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설명
성령 안에서 우리가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특권을 얻었다,
30절에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과 도 아무도 주께 여쭐 필요가 없는 것을 이제야 우리가 확신하나이다,.. 주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셨음을 우리가 믿나이다, ,,
32절은 ' 너희가 흩어지되 각각 자기 길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버려둘 때가 오나니,,
성경 탐구 연구의 진짜 목적이 심오한 진리를 깨닫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 하나님 아버지를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성경공부를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면 유익보다 해악이 될 수 있다,
구하는 기도의 태도는 아버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해 기꺼이 주시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신뢰하는 것이 본질이다,
성경공부나 성경을 읽고 지식이 늘어날 때 해악이 되는 방향은 위험하다,
1,지식적 교만과 바리새인적 영적 부패 (Spiritual Pride)
*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관계)로 나아가지 않으면, 그 지식은 고스란히 '자기 의(Self-righteousness)'와 '교만'으로 쌓이게 된다.
* 해악인 이유:성경 지식이 늘어날수록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사랑하고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성도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날카로운 칼이 된다.
*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이 바로 성경을 가장 많이 읽고 연구했지만,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몰라보고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다.
지식만 비대해진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강력한 걸림돌이 된다.
2. 살아 계신 하나님을 '교리적 상자'에 가둠 (Intellectualism)
성경 공부의 목적이 아버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깊은 신학적 진리를 깨닫는 것' 자체에 머물면, 하나님을 예배의 대상이 아닌 '연구 대상'으로 전락시키게 된다.
해악인 이유:하나님을 내 지식과 교리의 좁은 상자 안에 가두어 버린다. 그러면 삶에 진짜 환난이 닥쳤을 때, 살아서 역사하시는 아버지를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릿속의 신학적 논리만 따지다가 쉽게 낙심하고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된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는 편지인데, 편지 글씨의 서체와 문법만 연구하느라 정작 그 편지를 보낸 아버지의 하트(Heart)를 잃어버리는 우를 범한다,.
3. 종교적인 '위선'과 '착각'에 빠뜨림 (Self-Deception)
성경을 많이 알고 읽는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이 '신앙이 좋다'는 착각을 심어준다.
해악인 이유:본문 29~30절에서 제자들은 "이제야 우리가 다 아나이다, 믿나이다"라고 호기롭게 고백했다. 지식적인 동의가 마치 실제 삶의 믿음인 줄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위기(환난)가 오자 다 도망쳤다. 아버지를 아는 친밀함이 없는 성경 지식은 위기의 때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종교적 껍데기'를 만들 뿐이다.
성경 공부의 목적은 성경 박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한 자녀가 되도록 법을 익히는 것이다,
* 문맥 설교
요16:25
내가 이 일들을 비유로 너희에게 말하였으나 때가 오면 내가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아버지에 대하여 분명히 너희에게 보이리니
* 때가 오면 ---> 진짜 말씀이 명백해지는 역사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보내실 '성령 하나님'을 통해 완성될 것이었기 때문이다.제자들의 영적 눈이 열리는 시점은 주님의 육신적 가르침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들 마음에 임하실 때다."
* 아버지에 대하여 분명히 너희에게 보이리니 -----> 예수님은 내가 분명히 너희에게 보이겠다' 말씀 하셨는데 실제로는 성령님을 보내셨다, 이것은 성령님의 가르침이 곧 그리스도 자신의 가르침이다, 삼위일체 경륜 안에서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 하신다,
* 오늘날 성령님이 기록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모든 가르침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친히 말씀 하시는 것과 같다,
*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모두 보여 주시겠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것은 성령님의 조명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성경 기록을 탐구하는 것은 지식의 목적이 아니라 아버지를 인격적으로 알아 간다는 것이다,
26 - 그 날에는 너희가 내 이름을 구하리라, 내가 너희를 위해 아버지께 기도하겠다고 너희에게 말하지 아니하노니
27 -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고 또 내가 하나님으로 부터 나왔음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
* 내가 너희를 위해 아버지께 기도하겠다고 너희에게 말하지 아니하노니 ----> 이유: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 온 우주의 통치자가 이제 우리 친아버지가 되셨다는 선포이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귀를 기울이고 계시는 아버지를 마주하는 것이다,
*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영원한 영적 길이 바로 아버지의 친밀한 사랑을 확신하며 대화하는 기도의 특권이다,
*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자녀의 특권을 주셨다,
28 - 내가 아버지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어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라,
29 -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 이르되, 보소서, 이제는 주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도 말씀하지 아니하시니,
30 -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과 또 아무도 주께 여쭐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제야 우리가 확신하나이다, 이것에 의해 주께서 하나님으로 부터 오셨음을 우리가 믿나이다, 하매,
* 제자들의 깨달음 ----> 제자들의 이 깊은 혼란을 단 한 문장으로 종식시킨 구절이 바로 바로 앞 절인 28절이다. 주님은 *"내가 아버지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라고 아주 선명하게 목적지를 밝히셨다. 이 선언에 더 이상 그 어떤 모호함이나 애매함도 없다. 제자들은 주님의 이 직접적인 설명에 매우 만족하며 확신하였다,
* 이 순간 제자들은 커다란 영적 착각에 빠졌다. 그들은 주님의 '목적지(아버지께로 가심)'라는 지식적 사실을 이해하자, 자신들이 십자가의 깊은 영적 진리와 다가올 시험까지 다 감당할 수 있는 대단한 믿음을 가졌다고 착각한 것이다.
지식적으로 이해한 것과, 그 말씀을 삶의 환난 속에서 살아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제자들은 이제 다 안다고 자만했지만, 주님은 그들이 몇 시간 뒤면 주님을 버리고 도망칠 연약한 존재임을 알고 계셨다."
31 -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 보라, 너희가 흩어지되 각각 자기 길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버려둘 때가 오나니 참으로 이제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
*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 제자들의 마음을 살피신다 :
제자들은 스스로 ‘어떤 시험도 견뎌낼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졌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이 곧 그 믿음을 완전히 바닥부터 시험하게 될 참혹한 현장(예수님의 체포와 십자가)을 통과해야 하며, 그때 필요한 것은 자신만만한 장담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뿐임을 알려주신다.
* 너희가 흩어지되 각각 자기 길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버려 둘 때가 오나니 -----> 제자들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보고 "주님의 사역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처럼(눅 24장), 그리고 부활 이후 갈릴리 바다로 돌아가 다시 고기를 잡던 제자들처럼(요 21장), 주님을 만나기 전의 과거의 삶, 원래의 생업, 인간의 절망적인 처소로 돌아가 버렸다.
* 그러나 내가 혼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 ----> 모두 떠나고 홀로 남을지라도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신뢰를 보여 주셨다,
* 세상 모든 사람이 우리를 버릴지라도, 고통과 죽음의 순간에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그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확신하는 그리스도인은, 비록 가난하고 버림받고 멸시당할지라도 해악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죽음의 순간에도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의 위로를 받으며 "내가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가 나와 함께 계신다"라고 외치며 죽을 수 있다.
33 -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화평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할 것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하시니라,
* 내 안에서 화평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세상 환경이 평안할 때 주어지는 화평을 말씀하지 않으신다,
* 바로 뒤에 환란이 올 것을 예고하시면서도 화평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 화평의 위치가 오직 ' 내 안'이기 때문이다.
*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할 것이나 -----> 환난은 옵션이 아니라 팰연이다, 예수님은 환난을 당할 수 있다'가 아니라 '당할 것이다' 라고 단정하셨다,
* 세상은 여전히 공중 권세 잡은자 아래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체제이다, 세상에서 환난은 당연하게 오는 일이다,
*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은 우리를 미워한다, 요15:19, 환난은 우리가 그리스도에 속한 위치라는 것이 증거이다,
* 기운을 내라 -----> 이 명령은 단순한 긍정의 힘이 아니다,
* 승리의 근거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있기 때문에 담대하고 확고한 명령이다,
*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 I have overcome the world. 현재 완료형이다,
*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을 이길 것이다, 이기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말씀 하지 않으셨다, 이겼다'는 것이다,
*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결정적 사건은 아직 몇 시간 뒤 미래에 일어날 일인데 주님은 마치 이미 완전히 끝난 과거의 일처럼 선포 하셨다, 하나님의 구속계획과 영원한 경륜 속에서 사탄과 세상의 패배는 이미 확정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 원어와 와 영어의 현재완료형 모두 과거, 현재, 미래 모두 영원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 2,000년전 과거에서 끝나 버린 사건이 아니다, 현재 계속 이기는 상태도 아니다, 앞으로 이겨 나갈 상태도 아니다,
* 종교와 복음의 차이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You must overcome' 너희가 세상을 이겨야만 한다'는 법을 주시지 않았다,
* 이미 이겨놓았다' 완료된 사실을 주셨다,,
* 은혜의 경륜 속에서 성도의 싸움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주님이 끝내신 승리를 지키고 누리는 싸움이다,
* 종교 시스템(율법주의)이 인간을 조종하는 방식은 "너희가 노력해서 이겨야지, 주님은 길만 열어주셨다"라고 속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