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10: 산과 책 그리고 사람
순서
1. 인류무형문화유산 알피니즘L'alpinisme
2. 산과 책의 길
2.1. 「또 다른 산Le mont analogue」
2.2. 『새로운 알피니스트들Les nouveaux alpinistes』
2.3. 『풍경을 돌아보다Arpenter le paysage』
2.4. 『그대, 알피니스트?Alpiniste, est-ce toi ?』
2,5. 『알피니즘에 대하여De l’alpinisme』
3. 고독한 등반 읽기
1. 인류무형문화유산 알피니즘L'alpinisme
최근에 출간된 프랑스 산서들을 읽고 있다. 이리저리. 2019년 12월, 우리가 잘 쓰는 용어 ‘알피니즘L'alpinisme’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du patrimoine culturel immatériel de l'humanité으로 확정되었다. 이미 우리나라의 농악, 김장, 아리랑, 강강술래, 처용무, 남사당 놀이 등이, 너그러움의 상징인 아랍의 커피, 인도의 요가, 중국의 경국, 나폴리의 피자요리, 터키의 휘파람 언어, 벨기에의 맥주 등이 여기에 등재되어 있다. 알프스Alpes에서 온 ‘알피니즘’이란 용어는 1877년 프랑스 알파인 클럽Club alpin français이 처음 사용했다고 어원사전에 쓰여 있다. 고산에서의 등반활동을 지칭하는 이 용어는 1898년에 사전에 처음으로 실렸고, 지금은 바위, 눈, 얼음을 포함한 산에서의 모든 활동을 뜻한다. 이와 비슷한 뜻을 지닌 영어가 1803년부터 쓰이기 시작한 ‘Mountaineering’인데, 산마을, 산사람 등을 뜻하는 단어에서 온 것으로, 프랑스 산악계는 이와 비슷한 뜻을 지닌 ‘Montagnisme’ 같은 용어 대신 ‘알피니즘’이란 용어를 쓴 덕분에 이 용어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무형문화유산 알피니즘의 구체적 내용을 다음 기회에 적어놓으려고 한다.
산에 오르는 이들에게 산은 현실이며 동시에 현실 너머의 존재이다. 현실로서의 산은 온 몸으로 오르는 행동을 요구하고, 현실 너머의 산은 바라보고 상상한 산, 오르고 내려온 산에 대한 명상, 사유를 낳고 지닌다. 산에 오르는 행동이란 미지의 땅, 정상에 이르고자 하는 의지와 용기의 땀, 기술, 스트레스, 공포 등을 담고 있는데, 이를 통하여 만족과 성취, 기쁨과 나눔, 자기 절제 등의 보상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산행을 이어나갈 수 있는 동력을 얻는다. 등산전문지 <Montagne magazine>에서, 고산등반가이며 가이드인 다비드 마레David Marret가, 알피니즘은 살롱에서 손에 따듯한 찻잔을 들고 마시면서, 곁에 지도와 책을 놓고 산을 꿈꾸는 일과 구별된다고 말하는 부분을 읽었다.(“L'alpinisme n'est pas une activité de salon!...un salon est d'ailleurs l'occasion de savourer une belle course en montagne, une boisson chaude entre les mains et pas loin, quelques livres ou topos pour continuer de rêver et de faire de nouveaux projets.”) 그의 말은 산행의 구체적 현실을 강조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 터이다. 반면에 어릴 때부터 들었던, 히말라야 등반의 비극적 상징인 조지 말로리Georges Leigh Mallory가 한 말, 그곳에 산이 있었기 때문이다Because it's there, parce qu'il est là라는 말은 산을 현실의 절대값처럼 여기는 탁월함으로 이해했다.
2. 산과 책의 길
2.1. 「또 다른 산Le mont analogue」
1952년에 출간된,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인이었던 르네 도말René Daumal 쓴, 「Le mont analogue」(1959년 Mount analogue로 영어 번역출간)은 산을 상징적으로 말하는 일종의 네러티브 소설이다. 친구들이 모여 산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의 글쓰기는 가령 이런 식이다. 산의 정상에 오르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지만...보이지 않는 곳을 향하는 문은 보여야 한다라는 식이다. 미완성인 이 소설에서 매혹적인 진술은 “나는 산을 말하지 않고, 산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말할 것이다Je ne parlerai pas de la montagne mais par la montagne”라는 부분이다.
여기서 산은 하나의 언어일 뿐, 이 소설은 산mount이라는 언어logue를 통해서 또 다른ana 산을 말하고 있다. 산서를 읽고 말할 때, 산서회의 활동을 언급할 때, 나는 이 두 가지 즉 산을 말하는 것과 산을 통해서 다른 어떤 것analoque을 말하는 것이 모두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산/서/회는 산과 책 그리고 사람의 모임이다. 산과 책이, 책과 사람이, 사람이 책과 만나는 곳이다. 비유하자면, 산/서/회는 산이 세상의 언어로 머무는 기억의 박물관이고, 그 책들의 집인 도서관이고, 사람들이 그 책들을 손에 들고 읽으며, 한자리에 모이는 살롱이고, 산의 안과 바깥을 사유하는 산실産室이다. 산서회의 처음은 산과 책이 사람과 더불어 포개지는 데서 운명적 출발을 한다.
우리는 산에서 내려와 산에 관한 책을 손에 들고 고개 숙여 읽는다. 산들이 모여 책을 이루고, 사람들이 홀로 혹은 함께 책을 읽으며 산의 깊이로 향한다. 산과 책이 거주하는 또 다른 공간이 사람인 셈이다. 산과 책이 이어 만나는 모임이 산서회라고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산이 책을 필요로 했던 것이 아니라, 책이 산을 원했던 모임이었을 터이다. 그러므로 산서회의 베이스캠프는 사람이다. 한국산서회에 가입하면, 선배들이 계급과 같은 번호를 주고, 장신구인 배지를 달아주는 데, 그것도 이런 전통의 한 모습이라고 본다. 책을 읽는 이의 시선을 산으로 향하게 한 존재가, 산과 책을 간직하고 소유하고자 했던 존재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산에 오르는)사람과 (산을 담고, 산을 말하는) 책은 한 통속이지만, 산은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일 뿐이다. '산'이라고 말하지 않고, '저 산', '이 산', '나의 산', '너의 산', '우리의 산'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나만의 산을 여러 개의 산으로 복제할 수 있는 이유는 발로 산을 오르고, 말로 산을 규정하고, 글로 산을 기록하는, 그것을 읽어내는 사람들의 존재 덕분이다. 그리하여 산은 풍요로운 상징과 자유의 산이 되고, 산은 오르는 이들에게 그들만의 고유한 산이 된다. 산서회는 몸의 산에서 말의 산으로 그리고 글의 산으로, 산을 이리저리 옮겨놓고, 이어놓으면서 산을 낳고, 산을 깊게 하고, 산의 사유를 쌓아 또 다른 산Mount analogue이 된다.
2.2. 『새로운 알피니스트들Les nouveaux alpinistes』
오늘날 우리들에게 중요한 알피니즘과 알피니스트들은 어떤 존재인가? 그것들의 의미는 하나로 정의되지 않고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된다. 알피니즘이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것이 된 지금, 알피니즘은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할 때를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서구 등반사, 특히 프랑스 산악의 역사에서 1953년 이후, 그러니까 안나푸르나 등정은 새로운 알피니즘의 개념, 이를 실천하는, 놀라운 알피니스트들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 등반은 더 이상 산을 오르는 행위Art de gravir les montagnes가 아닌 자리에 놓였을 테니까 말이다. 앞 선 글에서 쓴 바와 같이, 루시앙 드비가 폴 발레리의 글을 빌려, 알피니즘과 알피니스트들은 앞으로만 나아가지 말고, 오히려 이 세상과 자기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Pour les alpinistes, le temps du monde fini commence”라고 거푸 경고했던 것일 터. 더 높은 곳에 오르고, 더 빨리 오르고, 더 힘들게 오르는 새로운 도전으로서의 등반 행위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뜻일 게다. 지난 60년 동안, 등반 기술은 어떻게 변모 발전했는가? 등반에 관한 새로운 기술과 미학 그리고 모랄은 어떤 알피니스트들을 낳았는가? 이 책은 그것을 말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말을 걸 뿐, 보여주는 것이 제한되어 있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수수께끼와 같다. 질문은 하나이고, 답은 무궁무진하게 갈라지기 때문이다. 질문과 답이 두동지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 답을, 답이 질문을 더 근원에 이르도록 한다. 답이 없는 질문, 답이 계속해서 나오는 질문, 그래서 그 질문마저 끊임없이 지속되는 질문은 좋은 질문이다. 이 책은 새로운 알피니즘의 철학과 알피니스트들의 실천이념에 관해서 잘 드러나지 않는 혁신 이른바 ‘침묵의 혁명révolution silencieuse’을 말하고 있다.
나는 산을 책으로 읽고, 산을 책 안에 저장하고, 책에서 산을 다시 꺼내, 산을 달리 놓아두고 읽고 본다. 산은 책으로 들어가서 제 모습을 찾고, 책은 높이의 산을 평면의 산으로 이끌어 내려 깊이를 갖게 한다. 이제 높은 산에 오르지 못하는 내게 산은 오르는 산보다는 서재의 등산학처럼 읽는 산에 가깝다. 산서를 읽는 일은 산의 높이가 아니라 산의 깊이를 따지는 독서행위이다. 산을 오르는 일이 자일과 피켈 그리고 크람폰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르는 이의 태도로 결정되는 것처럼Mais les cordes, piolets et crampons ne font pas l’alpiniste. L’alpinisme, c’est avant tout une attitude.(Claude Gardien, 『새로운 알피니스트들Les nouveaux alpinistes』, Editions Glénat, 2019, 264 p.) 산의 책을 읽는 일도 읽는 이의 '태도'를 필요로 한다.
그 하나가 산의 높이가 아니라 산의 깊이이고, 다른 하나가 글을 쓴 등반가에 대한 사유와 태도의 깊이이다. 이것은 책을 읽는 독서행위의 일반적 형태와 같다. 대상을 읽음으로써 읽는 자기 자신을 읽어가게 되는 독서의 원리와 일치한다. 산의 높낮이를 따져 오르는 일이 경쟁이 된 슈퍼알피니즘의 시대, 산의 책을 읽는 일을 통해서 공감과 성숙이라는 내재적 원리를 주장하는 일은 앞으로 더욱 중요한 덕목이 될 것이다. 산의 책에서는 높이, 위치가 별반 중요하지 않다. 실제 등반에서는 산을 자로 잰 듯 오르겠지만, 읽고 있는 산의 책에서 산의 위치와 높이는 측정 불가능한 것이 된다. 오래 전부터, 높아야만 산인 것은 아니다라는 뜻으로 ‘산불재고山不在高’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책은 등반에서 시적인 경험과 즐거움의 발견을 최고로 여긴다. 누군가가 알피니스트에게 ‘너 시인이니?’라고 묻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명예임을 말한다.
(* 책 표지 사진이 글 안으로 옮겨지지 않아, 윗 글에서처럼 표시되네요. 올릴 수 있는 글의 용량이 초과했다고 해서 두 개로 나눠 옮겨 적었습니다. 너른 이해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