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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평론 2021년 4월 칼럼
제목: 또 다시 떠오른 학교폭력
저자 : 안재오
1. 서론 : 끝없는 학교폭력 이슈
최근 -2021년 2월 - 다시 학교 폭력 사태가 매스컴에서 다시 점화되면서 한국 사회의 아픈 부분들에 대한 반성이 대두되었다.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 소속 선수인 이재영·이다영 자매가 초·중학교 시절 같은 배구팀 선수들에게 학교 폭력을 가했으며 이후 피해자들에게 별다른 사과가 없어 피해자들이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논란이 커지자 10일 오후 흥국생명 구단과 이재영·이다영은 학교 폭력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이재영·이다영 자매로부터 학폭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A씨는 10일 오전 1시쯤 온라인 커뮤니티에 ‘현직 배구선수 학폭 피해자들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A씨는 자신이 피해자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 초·중학교 배구팀 시절 단체사진을 함께 올렸다. 이들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전주 중산초, 진주 경해여중을 졸업했다. 이날 오후 3시쯤 이 게시물은 조회수 34만 회를 넘겼다. (조선일보 2월 10일)
이 자매들은 초등학교 배구부 시절 같은 팀에 있던 A씨에게 온갖 악한 일을 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A씨등 피해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 가해자들이 아무런 반성없이 행복하게 성공하는 것을 보고 응징을 결심한 것이다.
A씨 등 피해자 다수는 가해자로부터 욕설을 듣거나 흉기로 협박 당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피해자와 가해자는 숙소에서 같은 방을 썼는데 불을 끈 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무언가를 시켰다”며 “피곤했던 피해자는 좋은 어투로 여러 번 거절했으나 가해자는 칼을 가져와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2월 10일)
이들을 필두로 하여 미스트롯2 경연에 나왔던 트로트 가수 진달래도 학교 폭력 경력이 밝혀 지면서 퇴출되었다.
지난 1월 16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프로배구 올스타 팬투표에서 올스타로 선정된 흥국생명 이재영(왼쪽)과 이다영(왼쪽) / 연합뉴스
2월 15일, 흥국생명 측은 자체적으로 무기한 활동 정지의 처분을 내렸다. "이번 일로 배구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께 실망을 끼쳐드려 죄송하다. 학교폭력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로 용납되어서는 안 될 일이며, 구단도 피해자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밝혔다.
대한배구협회 측의 '무기한 국가대표 출전 금지 + 지도자 자격 영구박탈' 이라는 조치를 내렸다.
대한배구협회에서는 국가대표 배구선수의 자격을 무기한 박탈하는 징계를 내렸으며, 이뿐만 아니라 은퇴 후에도 배구 지도자 명단에 올라갈 수 없도록 영구제명 징계를 내렸다. (위키트리)
이재영 사과문/ 흥국생명
2. 본론 : 학교폭력 후과(後果)의 새로운 측면 – 가해자의 경력 몰수
학교 폭력은 단순한 폭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 의한 피해자의 집단적이거나 지속적인 괴롭힘을 말한다. 필자는 교육 평론과 저서 “한국 교육비판”에서 여러 차례 이 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 예전에는 주로 현재 진행형의 문제를 다루었다. 즉 얼마나 피해자들의 고통이 큰지를 파헤쳤고 그 원인을 학벌주의 교육의 관점에서 다루었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학교 폭력의 현장을 20~30 년 뛰어 넘어서 그 당사자들은 이미 그 때의 기억을 잊고 있다가 당시의 사건이 심판되지 않고 시간이 한참 흐른 후 가해자들이 사회적으로 성공을 했고 이를 알게된 피해자들이 고소 혹은 고발한 경우들이다. 위의 사건들에서 나온 것처럼 가해자들은 그들의 과거의 과오를 고백하고 사회적인 매장을 당하는 것이다.
학폭의 양상은 정말 다양하다.
그런 중에 유튜브니 여러 매체를 통해서 가해자들을 심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우리 사회는 잘 나가는 운동선수나 가수들의 학폭 전력이 밝혀지면 가차없이 처벌한다. 이게 요즘 우리 사회의 합의점이다.
그러나 이처럼 처벌하고 징계만 하면 다한 것인지 많은 의문점을 야기한다.
미스트롯2 경연에 나왔던 트로트 가수 진달래도 학교 폭력 경력이 밝혀 지면서 퇴출되었다. 진달래 소속사 티스타엔터테인먼트는 31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본인에게 이번 학교 폭력 논란에 대한 일부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면서 “현재 진달래는 본인의 잘못을 인정했으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 폭력을 경험하는 비율이 거의 30% 라고 한다면
그 가해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학폭위”에 회부가 되거나 혹은 이미 사죄한 경우라고 해도 주홍글씨의 자국은 오래 남아 있다.
아동종합실태조사에서는 2018년 학교폭력 피해 경험 비율이 30.3%, 가해 경험 비율이 24.2%로 나타났다(<표2> 참조). 초등학교 고학년(9-11세)의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감소추세이긴 하지만 중·고등학교(12-17세) 학교폭력 피해 경험보다 많게 나타났다. (교육통계 서비스 홈페이지)
# 학폭위 : “학교폭력대책 자치 위원회”의 준말
또 오랜 기간 후에 가혹한 사회적인 심판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폭력 범죄의 예방이나 경고에 거의 아무런 효과를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 유명 아이돌이나 운동 선수들 중에는 과거 학폭의 혐의가 꼬리표처럼 붙어 있는 경우가 무척 많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 배구선수 자매들이나 트롯 가수 진달래의 경우처럼 피해자들이 명확한 물증이나 심증을 가지고 나오는 경우가 적어서 처벌을 받지 않고 아직 다들 제 자리를 지키고 있긴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축구선수 기성용의 경우 역시 과거의 피해 호소인과 기성용 측이 공방을 하는 상태이다. 이 경우는 특이하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이다.
초등 학교 시절 친구를 성폭력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축구선수 기성용 본인은 강력 부정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범행을 비난하기 보다는 그 집단적-사회적인 조건들과 선행 요소를 살펴보는 일이다. 범죄에는 개인적인-보편적인 요인이 있고 사회적-환경적 원인이 있다. 전자는 인간의 보편적인 죄악성에서 기인하는 범죄이다. 사회와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범죄는 일어난다. 따라서 인간의 뿌리깊은 죄악성이 모든 범죄의 원인이다. 그러나 사회적-환경적 원인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범죄의 빈도가 이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진다. 전자의 경우는 어떤 대책도 없다, 만약 있다면 종교 와 교육 등을 통해서 인간성을 개조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학교 폭력 문제는 전적으로 사회적-환경적 문제에서 기인한다. 즉 모든 초중고등 학생의 30%가 온갖 유형의 학교 폭력에 노출이 되어 있다면 이는 엄청난 사회적, 국가적 문제이다. 30%에 달하는 피해자들이 20~30 년후에 그들에게 악행을 한 당시의 가해자들을 고발하고 또 사회는 이들을 모두 처벌한다면 예, 체능 분야는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위에서 거론된 예-체능인들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학폭의 혐의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이들의 행위를 용서해 주자는 말이 아니라 그 원인과 대책을 알자는 것이다.
# 왕따와 폭력의 원인 = 입시경쟁, 성적 경쟁
언론에서 이미 발표한 것처럼 학교 폭력의 질과 양은 점차 보편적인 추세를 띠고 있다, 즉 남학생에서 여학생으로 그리고 고학년에서 저학년으로 폭넓게 퍼져가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서 사람들은 대체로 성인들의 폭력이나 영화 혹은 오락을 보면서 아이들이 폭력을 학습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TV나 영화 혹은 인터넷 게임이 온통 폭력으로 칠갑을 하고 있고 있으니 이를 자주 접하는 아이들이 이를 모방한다는 것이다. 또 그런 가상세계를 떠나 현실도 그렇다. 특히 최근 유명한 탤런트 신혼부부의 경우 남편이 결혼 전부터 상습적으로 정혼자를 폭행해 왔고 임신한 부인의 배를 발로차서 아이가 떨어졌다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이를 보면 자라나는 아이들, 학생들이 과연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커갈 것인지 걱정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언론이나 학자들이 놓치고 있는 사실은 한국의 경우 학교폭력이 거의 항상 동료들 간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미국이나 독일의 학교폭력과 한국의 그것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서구의 학교폭력은 대부분 학교에 불만을 가진 학생이 교사와 학생, 다시 말해 교육여건 자체를 그 아이들은 증오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교사나 학생들에 대해서 무차별적인 총기난사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 혹은 일본의 경우 대개는 학생들 가운데서 약자를 괴롭히는 일이 일어난다. 이는 달리 말해서 학생들 간의 폭력이라고 해야 한다.
폭력을 당하거나 왕따를 당한 피해 학생들이 다시 가해자로 탈바꿈하는 폭력의 악순환 현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가출 여중생을 유인해 성매매를 강요한 뒤 돈을 가로챈 1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그들 역시 죄의식이 희미한 상태이다. 그리고 청소년 간의 성폭행 빈도 역시 만만찮다. 필자가 아는 한 초등학생은 한 남자 중학생에게 동성애적 성폭행을 단한 뒤 정신이 이상한 상태가 되었었다.
한마디로 해서 이런 청소년 비행들은 모두 청소년들의 죄에 대한 무지와 무책임이 만든 결과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개인보다는 사회에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왜 청소년들이 죄와 악에 대한 인식이 없냐는 것이다.
이 역시 교육 여건과 구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도덕 개념을 어린 영혼들에게 각인해줄 여건이 없다는 것이다.
도덕 개념의 한 예, 즉 “남을 해치지 마라” 혹은 “남의 소유를 훔치거나 뺏지 마라” 같은 경우를 보자 :
이런 간단한 도덕 규범들이라도 이것들이 인간의 영혼에 각인되려면 즉 체화(體化) 하려면 시간과 경험 그리고 노력 등이 필요하다.
단순히 도덕 교과서에서 좋은 말들이 아무리 많이 나와도 이들이 진정 내것이 되려면 시간과 경험 혹은 훈육 등 많은 교육적 비용이 든다.
그 중의 하나가 놀이 혹은 스포츠 등인데 한국의 아동들은 놀거나 스포츠 하는 것은 꿈도 못꾼다. 대부분 아동들은 학교, 과외, 보충 등을 하는데 시간을 다 허비하고 남는 시간은 핸드폰이나 들여다 보고 게임이나 하는 게 전부이다.
# 놀지 못하는 것이 도덕 발달의 치명적인 후과(後果)를 가져온다.
유희하는 인간(호모 루덴스)를 쓴 호이징가에 의하면 “사회적 놀이”는
규칙 준수가 그 생명이다. 즉 놀이를 통해서 아동들은 인간에게 그토록 중요한 “규칙 준수” 라는 덕목을 배운다.
여기서 말하는 놀이의 규칙은 프로스포츠를 지향하는 한국 체육의 놀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놀이의 규칙을 말한다.
즉 어릴 때부터 자유시간을 뺏고 승부에 올인하기는 가르치고 배우는 한국의 스포츠 교육은 진정한 자발적인 규칙 개념을 심어줄 수가 없다.
그러니 위의 이재영, 이다영 선수들이 초등학교 운동 팀에서 그토록 가해자 역할을 한 것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 규칙을 배우지 못했다. 나중 어른이 되면서 사회 규칙을 배우고 준수하면서 도리어 그런 구속 하에서 이들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여 그 방면의 휼륭한 기술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어릴 때 어긴 도덕 규칙의 위반 때문에 그들은 그 훌륭한 운동 선수로서의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모든 공로를 뺐기고 미래마저 어둠의 세계로 향한다.
위에서 다양한 유형의 청소년 범죄의 형태가 고발되었다. 그리고 서구의 학교 폭력과 한국 혹은 일본의 그것이 다른 것은 청소년 간의 범죄가 주종을 이룬다는 것이었다.
그런 근본적인 이유로 필자는 무엇보다도 한국 교육의 입시제도에서 찾는다. 다 알다시피 아이들은 치열한 입시 경쟁, 성적 경쟁으로 내몰린다. 그런 와중에서 경쟁에 흥미를 잃는 아이들은 대개 학교, 즉 교사와 동급생으로부터 소외된다. 부모들 역시 그런 풍조를 더욱 조장한다. 자식에게 공부 못하는 친구들과는 사귀지 말라고 강요한다.
소위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 그러니 그들은 자연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괴롭히고 싶어 한다. 이런 와중에서 왕따, 금품갈취, 폭력 등의 비인간적인 일이 발생한다. 교사들 역시 이런 일에는 거의 속수무책이다. 필자가 아는 한 고등학교 교사는 아이들이 일진(폭력 두목)에게 당하지 않도록 기도만 한다고 했다. 극심한 공부 경쟁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과정을 좀 더 상세히 분석할 수도 있지만 이정도만 하면 독자들에게 이해가 될 것 같다.
다시 말해서 학교에서 자기 공간을 발견할 수 없는 아이들 중에서 의지력과 자부심이 강한 아이들은 폭력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과 존엄성에 대한 자기평가와 객관적인 평가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즉 자기들에 대한 학교 측의 평가에 만족할 수 없다. 교실 부적응의 형태는 폭력을 제외하고도 아주 다양하다. 그 유형별 분석은 다른 기회로 미룬다.
그리고 이는 꼭 공부 못하는 아이들 중에서만 폭력 범죄인이 발행한다는 말은 아니다. 요즘은 공부 잘 하는 아이들, 잘 생긴 아이들 그리고 잘 사는 아이들도 폭력의 유혹에 노출된다. 그리고 이런 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으로서 교실 부적응 외에 다른 요인은 주입식/객관식 수업과 평가에 있다.
주입식, 객관식 공부와 평가는 학생들의 주체적 사고력을 키우지 못한다. 그리고 개념 이해와 그에 대한 주체적인 서술이 아니라 오직 문제풀이만을 중점적으로 취급하는 학원식, 참고서식의 교육은 인간의 내면성을 파멸시킨다. 이런 교육과 학습은 인간의 자유능력을 말소하고 노예적인 순응만을 강요한다. 암기와 유형별 문제 풀이는 사유와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이런 것은 인간의 이론적, 실천적 능력을 약화시킨다.
3. 결론 : 학교폭력 해결과 전망
사실 죄를 짓는다는 것은 죄와 유혹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이는 주변 상황을 주체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법과 규칙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로크(J. Locke)에 의하면 자유란 법을 지키는 능력이다. 법이나 규칙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성인(成人)이 아니다. 우리 교육은 이처럼 건전한 성인, 책임 있는 성인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교육이다. 자율보다는 타율이 입시지옥에서는 유리하다. 그런 아이들이 성적이 좋다. 설령 자율적으로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들도 그 지적, 도덕적 능력은 연마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공부한 것들은 대학교에만 들어가면 거의 송두리째 잊어버린다. 그러니 대학교수들은 요즘 대학생들의 실력이 일천하다고 나무란다.
위의 분석에서 이미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청소년 폭력과 범죄의 문제는 결국 잘못된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시 바삐 이 노예적인 교육을 바꾸어야 한다. 학벌주의, 출세주의에서 발생하는 교육의 폭력화, 비인간화는 청소년들의 정신을 좀 먹고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이를 위해서는 필자가 항상 주장하는 교육의 공화주의를 시행해야 한다.
즉 공부를 못하는 애들도 잘살 수 있는 독일의 시스템을 연구하여 한시바삐 한국에 도입해야 한다. 복선적 학제를 도입하여 획일적인 입시위주 수능 위주의 교육을 벗어나야 한다. 일학습 병진제를 실시하여
실업계나 예체능계 지망생들이 조기에 그들의 진로를 갈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