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중앙일보사에서 발행했던 시사지
1998년 7월호 월간중앙 WIN에 실렸던 기사내용을 옮겼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해병대 제 38호 1998.07.01
......................................................................
응집력 강한 전우회 '海兵' 한마디로 통한다 - 권태동 월간중앙 WIN 기자
지난 여름 해병대 전우회 회원들이 서울 시내 곳곳에서
해병대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시위와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란 말은 해병대전우회원들의 끈끈한 동지애를 보면 실감난다. 그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도 ‘해병 몇기 누구’라고 해병 복무 경력을 밝히면 ‘형님─아우’ 사이가 된다. 한 기수라도 낮으면 그 자리에서 딱 차렷자세다. 혹독한 훈련과 모진 기합을 공통적으로 겪었다는 동질감은 전우회를 그 어떤 단체보다 단단하게 응집시킨다. 70만 예비역 해병대원의 중심부, 해병대전우회와 거미줄처럼 엮인 예비역 인맥의 면면을 살펴본다.
“해병혼은 죽지 않았다. 해병대를 돌려달라!”
폭염이 뜨겁던 지난해 7월 어느날 서울 용산의 국방부 정문 앞. 거칠고 우렁찬 군가(軍歌)와 구호 소리가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검정과 빨강, 진노랑색이 어울린 해병대 군복에 팔각모를 눌러 쓴 남자 1백여명이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며 맹렬히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해병대전우회(이하 전우회) 소속 예비역 해병대원들이었다.
이들은 한여름 뙤약볕에서도 ‘칼같이 오와 열을 맞춰’서서 지휘자의 선창(先唱)에 따라 목청을 높였다. 이같은 시위는 이날 광화문과 여의도에서도 벌어졌다. 때맞춰 서울 시내에는 ‘해병대 원상회복!’ ‘해병혼은 살아 있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들이 곳곳에 나붙었다.
이미 오래 전 군문을 떠나온 이들 예비역 해병대원들이 이처럼 거리로 나선 이유는 한가지였다. 자신들의 모군(母軍)인 해병대를 해군으로부터 독립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해병대는 지난 49년 4월 독립부대로 창설됐다. 그러나 73년 10월 ‘군의 경제적 운용’, 즉 국방예산 절감이란 명분 아래 해군에 흡수된 이래 독자성을 잃은 채 운용돼 왔다. 해병대로 제대했어도 주민등록의 병역란에는 해군으로 기재되는 등 ‘해병대 역사’가 끊어졌던 것이다.
이날 시위에는 막 제대한 청년회원을 비롯해 백발이 성성한 노인회원까지 참가, 해병대 예비역들의 세대를 뛰어넘는 단결력을 과시했다. 선배 해병들의 이런 노력은 지난 5월4일 마침내 그 결실을 보았다. 이날 국방부는 그동안 해군참모총장이 갖고 있던 해병대 인사·예산권한을 해병대사령관에게 돌려준다는 골자의 ‘해병대 독립성 강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해병대가 해군에 통합된 지 꼭 25년만의 일이었다.
2년간 노력 끝에 ‘원상회복’열매
국방부의 발표가 있던 날 전우회(총재 김정호 예비역중장·69)본부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축하전화가 잇따르고 방문객들마다 손을 잡고 얼싸안았다. 김총재는 “기쁨과 감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동안 이 문제를 위해 애써 준 예비역 해병대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전우회가 주도한 ‘해병대 원상회복 운동’은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해병대의 좌우명이 빛을 발한 일대 ‘사건’이었다. 문제를 처음 제기하고 끈기있게 추진해 결국 성사시킨 주역이 바로 해병대 군문을 나온 예비역들이란 점에서다. 예비역 해병대원들은 96년 여름부터 이 문제에 매달리기 시작, 2년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해병대 원상회복이라는 값진 열매를 거두었다.
예비역 선배들의 ‘활약’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73년 깃발을 내린 해병대사령부가 87년 군 편제상 복원될 수 있었던 것도 예비역들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당시 대선을 한달여 앞두고 전우회원들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해병대사령부를 복원하면 선거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청탁을 넣어 허가를 얻어냈던 것이다. 해병대 예비역 장교들의 모임인 청룡회의 현소환(해간30기·전 연합통신 사장) 회장은 “몸으로 국가를 지키는 현역 후배를 받쳐주고 힘을 북돋워주는 것이 예비역의 역할이며 해병대의 전통”이라고 잘라 말한다.
창설 이래 지금까지 해병대를 거친 예비역 해병대원은 장교·사병을 모두 합쳐 70만명. 국내외 각계각층에 퍼져 있는 이들의 구심점이 바로 전우회다. 전우회가 결성된 것은 89년 4월15일. 예비역 중장으로 제4대 해병대사령관과 국방장관을 역임한 김성은씨를 초대 총재로 추대하면서 순수 민간단체로 출범했다.
김총재는 93년 9월까지 2, 3대 총재를 연임하면서 전우회의 기본 틀을 잡는 데 공헌했다. 그 뒤를 이어 제9대 사령관을 역임한 이병문(해병 간부후보생1기, 예비역 대장)씨가 4, 5대 총재로 재직했다. 지난해 12월엔 제13대 사령관 출신 예비역 중장 김정호(해간3기)씨가 6대 총재로 선출돼 현재 전우회를 이끌고 있다.
전우회는 상하 3단계의 조직단위로 이뤄져 있다. ▷서울에 본부를 둔 중앙회를 정점으로 ▷15개 시·도 연합회, 그리고 그 아래로 ▷전국 2백17개 시 · 군· 구 지회(支會)가 구성돼 있다(98년 3월10일 현재). 중앙회는 전우회의 주요 정책 결정과 전국규모 행사를 주관한다.
지역사회에서 교통정리 ·방범순찰 ·환경보호 등 일상적인 봉사활동을 벌이는 주체는 시·도 연합회와 각 지회다. 이들 골격 조직과 함께 70여개에 달하는 기별(期別)모임과 예비역들의 직업에 따른 직종별 연합 등 1백18개의 친목단체가 결성돼 있다. 미국·캐나다 등지의 30여 해외지회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70만 해병대 예비역을 대표하는 전우회의 조직과 예산이 일반의 예상과 달리 극히 소규모라는 점은 뜻밖이다. 서울 신길동의 옛해병대사령부 건물 1층 한켠에 자리잡은 중앙회 사무국에는 현재 6명이 상근(常勤)직으로 돼 있다.
사무국을 총괄하는 양병섭(해간11기) 사무총장과 박헌태(해간30기) 기획실장, 진성식(하사관교육대2기) 총무국장, 김영환(해병169기) 조직국장, 홍보국장(일시 空席), 전산담당 여직원 등이다. 총재는 비상근직으로 대개 1주일에 한차례 정도 사무국에 들러 업무를 처리한다. 총장 1명과 국장 4명, 전산직원 1명이 전부인 ‘초미니’사무국인 셈이다.
예산도 풍족하지 않다. 지난 92년 해병기동봉사대 활동을 돕는다는 취지로 전경련(全經聯)에서 모금해 준 기금(4억원)에서 나오는 이자가 수입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지회에서 매년 회비조로 10만원씩 납부하고는 있지만 중앙회에서 지회에 내려보내는 각종 자료나 기념품 등에 드는 비용이 항상 그것보다 크다. 결국 기금에서 나오는 이자수입으로 사무국 운영비를 충당하지만 항상 부족한 상태다.
활동예산 지역별로 ‘자급자족’
전산담당 여직원을 제외하고 사무총장과 각 국장들은 모두 봉급을 받지 않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산하 연합회나 지역별 지회들에 대해서도 금전적 지원은 거의 없다. 자연히 각 지회의 활동비용은 ‘자급자족’이다. 중앙회든, 지회든 일이 있으면 그때그때 회원들이 비용을 염출, 충당한다. 거리에서 자주 눈에 띄는 해병기동봉사대의 컨테이너 사무실도 대부분 각 지방단체에서 지원한 것이다.
전우회 산하 단체중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청룡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 신문로 구세군회관 7층의 사무실 운영비를 현소환씨가 사비로 충당하는 실정이다. 이렇게 쪼들리는 이유는 공식 수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중앙회 박헌태 기획실장의 설명.
“사단법인이 되지 못하고 임의단체로 유지돼 왔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법인화되지 못하다 보니 회원들로부터 정식 회비를 걷는 데 한계가 있어요. 전우회의 법적 존립근거가 우선 분명해야 회원들에게 회비를 내라고 권고할 수 있으니까요. 기업인 회원들로부터 기부금을 받기도 어렵게 돼 있습니다. 영수증을 발급해 주어야 기업으로서도 손비(損費)처리가 가능한데 법인화가 안되다 보니 기부금에 대한 영수증 발급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이런 외양만으로 보면 전우회는 일반적인 다른 단체들과 별로 다를 것도, 내세울 것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아주 작고 초라해 보인다. 그런데도 전우회와 예비역들은 모두 한결같이 ‘모든 단체 가운데 우리 해병대전우회가 최고’라고 내세운다. ‘돈 얘기’에 뒤이은 박실장의 전우회 자랑.
“단돈 1원 생기는 것이 없는데 우리가 왜 여기 나와 일하겠습니까. 생기는 것도 하나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자기 시간 버리고 자기 힘 들여가면서 무엇하러 교통정리·환경감시·방범순찰 같은 일에 나서겠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는 해병’이라는 단단한 긍지와 자부심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긍지와 자부심에서 어떤 단체도 따라오지 못할 결속력과 단결심이 나오게 됩니다.”
청룡회 변기룡 사무차장도 “처음 만나는 사이에도 ‘해병 몇기 누구’라고 하면 서로 다 통한다. 그래서 단 한 기수라도 아래면 그 자리에서 딱 (차렷)자세가 나오게 마련”이라면서 “비록 재정적으로는 당장 열악하지만 그런 결속력이 있기 때문에 전우회 자체도 발전하면서 사회적으로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공익단체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해병출신입니다’한마디면 통한다
50여년에 걸쳐 70만 대군(?)이 사회에 진출한 까닭에 어느 분야든 해병대 선후배가 안 걸리는 곳이 없다. 그렇게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해병대 예비역들은 자신이 해병대 출신임을 숨기는 법이 없다고 한다. ‘그 험난한 훈련과 혹독한 기합을 견디고 나왔노라’는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전우회원들의 면면을 보자.
해병대가 배출한 국회의원으로는 박찬종 ·홍사덕·장석화·정창화·박구일·최희준씨 등을 비롯해 공정식·강기천·정광호·김정호(현 총재)·정재원·최상진·이진우·허재홍씨 등이 있다. 이들 대부분이 장교 출신인 데 비해 ‘부드러운 남자’로 통하는 홍사덕씨는 사병(해병131기) 출신이다. 박찬종·장석화씨는 해군법무 출신으로 해병대에 배속됐다. 최근 자민련 사무총장을 퇴임한 박구일씨는 해사12기 출신으로 과거 전우회 사무총장에서 전국구로 발탁돼 정계에 진출했다.
장관도 상당수 배출됐다. 전우회 초대총재였던 김성은씨가 국방부장관을 지낸 것을 비롯해 홍성철(전 통일원·해병 특채)· 이희일(전 동자부·해간7기)· 김기춘(전 법무·해군법무)· 백광현(전 내무·해군법무)·강보성(전 농림수산·해병4기)·박상범(전 경호실장·보훈처장, 해간33기)씨 등이 그 면면이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극동문제연구소장을 역임한 강인덕(해간33기)씨가 통일부장관으로 입각했다.
흥미로운 것은 특히 언론계에 열성당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현재 청룡회장을 맡고 있는 현소환 전 연합통신 사장을 비롯해 SBS의 윤혁기 사장, 조선일보 안병훈 전무, 동아일보 김정서 논설위원 등이 간부후보생 30기 출신 동기로 청룡회는 물론 전우회를 이끌어가는 핵심인물들로 꼽힌다. 이들보다 한 기수 후배인 중앙일보 김경철 상무(해간31기)도 예비역들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
87년의 해병대사령부 복원, 그리고 이번 해병대 원상회복을 주도한 것도 이들 30기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외에도 김원태(月刊중앙 WIN)·장수근(서울신문)·양평(서울경제신문)·윤양중(동아일보)씨 등이 신문쪽에, 이동린·최동철·김태흥(이상 KBS), 김제혁·김익호·최창신·김용섭·최영언(이상 MBC)씨 등이 방송쪽으로 진출해 자리를 잡았다.
대부분 해군 특교대(特敎隊) 출신으로 해병대와 인연을 맺었던 법조계 인사들로는 김용철 전 대법원장, 김문희 헌법재판소 판사, 선남식 전 고법판사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전성환·서정의·김대용·김문상·신창동·김춘봉·이덕렬·박창서·주진학·김상훈·송승현·이영환 ·이운상·이상진씨가 변호사 개업 중이다. 역시 대부분 특교대 출신으로 해병대에 편입된 의료인들로는 박양원(전 경희의료원장)·장익열(전 한강성심병원장)·민병철(현대중앙병원장)·노관택(전 서울병원장)·서응모(일산 서의원장)·이상료(가야병원장)씨 등이 있다.
대통령 후보에서 패션디자이너까지
학계의 경우 일일이 면면을 소개할 수 없을 만큼 다수의 예비역이 진출한 상태다. 전우회에서 파악한 대학교수들만 해도 전국적으로 3백여명에 달한다. 원영무(인하대 전 총장·해병4기)씨와 양석호(상지대 전 총장·해간7기)씨 등 대학총장들도 배출했다. 전문성을 살려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이들도 적지 않다. 이동성 영산연구원 교육연구소장(해사11기), 김영학 통일문화연구소장(해간16기), 이선호 한국군사학회 부회장(해간19기), 김기동 한국사회교육원장(해간33기) 등이 그들이다.
남다른 감수성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문화·예술계라고 해서 해병대 출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학쪽에는 김용성· 오유권·정건영· 최우식· 천금성· 조성국· 임영덕씨 등이 소설가로, 윤부현·오동춘·장국진·정인성씨가 시인으로, 김주동·김태문씨가 수필가로 활발하게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미술계에선 이흥주·최종걸·이예수씨가 활약 중이고 이동수씨는 패션디자이너로 이름을 얻었다. 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 음악가로도 활동 중인 인사들로는 곽진용(강릉대)·백대웅(중앙대)·조인원(춘천교대)·김현경(숭실대) 교수 등이 있다.
대중에게 이름과 얼굴이 친숙한 연예인과 체육인들 가운데도 해병대 출신이 즐비하다. 연예인 중에서 해병대 출신이란 병력(兵歷)이 가장 잘 알려진 이는 콧수염가수 김흥국씨. 김씨는 방송출연 때도 이따끔씩 팔각모를 쓰고 나올 만큼 열렬한 ‘해병대매니어’로 통한다.
전우회 행사 때 출연 요청을 받으면 거절하는 법 없이 ‘제깍 튀어나오기’로 유명해 전우회 동료와 선후배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가요계에서는 남진· 윤항기· 진송남· 박일남씨 등이 가수로, 정풍송·진고산씨 등이 작곡가로 일가를 이뤘다. 영화계에서는 신영균(전 예총회장)씨, 이영실·이병주(영화감독)씨, 한상기(영화음악 작곡가)씨 등이 유명하고 탤런트로는 임채무씨가 잘 알려져 있다.
장수봉씨는 연출가로 명성을 얻었다. 지금 봐서는 전혀 해병대 출신이 아닐 것 같은 이들도 있다.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씨가 6·25전란 중 해병대에 입대해 인연을 맺었고 임희춘씨는 병장 제대했다. 임씨는 가수 출신 국회의원 최희준씨와 동기(해병121기)간이다.
체육계에도 해병대 출신들이 적지 않다. 축구의 경우 박건섭·배동혁·민용식씨 등 원로 축구인들을 비롯해 전·현직 축구협회 전무인 김정남씨와 조중연씨, 심판위원장 최광섭씨 등이 있다. 프로구단에서는 김호(수원삼성 감독)·허정무(전남드래곤즈 감독)·조영중(전 LG치타스 감독)·유인갑(대우로얄즈 고문)씨가 활약 중이다. 한양대의 이회택 감독, 청소년 대표팀의 원흥재 감독, 여자대표팀의 이이우 감독 등도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해병대의 성가를 빛내고 있다.
프로야구의 경우 정동진 전 태평양돌핀스 감독과 우용득 전 삼성라이온스 감독 등이 유명하고 농구인으로는 이인표(삼성농구단 감독)·김재웅(서울신탁은행 감독)씨가 활약했다. 대한레슬링협회의 장창선 전무이사, 대한태권도협회의 황춘성 전 전무이사와 배성실 심판분과위원장 등도 해병대 대선배들이다.
특히 대한사격연맹의 경우 최성수(자문위원)·신문섭(부회장)·김영현(사무국장)·박종길(이사)·이종현(이사)·배병기(심판분과위원)·황의총(대표팀 코치)씨 등이 장악(?)하다시피 했고, 대한스키협회의 경우도 김하윤(부회장)· 유종현(부회장)·김종기(중·고연맹위원장)·신동식(기술위원)씨 등 해병대 예비역들이 임원진에 포진했다.
민주체제 전환과 법인화, 두가지 숙제
제6대 김정호 총재체제가 들어선 이후 전우회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우선 조직 운영 방식이 바뀌고 있다. 한마디로 군대식 권위주의체제에서 민주체제로의 전환이다. 과거 총재 개인을 중심으로 이뤄져온 상명하달식 조직운영과 의사결정 방식이 회의체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또 회원들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한다는 취지로 각 시·도 연합회와 지회를 중심으로 전우회를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지역사회에 대한 실질적인 활동을 지회가 도맡아 하면서도 주요 의사결정권이 중앙회에 집중됐던 것에 대한 반성이다.
김총재와 현소환 청룡회장은 이 부분의 개혁에 대해 누구보다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장교 출신이든 사병 출신이든 전우회에서는 누구나 예비역 해병대원으로서의 인격과 회원으로서의 자격을 존중받아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중앙회 중심, 장교 출신 중심으로 이뤄져온 전우회 운영을 앞으로 시·도 연합회와 지회 중심, 사병 출신 중심으로 획기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
당장 전우회 최고의결기구인 ‘중앙상임운영위원회’위원 가운데 사병 출신 위원 수가 크게 늘어났다. 종래에는 70명 위원중 사병 출신이 5명이 채 안됐지만 현재 40명선으로 확대됐다. 전우회는 앞으로 이 위원회의 위원수가 1백20명으로 늘어나도 그중 70명을 사병 출신으로 임용키로 했다. 그동안 중앙상임운영위가 갖고 있던 최고의사결정권도 점차 각 지회 대의원들로 구성된 총회쪽으로 옮길 예정이다.
이와 함께 그동안 미뤄왔던 전우회의 사단법인화도 본격 추진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전우회는 최근 정관(定款)을 개정하고, 조직체계의 개편도 마무리했다. 이어 행정자치부(김정길 장관)에 법인등록 신청도 냈다. 그러나 행자부측은 난색을 표명했다. 표면적으로는 ▷군 출신 예비역들의 모임이므로 행자부보다 국방부쪽 소관이라는 점 ▷재향군인회가 있는데 따로 해병들만의 단체를 허용하기 힘들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독특한 결속력을 가진 전우회가 만에 하나라도 정치세력화하거나 특정 정치세력과 연계됐을 때 이를 다스릴 방도가 없다는 점이 법인화를 가로막는 이유가 되고 있다.
전우회측은 이에 대해 ▷정관에 결코 정치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규정을 명문화하고 ▷정치 관련 사안이 문제될 때는 전우회 내부에 이중삼중의 견제기구를 두어 이를 방지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모군인 해병대의 원상독립을 성사시킨 ‘영원한 해병’전우회가 이제 자체 조직 체질의 민주화와 사단법인화라는 두가지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