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가는 법
탱이가 부엌칼이 안 든다고 내게 갈아달란다.
“응, 그럴 거면 이 기회에 칼 가는 법을 배우면 어떨까?”
“좋아요.”
탱이에게 숫돌에다가 칼을 가는 법을 가르쳐 주면서 이를 글로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왕 하는 김에 우리가 사는 자급자족 삶을 좀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는 것도 좋겠다.
일단 부엌에서 요리를 하던지, 아니면 땔감을 하기 위해 도끼질을 하기 위해서라도 날을 잘 가는 일은 중요하다. 모르면 남에게 의존해야하고 알면 쉽고 그 나름대로 재미도 있다. 날이 잘 선 칼을 쓸 때 오는 만족감, 성취감은 크다. 날아갈 듯한 기분. 또한 날 가는 걸 스스로 할 수 있다면 무척 독립적이고 당당할 수 있다. 그리고 여자나 어린이나 손수 칼을 간다면 그 어떤 포스도 느껴지지 않겠나?
<칼을 갈아야하는 시점을 알기>
낫이나 도끼 또는 대패는 조금 특별할 때 쓰이지만 가장 일상으로 쓰는 건 아무래도 부엌칼이다. 부엌칼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요즘 부엌칼은 대부분 재질이 스테인리스 스틸이다. 쓰는 일은 없지만 날이 잘 망가진다.
먼저 칼이 잘 안 드는 걸 알아야 한다. 우선 느낌이다. 많이 써보면 그 어떤 느낌이 온다. 잘 안 든다 또는 힘이 많이 든다. 그런데 이런 느낌은 날마다 아주 조금씩 차이가 오는 것이기에 칼 가는 법을 알지 못하면 쉽게 느끼기가 어렵다. 칼을 잘 갈수록 몸으로 느끼는 느낌도 더 잘 살리게 된다.
그 다음은 눈으로 보는 법. 칼을 들고 칼등을 잡고 날을 살펴본다. 우선 쉽게 눈에 뜨이는 게 이빨이 빠진 상태. 딱딱한 씨앗이나 뼈 같은 걸 무리하게 힘주어 자르거나 아니면 음식 재료를 다듬을 때 돌 따위와 맞물려 날이 망가지는 경우다. 그 다음은 날이 중간에 조금 휘어진 상태. 이건 좀 유심히 보아야 한다. 이를 구분하는 법을 익히려면 잘 드는 칼과 잘 안 드는 칼 두 가지를 놓고 서로 견주어 보면 쉽다.
그 다음은 아주 미세한 차이인데 눈으로 칼날 전체를 보는 법. 날이 잘 선 칼은 끝이 보일 듯 말 듯 하다. 그러나 날이 무딘 칼은 흰 줄에 가깝게 보인다. 스테인리스 칼이라도 과일이나 산이 있는 채소를 쓸다보면 날이 쉽게 무디어진다. 도마도 중요하다. 우리는 나무도마를 좋아한다. 나무도마라도 오래 쓰면 자연스럽게 날도 무디어 진다.
잘 안 드는 칼을 쓰다보면 사람이 먼저 위험하다. 무리하게 힘을 주게 되고 그러다보면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칼날이 나가게 된다. 여기다가 마음도 크게 작용한다. 마음이 바쁘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칼날을 잡으면 위험이 배가 된다. 보통 칼질하다가 다치는 경우는 위의 것들이 중복되어 나타난다. 마음은 급하고, 칼이 잘 안 들면 결국 몸(손가락)을 베고 마는 것이다. 마음이 급할수록 칼을 가는 명상 또는 기다림이 필요하지 않을까.
<숫돌과 칼 갈기>
우리가 서울 살 때는 천양하우스 같은 데서 파는 칼갈이를 썼다. 동전 같은 생긴 곳에 칼을 넣고 당겨서 가는 방법. 하지만 섬세하게 갈거나 하기는 어렵다. 아무래도 칼은 숫돌에 갈아야 제 맛. 숫돌은 종류가 많다. 크게 입자가 거친 것과 고운 것. #600, #1000 이런 식으로 번호가 매겨져 있는 데 숫자가 높은 게 고운 숫돌. 곱다고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아니면 용도에 맞게 숫돌을 고르면 된다.
숫돌 받침대가 있으면 좋지만 없다면 간편하게 하는 법은 숫돌 아래 젖은 수건을 두는 것. 마찰력에 의해 숫돌을 지탱한다. 숫돌에 칼을 갈기 전에 미리 물에 숫돌을 담근다. 방울이 방울방울 올라온다. 이렇게 5분쯤 두면 된다. 숫돌의 미세한 공기구멍으로 물이 스며야 잘 갈리고 숫돌도 수명이 길어진다.
이제 칼 갈기. 먼저 집중이다. 칼끝에 집중을 하고, 숫돌에 집중을 하며 날이 갈리는 소리에 집중을 한다. 아니, 칼 갈기를 하다 보면 저절로 집중이 된다. 놀라운 명상 효과가 아닐까. 처음부터 완전한 자세를 잡기는 어렵다. 칼을 보면 양 쪽 날을 다 갈게 되어 있는 게 있고 한쪽 날만 갈게 되어 있는 게 있다. 식당에서 쓰는 칼은 대개 단면 칼이지만, 우리 집에서 쓰는 칼은 단면, 양면 다 있다. 과일 칼은 양면이 많다. 이를 알 수 있는 건 칼 양면을 보면 쉽다. 각도가 살짝 들어간 쪽을 갈면 된다. 그 각도로.
이제 칼을 간다. 오른손잡이라면 오른 손에 칼 손잡이를 잡고 왼손으로는 칼등과 칼 중심을 부드럽게 잡는다. 물을 숫돌과 칼날에 한번 뿌리고는 칼을 숫돌에 민다. 밀 때는 힘을 살짝 주고, 당길 때는 힘을 빼듯 한다. 숫돌 아래로 칼이 내려가면서 숫돌 전체를 이용해야한다. 그러니까 똑바로 내려가지 말고 칼 전체를 한번에 갈 듯이 대각선으로 내리듯 한다. 그래야 숫돌도 망가지지 않고 칼도 골고루 갈린다.
얼마나 갈아야하는가. 칼이 망가진 정도나 숫돌입자에 따라 다르다. 칼을 자주 갈아 쓴다면 3분 남짓. 자꾸 하다보면 나름 요령이 생기지 않겠나. 처음에는 잘 가는 것보다 가는 재미를 느끼는 게 중요하다. 칼 가는 소리, 칼이 점점 날이 서는 모습, 부드럽게 칼을 밀고 당기는 몸놀림. 그 어떤 잡념도 뚫고 들어올 수 없는 집중과 몰입.
칼이 어느 정도 갈렸나는 처음 칼이 망가진 걸 아는 것과 반대로 해보면 된다. 그 외는 손가락 끝을 칼끝에 살짝 대고 슬그머니 손가락을 움직여 보는 것이다. 날이 잘 섰으면 까실까실한 느낌이 좋다.
칼 갈기가 다 되었으면 마무리. 이건 오래 전에 바닷가에 갔다가 회칼 파는 분한테서 배운 것이다. 칼을 다 간 상태에서 우리 눈에는 잘 안 보이는 미세한 쇳가루 같은 게 칼끝에 묻어있단다. 이를 없애는 방법은 칼도마 뒤편처럼 나무판 같은 곳에 칼날을 가볍게 한번 문질러주면 된단다. 칼에게도 좋지만 이런 이물질이 음식에 들어가면 안 되니까. 무척 좋은 공부가 되었다.
칼날은 강하기에 반대로 아주 약하다. 날카로울수록 쉽게 망가지는 것이다. 칼을 내 몸처럼 자주 돌보아줄 때 칼은 다시 내 몸을 위해 봉사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