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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니 책장 위로 조그만 벌레 한 마리가 기어간다
좁쌀보다 작은 쌀색 벌레가 활자와 활자 사이를 타넘고
행간과 행간 사이를 가로질러 곰실곰실 어디론가 기어간다
저 벌레에겐 이 책장이 2차원의 어떤 행성인지도 모른다
나는 낯선 행성에 사는 외계인처럼 이 행성의 미물을 향해
입김을 훅 불어본다 벌레가 납짝 엎드린다 날려가지 않는다
뵈지도 않는 먼지 같은 다리로 책장을 움켜잡는다
아 저 눈에도 안 보이는 다리에도 근육이 있는가 보다
저 벌레의 몸을 이루고 있는 원소들도 초신성에서 온 것이겠지
잠시 후 벌레는 다시 가던 길을 간다 나는 다시 훅 임김을 분다
마찬가지다 벌레는 여전히 잽사게 책장을 부여잡고 버틴다
이 행성에는 폭풍이 자주 분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 벌레에게 가던 길을 다 가도록 책읽기를 멈추고 지켜본다
이윽고 벌레는 책장 뒤로 넘어가 2차원의 행성에서 모습을 감춘다
어디로 가는 걸까, 그 벌레는, 이 낯선 세상에서?
이 우주에서는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제 생명은 지킨다 눈물겹도록
첫댓글 일상 속에서 느끼는 생각들이 나무들이나 하늘이나 날아가는 새들을 보듯 자연스럽게
진솔하게 드러나 있어
맑은 물소리나
바람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칭찬으로 알게요. 고맙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