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30일(주일) 낮설교 - 성령강림 후 제8주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여호와체바오트]
( 말라기 1 : 6~14 )
Ⅰ. Story. 「 연날리기 」 창작예화
하하하 ... [ 불신시대... ] ㅋㅋㅋ 이야기나라 유머
고속도로에서 교통정체로 꽉 막혀 차들이 모두 멈춰서버렸습니다. 10분 이상을 꼼짝 못하고 있었는데, 그 정체가 언제 풀릴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옆 차에는 한 남자가 휴대전화를 들고 핏대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이 남자가 몸을 기웃하더니 옆 창문을 내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요~ 내가 왜 늦는 지를 우리 마누라한테 이야기 좀 해줘요!”
이 남자 못 믿을 짓 많이 했나 보네요.
★ 서로 믿으며 살자. 신뢰가 깨지면 불신이 커진다! ★ 하하하
예전에는 겨울이 참 추웠습니다. 먹는 것도 시원찮아서 몸에 기름기도 없는데다가 추위로부터 몸을 지켜줄만한 옷도 변변치 않았습니다. 솜바지저고리를 입어도 겨울한파를 견디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새해가 다가올 때 찾아오는 엄동설한(嚴冬雪寒)이 되면, 남자아이들이 준비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연입니다. 연은 추위에 움추렸던 동심을 실어 높고 푸른 하늘에 띄우는 남자아이들의 놀이기구였습니다. 연을 날리는 재미는 그 어디에 비길 수 없어 놀이에 몰두한 어린이는 뒷걸음치다 웅덩이에 빠지거나 언덕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또 정월 초에는 부락단위별 또는 부락대항 연날리기 시합도 벌였는데, 이때는 연을 날리는 기술보다는 연줄 끊기 시합이 많았습니다. 연줄 끊기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우선 연줄이 상대방의 연줄 위를 점하는 것이 유리해 서로가 상단을 차지하기 위한 기술전을 펼쳤습니다. 이 시합을 위해서는 우선 연줄에 사금파리 등을 가루로 내어 연줄에 바르는 작업을 우선했는데, 이 과정을 「연사」를 먹인다고 합니다. 정종병이나 유리 등을 곱게 가루를 내 삼베 천으로 거른 다음, 밥풀을 짓이겨 연줄에 바르던 이 작업은 친구나 동생의 도움이 필수적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앞에서 헝겊이나 종이에 싼 밥풀을 연줄에 묻혀 가면, 뒤에서 한 사람은 유리가루를 묻혀갔습니다. 그러면 보통 실보다 훨씬 강한 실로 변화됩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연줄 끊기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가장 튼실해진 연줄을 준비하는 것이 연줄 끊기의 승패를 좌우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원래 인생은 실오라기 한 올처럼 참 연약합니다. 쉽게 끊어지고 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실이라고 연사를 먹이면 달라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이나 삼손이 당나귀 턱뼈 하나로 천명의 블레셋사람을 물리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에게 덧입혀졌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간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삼상 17:45).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혼자의 힘으로 살면 패배할 수밖에 없지만, 만군의 주님이 함께 하시면 언제 어디서나 승리밖에 없습니다!
Ⅱ.
오늘은 우리가 함께 나눌 하나님의 이름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입니다. 그냥 보통 만군의 여호와라고 불립니다. [여호와체바오트]라고 하는데, 구약성경 전체에 모두 255회나 사용되고 있는 이름입니다. 특히 예언서에 주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말라기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말라기는 구약성경의 맨 마지막 책입니다. 말라기 이후로 400년 동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라기에 나오는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모두 24번이나 쓰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말라기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이름, 만군의 여호와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는 것입니다.
‘여호와체바오트’ - 만군의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은 대략 네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① 군대들의 하나님 ② 온갖 세력과 권능의 여호와 ③ 우주만물의 지배자 ④ 이스라엘의 구원자} 등입니다. 이 이름은 사무엘상에서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주로 인간이 극한상황에 처해 있을 때 주어진 이름입니다. 사무엘상 1장은 한나가 자식을 낳지 못하는 상황과 관련하여 시작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여자가 결혼하여 자식을 낳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비참하고 불행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그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나길 원하고 있습니다. 한나는 서원하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삼상 1:11)
Α. 만군의 여호와는 군대들의 하나님입니다.
1. 전쟁은 하나님께 달렸다는 말씀입니다. 군대들의 하나님이 전쟁을 주관하십니다. 보통 인간의 능력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이나 무기의 강약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께서 이길 수 있도록 역사해 주셔야 합니다.
2. 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바로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입니다. 골리앗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의미합니다. 최신무기와 훈련된 정예병사로 구성된 군대입니다. 그러니 다윗은 도저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약한 상대입니다. 만약 내기를 건다면 거의 모든 사람이 골리앗에게 걸겠지요.
3.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 아시다시피 다윗의 완승입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골리앗은 자기가 최대 능력이었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이 덧입혀져 있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 17:45)
Β. 만군의 여호와는 우주만물의 지배자입니다.[온갖 세력과 권능의 주]
1. 만군의 여호와가 우주만물을 지배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저와 여러분을 지배하십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배한다는 말은 다스린다는 의미와 함께 심판의 능력을 뜻합니다. 지배자에게 모든 결정권이 있습니다. 왕이 결정하면 백성은 따라야!
2. 만군의 여호와는 바로 만왕의 왕이십니다. 이 세상에 존재한 온갖 세력과 권능을 지배하십니다. 하지만 만군의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은 늘 보이는 권세를 두려워합니다. 오늘 말라기의 말씀 중에도 그런 내용이 있는데, 주인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 그 예로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 제물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8절을 보세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하나님께 합당한 희생예물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희생!
Γ.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구원자입니다.
1.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천지만물의 지배자이시면서 또한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십니다. 이스라엘이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고통 중에 부르짖으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가가셔서 그의 손을 붙잡아 고통에서 끌어주십니다.
2. 한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녀는 자기의 고통을 가지고 사람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아갔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를 고통의 심연에서 건져 주시리라 믿고 서원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하나님은 구원해주셨습니다.
3.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한나에게 아들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서원을 지켜 아들을 하나님께 드린 한나에게 아들 셋과 딸 둘을 더 주셔서(삼상 2:21) 한나를 고통에서 건져내실 뿐만 아니라, 고통이 변하여 큰 기쁨이 되게 하셨고,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Ⅲ.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만군의 여호와를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능력은 도토리 키 재기 입니다. 벼룩이 아무리 높이 뛴들 미사일처럼 멀리 날아갈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의 능력을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골리앗이 용감할까요? 다윗이 용감할까요? 골리앗이 용감한 사람입니다. 왜요? 무식하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셔서 다윗의 손을 붙잡고 있음을 모르는 무식함이 그로 하여금 큰소리를 치게 한 것입니다. 다윗은 큰소리 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정말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의 손을 붙드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자기 힘이 아닌 만군의 여호와의 힘이 골리앗을 물리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큰 골리앗이 버티고 서 있어도 두려울 리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확신이어야 합니다. 이 확신으로 살면 결코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시간 손을 내미세요. 만군의 여호와 앞에! 붙잡아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