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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설악에 들다.
-언제:2013.08.17-18(1박2일)
-어디로:미시령 옛길->미시령->화암사->성인대->
양양 송어리->
주전골->용소폭포->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산!
여름 휴가철이 끝나가는 늦여름,지난 주말에
미시령 옛길을 따라
설악산에 들었습니다.
울창한 진녹의 설악산은
미시령 고개를 넘어온 하늬바람과 높새바람이 세차게 불어
무더위에 지친 심신에 청량감을 주었습니다.
미시령 휴게소
인제와 고성의 경계를 이루는 미시령은
해발 고도 826M로 옛부터 진부령,한계령,대관령등과 더불어
태백산맥을 넘는 주요 고갯길이었습니다.
미시령은
짙푸른 동해와 속초 시내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구실을 했고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악인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식수를 보충하고 하룻밤 묵어가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시령터널이 개통되고부터는
미시령옛길을 거쳐 가는 차량들이 대폭 줄어
급기야 폐업을 했고 굳게 잠긴 철문에 갇혀
격세지감을 실감케 합니다.
미시령 옛길을 따라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자동차에 타고도 숨찹니다.
험산준령 미시령의 구불구불 고갯길 아래로 쭉뻗은 터널이 생겨
빠르고 편리한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처지로 전락한 미시령 옛길은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들을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한적했습니다.
아 바람!
땅가죽 어디에 붙잡을 주름 하나
나무 하나 덩굴 하나 풀포기 하나
경전(經典)의 글귀 하나 없이
미시령에서 흔들렸다.
풍경 전체가 바람 속에
바람이 되어 흔들리고
설악산이 흔들리고
내 등뼈가 흔들리고
나는 나를 놓칠까봐
나를 품에 안고 마냥 허덕였다.
-황동규,<미시령 큰바람> 중
황동규 시인의 이 작품이 탄생한 날도
미시령 정상에는 이렇게 세찬 바람이 쉴새없이 불었었나 봅니다.
미시령 고개를 넘어온 거센 바람에 떠밀려
내리막길로 접어들면 속초 시내와
짙푸른 동해의 출렁임을 시원스럽게 내려다 볼 수있고
구불구불한 길 옆으로 하늘을 이고 거센 바람에도
언제나 끄덕없이 요지부동인
웅장한 울산바위가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화암사
신라후기 진표 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절입니다.
남쪽 바로 앞으로 왕관 모양의 예사롭지 않게 우뚝솟은 '수(秀)바위'에서
진표율사를 비롯한 여러 스님들이 좌선 수도를 했다고 전해지는데
바위 꼭대기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은
작은 우물이 있어 그곳에서
기우제도 지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秀바위
화암사 종각에서 바라본 '수바위'
꽃이 핀다는 것은
그리움이 사무쳐 삭는다는 것.
내안의 피가 솟아
터지는 상처같은 것이리.
무엇도 나를 지치게 할수는 없지
오지 않는 그대로 하여
날은 가물고
그래서 불꽃을 피우다
남몰래 잎을 지우지
하나, 또 꽃을 피운다는 건
아직 가슴이 뜨겁다는 것.
만리의 그대까지
거리를 지져대는 꽃 가슴에 살아
붉어 터지는
저 기다림의 상처들.
-김판용,<꽃이 핀다는 것은>
수바위에서 내려다 본 화암사 전경
수바위에서 성인대로 가는 길의 이정표
미시령 고개를 넘어온 높새바람이
진녹의 여름숲 나무잎들의 배를 뒤집어 놓고
어디론가 달아납니다.
고갯길의 매력은 의외의 방향성에 있습니다.
산길을 걷다보면 문득
길들도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을 들곤합니다.
사람은 길을 내고
길은 사람의 운명을 실어 나르며
인간과 자연은 그렇게 서로 소통합니다.
내 언제면 혼자, 친구도 없이,
기쁨과 슬픔도 없이,
오직 만사가 꿈이라는
신성한 확신 하나에만 의지한 채
고독에 들 수 있을까?
언제면 욕망을 털고
누더기 하나만으로 산 속에 묻힐 수
있을까?
언제면 내 육신은 단지 병이며 죄악이며 늙음이란
확신을 얻고 두려움 없이 숲으로 은거할 수 있을까.
언제면 오, 언제면?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열린책들 2000)
화암사 수바위를 거쳐 성인대로 오르는 산길입니다.
성인대까지 약 1.2km의 등산로는
울창한 숲속 나무 사이로 난 흙길로 이어지는데
인적이 드물어 웃통을 벗고 오르니
몸속의 탁기가 싹 빠져나가고 생기가 충전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최승자,(내 청춘의 영원한> 전문
내설악과 외설악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울산바위가 있습니다.
저 웅장한 울산바위 너머에는
향로봉,저항령을 휘돌아 내려온 백두대간이
마등령에 이르러 신선대까지 약 5km에 걸쳐
거대한 공룡이 요동치는 형상의
공룡능선인데 이곳 미시령 성인대에서는
야속하게도 내설악의 숨은 비경을 저 울산바위가
장막을 친 듯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만큼 설악의 '쥐라기공원'에 들어서려면
누구든지 발품을 팔아야 합니다.
요즘엔 돈많은 남자들만 밝히는 된장녀들이
판을 치는 시대이지만 예전 산 좋아했던 여자들은
공룡능선 종주한번 안해본 남자하고는
결혼도 안한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울산바위 너머로 공룡능선의 나한봉과 1275봉이
빼꼼히 머리를 보여주며 그곳을 더욱 그립게 합니다.
산다는 건 어쩌면 등산과 닮았습니다.
오르면 오를 수록 숨이 차오르지만
시야는 점점 넓어집니다.
미시령과 맞붙어 있는 저 광할한 분지의 지역은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 일대입니다.
세계 잼버리 대회가 개최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울창한 숲속으로 그야말로 빼어난 형상의 '수바위'가 인상적입니다.
드디어 성인대에 오르자
사방으로 시원스런 외설악의 진경들이 시원스럽게 펼쳐집니다.
저 상봉과 신선봉 너머는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진부령입니다.
성인대의 너럭 바위에서 바라본 신선봉과 상봉
두목,
돌과 비와 꽃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들은 우리를 부르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들을 수 없잖아요.
두목,
언제면 우리는 귀가 둟릴까요!
언제면 우리는 팔을
벌리고 그들(돌, 비, 꽃, 그리고 사람들)을
안을 수 있을까요?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열린책들,2000)
109페이지에서 옮김.
빈 가슴을
채우고도 남을
한마디를 찾고 싶었다
가슴에
묻어두면
보석이 될 한마디를
길이
내 길을 밝혀줄
종교 같은 말 한마디를
-유안진,<방황>
핏줄 없이도 능히 천년을 견디는 돌들은
그렇다, 영원의 모습은 피의 빛깔이 아니다
뿌리들이 불끈불끈 힘줄 때마다
나무의 키가 하늘로 솟는다
나무는 얼마나 많은 말을 풀어놓아
바람이 일 때마다 노래를 잉태하는가
올려다보는 산은 숭엄하지만
내려다보는 산은 아우 같다
이제 다 왔느냐 물으면
길 없는 길가 비옷나무가 손 흔들어 대답한다
아직도 오름길만 고집하는 내 신발을
나는 꾸짖을 수가 없다
-이기철,<먼길>
시집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민음사)중
성인대에서 바라본 울산바위와 그 옆 달마봉이 보입니다.
울산바위 너머 우뚝솟은 봉우리는 화채봉입니다.
우주로 가는
가장 분명한 길은
야생의 숲을
통과하는 것이다.
-존 뮤어.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이영도/탑(塔)
하늘에 뜬 멋진 흰구름
기분좋은 바람의 감촉...
신선이 머물렀을법한 진경이 펼쳐졌습니다.
왼쪽 봉우리가 상봉이고
그 옆 봉우리가 신선봉입니다.
녹음이 우거진 울창한 수림,
골을 누비던 하늬바람과 높새바람!
무엇이든 용서하고 포용할 것처럼
저 설악의 산 자락은 얼마나 깊고 너른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은 위안이 됩니다.
어제는 언제나 발자국 뒤에만 머물고
벙그는 꽃은 내일이면 진다
사람이 부르다 만 노래를 풀벌레가 부르고
사람이 그리다 만 그림을 구름이 그린다
사람이 짓다가 만 집을 나무들이 완성하고
사람이쓰다가 만 시를 냇물이 읊는다
유리의 나날을 기다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雲門에 기대어 잠시 세상일 몰고 오는 바람 소리
마음 밖으로 밀어내는 일
밀어내어 밀려나지 않는 세상일
이제는 으스러져라 가슴으로 껴안는 일
-이기철,<雲門에 기대어>중
다른 정열,
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 왔던 정열을 버리는 것,
그러나 그것 역시 일종이 노예근성이 아닐까?
이상이나 종족이나 하나님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은?
따르는 전형이 고상하면 고상할 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좀 더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을 벗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건 무엇일까?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열린책들 2000>
32페이지에서 옮김
구불구불 고갯길은 이제 쭉뻗은 터널길로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길이 되었습니다.
빠르고 편리한 터널길을 택하면 결코 만날 수 없는 곳,
느릿느릿 구불구불한 미시령 옛길 위에
외설악의 끝자락의 숨은 비경을 만날 수 있는 '성인대'가 있습니다.
신선대에서 내려다본 수바위와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 일대가 보이고
짙푸른 동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성인대 너럭바위에서 내려다본 속초시내입니다.
델피노CC가 보이고 일성 설악 콘도 옆
학사평 저수지도 물을 한가득 채웠습니다.
울산바위
남한땅에서 제일 아름다운 암봉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오른쪽 봉우리는 '서봉'이라 불리는데
울산바위의 최고봉입니다.
델피노 골프 리조트와 일성 설악콘도 옆
학사평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시원한 동해를 앞에 두고 속초 시내가 평화로워 보입니다.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찌기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더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드메 꽃같이 숨었느냐.
-유치환,<그리움>
거센 바람에 맞서 성인봉 너럭바위에 서자
외설악의 진경들이 눈앞으로 펼쳐집니다.
웅장한 울산바위와 달마봉이 손에 잡힐 듯하고
맘은 벌써 그 너머 내설악과 남설악으로 달려갑니다.
공기가 기울면 바람입니다.
물이 기울면 파도입니다.
땅이 기울면 산,산맥입니다.
마음이 기울면 그리움
그리움이 기울면
당신입니다.
-김용국 시인-<기울음),사랑 시집 <당신의 맨발>
신선들이 노닐었다는 성인대(신선대)에서
올려다본 신선봉입니다.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처절해져야 하느냐.
아직도 추락할 것이 있다면
절망도 끝난 것은 아니다.
더 깊이 낮아져 보아라.
발 아래 깔려 봐야
새로운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임효림,<부활>
바람이 불면 어떠랴
바람이 되면 그 뿐인걸...
외로운 것들은 꺾이지 않고 휘어진다고 누군가 말했다
제 마음속으로 식은 등을 돌리는
나는, 당신은
휘어지고 휘어져 슬픔의 뿌리에 닿아
활시위같이 팽팽한
나는, 당신은
......,
나는 푸른빛으로 기울어진다
-서안나,<푸른빛으로 기울어지다>중.
우리가 오래오래 걷고 싶은 길은
느릿느릿 소들이,뚜벅뿌벅 말들이 걸어서 만든 길
가다가 그 눈과 마주치면 나도 안다는 양 절로 웃음 터지는
그런길,소똥 말똥 아무렇게나 밟혀도 그저 그윽한 길
느려터진 마소도 팔랑팔랑 나비도
인간과 함께 하는 소박한 길
그런 길이라네
-허영선,<우리가 걷고 싶은 길은>중
양자는 갈림길을 보고 울었다.
남쪽으로 갈 수도 있고 북쪽으로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묵자는 하얀 명주실을 보고 울었다.
노란색으로도 검은색으로 물들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회남자淮南子
성인대
미시령 고개를 넘어온 높새바람이
동해를 향해 줄달음치는 길목에 성인대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일대의 나무들의
굴곡진 삶은 경이롭게 다가왔습니다.
주전골 선녀탕
몇 년전 수해로 예전의 신비스런 자연미를
많이 잃어버려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윽하고 수려했던 주전골은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인위적으로 설치한 철계단만이 주변 경관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행락객들로 북적이는 평범한 유원지 계곡으로
전락한 느낌이었습니다.
용소폭포
나무의 생애는 사람과 많이 닮았습니다.
첫발을 디딘 자리에서 먼길을 살아갑니다.
생을 향한 나무의 자세는 사람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치열한 생존의 흔들림 속에서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가며 하늘을 우러르고 살아갑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귀가 길 교통 체증으로 들른 원대리 자작나무 숲
너무 늦은 시간에 찾아 빛이 부족하여 사진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자작나무
이번 설악산행은
우리 카페 회원이신 김용국 시인의
양양군 송어리 조침령 아래 텃밭 딸린 농가
집필실을 찾아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김용국 선생님은
올 해 교편을 내려놓으시고 현재 양양과 서울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계셨습니다.
손수 농사지으신 감자와 시집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용국 사랑시집 '당신의 맨발'(문학의전당,2005)
글,사진:윤선한
언제나 미록微祿에 목을 적시고
산으로 돌아가 박전薄田을 살 것인가.
-두보(712-760)
-끝.
첫댓글 설악을 제가 다녀온 마음 입니다.이젠 이름도 가물가물 합니다.일곱번 가 본 대청이지만....
가보지 못한 그곳을....................구경 잘 했습니다....
ㅎㅎ 언제나 멋지십니다.. ^^
설악!!!!! 절경입니댜 ^^
용대리 자작나무 숲.....참으로 멋진곳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