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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의 傳統, 道와 西洋精神治療에서
投身(Commitment)에 관하여*
On Commitment in the Eastern Tradition, Tao
and the Western Psychotherapy*
朴 炳 卓**
Byung-Tak, Park, M.D.**
정신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치료적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환자의 中心力動, 主要動機 혹은 核心感情에 대한 통찰력 있는 이해이다. 둘째는 환자의 감정 반응과의 정확한 共感이다. 세 째는 投身(commitment)이다. 사전의 정의상 投身이란 어떤 일을 수행하는 행위이거나 위탁, 보관 혹은 신탁에 위임하는 행위이다. 혹은 知的 확신이나 감정적 紐帶 등에 의해 의무 지워졌거나 속박된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철학적으로는 명백한 방향의 행위를 하게 하는 결정적인 도덕적 선택을 의미한다. (Webster의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3版, 1981)
정신치료에서 投身은 치료자-환자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의 견해로는 投身이란 주제가 서양정신치료 특히 정신분석에서는 무시되었거나 최소한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신치료에서 投身에 대한 언급을 하자면 두 가지 구성성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 하나는 자신의 과업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고 또 하나는 그 과업을 완수하거나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投身은 서양정신치료의 여러 개념들 즉 의지력, 자유, 책임, 공감, 사랑, 존재, 동일성, 참여 및 성숙 등과 많이 관련된다고 생각된다. 이런 개념들은 人本主義나 實存主義 및 無我精神治療(Transpersonal Psychotherapy) 등의 다양한 학파들에서 주로 취급되어졌다(Boorstein 1980, Boss 1982, Frankl 1963, 1969, May 1953, 1958, 1963, Rogers 1951, Saul 1977, Welwood 1979, Yalom 1980).
投身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實存主義 정신치료에서 R. May(1958)에 의해 다음과 같이 토론되었다. ‘그것은 진실을 보는데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그것은 결정이 앎에 선행한다는 중요한 점을 내포한다. 投身은 좀 더 긍정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실존적 개념들의 일반화나 지식화하는 경향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도 했다.
李 東植(1989)은 그의 책 「韓國人의 主體性과 道」에서 投身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西洋의 精神治療가 治療者와 患者와의 관계, 治療者의 人格, 誠實性, commitment를 중시함을 볼 때 精神治療의 철학에 있어서는 東洋의 道는 西洋의 그것을 능가하여 精神治療의 철학의 최고봉이요, 궁극적인 목표를 이미 2,500년 전에 완성해 놓았다고 본다. 특히 孔子는 관계를 중시하였고 人格, 誠實性은 東洋思想의 공통적인 것이고 commitment는 實存分析에서 중시하는 일이지만, 西洋의 commitment는 孔子의 殺身成仁이나 佛敎의 衆生을 위하여 不惜身命한다는 commitment의 極致까지는 가지 못한다.”
Saul(1977)은 Freud의 경력상 전환점이 되고 또 意志의 중요성을 깎아내리는 계기가 일찍이 Dora 사례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그 사례가 Freud로 하여금 轉移라는 아주 중요한 개념을 공식화 시키도록 했지만 동시에 환자의 의지력에 대한 제한뿐만 아니라 환자에게 미치는 치료자의 영향력에 제한을 유도하기도 했다. Farber(1966)가 지적했듯이, Freud는 당시 의지의 동기를 연구하기로 결정을 했고 의지 자체의 심리를 고려치 않았다. Saul(1977)은 또한 책임감이 의존심이나 적개심과 마찬가지로 주된 근원적 동기들 중 하나라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 정신분석의 개념들, 예컨대 수동성(passivity), 엄격한 중립성(strict neutrality), 가치 속박이 없음(value-free) 및 과학적 객관성들은 허구나 오류로 고려되고 있다(Garner 1961, Karasu 1980). 이런 개념들은 통찰력 있는 이해나 환자와의 절대적 共感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겨우 역전이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으려는 일종의 방어일 뿐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분석가는 정신분석과정 동안 환자에게 아무 것도, 기본적인 대상욕구(basic object need) 조차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Freud 자신이 환자들이나 훈련분석을 받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기도 했다. Tarachow(1963)는 말했다. “사실상 환자를 전혀 대상으로 이용하지 않는데 필요한 거리 띄우기를 엄격히 유지할 수 있는 분석가를 찾기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는 실재적이 아닐 수 없고 또 환자를 실재적으로 취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역설적으로 보일런지 모르지만, 분석가의 바로 그 인간적인 비완전성이 현실에서는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이 이론들은 東西 어디에나 있다. 道에서는 개념은 현실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다(標月指). 李 東植(1990)이 그의 논문에서 지적하듯이 서양정신치료는 좀 더 이론 지향적이고 기법 지향적이고 언어 지향적인데 반해 道는 긍정적이고 현실적이고 자기 수련을 강조한다. 저자의 견해로 동양의 전통 道 특히 禪佛敎는 직접 경험을 통해 가장 적극적으로 현실을 가리키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投身이란 주제를 2개의 소제목으로 나누어 토론하고자 한다. 즉 과업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과업을 수행하고 끝까지 약속을 지키는 과정이다.
과업을 받아들이는 과정
정신치료에서 쌍방 참여자 상호간이나 치료업무와 관련된 投身의 수준은 그 과정의 중요한 記述者이다. 우리는 특히 정신치료에 투자된 사실상의 시간과 정열을 주시했다. 즉 주당 회기 수, 치료의 길이, 치료자의 연속성 등(McGlashan and Keats 1989). 우리는 또한 환자와의 정신치료를 하는 일을 받아들일 때 생기는 전문가적 의무와 책임을 달성하는데 관한 합당한 관심에 대해 생각한다(Fromm-Reichmann 1950). 이와 같이 서양정신치료에서 commitment는 일종의 작업계약(working contract)에서 나온다. 道에서 投身(commitment)은 단지 치료자의 의무나 책임을 다하는 것 혹은 계약이 아니며 타인에 대한 깊은 관심, 慈悲心 혹은 초월적 주체성(transcendental identity)에서 나온다.
불교에서 보살(菩薩)은 두 가지 큰 誓願을 한다. 즉 위로는 최상의 진실과 지혜를 구하고(上求菩提) 아래로는 뭇 중생을 교화한다(下化衆生). 예를 들면 地藏보살은 서원하기를 “나는 고통 받는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하기 전까지는 成佛하지 않겠다”고 한다. 維摩居士는 “중생이 병들었기 때문에 내가 병이 든다. 모든 중생의 병이 나으면 내 병도 나을 것이다”라고 한다. 어떤 보살들은 逆行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어리석거나 사악한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 서슴치 않고 戒律을 범하기도 한다. 보살이 도둑을 도울 때는 그 자신이 도둑이 된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四攝法의 하나인 同事攝이다. 보살은 남이 기뻐할 때 기뻐하고 남이 슬퍼할 때 슬퍼한다. 어떻게 보살이나 기타 동양의 道人들은 완전히 남을 위해 쉽게 자신을 희생할 수 있나?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정신분석의 기본규칙에서도 primum non nocere(우선 환자에게 해를 입히지 말라)에서 온 것도 아니다. 그 답은 최상의 진리 즉 초월적 주체성(transcendental identity)을 얻었기 때문이다.
莊子는 말한다. “하늘과 땅이 나와 더불어 살고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하나이다”(天地與我竝生 萬物與我爲一). 그렇다면 그들은 오직 현실 즉 타인의 고통만을 볼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자비와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主客一致의 상태(the state of subject-object congruence)이다. 이 주제와 관련된 불교의 逸話를 하나 소개한다.
지금부터 수십 년 전 한국의 어느 시골에 한 소년이 있었다. 그의 집은 아주 가난했고 그는 매일 수 십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하루는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도중 학 한 마리가 논에서 갑자기 공중으로 솟구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면서 그는 아주 이상한 느낌을 경험했다. 마치 물동이의 밑창이 확 둘러 빠지는 것 같이 시원한 느낌이었는데 그는 그 경험이 도대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러자 그의 부모들이 차례로 죽었고 그는 절에 보내져서 스님이 되었다. 그가 불교 경전들을 읽을 수 있게 되자 처음 읽는 경전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경전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자 그는 서울 근교의 다른 절로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당시 유명한 禪師인 雪峰(1890-1969)이 머무르고 있었다. 설봉선사는 키가 크고 힘이 세어 보였으며 다소 괴짜 같은 非凡한 행동을 보였다. 그는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법문을 했다. 그는 절문 앞 눈 쌓인 땅바닥에 취한 채로 잠에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젊은 스님들이 그가 얼어 죽을까 봐 다가가서 팔을 당기며 그를 깨우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눈만 뜨고 한동안 노려보다가, “가서 너 할 일이나 해!”하고 소리쳤다. 모든 젊은 스님들은 그 고함소리에 겁을 집어먹고 그의 술 취한 행동을 감히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 못했다.
이제는 젊은 스님이 된 그 시골 소년은 다른 스님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고 다음번 기회가 오면 자신이 한번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곧 그런 기회가 와서 그 禪師는 또 절문 앞에서 잠들었다. 그가 다가가서 선사를 깨우면서, “스님, 일어나세요. 빨리 안 일어나면 얼어 죽습니다”고 했다. 그러자 그 선사는 눈을 뜨고는 한동을 그를 흘겨보더니, “가서 너 할 일이나 해!”하고 소리쳤다. 그가 이 말을 들었을 때 그는 평생토록 자신이 들어온 말 중에 가장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그 선사는 항상 무슨 일이나 스스로 했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빨래도 손수 했다. 스님들은 절 바로 옆 개울에서 빨래를 하곤 했다. 그 선사도 젊은 스님들과 같이 빨래를 했다. 스님들 가운데 몇 이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가가서, “스님 빨래를 제게 주십시오. 저가 스님 대신 빨아드리겠습니다”고 했다. 그러나 선사는 항상 “가서 너 할 일이나 해!”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아무도 그의 빨래를 빨아주려고 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 젊은 스님이 하루는 선사가 빨래를 하는 것을 보고는 다가가서 다짜고짜 그의 빨래를 홱 뺏어서는 한마디 말도 없이 그걸 빨기 시작했다. 선사는 그가 빨래를 하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 사건이 있은 후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알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말을 안 해도 서로 간에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선사가 어떤 스님을 오라고 부르면, 그는 왜 선사가 그 스님을 그때에 불러들이는지 알았다.
이 일화에서 그 선사는 젊은 스님들에게 그들이 만약 “이건 내 일이다”고 생각하면 “주저 없이 즉각 하라”는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젊은 스님들의 마음에는 “이건 내 일이 아니고, 나는 단지 저 스님을 위해 할 뿐이다”는 생각이 있었다. 주인공인 그 젊은 스님은 빨래를 빼앗아 아무 말도 없이 빨았다. 그는 분명 주객일치의 상태를 경험했다. 無我心理學(Transpersonal Psychology)에서 Ken Wilber(1979)는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형태의 근본적 이원론의 궁극적 해소를 禪에서는 “물동이의 바닥이 터졌다”는 말로 표현하는데, 왜냐면 그 사람의 의식에는 바닥이 없다 - 즉 다시 말해서 바깥의 객관적인 세계에 상응하는 내적인 주관적인 세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 두 세계는 근원적으로 융합되었고 혹은 일찍이 한 번도 분리된 적이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실존주의 정신치료에서 R. May(1958)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投身과 결정의 핵심은 주체와 객체간의 이분성이 행위를 위한 준비 태세와 일치되어 극복된 바로 그 순간에 있다.”
그러면 만사는 내게 달려있게 된다. 나는 어딜 가나 주인이 된다(隨處作主).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신분석에서 직업적인 거리유지(professional detachment)나 무관심(indifference), Sullivan의 참여적 관찰자(participant observer) 및 Fromm의 관찰적 참여자(observant participant) 조차 그 모두가 충분치 못하다고 여겨진다(Fromm - Reichmann 1950, Sullivan 1940, Fromm 1960).
과업완수와 약속이행
정신치료 과정에서 특히 정신분열증의 장기치료에서 보통 환자가 제일 먼저 포기하고, 그 다음에 가족이, 마지막에는 치료자가 포기한다. 그러나 치료자의 投身정신, 즉 끝까지 자기 과업을 완수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정신이 환자에 전달되면 환자는 힘을 얻고 치료자를 굳게 믿게 된다.
李 東植은 항상 “정신치료는 眞劍勝負와 같다. 왜냐면 환자의 감정을 다루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치료 과정 중에는 환자의 모든 감정반응과 무의식 및 환자의 생명까지도 책임을 져야 한다(Tarachow 1963, Saul 1977).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과업완수와 약속이행에 관한 많은 본보기를 볼 수 있다. 특히 儒敎社會에서는 보편적 의무의 본분이 중시되고 있다. 그 의무는 君臣간, 父子간, 夫婦간, 兄弟간, 朋友간에 생기는 것이며 中庸에서는 이것을 五達道라고 한다. 東洋의 道에서 과업완수와 약속이행의 예는 무수히 많다. 儒敎文化에서 이런 예 가운데 하나를 소개한다.
曾子는 孔子의 유수한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16세 때부터 孔子의 門下生이 되었는데, 천부적 자질 면에서는 남보다 못했지만 - 論語 先進 편에 孔子는 그가 노둔하다(魯)고 했다 - 그의 효성과 도덕적 자질로 인하여 마침내 그는 孔子의 道統을 이어 받았다.
曾子가 병이 있어 제자를 불러 말하기를 “나의 발과 손을 펴보라. 詩에 이르기를 ‘두려워하고 경계하기를 깊은 못에 다다른 듯이, 엷은 얼음을 밟듯 하라’하였으니 이제야 내가 그런 근심에서 풀려남을 알았노라. 이 사람들아!” (曾子 有疾 召門第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 論語 卷八 泰伯)
Legge(1892)는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曾子의 효성이 자기 몸을 보살피는 데서 드러난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온전한 몸을 받았으니 죽을 때까지 그 몸을 잘 보존해야 한다. 이것이 중국인의 孝道의 큰 부분이며 이 글은 曾子가 그것을 자신의 평생공부로 삼았다는 것을 잘 설명해 준다(J. Legge, Confucian Analects 1892).
또 다른 曾子의 逸話가 禮記에 있다.
曾子가 병이 깊어 누웠는데 曾元 曾申 두 아들과 제자인 子春과 한 童子가 侍病하고 있었다. 童子가 한쪽 모퉁이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가, “아름답고 곱습니다. 大夫의 삿자리(簀)군요”했다. 제자인 子春이 ‘그만해라’고 말렸는데 曾子가 듣고는 눈을 크게 뜨고 놀란 듯 한숨을 쉬었다. 童子가 또, “아름답고 곱습니다. 대부의 삿자리군요”했다. 曾子가 “그렇다. 그것은 계손씨(季孫氏)가 준 선물이다. 내가 아직 바꾸지 못했구나. 원(元)아, 일어나서 삿자리를 바꾸어라”고 했다. 증원이, “아버지의 병이 심해 지금은 할 수 없습니다. 아침까지 차도가 있으면 바꾸겠습니다”고 했다. 曾子가, “네가 나를 사랑함이 저애 보다 못하다. 君子는 덕으로써 사람을 사랑하고 그릇이 작은 사람(細人)은 우선 편안한 임시방편(姑息)으로 사람을 사랑한다. 내가 무엇을 바라겠느냐? 나는 일이 바르게 되고 죽기를 바란다”고 했다. 부축해서 삿자리를 바꾸고 도로 눕혀 채 안정이 되기도 전에 죽었다(禮記 卷三 檀弓上).
이 逸話에서 그 삿자리는 당시 벼슬아치들만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大夫중의 하나인 季孫氏가 그것을 선물했다. 그러나 曾子는 분수에 맞게 사는 것을 귀히 여겼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치 않았었다. 병이 위독한 가운데 그 삿자리는 증자도 모르는 사이에 사용되었다. 그래서 그가 그걸 알자마자 임종의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즉각 바꾸라고 했다. 이처럼 曾子는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와 아들들을 가르쳤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까지 업무를 완수하는 投身의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그 이후 儒敎社會에서는 훌륭한 스승의 죽음을 ‘삿자리를 바꾼다’는 뜻의 역책(易簀)이라고 일컬어져 왔다.
이 逸話는 Socrates의 일화와 아주 유사하다. 그는 비록 法이 틀렸더라도 복종했다. 그도 또한 독약을 마시고 그 기운이 목까지 차올라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을 가르쳤다. 서양문화권에서는 Socrates나 로마의 장군 Regulus(? - B.C. 249), Beethoven 같은 사람들이 投身의 좋은 본보기라고 여겨진다. 서양문화에서 종교적인 혹은 부부간의 commitment도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要 約
보살(菩薩)이나 東洋의 道人들은 성숙한 치료자이며 投身의 본보기이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했고 깨달았으며 남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다.
정신분석에서 성숙한 분석가라도 신경증적 動機를 완전 벗어나지 못했고 그것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단지 그 動機를 알고 있어서 그것이 환자를 이해하고 도우는데 방해가 되지 않게 할 정도일 뿐이다(Saul, 1972).
Rogers(1951)는 치료자의 따뜻함(warmth), 誠實性(genuineness) 및 共感的 理解(empathic understandings)가 치료효과를 위한 필요충분조건들이며 그것들 자체가 환자의 인격 변화를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치료자가 성숙할수록, 비지시적이면서도 더 적극적이다. 이와 같이 치료자의 태도와 인격은 정신치료에서 여타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동양의 모든 전통에서 道는 자기 수련과 각성을 먼저 강조한다. 그것이 이루어진 후에 남을 도우는 것이 차례이다. 君子가 추구하는 것은 자기에게 있고 小人은 남에게 있다(君子 求諸己 小人 求諸人, 論語 卷十四 憲問). 이것은 故 M. Boss가 “당신의 환자를 바꾸려고 원하기 전에 당신 자신을 바꾸어라”는 말과 상통한다.
결론적으로 서양정신치료의 commitment는 일종의 계약으로 시작되며, 합법성, 기본 규칙 혹은 이론들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 道에서 投身(commitment)은 과업을 받아들이는데 더 적극적이며 업무를 끝까지 완수하는데 더욱 철저하다.
Bibliography
(References in Korean and Chi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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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中庸(The Doctrine of the Mean)
3. 禮記(Record of Rites)
4. 詩經(The Book of Poetry)
5. 壯子(Chuang-tzu)
6. 維摩經(Vimalakirti Sutra)
7. 地藏經(Ksitigarbha Sutra)
8. 大慧 : 書狀(the Letters of Ta-H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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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in 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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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Yalom, I.D.(1980) ; Existential Psychotherapy, Basic Books, N.Y.
Abstract
Bodhisattvas or masters of Eastern Tao are models of commitment and mature therapist. They have solved their own problems completely, enlightened and have deep concern in others.
In psychoanalysis even a mature analyst is not completely free of neurotic motivation but there remains a trace of it. Only he is aware of this motivation but he does not allow it to interfere with understanding and helping his patients(Saul, 1972).
Rogers(1951) advocated the idea that the therapist's warmth, genuineness and empathic understandings are the necessary and sufficient conditions for therapeutic benefit and themselves produced personality change in patients. So the more mature the therapist is, the more active he is without being directive. Thus the attitude and personality of the therapist are more important than anything else in psychotherapy.
In every tradition of the East, Tao emphasizes self-training and enlightment of the therapist first. After that comes the helping of others. What the superior man seeks, is in himself. What the mean man seeks, is in others(Confucian Analects). This is the same context of the speech by M. Boss(1989). "Change yourself before you want to change your patient."
Conclusively, the commitment of Western Psychotherapy starts with a sort of contract and is much influenced by legitimacy, basic rules or theories. The commitment of Tao is more active in accepting tasks and thorough in completing tasks to the end.
첫댓글 雪峰스님의 빨래를 빼앗아 빤 젊은 스님을 인가한 雪峰 노스님에 대해 아리송했었는데 뒤이은 선생님의 답지를 보는 순간 '치료'가 된것 같습니다. 언제쯤이면 답지가 필요하지 아닐런지요?
사랑방 이야기오서는 격이 많이 높네요. ^^ 華山 先生께서 격조높고 정제된 글을 올려주시니 공부에 큰 도움이 됩니다. 보문회에서도 공부하도록 모셔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