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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0년 5월 5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00505수] 군 지휘관들부터 의식·자세 달라져야
이명박 대통령은 4일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국가 안보태세와 군의 전비태세, 임전태세를 새롭게 가다듬을 것을 다짐하고 촉구했다. 군 출신도 아닌 대통령이 건국 이래 처음으로 전군 지휘관 회의를 주재한 상징성에 주목하는 이들은 단호한 군 개혁 의지로 풀이한다. 그러나 우리는 유례없이 고통스럽고 난감한 천안함 사태를 지혜롭게 수습하고 대응할 과제를 짊어진 군 통수권자의 고심 어린 노력으로 평가한다.
이 대통령은 회의 첫머리 연설에서, 자신과 고위 지휘관들의 책임을 먼저 일깨웠다. 초계함이 침몰해 젊은 병사 46명이 희생되고, 온 국민이 충격과 불안과 고통을 겪은 것을 통렬하게 자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태의 원인이 무엇이든,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아들을 함께 지키고 돌보는 소임을 맡은 이들이 무한한 자괴감과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대국민 고백으로 듣고 싶다.
이어 천안함 사태를 애초 남북관계가 얽힌 국제적 문제로 직감했다고 언급함으로써 처음으로 북한을 지목한 점이 두드러진다. 또 합동조사단이 원인을 규명하는대로 국제 협력을 통해 단호하게 조치하겠다는 다짐은 대응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의미가 크다. 강경한 응징을 외치는 보수세력과 북한의 소행을 아예 부정하는 진보세력은 모두 불만일 수 있다. 그러나 안보와 심정적 차원을 넘어 더 넓은 국익을 생각하는 국민은 달리 방도가 없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인내와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군은 비상한 각오로 의식과 자세를 혁신해야 한다. 특히 안이하고 방만함을 드러낸 고위 지휘관들은 묵묵히 임무에 충실하다 희생된 병사들과 국민에게 엎드려 사죄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 군인다운 자세이고, 군의 혁신을 이루는 길이다. 대통령 직속 안보 점검기구나 안보특보 신설, 긴급대응 및 보고체계 개혁 등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대통령이 군 지휘부의 매너리즘을 질책하면서도, 군의 사기를 해치는 지나친 비하와 불신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뜻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한겨레신문 사설-20100505수] 핵보유국의 선제감축으로 NPT체제 이끌어야
그제부터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리고 있는 핵확산금지조약(NPT) 당사국 평가회의는 올해로 40돌 되는 비확산체제의 분수령이 될 중요한 회의다. 비확산체제는 핵보유국들의 군축 거부,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 등 체제 밖 핵보유국의 등장과 북한·이란의 핵개발 움직임 등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번 회의에서 이런 현실을 낳은 비확산체제의 구멍을 메우지 못한다면, 핵 없는 세상이란 인류의 꿈은 요원해지고 세계는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좀더 튼튼하고 항구적인 비확산체제를 만들어내기 위한 참가국들의 진지한 노력이 요구된다.
의제가 논의된다. 하나같이 간단치 않은 내용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쟁점은 중동비핵지대 설치와 비확산체제 강화다.
검토회의에서 합의됐으나 이스라엘의 반대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비확산체제 강화 역시 핵을 가진 나라와 못 가진 나라 사이에 이견이 존재한다. 미국은 신고 의무와 사찰 접근 등을 강화한 추가의정서를 채택하고 탈퇴 조항을 강화하며 국제원자력기구 구실을 확대함으로써 비확산체제를 강화하자고 주장하지만, 비핵보유국은 이에 앞서 핵보유국들의 감축 의무 이행이 필요하다고 본다. 의무 이행도 않으면서 비확산 요구만 해서는 도덕적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태도로 나오고 있는 점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핵무기 공개 의지 천명 직후 미국 국방부는 5000여기의 핵무기가 있음을 밝혔다. 러시아도 미국과 핵군축에 합의하는 등 핵무기 감축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제는 중국·영국·프랑스 등 다른 핵보유국도 군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들 3개국은 1995년과 2000년 검토회의에서 합의한 핵군축 약속을 지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는 북한이나 이란 등의 핵무기 추구 움직임을 저지하기 어렵다. 비확산은 조약의 다른 축인 핵감축과 함께 가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20100505수] '북한문제=중국문제' 公式, 중국에 害 되는 날 올 것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언론 보도로 공식 확인됐다. 김 위원장은 3일 새벽 5시 17량이 연결된 특별열차로 압록강 철교를 넘어 단둥(丹東)에 도착한 뒤 승용차 편으로 다롄(大連)을 방문해 1박(泊)하고 랴오둥(遼東)반도의 서쪽 진저우(錦州)로 향했다. 최종 행선지는 베이징(北京)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문은 김 위원장이 1994년 아버지 김일성이 사망하고 최고 권력자 자리를 이어받은 후 5번째 중국 방문이다. 김 위원장의 과거 중국 방문은 남북정상회담 사전협의(2000년), 신의주 특구 등 일부 개방정책 시행(2001년), 2차 북핵 위기 진행 중(2004년), 중국 개방 성과 시찰(2006년)에서 보듯 북한의 위기 또는 정책적 주요 전환을 전후해서 이뤄졌다. 김 위원장은 권력 승계 이후 중국을 5번 방문하고 러시아를 2번 방문한 것 말고는 어느 나라도 방문한 적이 없으며, 어느 국제회의에 얼굴을 내민 적도 없다. 북한이란 세습왕조의 창(窓)은 지난 50여년간 중국 쪽으로만 터져 있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북한은 먹고 입고 때고 하는 의식주(衣食住) 문제가 절박해지거나 자신들의 호전적(好戰的) 도발로 국제적 고립이 심화될 때마다 중국에 기대왔으며, 그럴 때마다 중국은 그런 북한에 손을 빌려주었다.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세계가 '북한문제=중국문제'라고 자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번 김정일의 중국 방문 역시 화폐 개혁의 실패로 인한 전국적 민심(民心) 동요와 경제적 침체의 심화(深化), 비료 및 농약 부족과 기후 이상으로 빚어지고 있는 식량난의 악화가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의 방문 시기를 주목해야 하는 것은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좁혀지면서 그 가해자를 찾는 용의선상에 북한의 모습이 너무나 뚜렷하게 떠오르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런 김정일을 받아들여 북한에 경제원조를 약속하고 김정일은 그 대가로 6자회담 복귀를 약속하는 것으로 현 국면(局面)을 덮으려 한다면 전 세계에 다시 한 번 '북한문제=중국문제'라고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천안함 침몰 원인은 사실상 결과 발표만 남겨두고 있다. 주변국들이 외교·안보 전략의 틀 자체를 바꿔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로 인해 던져질 과제는 서해(西海)바다를 함께 쓰는 남·북한과 중국이 핵심 당사자가 되고 미국이 참여하는 '미니 6자회담' 형태를 통해 풀 수밖에 없게 될지 모른다.
중국은 지금까지 북한이 어깃장을 놓을 때마다 중간에서 힘을 발휘하며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였다. 그러나 어느 선을 넘으면 중국은 북한의 무모한 핵실험과 테러를 암묵적으로 묵인하거나 감싸주는 나라라는 '짐'을 지게 될 것이다.
중국이 그동안 북한과 비정상적 관계를 유지해올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지정학적 고민이 있다고 해도 앞으로도 계속 '북한문제=중국문제'라는 상황이 이어지면 세계의 '지도적 국가'를 다음의 국가 목표로 지향하고 있는 중국에 이로울 게 없다. 자신의 보호국(保護國)이 핵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을 두고 보는 나라에 어떻게 세계의 질서를 맡기겠는가. 경제가 파탄으로 갈 것이 명백한 북한에서 앞으로 쏟아져 나올 난민(難民)들은 어디로 향할 것 같은가. 그로 인해 생길 국경의 대혼란을 중국은 감수할 수 있는가.
세계 경제 2위의 대국인 중국이 테러·마약·위조지폐·무기수출·집단수용소·납치 같은 것을 주요 국가 브랜드로 하는 독재국가의 후견인 역할을 하는 것이 국가 이미지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 상황에서 중국은 '김정일 체제를 유지하는 게 도움이 되는가, 변화시키는 것이 도움이 되는가' 하는 근본 문제부터 고민하고 김정일과 마주앉아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00505수] 다문화가정 출신 2년뒤 국회도 진출해야
이번 6·2 지방선거에서는 다문화 가정 출신의 광역의원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한나라당이 비례대표로 공천한 서울시의원, 경기도 의원, 대전시의원 후보 등 3명이 당선권에 들어 있다. 필리핀 출신 자스민, 일본인 출신 이연화, 태국 출신 낫티타씨 등이 주인공이다. 이들이 선거 이벤트 차원의 공천을 넘어서 국내 체류 외국인 110만명을 대표해 실질적인 의정 활동을 해내길 기대한다. 우리도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는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입법 기능을 갖춰야 할 때다.
우리는 그동안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왔다. 이런 민족적 자긍심은 안팎의 시련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스스로를 좁은 틀에 가두는 측면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글로벌시대에 폐쇄주의나 국수주의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국내 체류 외국인들을 따뜻하게 보듬는 포용력은 물론 그에 걸맞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들 가운데 한국인으로 정착한 다문화 가정 출신들에게는 이런 노력들이 더욱 절실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내로 유입되기 시작하던 1992년 김창준씨는 미국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는 한국 교민 사회의 미국 주류 사회 편입에 불을 댕겼고, 이후 미국에서 정치적 위상을 떨친 한국계 미국인들이 줄을 이었다. 외국계 한국인 중에서도 ‘제2의 김창준 의원’이 탄생할 만한 시대적 환경이 조성됐다.
외국계 의원은 2년 전 18대 총선 때 실험대에 올랐으나 무위로 끝났다. 창조한국당이 필리핀 출신 헤르난데스 주디스 알레그레씨를 비례대표 후보로 냈지만 당선권 밖인 7번에 배정했을 뿐이다. 다문화 가정이 엄연한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시스템은 미흡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은 그들이 입법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인도적 차원일 뿐 아니라 국익을 향상시키고 국격을 높이는 길이다. 2년 뒤 19대 총선에서는 국회의원도 나와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0505수] 삼성생명 청약에 몰린 20조원 뭘 의미하나
어제 마감된 삼성생명 공모주 청약에 무려 20조원을 넘는 사상최대의 투자자금이 몰렸다. 공모가격이 11만원으로 액면가(500원)의 220배이고, 공모물량이 888만주나 되는데도 경쟁률이 40 대 1을 웃돌았으니 엄청난 투자열기가 아닐 수 없다.
삼성생명이 초우량 기업인 것은 틀림없지만,이처럼 기록적인 대규모 자금이 쏠린 것은 시중에 여유자금이 그만큼 풍부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결과다. 1인당 최대 10만주인 청약한도를 꽉 채워 신청하려고 55억원(청약증거금률 50%)이라는 거액을 단번에 증권사 창구에 납입(納入)한 개인투자자들도 꽤 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마땅한 투자대상을 찾지 못해 떠도는 단기 부동자금은 610조원을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대표적인 단기자금으로 꼽히는 머니마켓펀드(MMF)와 종합자산관리계좌(CMA)는 각각 83조원과 42조원 수준으로 올 들어 15조원 이상 늘었다. 은행 예금과 채권금리가 연 3%대로 떨어지고,부동산시장마저 시들해지면서 여유자금의 단기 부동화가 고착되고 있다는 얘기다.
자금이 실물경제로 돌지 않고 금융시장에 쌓이면 큰 화근이 되기 십상이다. 자금시장 동향에 대한 보다 면밀한 모니터링과 함께 막대한 부동자금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보고서를 통해 아시아에서 과잉 유동성에 의한 자산가격 거품이 발생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던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00505수] 펀드 환매사태 반성문 쓴 자산운용사들
자산운용사 사장들이 주식형 펀드 환매사태에 대해 반성과 함께 펀드운용에 대한 개선책 마련에 나섰다.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5대 자산운용사 대표들은 지난 3일 회의를 갖고 '펀드시장의 양적 성장 이면에서 발생했던 일부 부작용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투자손실을 경험한 투자자들이 펀드시장에 실망을 느끼고 있는 점에 책임을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펀드운용에서 잘못된 점을 점검해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는 지난 3월 1조1,144억원이 빠져나갔으며 4월에는 3조9,768억원이 유출됐다. 해외 주식형펀드 순유출액도 3월 8,82억원, 4월 1조1,144억원을 기록했다. 환매세가 시간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펀드환매 증가는 여러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우선 증시에 부담이 되고 있다. 자산운용사들이 환매자금을 마련하느라 주식을 내다 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금의 부동화를 심화시키는 것도 문제다. 펀드에서 빠져 나온 돈이 저금리로 은행 등으로 가지 않고 여기저기 떠돌며 단기 부동화 현상을 부추키고 있는 것이다. 삼성생명 공모주 청약에 단 이틀새 10조원이 넘는 돈이 몰린 것도 펀드에서 빠져나온 자금과 무관치 않다.
펀드 환매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손실을 봤던 펀드가입자들이 최근 국내외 증시호조로 원금을 많이 회복하자 일단 돈을 빼고 보자는 심리가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환매를 해도 마땅히 굴릴 곳이 없는데도 돈을 빼는 것은 바로 자산운용사들에 대한 실망과 신뢰저하가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 대표들이 실토했듯 자산운용업계는 양적 성장에 급급한 나머지 투자자 보호와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했다. 손실위험 등에 대한 충분한 설명없는 펀드를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중국 등 특정국가에 대한 '몰빵투자' 등으로 투자자들에 큰 손실을 입히기도 했다. 이처럼 고객보호를 등한시하다보니 운용사들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투자자들이 펀드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펀드환매 사태는 자산운용업계는 물론이고 궁극적으로 증시의 안정적이고 지속적 성장을 어렵게 만든다. 업계의 반성과 다짐이 말로 그쳐서는 안 된다. 전문성과 경쟁력 제고 및 고객이익 최우선을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자금이탈을 막을 수 있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횡설수설/정성희(논설위원)-20100505수] 미래로 가는 시간 여행
아이작 뉴턴과 알버트 아인슈타인에 이어 ‘우주의 비밀에 가장 근접한 물리학자’라는 평가를 받는 스티븐 호킹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68)는 책만 파고드는 공부벌레는 아니다. 옥스퍼드대에 다닐 때는 몸무게가 가볍다는 이유로 조정팀 키잡이를 맡아 일주일에 엿새를 강에서 지냈다. 루게릭병에 걸려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고, 기관지 절제수술을 받아 음성합성기로만 의사표현을 하지만 강연과 TV프로그램을 통해 어려운 물리현상을 쉽게 풀어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다.
▷블랙홀 이론의 창시자인 호킹 박사가 최근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이론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내주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영될 ‘스티븐 호킹의 우주’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인터뷰에서 그는 “다른 별에 외계생명체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접촉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행성에 있는 자원을 고갈시킨 외계인이 떠돌이가 되어 다른 행성을 정복하고 식민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 ‘아바타’에서 자원고갈에 직면한 인류가 판도라행성의 자원을 탐내 나비족을 몰아내려는 설정의 역(逆)상황이다.
▷외계인 존재론에 이어 호킹 박사는 같은 프로그램에서 미래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간여행을 하려면 물체가 빛보다 빨라야 한다. 그런데 빛보다 빠른 물체는 없다. 따라서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호킹 박사는 시간여행이 가능한 근거로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에서의 하루는 지구에서의 1년과 맞먹으며 이때 가속운동을 하는 물체의 주변에서 시간이 느려진다고 설명했다. 다만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원인이 결과에 앞서야 한다’는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부연했다.
▷시간여행은 인간의 호기심과 탐구욕을 무한히 높여준다. 그래서 실현 불가능한 일인 줄 알면서도 수많은 소설 만화 영화가 시간여행과 공간이동을 소재로 삼는다. 호킹 박사도 “과거로 시간여행을 한다면 마릴린 먼로를 만나고 싶다”고 했을 정도다. 어쨌든 그의 시간여행 가능론은 인간의 고정관념 하나를 또 깼다. 미래로 향하는 일이 공상과학(SF)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세계적 석학이 말하고 있으니 그의 타임머신에 한번 올라보고 싶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김남중(논설위원)-20100505수] 방치된 어린이
1942년 8월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거주지역의 한 고아원에 독일 나치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60대의 원장은 아이들이 거칠게 끌려가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는 200여 명의 아이에게 단정한 옷을 차려입게 한 뒤 맨 앞줄에 서서 기차역을 향해 행진을 했다. 소풍이라도 가는 듯했다. 하지만 기차의 종착지는 가스실이 있는 수용소. 원장 자신은 피할 수도 있었지만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그곳에서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사회가 버린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어린이의 아버지’ 야누스 코르착(Janusz korczak)의 얘기다.
안락한 의사의 길을 내던지고 어린이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코르착은 ‘모든 어린이는 사랑 받고 존중 받을 권리가 있다’는 숭고한 정신을 실천했다. 유엔이 1979년을 ‘세계아동의 해’로 제정한 건 코르착 탄생 100주년을 기려서다. 10년 뒤인 1989년엔 코르착의 조국 폴란드가 발의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어린이와 함께한 코르착의 일생이 세계를 감동시킨 결과다.
우리나라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는 소파 방정환이다. 1920년 ‘어린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그는 1923년 5월 첫 번째 어린이날 탄생을 이끌었다. 당시 선언문 골자는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할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였다. 이런 정신은 1957년 ‘어린이는 학대를 받거나 버림을 당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는 해로운 사회 환경과 위험으로부터 먼저 보호되어야 한다’는 어린이 헌장 제정으로 이어졌다.
어린 생명을 보호하려는 행동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동물의 세계에도 어린 새끼들을 서로 돌봐주는 사회성이 존재한다. 야생 코끼리도 그렇다. 사자나 악어가 새끼를 노리고 위협하면 큰 코끼리들은 새끼들을 둥글게 둘러싸서 보호한다. 코끼리 새끼는 3~4세까지 어미가 기르지만 어미가 죽으면 다른 어미 코끼리들이 거둬서 길러준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88회를 맞지만 이날을 맘껏 누리지 못하는 아이가 여전히 많다. 빈곤과 가족 해체로 인해 보호를 받지 못하고 방임(放任)된 어린이가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사회가 방임 어린이의 고통을 방치하면 그 고통은 부메랑이 돼 우리에게 돌아온다. 이웃의 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야생 코끼리보다 못해서야 코르착과 소파에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위원)-20100505수] 미치광이 연기
거짓으로 미친 체해서 위기를 벗어나는 이야기는 역사책을 들추면 숱하게 나온다. 동생인 세종에게 왕위를 넘기려고 일부러 기행을 일삼았다는 양녕대군 이야기도 그중의 하나다. 그가 평복을 입고 궁을 빠져나와 기생집에 드나들거나, 선생 앞에서 개 흉내를 내어 ‘멍멍’하고 짖거나, 사대부집의 부녀자를 희롱했다는 얘기는 드라마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처럼 멀쩡한 사람이 미친 체하는 것을 한자어로 양광(佯狂)이라고 한다. 중국 전국시대 손빈과 방연의 고사에서도 양광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손자병법>을 지은 손빈의 재능을 시기한 방연은 그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양다리를 잘랐다. 손빈은 목숨마저 잃을 위기에서 탈출하려고 미친 사람 노릇을 한다. 그는 웃다가 울기를 반복하고 끊임없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방연은 손빈이 정말 실성했나 떠보기 위해 그를 똥구덩이에 빠뜨렸다. 개처럼 똥을 주워먹는 손빈을 보고 방연은 그제야 그가 정말로 미친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미치광이 연기에 동과 서의 구별은 없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는 부왕(父王)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햄릿이 미친 척하며 기회를 엿본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신화에서도 양광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트로이 전쟁을 앞두고 오디세우스는 참전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미친 체한다. 이런 그를 시험하기 위해 팔라메데스 장군이 찾아오자 밭을 갈던 오디세우스는 씨앗 대신 소금을 뿌리며 미친 체 가장한다.
구약성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다윗이 사울왕의 살해위협을 피해 골리앗의 나라 블레셋의 아기스 왕을 찾았을 때다. 신하들은 적이었던 그를 한눈에 알아본다. 두려워진 다윗은 미친 개처럼 문짝을 긁고, 침을 질질 흘리며 너저분하게 행동한다. 이에 속은 아기스 왕은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사무엘상 21장)”며 호통친다. 양광은 이처럼 인류의 역사만큼 유구하다. 미친 체하는 것은 어쩌면 위기에 처한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유명 비보이그룹 멤버들이 미친 사람 행세해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한다. “환청이 들리고 헛것이 보인다”며 횡설수설해 의사를 속였다는 것이다. 신종 병역기피 수법인 셈이다. 하지만 이를 꾸민 인간의 본성은 전혀 새롭지 않으니 씁쓸하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춘추/편혜영(소설가)-201005050수] 불친절한 매뉴얼
얼마전 컴퓨터를 바꿨다. 순전히 디자인과 브랜드에 끌려 기존에 사용하던 것과 구동 체계가 완전히 다른 컴퓨터를 골랐다. 기능이 뛰어나다니 차차 배워 가면서 이 기회에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버리자고 내심 다짐하기도 했다.
팬시상품처럼 예쁜 컴퓨터를 앞에 두고 흡족해진 마음은 잠시, 익숙한 문서작성 프로그램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라 애를 먹었다. 첨부된 매뉴얼은 각 부위의 명칭이나 기술적 용어는 최대한 복잡하게, 조작법은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어 컴맹인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전자 제품을 사면 포장을 뜯자마자 매뉴얼부터 읽는 쪽이다. 학생 시절에 큰맘 먹고 산 일본산 시디플레이어를 충전한답시고 220V 단자에 그대로 꽂았다가 회복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린 이후로 생긴 습관이다.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망가뜨릴까 봐 겁이 나서, 전원을 켜도 좋다거나 코드를 꽂아도 좋다고 기계에게 허가를 받는 심정으로 매뉴얼부터 읽는 것이다.
매뉴얼이 불친절하다고 생각하는 건 독해력 나쁘고 기계나 컴퓨터에 취약한 나뿐일까? 매번 매뉴얼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이 얇은 종이 부속품이 기계의 사용설명서가 아니라 기계의 내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불친절한 매뉴얼은 내게 활자로 된 복잡한 회로판이나 다름없다. 한 번이라도 기계 내부를 들여다본 사람은, 특히 나 같은 기계치들은, 금방 알 것이다. 사람의 속보다 더 알 수 없고 복잡한 게 기계 속이라는 것을. 기계 내부를 들여다보는 순간, 매일 사용하는 헤어드라이기나 면도기, 라디오나 텔레비전이 나와는 상관없는 외계의 물건으로 느껴진다.
매뉴얼 제작자들은 태어나서 생전 처음 이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주면 좋을 텐데, 평생 이 제품만 사용해 온 사람들이 또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매뉴얼을 제작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친구와 또래 사이에서 은어를 주고받는 기분으로 간소하게 매뉴얼을 제작하는 모양이다.
새로 산 컴퓨터는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는데, 내게로 와서 워드프로세서와 인터넷 검색기로 전락해 버렸다. 이번 원고 마감이 끝나면 인터넷을 검색해 가며,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컴퓨터 활용법을 익혀 볼 생각이다. 매뉴얼은 아무 도움이 안 될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