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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회장님 촬영 내용 (불가능 하신 사항 있으면 말씀 해 주세요!)
촬영 시기 : 10월 10일 월요일(내일)
10월 14일 금요일, 총 이틀 정도
# 회장님은, 희영이 실종 당한 후,
희 영이가 실종당한 시기는 실종아동보호법등이 없었고 미아보호법이라고 하여 만 8세까지만 특별히 관리 보호하였고 그 나머지는 아이가 소식이 없어 신고를 하여도 3일 동안을 기다리다가 소식이 없으면 실종사건으로 간주하고 늦장 수사를 시작 하였다. 아이가 실종되고 3시간이면 생사가 가름하는데, 3일 동안 방치하다 보니 장기실종사건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후 2005년에 실종아동보호법등이 만들어 지면서 실종아동사건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수사하면서 실종사건이 급격히 줄었다.
2005년 이전엔 실종법이 없어서 정확한 통계가 없어서 알 수 없다. 그러나 2000년부터 2005년 사이와 2005년부터 현재까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종아동보호법등이 만들어 지긴 하였으나 실종아동보호법이 아니라 부모가 아동을 찾는 법으로 만들어 지다보니 실종아동보호법이 반절짜리 법이었다.
아이가 부모를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다. 실종신고나이로 되어 있다 보니, 실종된 아이가 집근처에서 놀다가 울고 있는 것을 보고 파출소에 데려다 주면 미아보호소에 보내지게 되고 며칠 사이에 부모나 가족하고 연락이 안 되면 시설(고아원)로 보내지게 된다. 시설에서 청년이 되어 부모를 찾고자 하지만 신고할 때 나이가 14세 이상이라는 이유로 실종아동이 아니라 가출인이라 DNA를 채취를 할 수 없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아동으로 발견되어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도 많이 있다. 그 아이들이 부모를 찾고자 하지만 이 역시 실종아동이 아니기 때문에 DNA를 채취 할 수 없다. DNA없이는 가족을 찾을 수가 없는 현실 때문에 그간 입양과 관련하여 정부가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가족을 찾고자 찾아주겠다고 많은 단체들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들 단체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정부와 공유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 오히려 가족을 찾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더욱이 그 동안 심각한 것으로는 경찰에서도 2005년도 14세 이상이면 실종되었던 아이들이 모두가 가출인으로 관리하여 오면서 가출인 경우는 수사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수사하지 않았던 것이다.
2005년도에 실종아동보호법등을 만들어 지는 시기에 수고한 가족들이 있습니다. 사단법인 실종아동찾기협회 이사로 활동 중인 도연 어머니, 성길 어머니, 소희 어머니 등이 있다.
2007년도에 실종아동인권찾기협회협회 박철근교수와 제가 감사로 활동 중 박혜숙회장의 문제가 발견되어 문제점이 있어 바로 잡아 가고자 시정조치를 내렸더니 2008년 5월에서 8월 사이에 본 협회 이사나 감사의 동의 없이 공문서를 위조하여 박 혜숙 개인 협회로 전환하였다.
이 문제를 안고 2년 동안 활동 하던 결과 2010년 2월 16일자로 복건복지부산하단체로 사단법인 실종아동찾기협회로 승인되었다. 승인받고 실종아동 성장 얼굴을 미국MCNEC에 연락하여 성장얼굴을 그려오고 있고, 두 번째 실종아동수사를 안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확인하다가 실종아동들이 2005년도에 14세 이상 아이들이 가출인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참고로 가출인은 수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 동안 수사하지 않고 관리만 해왔던 것입니다.
실종아동기준을 가지고 그 동안 경찰에 민원을 제기했고 간담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제기한 결과 실종아동보호법등 문제점을 인정한 경찰은 실종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법 개정을 추진하여 금년 8월 말경 윤석용의원께 위 같은 사실을 알리고 추진하여 지난 8월에 의원법으로 발의하여 실종신고당시 나이가 아닌 실종당시 나이로 개정되었다.
그런 법안은 내년 2월에 그 동안에 가출인으로 관리되어 오던 모든 실종아동들이 실종아동으로 바로 잡아진다.
실종가족들의 실종된 아이나 가족을 찾아다니다 보니 거의 경제적으로 어려움 속에 파탄에 이르렀다. 경제적 어려움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어려움까지 겹치게 되면서 누군가가 가족들을 이끌어 주지 않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 가족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않으면 가족들은 스스로 지탱할 힘들이 없다. 실종가족을 둔 사람 외에는 알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같은 입장에 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늘도 연구하고 노력하며 실종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실종은 실종된 아동을 둔 부모와 실종가족들만의 일이 아니다. 그간 실종가족들의 아동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였기에 오늘날 실종보호법등이 만들어졌고 어린이들을 보호하도록 하는 법이 만들어 졌기 때문에 대한민국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여러분들이 알아야 한다. 실종아동보호법등이 만들어 지지 않았다면 여전히 등하굣길에 불안에 떨어야 했을 것이고 이번에 누구 차례가 될지 알 수 없을 실종으로 불안해했을 것이다. 이 같은 법이 만들어 지고도 2005년 이후에만도 40명 정도가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 월요일 촬영 내용
- 희영이 이야기 : (혹시, 댁에서 촬영이 가능한지요?)
희 영이 잃어버렸을 때 당시 상황, 오후에 2시 반경에 학교에서 돌아온 희 영이는 책가방과 옷을 할머니 집에서 갈아입고 티셔츠에 슬리퍼를 신고 집 근처 놀이터에서 친구들하고 놀다가 귀가시간에 귀가하지 않아 이모가 놀이터와 학교 가까운 친구들에게 확인된 내용으로는 오후 5시경까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친구들은 먼저 집으로 돌아왔고 놀이터에서 가장 집이 가까운 희 영이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실종당일 부모나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찾아다니는 방법밖에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어 경찰에 전화로 신고하였지만 경찰에선 우선 기다리라는 말만 하기에 당시 파출소로 쫒아갔다. 아이가 없어졌는데 찾아줄 생각은 안하고 기다리라니 무슨 말이냐고 따지고 묻자 법으로 3일 동아 기다리다가 귀가하지 않으면 수사한다는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어 뜬 눈으로 날을 새고 다음날 동이 트기도 전에 희 영이가 갈만한 큰댁들과 여기저기 연락을 해보았으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조급해진 마음에 전단지와 현수막을 제작하여 학교근처와 집근처 놀이터를 중심으로 단서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런 제보가 없었다. 남원시내와 근교에 전단지에 사진을 부착하여 전봇대 부착하는 방법과 현수막을 도로에 걸며 찾아다녔지만 이 역시 결정적인 제보가 없었고 자식을 실종당한 가족들에게 가슴 아프게 하는 장난 제보들도 종종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희 영이를 방송을 통해 찾기로 하고 방송국 섭외하였다. 이 역시 국영방송인 KBS는 쉽지 않았다. 결국 MBC방송국에다가 부탁하여 실종 다음날 오후5시 뉴스시간에 방송되자 경찰에 늦장수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수사가 시작된 시간은 이미 늦은 밤이었고 3일째 되던 날 본격적인 수사는 시작되었지만 아이에 대한 단서나 증거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 후에 방송을 본 시청자들의 많은 제보가 있었으나 직접적인 단서서 증거가 될 만한 내용이 없이 오늘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희 영이와 함께한 짧은 십년동안이 사업을 하면서 고난과 고통에 세월도 있었지만 그래도 넉넉한 살림에 부족한 것 없이 원하는 것은 다해주었던 것만 기억된다. 당시 남원은 특산품이 목기와 밥상을 생산하였다. 목기는 가내공업이었고 밥상공장들은 꽤 규모가 있었다. 밥상공장을 경영하며 승승장구를 하던 때 공장화재로 인해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서 형님들의 도움으로 3년 만에 재기하여 공장을 조카에게 맡기고 모래채취 하는 골재사업과 관광여행사를 인수하였고 여행사를 경영하며 광고를 겸하였고 희 영 엄마는 커피숍과 유사업장을 경영하며 주체 못할 정도에 많은 돈을 저축하며 사업장 여러 곳을 확장하였다.
당시 희 영이가 피아노, 영어, 수학등 학원을 다니던 중에 학원엘 다니기 싫다고 하며 피아노 학원만 다닌다는 하여 나머지 학원은 그만두고 피아노학원만 다니던 어느날 희영이의 둘째 이모가 희영이를 야단치며 시험을 보았는데 아는 문제들을 다 틀렸다고 희 영이 때려주라는 것이다.
학교엘 다닌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희 영이 손바닥을 자로 몇 대 때려주었다. 그 이후에 공부를 싫어하는 희 영이에게 공부를 강요할게 아니라 희 영이가 재능을 찾아주고자 당시 SBS에서 주니어 골프연습생들에게 많은 혜택과 함께 꿈나무들을 키우고 있었다. 친구가 운영하던 골프장을 인수하여 희 영이가 자연스럽게 골프를 접하게 하고 희영이가 운동을 하겠다면 시켜 보려는 목적을 가지고 인수하여 내부 시설을 변경하던중에 희 영이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되어 골프연습 한번 못시키고 헤어졌다.
실종된 희 영이를 찾아다니다 자연스럽게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을 접하게 되었고 그 아이들의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결손이 또 다른 결손을 낳고 있는 실태를 알게 되었다. 희 영이를 찾아다니며 대한민국 시스템으로는 희영이를 찾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였다.
딸 자식을 실종 당하게 찾아다니며 이들을 내 눈에 보게 하신 이유는 이들을 위한 삶을 살라고 하신 사명으로 생각하고 남원시소년소녀가장들 모두가 내 아들 딸로 여기고 그들을 위한 사무실도 꾸미고 뜻을 같이하는 회원을 모집하여 협회를 창립하였다.
남원시민들의 관심을 모았고 시장님께서는 전 직원들에게 소년소녀가장들과 결연을 맺도록 특별지시를 하여 소년소녀가장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도록 하였습다. 그런가 하면 사회봉사단체들도 의무적으로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입학식과 졸업식에 장학금을 전달하도록 추진하였다.
시민단체로써 8년 정도 활동하여 오다가 정부로부터 그들에게 경제적 지원이 활성화되면서 단체가 해야 할 일이 축소되었다.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이젠 정령 필요한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나의 힘으로만은 부족했으며 인간의 능력 외에 것이었다. 그들에게 사랑과 더불어 근본적인 문제인 복음자리를 해결해주고자 서울로 상경하여 부족한 자금을 벌려고 투자하였다가 남은 재산마저 탕진되어 재정적 어려움으로 더 이상은 물질로 가장들을 지원할수 없었다.
당시 가장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지원보다는 사랑이었다. 사랑을 나누어야 할 때쯤 딸 희 영이가 엄마에 뱃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 서원했던 하나님의일을 하겠다고 했던 신학공부를 하게되었다. 신학생이던 2006년에 협회 회의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고 그 동안 행해온 경력이 계기가 되어 2007년 감사를 맡게 되었고, 2008년 협회대표로 취임하게 되었다. 그해 제주도 한마음 캠프에서 간담회자리에서 아이를 찾으러 다니며 힘들었던 일중 한 가지씩 발표하기로 하였다. 그 동안 고통을 함께 나누며 눈물로 한을 떨어내고 솟아내는 자리로 울음바다가 되었다.
이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 그동안 희 영이에게 못해준 설음과 아버지인 제가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고 힘없는 약자를 돌봐야 할 정부가 법을 모르고 힘이 미약하다는 이유로 돌봐주지 않았고 법은 만들었으나 최소한의 법을 적용하며 기만하고 희롱하는 정부정책에 맞서기 위해선 정부가 인정해주는 사단법인을 만들어야 가족들의 한을 풀어주고 마음을 달래줄 수 있다는 생각에 뜻을 가지고 묵묵히 추진하며 실종아동인권찾기를 전국실종아동찾기협회로 단체명을 바꾸고 협회임원을 다시 선출하였고 2009년 실종아동찾기협회장으로 활동을 하다가 지난 2010년 1월 16일 보건복지부로부터 사단법인 실종아동찾기협회로 승인을 받아 한이 맺힌 실종가족들을 마음을 달래주고 힘과 용기를 주어 희망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만남이 꼭 이루어지도록 추진하고자 협회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첫댓글 가족들에게 힘이되고 위로하고자 하지만 늘 부족한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헤어진 가족만남이 꼭 이루어지도록 추진하는 협회가 되도록 회원여러분들께서 함께하여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대표님 ~~ 글 잘보았어요.
본인의 아픔보다는 가족들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시는 대표님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려옵니다.
힘든 상황이시지만 용기 잃지 마시고 상봉의 그날까지 함께 노력 합시다.
넵 감사합니다.
짜우리님이 계셔서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가는 세월때문에 늘 아쉽기만 합니다.
이러다가 할아버지소리가 내일 모레 들을것 같은데요.
사는게 별 다른게 있을까마는요,
똑같은 입장에 있는 모든 실종가족중 과연 누가 자신의 일을 뒤로하고 시간, 물질등을 협회에 쏟아낼수 있을까요?
같은 입장이더라도 자신의 아이를 먼저 찾으려 하는게 모든 사람의 마음인데..
서대표님은 자신보다는 항상 다른 실종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방송등 찾기 매체에 다른 가족을 소개하시죠.
사람의 마음이 아닌 천사의 마음이라고 생각됩니다.
별말씀을요, 우리 아이들을 찾고자 하여 하는일이 제 일입니다.
그러다 보면 희영이 문제도 자연스럽게 만남이 성사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너무 과찬하지 마세요.
쓸 돈이 없어서 더 쓰고 싶어도 못 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