분입니다.
왕 : 지책사에게 후한 상을 내리겠다.
공주 : 아직은 미흡하나이다. 잠시 더 궁에 머물게 해주시옵소서.
왕 : 알았다. 이제 그 놈을 죽일 때가 왔다. 내 그동안 너의 간곡한 청으로 살려 두었으나
아까 봤다시피 여러 모로 살려 둘 가치가 없는 놈이다.
공주 : 처단은 제 손으로 하겠나이다.
S#54. 궁궐, 연꽃이 있는 정자
다과상 앞에 공주와 지책사가 마주보고 앉아 있다. 지책사는 뒷모습만 보인다.
모진이 저 쪽에서 걸어온다. 공주의 달라진 미모를 보고 매우 놀라는데,
공주가 간드러지게 웃으면서 지책사에게 차를 따라 주다 실수인척 지책사의 옷에 차를 흘리고 손수건으로 다리를 닦아준다.
그 모습을 보던 모진이 화난 표정으로 돌아서서 가버린다. 가는 모진의 뒷모습을 공주가 바라본다.
지책사 : 가셨습니까?
공주 : (당황) 알고 있었는가?
지책사 : 눈빛이 흔들리셨습니다.
공주 : 자네를 이용한 것이 노여운가?
지책사 : (찻잔 가져가며) 소신은 마마를 돕기 위해 이곳에 있습니다. 어찌 쓰시는지는 마마의 몫이지요.
공주 : 참으로 간사한 것이 인간일세. 그의 분노가 날 기쁘게 하면서도 한편으론 자네도 화내주었으면 하는 맘이 드는군.
지책사 : 육신은 스스로를 속이기도 합니다.
공주 : 자네는 참으로 모래 같은 사람이구만, 가까이 잡았다 싶으면 그대로 빠져 나가 버리고
빈손이다 싶으면 또 손안에 잡힌 듯 하구만.
지책사가 무심히 차를 마시며 먼 허공을 응시한다.
S#55. 공주 처소/밤
방구석에 새장이 있고 참새 한 마리가 들어 있다.
모진이 방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공주가 들어오다 모진을 보고 멈칫하지만 곧 상석으로 가서 앉는다.
모진 : 이 야심한 시각까지 어디 있다 온 거요? 그자와 함께였소?
공주 : (대답하지 않고 탁자에서 서책을 꺼내 읽기 시작)
모진 : 그동안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했었소. 소식을 물을 때 마다 온정으로 휴식을 위해 떠났다는 대답뿐이었는데
이리 보니 반갑소.
공주 : (서책만 보고)
모진 : 그곳의 물이 좋은듯하오, 처음 육안으로 목도하고 다른 이인줄 알았소, 이제는 누가 봐도 미색이 (O.L)
공주 : (O.L) 대국은커녕 왜국의 말도 익히지 못했다고요?
모진 : (주눅 들어) 그렇소.
공주 : 무예도 출중하지 못하고, 시문 실력도 평범하며, 외지어 또한 재능이 없다면 궁에서 무슨 일을 하실 참 입니까?
모진 : 공주가 권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성심을 다해 하겠소.
공주 : 왜입니까?
모진 : 그야... 그대가 나의 부인이고...(O.L)
공주 : 진정 제가 시키는 일은 다 하실 참입니까?
모진 : 그렇소.
공주 : 내관이 하실 일을 알려드릴 것입니다. 이만 처소로 돌아가시지요.
모진이 일어나 나간다.
공주는 일어나 새장으로 가 참새를 보며 말한다.
공주 : 모진아, 내 너의 날개를 부러뜨릴 수도 고쳐줄 수도 있다. 알고 있느냐?
S#56. 외양간
관복을 벗고 허름한 흰 무명옷 차림의 모진이 외양간의 소똥을 치우고 있다. 곁에 내관이 서서 말한다.
내관 : 이곳의 일은 공주 마마께서 관장하시라는 폐하의 명이 내렸습니다.
우변을 정리하고 우물의 물을 길어 수통에 채워 주십시오. 왕족에게 하사되는 육재료가 나오는 곳이니
각별한 주의를 바란다고 당부하셨사옵니다.
내관이 돌아가고 모진은 화난 얼굴로 삽을 들어 소똥을 치운다.
(시간경과)
모진이 말에게 여물을 주고 있다. 내관이 쟁반에 밥과 나물이 담긴 소찬을 들고 모진에게 가져다준다.
모진 : (받으며 화난) 오늘도 나물뿐이냐?
내관 : 드시고 그릇은 한쪽에 놓아두십시오. (돌아서 가려는데)
모진 : (버럭 소리 지르듯) 도대체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해? 더는 참을 수 없다.
S#57. 공주 처소 밖에서 안
입구에 가느다란 발이 쳐져 있다. 속살이 비추는 얇은 한복을 입고 앉아 있는 공주가 발 사이로 보인다.
공주의 뒤에서 건장한 남자 두 명이 양쪽에 앉아 공주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다.
화난 표정으로 걸어오던 모진, 발 사이로 보이는 아름다운 공주에게 잠시 넋을 빼앗겨 바라보다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온다.
모진 : 이 무슨 해괴한 광경이요? 지아비가 있는 내명부의 여인이 어디 남정네를 처소에 출입 시킨단 말이요?
공주가 손짓하자 남자들이 나간다.
공주 : 폐하께서 윤허하신 일입니다.
모진 : 왕실의 법도가 있거늘 그것이 가당키나 한 말이요?
공주 : 곧 내관이 될 구실 못하는 아이들이지요, 여인네의 힘으로는 뭉친 어깨를 풀 수 없어 폐하께 허락을 얻었습니다.
(차갑게) 앉으십시오. 서방님.
모진 : (앉고) 첫날 밤 부인에게 잘못한 죄 값을 치루기 위해 모욕을 참으며 왕궁마소를 위해 일했소.
허나 더 이상은 못 참겠소. 아무리 폐하의 총애를 받는다 할지라도 지아비를 홀대하는 것이 옳은 일이요?
그 책사 때문이오? 그자가 마음에 드시오?
공주 : 아녀자들이나 하는 투기를 하시옵니까? 우습습니다. (피식 웃고) 이제 첫날밤을 치루실 마음이 드십니까?
모진 : 그날은 내 술이 과해 실책을 했소, 용서하시오.
공주 : (교태 섞인 목소리로) 가까이 오십시오, 서방님.
모진 : (무안하지만 기분 좋게 공주에게 다가가면)
공주 : 조금 더 ...
모진 : (무안한 듯) 아직...해가 지지 않았소...못 보는 사이 담대해졌구려.
모진이 더 가까이 다가가자 공주가 모진의 얼굴로 손을 부드럽게 가져다 대는 척하다 따귀를 세게 때린다.
모진이 뺨을 붙잡고 놀라서 공주를 바라본다.
모진 : 이 무슨 짓이오?
공주 : (차분하게) 홍단이는 서방님의 무엇입니까?
모진이 공주의 말을 듣고 얼굴이 사색이 되어 굳는다.
공주 : 모를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모진 : ....(어찌할 바를 모르는)
공주 : 용서할 요량으로 두고 본 것이 아닙니다. 둘을 한 곳에 묶어 물고를 내는 것 쯤이야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지요.
답해보십시오. 홍단이는 무엇입니까? 아직도 그 아이를 연모하십니까?
모진 : (머뭇대다가) 연모...하오.
공주 : 그렇다면 저는 무엇입니까?
모진 : 모르겠소...달라진 그대가 다른 남자와 있는 것이 싫소. 나도 나를 모르겠소.
공주 : (고개 돌리며) 나가십시오.
모진이 일어나 나가며 뒤돌아보지 않고 말한다.
모진 : 그 아이는 죄가 없소, 모두 내 실책이요.
공주가 그 소리에 주먹을 꽉 쥔다.
S#58. 궁궐 숲길
지책사와 공주가 나란히 걷고 있다.
공주 : 처음으로 그에게 여인이 되었네. 그의 진심도 들었네. 이제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 가는데 왜 이다지도 슬픈지 모르겠군.
지책사 : 사철 푸른 소나무도 단풍나무도 모두 숲의 일부분이지요. 은애하는 마음도 이와 같지 않겠습니까?
공주 : (슬픈) 그래, 그분도 자신의 마음을 어찌할 수 없겠지...나와 같겠지.
S#59. 공주의 정방(淨房, 목욕소)/저녁
공주, 장미꽃잎이 뿌려진 물속에서 목욕 중이다. 시녀장이 시중들고 있다.
잠시 후, 홍단이 통에 담긴 낑낑거리며 온수를 들고 들어온다.
홍단 : 온수를 대령했나이다.
시녀장 : 한 통 더 가져 오너라.
홍단, 나가려는데.
공주(E) : 오래간만이구나.
홍단, 익숙한 공주의 목소리에 놀라 공주를 보면서.
홍단 : (당황한) 공..공주 마마?
공주 : 일이 고된지 수척해졌구나.
홍단 : 많이...변하셨사옵니다.
공주 : 니 덕분이다.
홍단, 공주의 자태를 당혹한 듯이 쳐다보는데.
시녀장 : 어서 온수를 더 가져오지 못할까?
홍단, 문을 닫고 나간다.
S#60. 공주의 정방 앞/저녁
홍단, 문 앞에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시녀장(E) :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언제까지 지체하실 겁니까?
공주(E) :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네.
시녀장(E) : 시간은 충분했습니다. 이제 복수하실 일만 남았는데 왜 지체하십니까? 혹 자신이 없으십니까?
공주(E) : (노여운) 아닐세, 곧 두 사람에게 천형을 내리겠네.
홍단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S#61. 궁궐 일각/밤
홍단과 (8씬의)내관이 마주보고 서 있다.
홍단이 모진에게 받은 백동비녀와 옥가락지를 건네면 내관이 받는다.
홍단 : 통행 패찰을 주시오.
내관 : 이걸로는 구하기 힘들지.
홍단 : 약속이 다르지 않소?
내관 : 시녀가 거짓 패찰로 궁을 벗어나려 할 때는 목숨을 걸었다는 것인데...그대의 목숨 값이 이보다는 더 나가지 않겠소?
홍단 : 알았소, 내일 이 시각까지 좀 더 구해오겠소.
내관 : (씩 웃으며) 긴말에 입 아프니 다음부턴 헛수작 마시오.
S#62. 후궁 처소/밤
자리옷을 입은 왕이 후궁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고, 후궁이 왕의 귀를 파주고 있다.
후궁 : 귀속이 시원하시옵니까?
왕 : (눈을 지그시 감고) 좋구나.
후궁 : 귀가 뻥 뚫리는 재미난 이야기 하나 들어보시렵니까?
왕 : 해 보거라.
후궁 : 몸태가 큰 여왕이 살았습니다. 그 여왕은 나뭇가지에서 다친 새를 구하려다 떨어졌는데
마침 지나가다 자신을 구해준 남정네에게 반해 결혼을 했지요.
그런데 첫날 밤 여인의 큰 살집이 보기 싫었던 남편은 소박을 놨습니다.
자기가 몸태를 줄이면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한 여왕은 정성으로 미색을 가꾸었지요.
그래도 남편은 여왕에게 돌아오지 않았더랍니다. 왜인지 아시옵니까? 그것은 바로 여왕의 시녀와 바람이 낫기 때문입니다.
왕 : (벌떡 일어나 앉아 분노해서) 지금 시녀와 바람이 낫다 했느냐?
후궁 : (끄덕 끄덕) 궐 안에 퍼지고 있는 소문입니다. 폐하도 아셔야겠기에 신첩이 어렵사리 말을 꺼냈사옵니다.
왕이 일어나 나간다.
후궁 : 야심한 밤에 어딜 가시옵니까?
왕 : 한 번 더 그 이야기로 웃음거리를 삼으면 내 너의 목도 함께 치겠다.
S#63. 모진 처소 안/밤
잠이 오지 않는 모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다.
잠시 후 장옷을 뒤집어 쓴 홍단이가 자신의 신발을 품에 안고 급하게 들어와 촛불을 끈다.
모진이 홍단을 보고 놀라자 홍단은 조용히 하라고 손짓하고 모진의 곁에 앉는다.
홍단 : 시녀장의 눈이 삼엄하여 틈을 보기 힘들었습니다. 공주 마마가 우리의 일을 알고 있습니다. 당장 도망쳐야 합니다.
모진 : (차분하게) 알고 있소. 허나 걱정 마시오. 모든 것은 나의 실책이라 말했으니 그대를 해하지는 않을 것이오.
홍단 : 답답한 양반,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 그만하시고 패물과 금붙이를 모으십시오. 당장 궁 밖으로 빠져 나가야 합니다.
금덩이를 주면 나갈 길을 안내하기로 한 내관이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모진 : 내일 공주에게 정식으로 사과하겠소. 성정이 고운 사람이니 흉한 일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오.
홍단 : (일어나며) 살고자 하면 제 말을 들으십시오.
S#63-1. 모진 처소 안/밤
홍단, 나오면 군사들이 포위하고 있다. 놀라는 모진과 홍단.
S#64. 옥사
모진과 홍단이 목에 칼을 차고 각각 다른 옥 안에 갇혀 있다.
떨어진 곳에서 가리개로 얼굴을 가린 공주가 두 사람을 지켜본다.
S#65. 왕의 처소/밤
왕이 앉아있고 공주가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앉아 있다.
공주 : 폐하, 이리 급작스럽게 천형에 처하는 것은 원치 않사옵니다.
왕 : 이제 너의 말을 듣지 않겠다. 궁에 흉흉한 소문이 돌아 왕가의 위엄을 저해하고 있다.
내일 내 눈으로 두 년 놈의 시신을 확인하고 골짜기에 까마귀밥으로 던져 버리겠다. (일어서고)
S#65-1. 대전 앞/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공주가 홀로 머리를 조아리고 앉아 있다.
멀리서 지책사가 지켜보고 있다.
S#66. 대전 앞 뜰
사형 준비가 되어 있다. 망나니가 큰 칼을 들고 이리 저리 춤을 추며 목을 벨 준비를 한다.
S#67. 옥사
모진이 죄수복을 입고 칼 차고 옥 안에 앉아 있고, 다른 쪽 옥사에 홍단도 칼 차고 앉아 있다.
관리 두 명이 문 열고 모진과 홍단을 끌고 간다.
모진 : (겁에 질려)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이요?
관리 : 어디긴 어디요? 저승이지.
겁에 질려 멍한 표정으로 따라가는 모진과 달리 홍단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반항 하는데 관리가 억지로 끌고 간다.
잠시 후 복면 쓴 사내가 그들 앞을 가로 막는데.
S#68. 대전 앞 뜰
사형준비가 되어 있고, 왕도 가운데 옥좌에 앉아 있다. 관리들 도열하여 사형이 집행되기를 기다리는데.
한쪽에서 시녀장이 화급히 뛰어 온다.
시녀장 : 폐하, 공주 마마께서 공주 마마께서(하면)
S#69. 공주 처소
공주가 배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한다. 왕이 들어온다.
왕 : 심한 배앓이를 한다고?
공주 : (아파서 신음하며) 의녀들이 준 약도 침도 모두 효험이 없사옵니다.
왕 : 천형을 집행 하는 날, 갑자기 이 무슨 변괴인가?
내관이 들어온다.
내관 : 폐하, 옥에 갇혀 있던 부마와 시녀가 탈옥했다 하옵니다.
왕 : 엄중한 옥을 어찌 그들이 빠져 나간단 말이냐? 당장 추격대를(하는데)
공주가 양팔로 왕을 꽉 붙잡는다.
공주 : 소녀가 죽습니다.
왕 : (차가운 시선으로 공주를 보며, 내관에게) 나가 있어라.
내관 : (나가고)
왕 : 네 짓이냐?
공주 : (고개 끄덕이고) 오라버니, 못난 여동생을 죽여주시옵소서.
왕 : 내 너를 누구보다 아꼈거늘 어찌 이리도 나를 실망시키느냐?
S#70. 궁 밖 외곽 길
말을 탄 지책사가 멈춰 선다. 뒤이어 모진과 홍단이 탄 말도 멈춘다.
지책사 : (모진에게 서신 하나를 주며) 내일 묘시에 거기 적힌 강나루에 가면 대국까지 안내해줄 것이오.
모진 : 왜 우릴 돕는 것이오?
지책사 : (비단 주머니를 건네며) 나는 단지 심부름꾼이고 이 모두는 지아비를 생각하는 아녀자의 마음이 꾸민 일이니
그리 알고 가시오.
지책사가 말을 돌려 되돌아간다.
S#71. 공주 처소
공주가 창가에 서서 손바닥 위에 앉은 참새를 밖으로 날려 보낸다.
공주 : 가고 싶은 곳으로 가거라, 모진아.
지책사가 그 모습을 보며 앉아 있다. 공주도 지책사와 마주 앉는다.
공주 : 어리석은 나로 인해 제대로 된 보상조차 받지 못했구나.
지책사 : 재물을 얻는다 해도 딱히 쓸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궁을 떠나 사가로 가셔야 하는데 서운하지 않으십니까?
공주 : (방을 돌아보며) 정 들었던 곳이지만, 그만큼 아프기도 했던 곳이지. 한 가지 청이 있네.
나와 함께 사가로 가서 머물러 주게, 무예 하는 제자들을 기르면서 궁 밖의 생활에 적응할 때까지 나를 보호해주게.
지책사 : 대신 저도 청이 있습니다.
공주 : 말해보게.
지책사 : 한 주에 한 번은 혼돈주를 마시며 말벗해 주시겠습니까?
공주 : 이제 산해진미 안주는 대접 못하네.
지책사와 공주가 서로를 보고 따뜻하게 미소 짓는다.
S#72. 강나루 근처/낮에서 밤
홍단과 모진이 탄 말이 멈추고, 모진이 말에서 홍단을 내려 준다.
홍단이 모진의 품에 와락 안긴다.
홍단 : 살았습니다, 살았습니다. 서방님!
모진도 홍단을 꼭 끌어안고 활짝 웃는다.
(시간경과)
모닥불이 켜져 있고, 홍단과 모진이 나란히 앉아 불을 쬐고 있다.
모진이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보석 달린 목걸이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공주(E) : 얼굴도 본 적 없는 어머니가 물려주신 유품입니다.
이 보석을 팔면 대국의 작은 성 하나를 살 수 있을 만큼 귀하고 값진 것이라 들었습니다.
모진의 표정이 어두운데, 홍단은 비단주머니 안의 패물만 보고 있다.
홍단 : (모진 손에서 목걸이를 빼앗으며) 이것과 나머지 패물을 팔면 당분간은 걱정 없습니다.
모진 : 그대는 재물 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는 듯하군.
홍단 : 모르셨사옵니까?
모진 : (다시 목걸이를 빼앗으며) 이는 공주 어머니가 남긴 유품이야, 돌려주어야 할 물건이니
사공을 만나면 지책사에게 돌려주라 할 것이네.
홍단 : (화난) 공주 어머니의 유품이요? 이제와 공주에게 연민이라도 생긴 것입니까?
아니면 미색을 찾고 나니 없었던 애정이라도 생긴 것입니까?
모진 : 무슨 소리인가?
홍단 : 보기만 해도 숨이 가빠진다고 타박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 생각하는 척 하십니까? 역겹습니다.
모진 : (화난) 자네 말이 지나치구만.
홍단 : (목걸이를 빼앗으며) 지긋지긋한 배고픔이 싫어 궁에 왔습니다. 다시 가난하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습니다.
모진 : (다시 목걸이를 가져 오며) 설마 이게 없다고 밥이야 굶겠나? 호사스럽진 못 해도 끼니 걱정은 안 시킬 테니 걱정 마시게.
모진을 노려보던 홍단이 일어서서 뒤쪽으로 간다.
모진 : 어디 가는가?
홍단 : 소피보러 갑니다.
홍단이 가는 척 하다가 뒤쪽에서 (앞서 모진이 선물한) 은장도로 모진의 왼쪽 어깨를 깊이 찌른다.
모진이 피를 흘리며 아파하는 틈에 땅 바닥에 떨어진 보석 목걸이를 얼른 주워 도망친다.
모진 : (홍단의 뒷모습을 보며) 그대가 어찌 나에게... (그대로 기절한다)
S#73. 사가, 공주의 방/밤
아직 정리가 덜 된 방. 지책사와 공주가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공주 : 자네 덕분에 수월하게 거처를 옮겼네.
지책사 : 넓은 궁에 사시다 답답하지 않으시옵니까?
공주 : 몸은 좁은 곳에 왔을지 모르나 마음만은 어느 때 보다 자유롭네.
S#73-1. 공주 처소 일각
모진을 그리워하는 쓸쓸한 공주.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흐른다.
S#74. 숲 속
햇볕 좋은 자리에 공주가 누워 잠들어 있고 지책사가 공주의 몸에 자신의 겉옷을 덮어준다.
지책사, 들꽃을 엮어 꽃목걸이를 만들고 있는데, 갑자기 날아오는 작은 돌맹이.
돌맹이가 날아 온 쪽을 바라보니 한 사내가 도망치는 뒷모습이 보인다.
지책사, 곁에 놓인 칼을 들고 쫓는다.
모진, 허둥거리며 도망치다가 약초주머니를 바닥에 쏟고 넘어진다.
지책사가 모진의 어깨를 잡아채고 목에 칼을 겨누며.
지책사 : 누구냐?
S#75. 내실, 공주의 사가
공주와 지책사가 마주 앉아 있다.
공주 : 떠난다고?
지책사 : 허락해 주십시오. 진작 떠났어야 했으나...
공주 : (한숨 깊게 쉬고) 그래, 바람 같은 이를 잡아 두었으니 답답할 만도 하지. 어디로 갈 셈인가?
지책사 : 대국으로 가볼까 합니다.
공주 : 대국은 백제보다 훨씬 넓다지?
지책사 : 그 분이 궁금하십니까?
공주 : (피식 웃으면서) 혹 자네가 떠돌다 보게 되면 서신이나 보내주시게.
큰 재주도 없는 양반이 무얼 하고 사는지, 아이는 몇이나 생산하였는지.
지책사 : 박하게 살고 있다하옵니다.
공주 : (깜짝 놀라) 소식을 들었는가?
S#76. 움막, 깊은 산 속
수염을 기르고 머리는 산발한 남루한 차림의 모진이 나뭇짐을 들고 마당으로 들어온다.
오른팔만 이용해서 나뭇짐을 놓고 옷에 묻은 먼지를 대강 털고 방안으로 들어서면 방안에 공주가 앉아 있다.
모진이 놀란다.
모진 : (침착한 척 앉고) 이 누추한 곳까지 올 줄은 몰랐소. 이곳은 그대와 어울리지 않는 곳이오니 속히 환궁 하시오.
공주 : 못난 남정네 하나 살리고 궁 밖으로 퇴출 된지 오래입니다.
모진 : 미안하오.
공주 : (옷 꾸러미 하나 내밀며) 궁에 놓고 가신 옷가지들입니다.
모진이 왼팔을 쓰지 못하고 오른팔로만 꾸러미를 받아 풀어본다. 그 모습을 본 공주가 놀란다.
모진 : 불에 태워버리지 뭐 하러 지니고 있었소? (놀라는 공주 잠시 보고) 그대를 아프게 한 벌로 한 팔을 잃었소.
온전치 못한 몸으로 하루 종일 땀을 흘리고 피죽으로 연명하고 있소. 이 모습이 작은 위안이라도 되었으면 싶소.
공주 : 괜히 살려 주었다 생각했습니다. 대국에서 깨가 쏟아지게 살고 있으면 배가 아파 어쩌나 했는데
이리 남루한 행색을 보니 기분이 하늘을 날 듯 합니다.
모진 : 분이 좀 풀렸다니 다행이오. 어질고 덕 있는 공주에게 나는 못나고 한심한 사내였소.
지금 이리 보이는 것이 왜 보이지 않았던지 후회스럽소.
그래도 이제는 좋은 사내도 만난 듯해 마음이 놓이오. 그와...행복하시오.
공주가 휙 일어나 모진을 한번 노려보고 나간다.
모진이 돌처럼 앉아 있는데, 공주가 다시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공주 : (화난) 그 숱한 고초를 겪고도 여인을 모르십니까? 조두만도 못한 양반.
모진 : (당황해서 공주를 보면)
공주 : 끝까지 제 손으로 서방님을 잡아야겠습니까? 한 팔이라도 좋습니다. 어찌 한번이라도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십니까?
모진 : 하오나 공주...나는 죄인이오.
공주 : 죄 값은 몸으로 때우십시오.
공주가 모진에게 입을 맞추면 모진이 당황하다 두 사람 정열적으로 키스한다.
S#77. 마당, 공주의 사가
모진이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서 있다.
공주(E) : 서방님.
S#78. 내실, 공주의 사가
모진이 들어서면, 예전 모습으로 뚱뚱해진 공주가 바닥에 갓난아이를 눕히고 있다.
모진이 등에서 아이를 내려 공주에게 건네면 공주가 받아 안는다.
공주 : 젖을 물려 몹시 시장하니 향이에게 다과를 준비해달라고 전해주십시오.
모진 : 점심 식사를 마친지 반식경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또 드시려 하오?
공주 : (모진을 노려보며) 제 몸이 불어날까봐 걱정되시옵니까?
모진 : 아...아니요. 그리 이르겠소.
모진이 일어나 나온다.
S#79. 마당, 공주의 사가
모진이 걸어가며 긴 한숨을 내뱉고 중얼거린다.
모진 : 더 불어날 것도 없는데 무엇을 걱정 하리오?
(끝)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S#80. 기생집
기생이 된 홍단이 다른 기생과 귀족들 사이에 앉아 간드러지게 웃으며 술을 따르고 있다.
술에 취한 귀족의 금단추를 뜯어 자신의 치마폭에 숨긴다.
S#81. 성주의 성, 중국 어딘가
S#82. 성 안
하인의 안내를 받아 걸어 들어가는 지책사.
하인이 안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비단 옷을 차려 입은 성주(40대 중반, 남자)가 활짝 웃으며 나와 지책사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손으로 안쪽을 가리키면
안쪽에서 중국 전통 옷을 입은 아주 뚱뚱한 성주의 딸(약17세)이 양손에 닭고기를 들고 웃으며 지책사를 바라본다.
S#83. 내실, 공주의 사가/밤
창밖을 향해 서 있는 공주. 공주의 손에 지책사의 죽비가 들려 있다.
죽비를 가만히 보던 공주, 지책사를 생각하며 하늘 저 쪽의 달을 바라본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