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초에 문을 연 충주 조동리 선사유적박물관은 한반도 중원지역의 다양한 선사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충주 조동리 일대 남한강변은 구석기와 신석기, 청동기를 비롯한 선사시대 유물이 발굴된 지역. 이곳 충주지역에 위치한 선사유적박물관은 선사시대를 살았던 과거 우리 조상들의 삶과 그 흔적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한 탐색형 전시관으로 꾸며졌다.
1층에 들어서면 벽면에 조동리 유적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모습을 그래픽으로 표현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과거 선사인들의 생활상을 주된 테마로 한 1층 전시실은 우리나라 선사문화 유적지와 중원지역의 선사문화, 조동리의 선사유적지를 단계별로 살펴볼 수 있도록 꾸몄다.
전체적인 한반도 선사문화를 살펴본 후 남한강 유역과 금강 유역 등 중원지역의 선사문화를 알아보고 조동리 일대의 선사문화를 알아가도록 한 것. 조동리인의 생활상 코너에서는 움집 안에서 생활하는 조동리인들의 모습을 실제 크기의 모형으로 만들어 재현해놓았다.
이 밖에 주거·농경·예술 등 각 분야에 걸친 조동리인들의 생활유물이 전시돼 있으며 이들의 생활상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된다. 2층은 쌀문화 전시실로 벼의 기원과 종류를 비롯해 우리나라 쌀문화의 역사를 짚어보는 공간.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농경생활의 변천과정을 알아보고 조동리 지역과 타지역에서 출토된 곡물을 비교해볼 수 있다.
*선사유적지 남한강변의 충적대지에 위치한 선사시대 대규모 마을유적으로 신석기·청동기시대의 문화층이 잘 보존된 곳이다. 신석기시대의 문화층에서는 빗살무늬토기가 많이 출토되었으며 청동기시대 문화층에서는 민무늬토기 외에 집터, 불땐자리, 움, 도랑 등의 다양한 생활유적이 드러나 많은 사람들이 취락을 이루며 생활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출토유물로는 각종 토기류와 화살촉, 돌도끼, 대패날, 그물추, 가락바퀴 등의 석기류가 나왔고 쌀, 보리, 밀 등의 곡물과 복숭아 씨앗, 도토리 등이 나와 당시의 식생활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유적지로서 충주지역의 신석기·청동기시대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박물관 뒷이야기
이 작은 마을이 세인의 주목을 끈 것은 내륙 중부권의 최대 신석기, 청동기 유적이라는 점이다. 바다가나 큰 강가를 중심으로 발달한 신석기 문화가 이렇게 깊은 내륙에서 꽃 피웠다는 사실은 누구도 몰랐었다. 심지어 1982년 충주댐 수몰지구 문화유적 발굴조사 당시에도 조사대상 목록에 오르지 못했던 곳이다.
이곳은 사람이 찾아낸 것이 아니라 남한강이 찾아낸 유적이다. 1990년 홍수 때, 남한강이 범람하여 조동리를 덮쳤는데 그때 허태행 씨의 밭에서 빗살무늬토기, 그물추, 돌도끼, 돌칼 등이 강물에 밀려 쏟아져 나왔다. 주민의 제보를 받은 충북대박물관은 현장에서 유물 4백여 점을 수습하였는데 이중에는 구멍무늬토기, 겹입술토기 등도 수습됐다.
곧이어 충북대 이융조 교수(고고미술)는 현장을 답사한 바 타제돌도끼. 돌날격지, 몸돌 등 신석기 및 구석기 유물을 다량 수습했다. 타제 돌도끼 26점은 세립질 화강암을 돌감(재료)으로 하여 만들었고 찌르개, 뚜르개, 말 이빨, 뼈 연모 등 구석기 유물도 널려 있었다.
5만 년 전, 중기구석기에 해당하는 르발로아식 몸돌도 출현했다. 몸돌을 돌려떼기를 하고나면 마치 거북 등 모양의 형태가 남는데 이를 르발로아 식 몸돌이라 한다. 5만 년 전 중기구석기부터 1만 년 전 중석기를 거쳐 6~7천 년 전 신석기, 그리고 3천 년 전 청동기가 차례로 드러난 표준유적임이 밝혀진 것이다.
청동기 시대의 치레걸이 구슬과 화살촉이 나온 것도 주목할 만하다. 활석으로 만든 치레걸이(목걸이)는 가운데 구멍을 뚫었고 점판암으로 만든 화살촉은 끝부분에 구멍을 뚫었다. 화살촉은 사냥용이나 전투용인데 이처럼 구멍을 뚫어 장식용 또는 호신용으로도 사용했던 것이다.이 유적은 발굴조사에서 예상대로 그 진가를 드러냈다. 수많은 유적 유물이 퇴적층 아래 켜켜이 쟁여있으면서 선사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중에서 손잡이가 달린 붉은 간토기(紅陶)와 안경 식 화덕은 매우 인상적이다. 붉은 간토기는 붉은 색의 유약을 토기 표면에 칠한 것인데 이는 영생과 사악함을 쫓는 벽사의 의미를 띠고 있다. 황석리의 붉은 간토기는 항아리 형이나 이곳에서 나온 것은 술잔모양의 토기다. 전체 높이는 10cm가량 되는데 굽다리 부분에 손잡이가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모래밭에 꽂아두고 사용했거나 제례용으로 보인다.
안경 식 화덕은 말 그대로 안경 모양의 화덕을 만든 것이다. 강자갈을 이용하여 타원형의 쌍둥이 화덕을 만들어 놓아 연결하였다. 그 자세한 이유는 알 길이 없으나 아마 열의 전도를 쉽게 하고 온도를 높이려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유적에 선사유적박물관 들어서 일반에 공개되었다. 처음에는 유적이 밀집돼 있는 탑평리7층석탑 부근에 박물관을 지을 방침이었으나 유적의 현장성을 강조하기 위해 현장에 선사박물관을 건립한 것이다.
첫댓글요새 옛유적 박물관도 체험위주로 다시 재정비 되고 있습니다. 과학박물관은 물론이고 국립박물관도 어린이 박물관을 별도로 설립하여 체험위주의 교육을 하고있는데 충주박물관이나 조동리 선사유적 박물관은 그저 보고 설명 읽는데 그쳐 아쉽기 그지 없습니다. 아이와 박물관 투어를 하다보니 사실 박물관은 어른이 아닌 아이시절 더 많이 찾는다는 걸 느끼겠더라구요.. 조동리 박물관도 야외에 유적 발굴 체험실등을 꾸며서 직접 아이들이 해보는 것이 어떨까.. 아쉬움이 많이 남았답니다.
첫댓글 요새 옛유적 박물관도 체험위주로 다시 재정비 되고 있습니다. 과학박물관은 물론이고 국립박물관도 어린이 박물관을 별도로 설립하여 체험위주의 교육을 하고있는데 충주박물관이나 조동리 선사유적 박물관은 그저 보고 설명 읽는데 그쳐 아쉽기 그지 없습니다. 아이와 박물관 투어를 하다보니 사실 박물관은 어른이 아닌 아이시절 더 많이 찾는다는 걸 느끼겠더라구요.. 조동리 박물관도 야외에 유적 발굴 체험실등을 꾸며서 직접 아이들이 해보는 것이 어떨까.. 아쉬움이 많이 남았답니다.
돌보습, 돌괭이, 민무니토기등 이름에 관한 설명과 주로 무엇을 하는데 썼을까? 하는 의문에 간단한 설명을 곁들여 놓았더라면....아쉬움이 남습니다.대부분 어른위주의 설명이라 아이들은 그림만 보고 지나가기 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