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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찬 시집 기숙학교
글 머리에
나는 시를 잘 쓸 줄 모른다. 어처구니없이 감옥에 들어가 황당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절박한 처지에서 겪은 생소하고 아픈 체험들을 가슴에만 묻어 두기엔 아까웠다. 무모한 용기인지 모른다.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부끄럽지만 전화위복이라는 말처럼 이 치명적인 시간이 내게 자아 성찰의 여유를 주었으며, 미처 깨닫지 못한 내 삶의 소중한 것들을 일깨워 주었다. 그래서 내가 쓴 것이 시인지도 잘 모르면서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누군들 자신의 삶을 한 권의 시집에 다 담을 수 있으랴. 나 역시 유별난 삶을 살았고, 가지 않아도 좋을 감옥까지 가야 했다. 그러하기에 이 한 권의 시집으로 내 할 말을 다 할 수는 없다. 자랑거리도 못 되지만 아픈 과거를 변명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내게 감옥은 끝의 나락이 아니라 한 세상의 색다른 경험이었으며 새로운 시작의 준비였다고 믿는다.
가기 전에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그 음지의 세계는 바깥 세상의 소중함과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이며,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그곳에서 나를 가르치는 시간 앞에 머리 숙이고 스스로 담금질하면서 이성의 날을 세웠다.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힘과 용기를 주었던 가족과 고향의 선후배를 비롯한 선량한 어른들의 사랑은 생각만으로 가슴이 벅차다. 이 벅찬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더 큰 봉사로 내 사랑을 이 세상에 펼치는 것이라 믿는다. 사랑하는 그 모든 분들께 이 책을 바친다.
2010년 봄
손경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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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왜 있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쉽게 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 대답이 궁금한 사람들은 손경찬의 시집 『기숙학교』를 읽으면 어렵지 않게 그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손경찬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시를 쓴다. 그러면서 시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이라는 사실을 독자들이 믿게 해 준다. 시가 이론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손경찬의 시는 실천시학을 구현한 드문 시집이다.
꽉 막힌 공간을 활짝 열어젖히는 힘은, 몸의 힘이 아니라 마음의 힘이다. 손경찬은 마음의 힘이 참 센 사람이다.
"따져 보면 감옥도 고마운 점 있다. 감옥에 온 사람은 죄 있을지 몰라도 감옥은 죄가 없다."고 소리 높일 만큼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 긍정의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문학사에는 유배지에서 이루어진 명작이 많다. 송강 정철, 고산 윤선도, 다산 정약용 등의 작품을 보라. 그 옛날의 유배지인, 오늘의 교도소에서도 신용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 등은 만인에게 읽힌 작품들이다. 『기숙학교』도 그 대열에 설 수 있는 책이다.
문무학(대구시 예총회장, 문학박사, 시인, 문학평론가)
<추천의 글>
리더의 카리스마와 활력이 넘치는 손경찬,
그의 인생은 어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다.
그의 넘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의 처녀 시집 [기숙학교]는 진실이라는 답을 제시한다.
어두운 과거를 조금도 감추지 않고, 자신이 이룬 일을 과대 포장한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 주는 당당함이 그 에너지의 근원이다.
정직하고 성실한 삶은 그 자체가 감동임을 이 시집은 보여 준다.
온몸으로 살아내는 질곡의 삶이란 얼마나 역동적인가 !
- 전 문화관광부장관, 영화인 이창동
<추천의 글>
누군가 손경찬을가리켜 '인간 사육사' 라 했다.
그의 도움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행복한 이가 적지 않음을 두고 한 말이다.
오랜 세월 그와 지기로 지내는 사람들은 그의 동물적인 판단력과 추진력,
정의감과 의리를 칭찬한다.
또한 문화에 대한 무모할 정도의 열정과 사랑은
이 나라 예술 발전에 일조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시대를 앞선 예술을 볼 줄 아는 탁월한 안목은
그의 예술적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기숙학교]는 일깨운다.
그는 인간뿐 아니라 '예술의 사육사' 다.
- 대구일보사장, 문학박사 한국선
<추천의 글>
사람은 누구나 한 평생을 살아가는데 제 나름의 길이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조물주로부터 공정하게 부여 받은 시간을 무단히 허비하며
뜻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여 가치 있는 생활로 보람된
일을 능동적으로 찾아 이 세상에 빛을 남기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시집 [기숙학교]의 저자인 손경찬은 후자에 속하는 길을 걸어가면서
영혼의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 시공을 봉사와 창의활동에 헌신해가며
살아가고 있는 참으로 선덕을 갖춘 자이다.
[기숙학교]를 읽으면서 느낀 바는 우선 그 시들이 구김살 없이
솔직하고 당당하며 역동적이고 진실성이 있기에
독자들의 감흥과 호응에 매력적인 조화로움이 내재되어 있어
요즈음 호들갑을 떨어가면 잔재주로 도금한 작품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저자 손경찬은 이날까지 육체적 역할에 진력하면서 봉사해온
그 가상한 의욕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감탄치 않을 수 없다.
그가 저작한 작품 속에 흐르는 시맥에는 어두웠던 과거와 체험적 삶을
솔직하게 고백한 시언들이 진솔하게 엮어져 있어
누구에게나 공감이 가리라고 믿어 여기에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이 장 희 (시인. 국제팬클럽대구지역위원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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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일대기(一代記)
새봄이 오면
나는 지금
해묵은 얼룩의 땅에
지나온 날의 퇴비를 뿌리는 중.
아직은 뼈 시린 겨울
얼음장 밑으로
내 사랑의 봄은 밀서처럼 은밀히 전해지는 중.
눈보라 속에서도
희망은 꽃눈처럼 부풀고
다시 오는 봄에 마구 터질 꽃 향기 예매 중
나는 지금,
봄의 암호 해독대로
토실한 뿌리 살찌우며 점프를 준비하는 중.
나의 일대기(一代記)
1
열한 살의 여름,
한 손에 자물통처럼 내 손을 채우고 삶의 문 잠근 어머니, 그 싸늘한 주검의 공포에 붙잡힌 손 빼내려 몸부림치며 천둥 번개 쏟아지는 소낙비같은 슬픔 온몸으로 울었습니다. 놀라 달려온 동네 어른들 엄마 손가락 부러뜨리고 내게 상주 옷 입혔습니다. 광목에 둘둘 말려 리어카에 실려 가는 싸늘한 엄마의 죽음, 생선 장사하며 뿌린 거짓말 때문이라고 어린 나는생각 했습니다. 억척이 되지 않고서야 애비 없는 자식 기(氣), 어찌 살리겠냐고 화장(火葬) 중에 벌떡 일어나 탄식하듯 스러진 어머니 어린 아들 가슴에 묻었습니다.
2
나의 유년은
영해시장 바닥에 패대기쳐진 고등어였다
몸부림칠수록 깊어지는 상처와 갈증
늘 목이 마르고, 늘 허기지고
늘 가슴 한쪽이 아픈
내 유년의 그림은 소금에 절여져 삐쩍 비쩍 말라 갔다.
흰 쌀밥 배부르게 먹고 싶은 날
제사가 있는 친구 집 가서 놀 때
왜 자꾸 배는 꼬르륵, 꼬르륵 거리는지
그 소리 숨기려 움츠려 자는 척 했다
아뿔사, 식구들끼리 제사 지내고 음복하고서
'경찬이는 자니까 내일 아침이나 먹이자.'
젖은 베개 위 잠은 오지 않고 밤새 허기진
배 위로 쏟아지는 달빛에 편지를 썼다
3
어둡고 긴 삶의 길
앞만 보며 조심조심 걸었다
생의 길 훤히 밝혀 줄 등불도 없고,
잘 닦여진 고속도로를 달릴 큰 가방끈도 없고
뛰다 걷다 지치고 힘들 때 돌아보면 든든하게 손잡아 주는
희망같은 부모님도 없었다.
상속 받은거라곤 외로움과 가난, 슬픔이
내 재산의 전부인 까닭으로
고래불 백사장을 뒤덮는 파도,
송천강 물줄기,
대진 앞바다 안고 턷 하니 앉은 상대산을
내 희망으로, 법정 대리인으로 삼았다
저당 잡히지 않는 재산과 희망이
내 힘이었다.
어떤 어려움과도 맞짱 뜰 용기와 의지가 되었다.
산을 닮으려는 노력이
내 나이 삼십 대에 군의원을 만들었다.
굽히지 않는 의지와 용기로 세상에 꽃씨를 뿌리려 했다.
글래디스 태풍 때 많은 인명을 구했다
꽃씨가 피워낸 훈장도 받았다.
그늘지고 어두운 구석마다 꽃씨를 뿌려 달라는
도민의 뜻에 따라 도의원이 되었다.
4
그러나 지금,
나를 두고 밖으로 잠긴 두꺼운 철문
넘치는 것 경계하지 못한 부끄러움으로 다가옵니다.
차가운 감옥에서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세월
놓친 풍경들이 천천히 다가와
참회와 새로운 내 인생의 밑그림이 됩니다.
다시 대진 앞바다에 서는 새벽,
사랑하는 가족의 손 잡고 맑게 씻긴 가슴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맞겠습니다.
나는 못난이
내가 돌도 되기 전에 아버지 돌아가셨으니
어머니에게 남은 세상은 내가 전부일 수밖에요.
함지에 육두문자와 생선 섞어 팔면서도
나만 보면 박꽃처럼 웃던 어머니,
서릿발처럼 찾아온 병마에 시달리다
죽음에 덜미 잡혀서까지 차마 내 손 놓을 수 없었던 게지요.
엄마의 주검보다 엄마 손에 덜컥 갇힌 내 손이 무서워
나는 동네가 떠나가라 울었지요.
손가락이 부러져도, 차마 떨치지 못한 어린 자식 걱정으로 화장(火葬) 중 나를 부르듯 벌떡 일어났던 것이지요.
재가 되어서도 어머니 공기 중에 스며들어 나를 따라 다녔던 게지요.
아찔한 위험이 지난 뒤
꿈길로, 갑작스런 아픔으로 나를 지켜 준 것이 어머니란 걸 깨달았지요.
어머니 살아 계실 때 너무 어려서 효도를 몰랐고
이렇게 지천명에
느닷없는 옥살이까지 하니, 어머니 가슴 얼마나 통곡할까요.
오늘 여든 넘은 고향 어른이 면회
흘린 눈물 마음에 별밭으로 남아서
일찍이 이 함정 왜 알아채지 못했냐고
가슴 치며 후회하는
나는........!!!!
정말 못난이예요.
나의 습작 시
한 시인이
시는 뭐라 뭐라 했다
내게는 설악산 흔들바위 같았네.
에라,
모르겠다!
경험과 감정을 양푼에 비빕밥으로 비벼 내놓았네.
내 시는
전쟁터에서 피투성이로 돌아온 자식 같았네.
한술도 뜰 엄두 나지 않았네.
상처 입은 맘으로 앉아 물끄러미 바라본 탁자,
생채기가 원목의 결 더 아름답게 하네.
부끄럽지만 나는야
나는야
푸르른 동해 바다
고래불 백사장 알몸으로 뒹굴며
부서지는 파도처럼 살았다.
갓 서른에 군의원 되고
더 큰일 하라는 도민 뜻 받들어 도의원도 되었다
서럽고 가난한 이웃들 손발 되어
내 열정의 불꽃 쉬지 않고 타올랐다.
힘들수록 더 단단하게 모서리 깎고 또 깎아
몽돌을 빚는 바닷물같이,
떳떳하고 당당하다가도
누군가 부모님 이야기 꺼내면 눈물 흐르고
밀물처럼 물러서는 마음 약한 소년은.
수형 번호
1789는 감옥에서 받은
문에 끼인 손가락 같은 내 이름
고아나 다름없던 어린 나를 보고
어느 어른이 타고난 화(火)의 기세
젖은 성냥개비 하나로 백두산을 태울 운세라 했다.
불같은 청년인 나를 보고
가까운 사람들은
공자의 인(仁)과 노자의 도(道)를 익혀
중용의 덕으로 자신을 다스리라 했다.
내 이름과 같은 1789년에
우연처럼 프랑스 대혁명이 활화산처럼 일어났다.
이것은 필연적인 암시,
끊임없는 도전 정신, 더욱 새로워져
모두가 살맛나는 세상 만들기에 일조하라는 신의 뜻
의병 천 명을 이끌고 일본과 맞서 조선을 지킨
신돌석(申乭石) 의병대장을 존경한다
'1789'
오늘도 상흔의 이름표 가슴에 달고
자유롭게 저 하늘 날게 될
새 아침을 기다린다.
마음은 자유롭게
사방 막힌 좁은 벽에다 그리는 넓디 넓은 세상
딱딱한 마룻바닥에 누워 내 폭신한 침대를 그려보고
굳게 닫힌 쇠창살 안에서 열린 세상, 열린 자유를 혼자 그려본다.
이 갇힌 공간에서 생의 새 움이 돋고
용기가 움직이고
희망이 버티고 서 나를 지킨다.
금방 보고 돌아서도 또 보고 싶은 딸아이와
한결같은 편안함으로 안식처가 되어 주는 아내
내 들숨과 날숨인 모태,
그리운 고향 영덕이 마음속에 있다.
감옥은 몸만 가두었을 뿐,
마음은 자유롭게
걸어온 내 발자취와
앞으로 가야 할 바른길 더듬어
그 먼 길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게 한다.
고향 편지
일 년여 지루한 기다림
일심 재판 선고일
'피고인 손경찬, 징역 15년'
재판장의 목소리 언 가슴에 찬물을 끼얹었다.
우루릉 겨울 파도 소리가 몰려오고
마른하늘 두드리는 우레가 번득이고
넋 빠진 듯 구치소 돌아오니
고향에서 온 편지가 우산처럼 나를 감싸 안는다.
봄을 기다리는 대지는 항소(抗訴)했다.
시베리아에서 몰려오는 한파처럼
재판장은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굳은 몸속에 봄을 기다리는 기다림이 피 그냥 웃었다.
얼어서 감옥에 돌아오니
친구가 보낸 편지 햇살처럼 나를 녹인다.
나는 다시 대법원 상고(上告)를 했고
마침내 정의의 봄은 왔다
원심을 파기한다는 가슴을 파고드는 봄비소리
기쁨의 꽃망울 축복처럼 터지고, 그 향기
가득 채워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를 쓴다.
학교
그때는 다니지 못했다
가난이 발목을 잡고,
배고픔이 책가방을 빼앗았다.
끈질기게 늘어지는 가난을 달래느라
언 마음 녹일 여유가 없었다.
지천명 눈앞에 두고
꿈도 꾸지 않던 음지 학교에 와
연령 제한 없는 소수 정원 교실에서
밤새워 책 읽고, 시 쓰고 토론 하며
인생 공부한다.
쉬는 시간처럼 고향 산수(山水)가 마음 창으로 들어와 앉는다.
칠보산 깊은 골짜기 봉우리
고래불 20리 백사장 길
동해 바다에서 천천히 쉬지 않고 달려온 파도 소리도 들린다.
보물을 캐듯이
진귀한 음식을 맛보듯이
날마다 마음 밭을 기름지게 가꾸어야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학교, 부지런히 배워야지.
영덕은 나의 생명줄
―도의원 직을 사퇴하며
2004년 2월 14일
통한과 참담함으로 밤을 새우고
내 생의 또 다른 생명
정치 산소호흡기 내 손으로 떼어 냈다.
내 고향 영덕을
나와 함께 감옥에 가둘 수 없다
갓 서른에 군정 파수꾼 일을 맡기고
마흔 살에 도정을 부탁한 군민들,
영덕은 그대로 자유로워야 한다.
감옥의 쇠창살 너머로
변함없을 아침 해를 향해
무궁한 영덕 발전과 군민들의 평안을 기원한다.
영덕은 나의 모태
떼어 내어도 여전히 내 몸의 중심인 배꼽처럼 나의 중심이다.
손경찬
비 오는 날 내 이름자 마음 담아 빗방울에 싣는다.
손, 손에 손잡고 굴렁쇠 굴렁, 굴렁 굴려라
경, 경상북도와 전국이 하나 되어 아름다운 지구
찬, 찬란한 새 역사 다함께 하나 될 때 열리네.
방울방울 이어져 흘러가는 빗방울
영덕 땅을 적시고 동해 바다로 흘러가리.
태평양에서 한바탕 풍물 굿 하며 어우러지리.
겨울 나무
막무가내로 겨울바람이
꿈의 나뭇가지를 흔들어 댑니다.
왕소금 눈발까지 뿌려 가며
사정없이 한쪽으로 몰아붙입니다.
내가 한그루의 나무로 온전하게 서 있는 것은
뿌리인 당신의 사랑이 나를 서게 했습니다.
허리가 꺾일 뻔한 고비마다
가지 끝자락까지 뜨거운 피 돌게 하고
이 모진 겨울 끝에 찬란한 봄이 온다고
버팀목처럼 나를 바로 세웠습니다.
잠긴 문도 겁 없이 흔들며 발길질해 대는
겨울바람 속에서도
나 한그루의 나무로 온전하게 서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내 몸이 된 당신의 사랑입니다.
홀로 걸어가지 않으리
내 인생의 바다에 폭풍우가 일었지
천둥 번개 치는 먹구름 속에서
벼락도 맞고
지진과 해일의 공포에 떨기도 했지.
내 피는 펄펄 끓는 용광로
모든 것 다 이겨낼 수 있었지.
나 이제 홀로 걸어가지 않으리
폭풍우 뒤 푸른 초원처럼
생명의 향기 더욱 짙푸르고
양떼들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풀을 뜯으리.
내 청춘 담금질한 쇳물로 내 집의 뼈대를 세우리.
그림 같은 집
봄바람 살랑거리는 언덕을
사랑하는 아내와 딸 손을 잡고 걸으리
민들레 웃음도 보고, 벚꽃 구경도 하며…….
가족
눈보라 치는 겨울밤
한 평 감옥에서 뒤척이며
문풍지처럼 마음이 떨고 있는 건
하루도 빠짐없이 면회 오는 수척해진 아내
힘없이 돌아서던 모습 때문이고,
아빠 팔에 매달려 즐거운 아이들
물끄러미 바라볼 딸아이가 눈에 밟혀서다.
도민의 대변자 되어
잘못된 행정 질타하며 사자후 토하던 나도
집에 돌아가면 평범한 가장(家長)
내 생각에 뒤척일 가족에게 이불처럼 맘 당겨 가고
추운 감옥은 더욱 추워 잠 오지 않는 밤
부모
힘겹고 외로워서
상대산 언덕에 올라
목 놓아 울던 시절이 내게 있었습니다.
어미 찾아 바다로 가는
송천 강물 보면서
허기져 찬물만 마시던 시절 있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그립고
열한 살 내 손을 잡은 채 돌아가신 엄마가 미워서
냇물이든 강물이든 자식처럼 덥석 껴안는 바다가 그리워
함께 울어 주는 송천 강물 마주하고
하염없이 울던 시절이 내게 있었습니다.
2. 감옥이 가르쳐 주었다
아내
당신은 내게 늘 한결같은 햇살입니다.
지금 먹구름이 우리 사이를 가르고 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당신의 따사로움에 구름도 바람도 항복하겠지요.
당신은 내게 한결같은 고향 바다입니다.
끝없이 푸른 물결로
부서지는 파도로
밀물과 썰물로
하루도 빠짐없이 내 맘 씻겨 내립니다.
당신은 내게 든든한 방파제
거센 풍랑으로 다가오는 고난에서 나를 지켜 주고
흔들림 없이 밝은 빛으로 인도하는 등대입니다.
당신은 이 땅에 내려온 나의 별입니다.
나의 태양입니다.
당신의 밝음이 나를 길 잃지 않게 합니다.
눈물
만날 적마다 당신은
애처로운 마음 웃음으로 감추고
난로처럼 내 맘을 데워 줍니다.
내 앞에서 톱밥 난로처럼 타올라
감옥 안까지 데우지만
돌아서 홀로 돌아가는 당신 맘
재가 되어 눈물에 젖는 걸
나 다 알아요.
당신 보내고 내가 뜨거운 눈물 흘리는 것은
얼었던 내 마음이 녹아내리는 까닭입니다.
아내에게
추위의 한가운데서 태어나
온천수처럼 내게 온 당신
오늘은 당신 생일날,
저 높은 하늘과
자유롭게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봐요.
자유를 박탈당하고 갇힌 내 몸은 내 탓이니
너무 아파하지 말아요.
내가 눈에 밟혀서 빈집에 홀로 앉아
당신이 울까 두렵소
사랑하는 당신,
밖에 나가 하늘도 보고 강물이라도 바라봐요.
빛나는 태양을 보고
얼음 밑으로 오고 있는 내 사랑의 봄 편지
미리 읽어 주시오
아내 얼굴
지루한 장맛비다
울적한 마음이 창살 틈으로 먼 산 바라본다.
한없이 떨어지는 빗방울로
아내 모습 스며든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
어린 딸과
수성못 둑 걸으며
떨어지는 빗방울에
그리움 띄우는 것인지
빗방울마다 아내 얼굴 들어 있다.
차가운 이 벽 하나 넘을 수 있다면
창 틈 비집고 들이대는 달에게
내 마음 전해 보네.
차가운 이 벽 하나 넘을 수 있다면
바로 당신 곁,
귀여운 딸 함께 할 수 있으련만
차가운 이 벽 하나 넘을 수 있다면
넘을 수 있다면 이곳 쇠창살이
얼마나 두껍고 단단한지
저 달에게 말을 하네.
차가운 이 벽 하나 넘을 수 있다면
당신 마음 헤아려 쓰다듬고,
딸아이 부둥켜안고, 보고 싶었다 사랑한다 말할 수 있으련만
저 달보고 말을 하네.
감옥이 가르쳐 주었다
들어오기 전에는 몰랐다
내 아내가 그렇게 예쁘고 착하고, 고맙다는 걸.
오늘 면회 온 아내를 보고
정말 착하고, 예쁘고, 고맙다는 걸 알았다.
감옥이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지.
입원
감옥은 마음의 병동, 나는 깊은 병중입니다.
도무지 치유되지 않는 그리움의 바이러스에 밤낮 끙끙 앓다가
당신을 만나는 날에야 백신이 효과를 발휘하는
지금은 고통스런 전이의 시간
나는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아내여!
내 삶의 대지에
봄빛으로 퍼지고
강물로 흐르는 아내여!
당신은
나의 정부(政府)요 종교입니다.
감옥의 겨울
손이 너무 시려워
당신에게 쓰는 편지
글자가 얼음 위를 가는 듯 자꾸 멈추고 실금이 갑니다.
당신의 따뜻한 손이 자꾸만 그리워
마음이 입김을 불어 얼음에 구멍 뚫습니다.
여울지는 사랑 당신을 향해 급물살 탑니다.
머리맡에 편지를 두고 누워도 감옥의 겨울은 무겁고 더딥니다.
아내의 면회
매일 면회 오는 아내에게 하루건너 한 번씩 오라 해 놓고,
하루 종일 아내를 기다리며 한숨 쉬는 옆 사람 보니
띄엄띄엄 오라 해도 매일 오는 아내에게 아무 말 못 했다.
날마다 어둠을 밀어내는 아침처럼,
막무가내 오늘도 접견 온 아내에게
창문을 열 듯 미안해, 사랑해. 입 안으로 삼키고 말았네.
행복한 날
"사랑해 아빠"로 시작되는 딸애의 편지
"오늘 『곰보빵』이란 책을 읽었는데
어려운 일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시련이
감동적으로 그려진 그 책을 보며
이제까지 불평만 한 나를 돌아보게 되었어……"
딸아이는 힘내라며
엄마보다 아빠를 아주 쬐금 더 사랑한다며
"나 이쁘지?"로 끝맺었네.
오, 행복한 날,
음지의 가을꽃 같던 맘 사라지고
꽃구름 되어 푸른 하늘을 날으네.
작은 우주
가지런한 너의 치아가 보고 싶구나
도톰한 네 귓불 만지고 싶구나
채송화처럼 귀여운 웃음,
너의 찌르레기 같은 귀여움,
그리움이 종일 내 맘을 쪼는구나.
딸아,
넌 나의 작은 우주다.
딸에게 1
너는 내 생애의 중심지, 우주의 본체(本體)
너는 나의 희망, 그리운 노스탤지어(nostalgia).
너는 이 아빠의 존재 증명이다.
어린이날에
내 딸은 열두 살 어린이,
성격까지 나를 닮아 정직하고, 다혈질이지만
인정 많고 영민하다.
감옥에 온 지 2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딸 생각하며 편지를 쓴다.
내 열두 살은 어미 잃은 갈매기였다.
어렵게 한 끼니 해결하고 돌아서면
다음 끼니 걱정에 또 허기졌다.
잘 곳 없어도 밤은 어김없이 와 어둠을 펼쳤다.
내 딸은 배고프거나,
잠잘 곳 걱정 없지만,
뜻하지 않은 별리를 겪는구나.
지방 정가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던 아빠가
질풍노도의 삶을 살다 숨겨진 암초에 걸려
영어(囹圄)의 신세가 되었구나.
사랑하는 딸아,
어린이날이 와도 너와 함께 놀아 주지 못해 미안하다.
너도 알지? 아빠가 어디에 있든 아빠 마음속에는 항상 네가 있다는 걸.
네 태어날 때부터 아빠 마음은 날마다가 어린이날이었다.
장미꽃 한 송이
담장 옆에 피어난 장미꽃 한 송이
며칠을 앙다문 입술이더니만
간밤에 내린 비가 뭐라 했기에
오늘 아침 시원하게 웃는 딸아이 얼굴로 내 품에 안기네
어여쁜 나의 분신(分身) 장미꽃 한 송이 나를 보고 생각하는 듯 조용하네
사랑하는 나의 딸,
너를 닮은 장미꽃 한 송이
아빠 가슴을 향기로 가득 채우네
힘센 향기는 감옥 안도 서슴없이 들어오네
씩씩한 장미꽃 향기에 공연히 우쭐해지네.
어버이날
어버이날 재소자들에게 효도 전화 하게 해 준다는데
내 마음 조각배 망망대해를 떠돈다.
돌도 되기 전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열한 살에 어머니마저 여의었으니
어버이날이면 혼자 울던 어린 내가 떠오른다.
어버이날
등대 같은 열한 살 딸에게 전화를 했다.
천사처럼 깨끗한 네가 아빠 대신 할아버지 할머니께 기도해 다오.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웅변 대회
교내 영어 웅변 대회가 있는 날.
단상에 올라가니 떨렸다.
순간 아파 누워 있는 엄마와 고생하는 아빠가 생각났다.
나는 주먹을 꼭 쥐고 세계를 향해 외쳤다.
발표를 기다리는데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다.
교장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며 일등이라고 했다.
상장을 안고 집으로 달려가려는데 비가 왔다.
엄마, 아빠 차를 타고 아이들이 빠져나간 운동장
눈물이 쏟아져 걸을 수가 없었다.
누가 뒤에서 커다란 우산을 씌워 주었다.
아, 사랑하는 아빠
내 마음 금방 해님이 된다.
동짓날
오늘은 팥죽보다 진하게 밤이 긴 날,
팥죽 먹고 귀신 쫓는 꿈 눈 뜨고 꾼다.
이 밤 지나고 나면
밤은 점점 짧아지고
새해도 그만큼 가까워지리.
새해의 밝고 희망찬 태양 볼 날도 빨라지리.
사랑하는 딸 생각,
새해에 다시 오는 동짓날에는
눈 내리는 스키장에 가서
하늘 향해 두 팔 벌리고 맘껏 웃으며 질주하자.
이 무거운 수의를 벗고
내 품에 새처럼 안기는 딸에게 무슨 말 할까?
피아노 건반 위를 달리는
오십천 새끼 은어 같은 손가락 잡고
어떤 말로 간지럼 태우나
그날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가만있지 못한다.
사랑이 팥죽처럼 끓어오른다.
딸
차가운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용인 영어(英語) 마을에 다녀온
딸아이 소식 듣네.
무지개처럼 꾸며 놓은 이국의 정원에서
꿀벌처럼 신비의 꽃가루 잔뜩 묻혀 왔다네.
모국어처럼 유창한 영어로 지성의 로열 젤리 되어
국경의 벽 허물고
자유롭게 세계를 누벼라.
스스로 빛나는 나라의 기둥으로 자라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여라.
아빠 생애를 탑처럼 우뚝 세우는 너,
우주처럼 신비롭고 아름답구나.
딸에게 2
딸아,
내 삶을 두들겨
널, 저 인류의 번영 위에 반듯한 그릇으로 올려놓으리라.
반듯한 딸아,
내 인생의 지혜를 짜
네 꿈이 저 넓은 세상에 비단처럼 펼쳐지게 하리라.
사랑하는 딸아,
널 생각하는 순간 하늘과 땅이 내 안에 다 있구나.
너는 저 넓은 우주를 내 안으로 감쪽같이 밀어 넣는 놀라운 재주를 가졌구나.
딸에게 3
너는 내일의 푸른 역사
내 뜨거운 피가
고래불 백사장 박차고
삼백만 도민의 한 맺힌 가슴을 풀어헤쳤다
너는 지금 쓰고 있는 나의 역사
두려워 말고 세상으로 나아가라.
동해의 거센 파도를 넘던 아빠의 열정 식지 않았다.
너는 백두대간을 달려
알프스 산을 넘거라.
지구의 형제들과 볼 비비며 지축을 울려라
세계의 으뜸으로 우뚝 서거라.
겨울 향나무
잎 다 진 나무들 사이 오롯이 푸른
겨울 향나무
향나무 곁 우물물은 참 달지
내 딸에게 지극 정성 다하여
친구도 되고,
선생님도 되고
꿈나라 동화 나라 안내자도 되는
처제가 있어 딸아이는 참 밝지.
눈 내리고,
칼바람 불어도 향나무 끄떡도 없이 더욱 푸르고 향기롭다.
바라보는 내 마음 샘물 되지.
3. 내 고향 영덕
비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감옥에 내리는 비
두꺼운 창털을 적시고
조각조각 흩어지는 생각의 갈피
그리움이 젖은 책처럼 무겁다
이런 날엔
가족과 함께 자동차로
강축도로 달려 고향 바다 가고 싶다
치마폭 흔드는 고향 바다
내 맘의 귀싸대기를 철썩 때린다
생각의 파편들 빗물에 떠내려간다.
내 고향 영덕
내 고향 영덕은 자랑거리 참 많다.
백 리 길 넘는 천혜의 청정 해안
먹을거리 대게
놀 거리 월월이청청
볼거리 해맞이공원, 옥계계곡
사월이면 복사꽃도 수두룩하다.
지금은 온 나라가 5․31 지방 선거 북새통
영남은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따 놓은 당상(堂上)이라고
오직 한나라당 공천 받기에 목숨 건다나.
내 고향 영덕군민들은
한나라당 자손도 아니요
열린우리당 핏줄도 아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정당이 아니라
영덕 발전에 힘쓸 참 일꾼, 능력 있는 심부름꾼.
명사 20리 고래불해수욕장 바라보며 우뚝 선 등대처럼
정의와 봉사 정신으로 낮은 곳에서 일 할 책임감으로
당당하게 빛나는 후보가 보석처럼 나와야 한다.
역사 속에 빛이 되는 영덕을 위해
군민들과 하나 되는 참다운 일꾼을 선택하는 것은
영덕 사람들의 신성한 의무.
영덕은 꿈꾼다.
다 같이 잘살고 그래서 더욱 아름답기를.
영덕은 한나라당도 열린우리당도 자유선진당도 아니다.
영덕은 영덕만으로 자랑이다.
어머니
지지리 복도 없는 여인이었지요.
상처한 남자의 재취로 들어갔으나
낳은 자식 돌도 되기 전에 남편 장사 지내고
그 길로 그 집에서 쫓겨났다지요.
내가 이 세상 전부였던 어머니,
겨우 마흔을 넘긴 나이에 얼마나 발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내 손을 꼭 잡은 채 저승에 가셨을까요.
어머니 가시고 난 뒤에야
그 품에 안겨 듣던 다정한 파도 소리가 진짜 무섭게 밀려왔습니다.
두려움에 떨 때마다 나를 지켜 주신 어머니,
언제나 위험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어머니 손길 깨달았지요.
오늘처럼 고향 바다 파도 소리 그리워지는 날에는
한 번도 달아 드리지 못한 카네이션 한 송이,
어머니 가슴에 훈장처럼 달아 드리고 싶습니다.
영해시장 어물전
영해 중심가 성내동 뒤편 어물 시장은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이른 새벽부터 북적거렸다.
어물전 난전에서 엄마는
나를 업고 생선 장사를 했다.
내 추억이 비릿하게 자라던 영해시장 어물전에 서면
지금도 생선을 다듬던 엄마가
'경찬아' 하고 부르는 것 같다.
어머니 제사
음력 칠월 초사흘
어머니 제삿날
자정에 홀로 깨어 북쪽 향해 무릎 꿇고
찬물에 넣어 둔 우유 한 통, 사과 한 개
홍동백서(紅東白西) 앞에 놓고 기도한다.
어머니,
이 못난 자식 감옥에서 제사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 닥칠 때마다 어머니는
제게 의지와 용기, 참고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이른 이별로 저를 더 강하고 굳세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제 모습에 아파하거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머니도 아시죠?
이제 착한 아내와 귀여운 딸도 있고,
이 세상 보람 있게 살겠습니다.
더 큰 사람이 되겠습니다.
어머니 나를 안고 우시는지
울컥 뜨거워지는 가슴,
음복하듯 우유를 마신다.
꽁치 한 마리
엄마 돈에서는 언제나 생선 비린내가 났다.
학교 기성회비 낼 때마다
선생님 앞에 던지듯 놓고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아침 특식으로 꽁치 한 마리 나왔다.
갑자기 엄마의 생선 비린내가 물컹 그립다.
축산항 형님
축산항 후미진 곳
허름한 세탁 수선 집
새벽부터 밤늦도록 옷 수선 다림질하는 형님
굳은살 박힌 손에서 40년 동안 반듯하고 깨끗해진 옷 수만큼이나 인정 많다.
형님에게는 씻기지 않는 바다 냄새가 있다.
파도처럼 어린 나를 밀어냈던 건 가난이었다.
명절 제사상에 어머니 밥 올려놓고
'미안하다.' 했던 형님 말에는
가난을 극복하는 처세술 묵언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었던
깊은 아픔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누구도 원망 않고
한결같은 성실과 검소함으로 살아온
형님은 내게 바다였다.
말없이 뒤에서 동생들을 가슴에 품었던 거다.
웃을 때마다 형님에게서 물씬 풍기는 바다 냄새,
이랑 깊은 주름에 겨울 어판장 햇살 부서진다.
형님 웃음이 다리미로 내 마음 주름 다린다.
내 마음 고향 길에
캄캄한 밤중 내 마음은 해바라기
고향 길에 서 있다.
내 삶의 터전 영덕(盈德),
고향 그리는 정성으로 그 이름 넣어
계영선덕(戒盈善德)이라 쓴다.
계영배(戒盈杯)의 정신으로
고향 위해 일하자는 결심
깊이 뿌리내린 내 맘 알알이 별이다.
내 몸 갇혔어도 깨어 있는 마음
언제나 고향 길에 서 있다.
※계영선덕(戒盈善德) : 넘치는 것을 경계하고 바르고 착하게 덕행을 베푼다.
비 오는 날
종일 비가 내린다.
따뜻한 구들목에서 시작되는
고향 생각 자욱하다.
정구지 전에 막걸리 한 잔
영해시장 니나노집 아지매랑
죽은 성우도 빗방울 속에 있다.
창식이도 있고,
미국 간 명헌 형도 있다
고향 친구들 자박자박 무더기로 걸어온다.
시시한 얘기에도 왁자하게 웃음 터뜨리는
그리운 얼굴들 다 몰려와
내 마음 옥계계곡 흘러나온 냇물처럼 고향 땅에 흐른다.
다시 여름 왔는데
고래불해수욕장이 궁금하다
송천다리 밑,
칠보산 나무 그늘도 잘 있는지
다시 여름 왔는데
나, 못 가네
그리운 고향에 못 가네
그리운 고향
고향 초입 장사마을 지나고
강구를 휘돌아 굽이굽이 바다 기슭 끌어당기는 내 고향
내 맘이 내 맘 밖에 있을 때
영덕 바닷가 밀려오는 파도가 철썩철썩 암벽을 때린다.
지금 눈 내리는 겨울밤
마음은 하얗게 밤길 달려가
고래불 파도 소리 벗 삼아 물미역 같은 추억 건진다.
안개 자욱한 백사장 너머
새벽을 몰고 오는 뱃고동 소리
날개를 펴는 부둣가 팔 벌려 안아 주는 고향이 그립다.
고향으로부터 오는 편지
감옥 마룻바닥에 앉아
책 읽고 신문을 봐도
마음은 늦은 오후 환하게 열고 오는 편지 기다린다.
오늘은 효탁 선배가 보낸 편지에서
왁자하게 풀어지는 고향 내,
마음의 먼지 씻긴 눈물 흐른다.
맑은 물 굽이치는 오십천
파도치는 고래불 백사장
갈매기 낮게 나는 축산항이 내게 손짓한다.
내일은 누가 또 고향 소식 보내올까
고향으로부터 오는 편지가
감옥에 풀어 놓는 싱싱한 냄새로
또 하루를 견딘다.
자유
비, 감옥 벽 두드린다
백암온천 뜨거운 입김 내뿜고,
축산 방파제 포장마차 나무의자에 아무렇게나 앉아
물회나 먹자며 자유가 혀를 날름거린다.
새벽 안개 헤치며 강축도로 휘감고 돌아
동해 바다로 달려가는 마음
두어 평 감방에 오소리처럼 웅크린 몸이 아프다.
친구의 편지
친구의 편지는 꽃보다 아름답다
얼마 전에는 그립다
눈물겹더니만
오늘은 고향 얘기 칡넝쿨로 우거졌다.
초등학교 동창회 이야기 쏟아 놓으며
동심으로 돌아가 즐겁던 중에
내 소식에 기도 한 송이씩 모았다며
우정 꽃다발 아름 안긴다.
내년 동창회 때는
다 함께 만나 학교며 온 동네가 들썩이도록
한바탕 멋지게 신명내어 보잔다.
다음에 또 쓸게, 사랑한다.
꽃보다 향기로운 친구의 편지가 만국기 휘날리는 모교 같아
내 마음 가을 하늘이 된다.
월간지를 기다리며
― 김동섭 형에게
어둡고 차가운 감옥을 데우러
한 달에 한 번 사백 리 먼 길 달려오는 분 있습니다.
눈비 오거나 바람 불어도
지성과 인정 한 보따리 싸 들고 오십니다.
하루빨리 자유를 갈구하지만
이분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꼬리를 내립니다.
철창 너머로 흰 눈이 내립니다.
밖에서도 이렇듯 기쁨으로 맞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흰 눈 맞으며 그 귀한 임 오시나?
마음이 목 빼어 자꾸만 뒤꿈치를 듭니다.
고향 사람들
감옥은 낭떠러지 그러나 새로운 도약의 장
또 다른 시작이란 걸 고향 사람들이 가르쳐 주었다.
가슴으로 적어 보낸 고향 편지와
사연 많은 영치금이
사랑의 증표로 가슴에 새겨지는 걸 알았다.
감옥에서 깨달았다.
어판장 생선 파는 아지매들의 인심,
고추 팔은 농민후계자의 정성,
생활보호비 받아 떼어 준 독거 할머니의 눈물 같은 돈,
사람이 보물이며 아픔을 치유하는 귀한 약초임을.
감옥에서 배웠다.
내가 꼬깃꼬깃 접은 사랑의 채무서
가슴 속주머니에 넣어 둔 빚쟁이라는 걸.
수백 리 길 달려와 풀어 놓고 간
고향 사람들의 많고도 큰 사랑 빚 탕감을 위해서도
이 감옥 빨리 벗어나 새롭게 더 빛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차가운 마룻바닥은 오늘도 나를 가르친다.
친구의 회사 창업에 부쳐
어둠을 헤치고
동해 바다 위로 힘차게 솟구치는
해의 기운 받아
무궁무진 번창하여라.
믿음과 우정이 네 경영 방침이기에
이 세상에 없는 친구 이름을 걸었지.
성우그린산업
하늘에 있는 친구도 기뻐할 것이고,
감방에 있는 나도 자유를 얻은 것처럼 기뻐 축하하네.
더딘 듯한 지금의 반듯한 걸음이
내일, 나라와 겨레에 일조하는 용틀임으로 승승장구하리라.
푸르게 청렴하게 우뚝 일어서거라.
영덕의 자랑, 김진규 선수
김진규 선수는 영덕에서 난 축구 선수
내 고향 후배.
그가 태극 마크 달고 그라운드를 누빌 때
붉은 악마가 달구는 응원의 용광로
온 국민이 대한민국!을 외쳤다.
고이 잠든 신돌석 장군의 혼령이 덩실거렸고
장육사 나옹 선사도 환히 미소 지었고
고래불 앞바다 푸른 파도도 기뻐 어깨춤 추었다.
아아, 대한민국,
아아, 영덕이여,
자랑스러운 김진규 선수여.
그래도 갈 수가 없구나
고향 집에서 아내가 끓인 된장과 하얀 쌀밥이 먹고 싶다.
어젯밤,
쌀밥에 된장을 먹다가
어깨를 두드리는 기척에 돌아보니
캄캄한 어둠을 밟고 비가 오고 있었다.
철창에 갇혀 꿈에 보는 고향 밥상은 생일상처럼
물회나 전복죽 아니어도 배가 부르다.
깨어서 보는 벽과 벽, 차가운 마룻바닥
두 시간이면 가 닿을 고향,
그래도 갈 수가 없구나.
감옥 밖에 내리는 빗소리만
고향 바다 파도처럼 내 맘에 자꾸 부서진다.
4. 감옥은 죄가 없다
유치장
구속 영장 들고 온
검찰서기가 나를 경찰서 유치장으로 데려간다.
철문을 열고 수갑 채워
닭장 같은 이 층 유치장
너구리처럼 웅크린 범죄자들 속에 나를 밀어 넣었다.
양복 차림으로 나무의자에 엉거주춤 앉는데
담배 있냐고 묻는 육십 대 중반의 사내
이번엔 죄명이 뭐냐고 묻는다.
순간,
이제까지의 사회적 지위나 명예는 화들짝 놀라
유치장 밖으로 달아난다.
길 없는 길
구도자가 가는 길 없는 길은
아무나 갈 수 없는 길,
길 없는 길도 개척자에게는
모험과 도전의 스릴 넘치는 길,
감옥에 오는 길은 와서는 안 되는 길
와서는 길 없는 길에서 헤맨다.
날마다 길 찾아 길 만들어 가는 길
캄캄해도 길 찾아 나가야 사는 길.
감옥의 첫날 밤
수의(囚衣) 입은 나를
사방 철창살 둘러쳐진
좁은 독거 방이 덜컥 문다
무표정한 교도관이 밖에서
커다란 자물쇠 채우고 간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를 잡고 울부짖는 것 같다.
머리맡에는 화장실이 있고,
담요 두 장과 밖에서 조절되는 자유 텔레비전 한 대, 플라스틱 밥그릇 하나, 수저 한 세트
이것들과 함께 나도 채널이 고정된 텔레비전처럼 사각 마룻바닥에 앉는다.
슬픈 정물화.
기숙학교
감옥은 들어오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새사람 되어 사회로 돌아가기 위해 존재한다.
감옥,
잘 보면 기숙학교다.
기필코 잘 견디고 당당히 나가리라.
감옥 오던 날
환하게 열린 세상,
감옥은 나와 상관없는 곳이라 생각도 못 했다.
감옥에 들어서는 순간
눈을 뜨고 있어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벽에 붙은 어느 사찰 달력에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요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며
결코 남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적혀 있다.
어쩌다 내 연이 감옥까지 닿게 된 것일까?
하늘에서 어머니가 이 사실 모르시면 좋으련만
미처 깨닫지 못하고 놓친 함정의 덫이 나를 덮쳤다.
무엇이 함정이며 덫은 무엇인가
이 화두가
벽처럼 내 앞을 가로막는다.
수의(囚衣)를 입고
내가 교도소에 온 까닭을 생각한다.
필연처럼
내 가슴에 단 이곳 출입증
일생에 단 한 번 허용되는 엄숙한 명령서,
얻어 입은 옷처럼 마음 불편한 수의가
흑백 영화처럼 내 삶을 되감는다.
소중한 가족이 중심인물로 등장하고,
그 주인공인 내 전모가 천천히 재생된다.
바쁘게 정신없이 달리느라
잊고 산 참 자유(自由)의 정체성 깨닫는다.
단 한 번, 신이 내게 허락한 십자가라면 기꺼이 짊어지리라.
장마
철창 너머로 지루한 장맛비
오늘도 쉬지 않고 내린다.
빗소리 얼마나 촘촘한지 두어 평
감옥 방을 겹겹으로 채운다.
자고 나도 감옥,
또 빗소리 위에 누워 있다.
지나온 내 삶이 비에 젖어 무겁게 되감긴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꾸역꾸역 밀려 나온다.
추적추적 기억들이 장맛비에 흠뻑 젖는다.
고마운 교도관 1
아침에 출근하면
안녕하십니까? 인사하고,
퇴근하면서는
수고하셨습니다. 인사한다.
며칠 전부터 소화불량을 앓다 출정 갈 때는
재판 잘 받아서 가정으로 돌아가세요. 하고,
재판 끝나 수갑 차고 포승줄에 묶여 구치소 마당에 서면
뒷사람은 앞사람의 포승줄을 풀어 준다.
부처님 같은 목소리 뭉클한 동지애와 함께 작은 평화가 임한다.
검찰 조사 받을 때는
밤늦게까지 문 입구에서 기다리다
고생 많았습니다. 하면서 사탕 하나 내밀어
울컥 눈물 솟게 한다.
고마운 교도관 2
세상의 명예와 부와 지위는 몰수되고
감옥에 들어오는 순간 죄와 벌만 남는다.
감방에서는 군의원보다 시의원보다 정리원(整理員)인 감방장이 최고요
그다음이 배식 반장이다.
화장실 가는 것도 서열 있고
밥상 위에서도 차별이 있다.
밖에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교도관
여기서는 하늘같이 보인다.
재판이 있는 날이면
재판 잘 받고 오십시오,
아파 누워 있는 날이면
약 타다 드릴까요?
친절한 교도관 윤 부장님이 진급하셨다니 내 일처럼 기쁘다.
감옥의 정류장
구속 312일째 대구구치소에서 아침 점호를 마치고
내게 화원 이감이라고 알렸다.
감옥도 사람 사는 곳,
미결일 때는 죽일 놈 살릴 놈 하다가도
형이 확정되어 방을 떠나게 되면
치약, 비누, 사탕 봉지에다 감기약까지 챙겨 준다.
빈 메리야스 상자에는 공소장, 판결문, 항소이유서, 편지, 우표
각종 상비약과 비밀스럽게 구입한 때 묻은 마스크도 들어 있다.
영치품과 시퍼런 개인 보관 물품 자루에서
쏟아지는 구속될 때 입었던 양복, 구두, 수첩…….
정든 나의 물건들이 실종자의 유품 같다.
미결일 때 노상 하는 보석(保釋) 이야기가
물류 창고 같은 이감 대기 방에서는 날리는쪵 이야기
소각점수나 가출옥으로 화제가 바뀌다
형이 확정되면 택배처럼 경주로 마산으로 통영으로 배송되어 떠나간다.
감옥 보따리 둘러메고 이감 대기 정류장을 떠나는 내 마음 천 리 길, 아득하다.
※쪵날리는 : 이감을 뜻함
봄
봄은 만화방창(萬化方暢)인데
나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구나
검붉게 타는 맘, 자꾸 밖을 향하고
몸은 캄캄한 땅속 같은 감옥인데
봄은 소풍 나온 유치원생, 참 야단이구나.
보석(保釋)
탈진할 정도로 기다리고도
여전히 보석(保釋)만 기다리는 그에게
드디어 교도관이 보석이라고, 준비하라고 한다.
모두들 박수를 치는데
그만이 어리둥절하여
혹시 꿈 아닙니까? 정말입니까?
눈물 그렁그렁 거듭 묻는다.
나도 박수 치며
마음 손 주머니 속으로 넣는다.
감옥에서 보석(保釋)은 다이아몬드보다 값지다.
내게 보석(保釋)은 아득한 이야기지만
이 암울한 시간을 보석(寶石)으로 세공할 수는 있으리라.
보석을 움켜쥐듯 주먹을 꼬옥 말아 쥔다.
감옥의 하루
새벽 여섯 시,
짐승처럼 털고 일어나 나란히 두 줄로 앉아 점호 기다린다.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인다.
고슴도치 머리, 까까머리, 제비초리, 가마가 둘인 머리도 있다.
또 하루가 또박또박 기어간다.
아침 설거지 마치고
마룻바닥에 앉아 있는 하루 일과
잠시 한눈파는 사이 아침 햇살이 미끄러져 들어와 앉는다.
나는 잽싸게 몸 내밀어 수면제 같은 햇살에 푹 빠진다.
찰나의 평화가 서럽다.
접견 가다 취사장 앞 운반을 기다리는 배식 행렬 본다.
이마가 빛나는 소지쪵는 밥통 내려놓고
아픈지 허리에 손대고 몸 뒤로 젖힌다.
고단한 새벽 밟고 가만가만 밥 짓던 어머니의 큰 이마가
내 생각의 문 벌컥 연다.
머리맡에 가지런히 접어 둔 죄수복 위로
빽빽하게 어둠이 몰려온다.
밤은 죄명을 묻지 않는다.
사형수도, 강도도, 사기꾼도
공평하게 덮어 준다.
착한 숨소리만 가득한 감옥의 밤
어둠의 이불 속으로 거룩한 평화 임한다.
※쪵소지 : 봉사를 하는 수용자를 뜻함.
접견 대기실 풍경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사람
볼펜을 딱딱거리는 사람
눈 지그시 감고 생각에 침잠한 사람
연방 직각으로 허리 굽혀 형님을 연발하는 사람
분에 못 이겨 가슴을 치는 사람
낙서로 변호사를 원망하는 사람
오늘의 접견을 시작한다는 안내 방송에
모든 사람들의 눈은 전광판의 숫자를 향하여 귀를 세운다.
접견 대기실
호명되는 숫자에는 짧은 반가움과 굵은 슬픔 매달린다.
쥐
죄수들이 작업장에 쳐 놓은 덫에
쥐 한 마리 걸렸다.
쥐를 잡아 쥔 무기수가
요놈을 절도 미수로 무기형을 때릴까, 징역 십 년에 처할까
즐거워한다.
추석
추석날 감옥은 깊은 산중이다
높은 봉우리 첩첩이 앉은 산등성 벌초한 무덤처럼
회한의 멍울, 침묵이 자리를 편다.
특식으로 나온 쌀밥 한 그릇 북쪽에 놓고
인근 사찰에서 보낸 떡 한 점, 우유 하나, 사과 한 개로 차례 상 차려 놓고
큰절 올린다.
참회와 통한이
가파른 고개를 넘어
음복하는 우유, 구름처럼 목에 걸린다.
즐거운 연휴
바깥 세상에서는 즐거운 연휴가
감옥에서는 지옥의 터널이다.
면회도 없고, 운동도 못 한다.
머리통만 한 배식구로 종일 빨래 뭉치가 꾸역꾸역 나온다.
탈 많은 죄수라 소지는 종일 탈수를 해도 탈수증 한 번 걸리지 않는다.
따가운 가을볕에 죄 없는 빨래는 잘도 말랐다.
차가운 마룻바닥에 앉아 빨래를 갠다.
러닝, 팬티, 양말…….
여기서 배운 BYC식 기술로
볕 좋은 가을 오후를 돌돌 만다.
말리는 가을을 멍하니 바라본다.
라면
감옥에 온 지 여섯 달 만에
처음 만나는 라면의 그리운 맛.
국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콧물 눈물 땀까지 보태서 핥아 먹었다.
죄도 없이 감옥에 들어와
맛있는 밖을 맛보여 준,
라면아 고맙다.
낱말 공부
신정 연휴 끝나고 이발하는 날
이발 담당 장기수 보이지 않는다.
궁금해서 물으니
재리가 안 보인다고 한다.
말랑말랑 달콤한 젤리? 멀뚱한 내게
꽈배기쪵
재리는 재소자 이발,
직리는 직원 이발이라고 알려 준다.
감옥에 갇혀 밖에서 모르던 말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게 와 쓸쓸히 웃네.
※쪵꽈배기 : 누범자를 뜻한다.
목욕하는 날
서너 평 공간에서 낡은 샤워기로
10여 분 동안 다투듯 목욕한다.
수증기 속 엉덩이 부딪히며 팔팔하게 살아나는 목소리들.
물은 죄를 미워하지 않고
죄명도 묻지 않고
차별 없이 엄마의 손길로 때를 씻긴다.
사형수 강도 사기꾼…….
물의 세례를 받는 이 순간만큼은 천진한 아이가 된다.
대신 더러워진 물만이 불평 없이 저 바다를 향하여
정화의 고행 길 떠난다.
물은 알고 있다.
몸의 때는 물로 씻을 수 있지만
마음의 죄는 통회의 눈물로도 다 씻기 어렵다는 걸.
물처럼 착하게 젖는 수요일
마음까지 씻을 듯 머리 위로 쏟아 붓는 물 한 바가지
축복처럼 작은 행복이 나를 적신다.
설날
설 전날 밤,
자유 텔레비전으로 영화 한 편 방영된다.
여덟 시 반 영화가 끝나자 사정없이 텔레비전도 꺼진다.
씨발, 영화도 엿 같은 거 보여 주면서 시간은 왜 30분씩이나 잘라묵노
여기저기서 소릴 질러 댄다.
구석에 모깃소리만 하게 '인권 유린이야' 소리도 들린다.
다시 캄캄한 밤
새벽 두 시가 지나도 잠 오지 않는다.
아내와 딸 생각 명화처럼 자꾸 반복해 본다.
밖에는 겨울바람이 설날이라고 쇠창살 흔들어 댄다.
설날이 와도 감옥에서는 구속된 자유, 잠 오지 않는다.
감옥을 탓하지 마라
따져 보면 감옥도 고마운 점 있다.
일하지 않아도 하루 세끼 꼬박꼬박 나오니 먹고사는 걱정 없고,
법무부에서 24시간 철통 경호 해 주니 생명에 위협 느끼지 않고,
살인, 강도, 절도범도 한식구니 이 얼마나 대단한 화합인가.
어디를 오갈 때는 국가공무원이 항상 근접 수행해 주고,
외출이 있을 때면 법무부 자동차가 항상 대기하고,
혹시 분실이라도 될까 봐 수십 명 교도관이 한발 움직일 때마다 내 머리를 확인해 준다.
배식구로 들어온 음식 되돌려 보낼 때도 유식하게 기각이라고 법률 용어를 생활화하고,
법원에 업무상 용무를 보러 갈 때면 최소한 판검사만 회동한다.
재미있는 텔레비전 프로는 잊지 않고 녹화해 두었다가 주말에 집중적으로 서비스하기에 이순신도 보고 전두환도 보고 삼순이도 본다.
사랑하는 가족들은 나의 소재가 확실하므로 차 사고를 비롯한 소소한 안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독서와 사색, 운동으로 심신을 단련하고, 시도 써 보고 은혜롭게 가슴 뭉클한 편지도 주고받는다.
감옥은 죄가 없다.
감옥의 군상들
술 한잔에 객기 부리며 주먹 휘두르다 들어온 사람,
사업하며 사돈의 팔촌 돈까지 다 말아먹고 빈털터리로 온 사람,
절도로 인생 새치기하려다 들어온 사람,
강도로 한탕 하려다 온 사람,
강간범, 도박꾼, 마약 사범, 교통 사범,
부도로 한몫 챙겨 두고 온 사람,
담장 밑에 비닐봉지 덮어쓰고 본드 흡입하다 빨려들어 온 권태로운 인생,
싸움 구경하다 집행유예 외상값 들통 나 곱빼기 치는 오지게 재수 없는 인생,
불 지르는 데 영문도 모르고 휘발유 한 통 심부름하다 붙잡혀 온 등신 같은 인생,
선량한 가장으로 성실히 살다가 가족 생계 어려워 탈세 한 번 하려다 족쇄부터 찬 억울한 인생,
회사 회장 폼 한번 잡다가 사연도 모른 채 휩쓸려 온 분통 터지고 억장 무너지는 나 같은 희생양도 있다.
참 좁은 감옥에 가지각색, 구구절절,
밖에서 살피지 못한 세상 그늘의 천태만상 다 있다.
항소심 선고 받으러 가는 날
감옥에 내동댕이쳐진 지 683일째
빼앗긴 나의 자유를 찾으러 간다.
꿈에도 그리던 자유를 만나면
푸른 동해 바다 너를 끌어안고 한없이 울고 싶다
감옥의 절은 때 파도에 씻어 지구 끝으로 밀어내리라.
그 리 고 나 서 는
비 내리는 영해시장 포장마차 연탄불에
도루메기 구워서 맑은 소주에 내 인생 헹구리라
이젠 출정도 심리도 항소이유서도 태워 버리자
오늘은 자유(自由), 너 하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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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찬의 시 세계|
고뇌를 별빛으로 가꾼 그 당당함
정라곤 (시인)
1. 슬픈 이력(履歷) 너머로 햇살을 이고
고향인 영덕에서 초대 군의원을 지낸 손경찬 전 도의원으로부터 자신의 시에 대해 해설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뜻하지 않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손 전 의원의 팔십여 편이나 되는 시를 읽고, 깊은 회한과 함께 그의 집념과 시적 능력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리고 궁금했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시의 해설을 왜 내게 부탁한 것일까? 누구보다 고향을 아끼고 사랑하는 손 의원이 내가 동향인이라는 점이 첫째 이유였을 것이고, 두 번째는 내가 신춘문예 출신 시인으로서 시집도 발간하였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음이다. 이러한 이유로 자신의 시 세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능력이 부족하나마 그의 시를 가능한 한 자세하고 객관적으로 해설하기로 마음먹었다.
손경찬의 시를 찬찬히 살펴보면 휑하니 뚫려 있는 것 같은데 그 뚫림 속에서 꽉 찬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시적 형성의 깊이에서 나오는 구멍에서일 테지만 시작 과정상의 진지성과 내면적인 성장이 보여 주는 가득 참이 있다. 손경찬의 시는 시적 완성도나 치밀성이 부족하긴 하나 그의 시 세계에 얼비치는 인간 손경찬의 내면에는 마치 바위틈을 헤집고 꽃을 피워내려는 정진 자세와 강력한 삶의 의지가 담겨져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과 잔잔한 감동을 준다.
단숨에 다 읽게 하는 손경찬 시의 마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아픔의 상흔을 딛고 일어서려는 강인한 집념과 그 집념이 끊임없는 고향 사랑과 어머니를 향한 사무친 그리움에서 배태(胚胎)되어 그에 보은하려는 손경찬의 간절한 소망이 시에 녹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손경찬의 시에서는 어머니와 고향이 자주 등장하고, 고향과 어머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손경찬에게 있어서 어머니와 고향은 그의 삶 자체를 지탱시켜주는 원동력이자 든든한 버팀목으로 그의 내면 깊숙이에 자리 잡고 있다. 손경찬의 삶은 아버지의 그늘을 모른 채 어머니 그늘에서 살았으나 그 어머니마저 일찍 돌아가셨기에 그를 끝까지 지켜 준 것은 고향의 그늘이다. 그런 까닭에 손경찬의 고향 사랑은 유별나다. 그를 지켜 준 고향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손경찬은 그 특유의 끈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고향을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위한다. 손경찬에게 고향은 그만큼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손경찬을 일컬어 '유별난 사람'이라고 한다. 먼저 그의 시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가 살아온 인생 내력이 잘 나타나고 있는 「나의 일대기(一代記)」라는 시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고래불 백사장을 뒤덮는 파도,
송천강 물줄기,
대진 앞바다 안고 앉은 상대산이
내 희망이며, 법정 대리인이었다.
저당 잡히지 않는 재산과 희망이
내 힘이었다.
어떤 어려움과도 맞짱 뜰 용기와 의지가 되었다.
산을 닮으려는 노력으로 삼십 대에 군의원이 됐다.
끊임없는 의지와 용기로 세상에 사랑을 펼치려 노력했다.
글래디스 태풍 때 인명을 구한 당연한 일로 훈장도 받았다.
더 많은 봉사를 하라는 도민의 뜻에 따라 도의원도 되었다.
―「나의 일대기(一代記)」 부분
위의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손경찬은 한 많고, 눈물 많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혼자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 했기 때문에 더 당차고 뜨거운 열정으로 살아온 것이라 믿어진다. 또 그는 군의원으로서 소신 있는 포효(咆哮)의 의정 활동을 펼쳐 고향 발전의 늠름한 본보기를 보였다. 특히 그가 도의원으로 일할 때 집행부 공무원들에게 그는 '눈의 가시 같은 의원'이었다는 일화를 나도 들어서 잘 알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손경찬이 도의원으로서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였다는 증명이 되는 셈이다.
또한 '글래디스 태풍 때 인명을 구한 당연한 일로 훈장도 받았다.'라고 시에 나타나고 있듯이 그가 정부로부터 국민훈장을 받을 당시에 마침 필자가 내무부에 근무하고 있던 때인지라 그가 세운 공적과 수상에 얽힌 아름다운 사연들을 잘 알고 있다. 계속하여 손경찬의 시 「나의 일대기(一代記)」 중 다음 부분을 보자.
나의 어린 시절은
영해시장 바닥에 패대기쳐진 고등어였다
몸부림칠수록 깊어지는 상처와 갈증
내 자유로운 바다는 소금에 절여져 비릿하게 말라 갔다.
(…)
등불처럼 나를 밝혀 줄 돈도 없었고,
탁 트인 대로가 되어 줄 배움도 부족했고
희망의 바퀴가 되어 줄 배경도 없었다.
상속 받은 외로움과 가난과 슬픔이 내 재산의 전부였다.
이렇게 부족하기만 한 환경을 극복하고 손경찬은 매사에 열정적으로 사회생활과 도의원 직분에 충실하게 일했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2003년 말에 형사 사건에 휘말리면서 난생처음 감옥이라는 곳을 경험하게 된다. 그 당시 참담함을 장차 새 삶의 밑거름으로 반전(反轉)하려는 결의를 위의 시 마지막에 엿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나를 두고 밖으로 잠긴 철문은
넘치는 것 경계하지 못한 부끄러움입니다.
차가운 감옥에서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세월 되돌아봅니다.
놓친 풍경들이 천천히 다가와
참회와 새로운 내 인생의 밑그림 됩니다.
다시 대진 앞바다에 서는 새벽,
사랑하는 가족의 손 잡고 맑게 씻긴 가슴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맞겠습니다.
손경찬의 이런 결의는 3년여 감옥 생활을 하면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통해 피워낸, 이 한 권의 시집을 보면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는 어느 시인의 시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손경찬은 한이 많은 사람이다. 그의 시에 나오는 '돌도 되기 전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열한 살 어린 내 손을 잡은 채 / 엄마는 싸늘한 화석이 되었다' 구절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부모님을 일찍 여읜 혈연적 고립에서 오는 외로움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어린 시절을 외톨이로 자라 세상 물정을 일찍 알아 버린 소년 가장으로서 먹고살기에도 빠듯하여 암울했으리라. 그는 이런 암울한 유년 시절의 한이 있을 것임에도 시에서는 한보다는 오히려 삶에 대한 자신만만한 용기와 희망의 결의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아픔을 겪은 자가 누리는 여유, 아픔 밖에서 아픔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아닌가 한다. '상처 입은 맘으로 앉아 물끄러미 바라본 탁자, / 생채기가 원목의 결 더 아름답게 하네.'(「나의 습작 시」)를 보면 그의 여유로움을 잘 알 수 있다.
어린 시절을 외톨이로 자란 손경찬은 알게 모르게 눈칫밥을 먹고 구박을 많이 받아 본 탓으로 그의 내심은 더욱 밤톨처럼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손경찬은 이렇게 불행한 현실을 오히려 '저당 잡히지 않는 재산과 희망이 / 내 힘이었다. / 어떤 어려움과도 맞짱 뜰 용기와 의지가 되었다.'(「나의 일대기(一代記)」)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아무리 손경찬이 어린 시절 환경적 원인에 의한 외로움과 힘듦을 견디는 과정에서 알이 꽉 찬 밤톨처럼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부모님과 가족 이야기만 나오면 마음이 한없이 약해진다는 것을 다음 시가 말해 준다.
힘들수록 더 단단하게 모서리 깎고 또 깎아
몽돌을 빚는 바닷물같이,
떳떳하고 당당하다가도
누군가 부모님 이야기 꺼내면 눈물 흐르고
밀물처럼 물러서는 마음 약한 소년이 된다.
―「부끄럽지만 나는야」 부분
손경찬이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시 가운데 가장 압권(壓卷)이고 대표적인 시라 할 수 있는 「부모」는 그의 어린 시절 감내하기 힘들었던 마음과 외로움의 실상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숙연하게 하면서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이다.
힘겹고 외로워서
상대산 언덕에 올라
목 놓아 울던 시절이 내게 있었습니다.
어미 찾아 바다로 가는
송천 강물 보면서
허기져 찬물만 마시던 시절 있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그립고
열한 살 내 손을 잡은 채 돌아가신 엄마가 미워서
냇물이든 강물이든 자식처럼 덥석 껴안는 바다가 그리워
함께 울어 주는 송천 강물 마주하고
버릇처럼 울던 시절이 내게 있었습니다.
―「부모」 전문
위의 시에서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더욱 큼에도 '아버지가 그립고'라고 하고, 영해시장에서 생선 장수를 하며 정을 주던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엄마가 미워서'라고 한 것은 어머니에 대한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어법(反語法)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손경찬의 어린 시절을 고향의 상징인 상대산이나 송천 강물과 클로즈업시켜 한과 그리움과 사랑이 조화를 이루며 감동을 준다. 손경찬이 부모를 그리는 심정과 애환 서린 삶의 터전이 된 고향에서의 아련한 추억은 생선 비린내처럼 진하게 남아 있다. 어머니 살아생전에 어머니날이 와도 가슴에 꽃 한 번 달아 드리지 못하였고, 효도 한 번 할 기회조차 없었던 손경찬은 스스로 '못난이'라 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결코 못난이가 아니라는 것과 그가 부모님이 살아 계셨더라면 얼마나 효도를 했을지는 시의 여러 곳에서 짐작할 수 있다. 부모에 대한 아쉬움이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영해시장 어물전은 생선 장사를 했던 홀어머니와 손경찬이 함께한 추억과 그로 인한 애환과 그리움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향수의 원천으로서 그에게 자리 잡고 있다.
손경찬의 시에서 어머니는 곧 그리움이자 아쉬움이다. 그는 수용 생활을 하면서도 음력 칠월 초사흘, 어머니의 기일(忌日)을 잊지 않는다. '자정에 홀로 깨어 북쪽 향해 무릎 꿇고 / 찬물에 넣어 둔 우유 한 통, 사과 한 개 / 홍동백서(紅東白西) 앞에 놓고'(「어머니 제사」) 감옥에서 제사를 올리는 손경찬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강물로 넘쳐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은 피붙이가 없어 외롭고 힘든 시절 뒤늦게 찾게 된 형님에 대한 혈육의 정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 「축산항 형님」을 보면 알 수 있다.
독일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호프만은 '시 속에서 모든 것이 맑은 화음을 이루며 자연 깊숙이 숨겨져 있던 신비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하였다. 이것은 '영감(靈感)'이 바로 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손경찬이 시에 대하여 잘 아는 바가 없다지만 옥중의 3년여 동안 풍부한 독서와 습작에 집중 노력했다. 이에 비통한 현실과 유년 시절의 갖가지 체험들과 아련한 추억이 무시로 건져 올리는 상념이 어우러져 형성된 영감이 시로 이어진 것이라 본다. 물론 이렇게 영감으로 빚은 시가 다 '좋은 시'라고는 할 수 없다. 시를 문화 현상의 하나라고 이해할 때에 응당 예술성을 지녀야 하고 시인들이 시를 빚어내는 방법과 기교를 포함하는 예술 과정을 통하여 시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좋은 시'를 써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손경찬에게 있어서는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손경찬의 시는 어두운 과거를 헤집고 나섰던 열정의 지난 세월과 함께 현재 자신에게 몰아닥친 매서운 겨울 같은 뼈아픈 고통을 견디고 승화시키는 길이다. 그는 시를 쓰면서 삶의 새봄을 기다렸던 것이다.
나는 지금
해묵은 얼룩의 땅에
지나온 날의 퇴비를 뿌리는 중.
아직은 뼈 시린 겨울
얼음장 밑으로
내 사랑의 봄은 밀서처럼 은밀히 전해지는 중.
눈보라 속에서도
희망은 꽃눈처럼 부풀고
다시 오는 봄에 마구 터질 꽃 향기 예매 중.
나는 지금,
봄의 암호 해독대로
토실하게 뿌리 살찌우며 점프를 준비하는 중.
―「새봄이 오면」 전문
위의 시에서 손경찬이 기다리는 삶의 새봄을 예감할 수 있듯이 그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꽃을 활짝 피울 것이다.
2. 영혼의 영원한 자유는 사랑
어린 시절, 외로운 삶을 살아온 손경찬이기에 가족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손경찬의 시 여러 곳에서 아내와 무남독녀인 딸아이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이 질펀히 묻어나고 있다. 오죽했으면 그가 '세상의 죄로 감옥을 산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오로지 가족에게 지은 죄로 감옥살이한다.' 말했을까.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자신이 도의원으로서, 훌륭한 사회인으로서 인정받기까지 곁에서 내조해 준 아내에 대한 마음을 「아내」라는 시에 내보이고 있다.
당신은 내게 늘 한결같은 햇살입니다.
지금 먹구름이 우리 사이를 가르고 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당신의 따사로움에는 구름도 바람도 항복이지요.
당신은 내게 한결같은 고향 바다입니다.
끝없이 푸른 물결로
부서지는 파도로
밀물과 썰물로
하루도 빠짐없이 내 맘을 씻깁니다.
당신은 내게 든든한 방파제
거센 풍랑으로 다가오는 고난에서 나를 지켜 주고,
흔들림 없이 우뚝한 빛으로 인도하는 등대입니다.
당신은 이 땅에 내려온 나의 별입니다.
나의 태양입니다.
당신의 밝음이 나를 길 잃지 않게 합니다.
―「아내」 전문
언제나 손경찬의 마음 깊숙이에 자리 잡고서 어둠을 쫓아 주는 해가 되고, 거센 풍랑을 막아 주는 방파제가 되기 위하여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아내가 어찌 곱지 않으랴. 손경찬은 '감옥이 가르쳐 주었다. /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지.'(「감옥이 가르쳐 주었다」)라는 시에서 감옥이 아내의 더없이 소중함을 깨닫게 했다고 고마워하고 있다. 그러나 감옥은 그에게 생의 한겨울, 차가운 허허벌판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 속에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기어이 인생의 봄날을 맞이하기 위해 마음 밭을 갈겠다는 의지를 곧추세우는 것도 아내의 사랑이 있어서라고 넌지시 드러낸다.
막무가내로 겨울바람이
꿈의 나뭇가지를 흔들어 댑니다.
왕소금 눈발까지 뿌려 가며
사정없이 한쪽으로 몰아붙입니다.
뿌리인 당신의 사랑이 나를 바로 서게 합니다.
허리가 꺾일 뻔한 고비마다
가지 끝자락까지 뜨거운 피 돌게 하고
이 모진 겨울 끝에 찬란한 봄이 온다고
버팀목처럼 나를 바로 세웁니다.
잠긴 문도 겁 없이 흔들며 발길질해 대는
겨울바람 속에서도
나 온전히 나무로 서 있게 하는 건
보이지 않는 내 몸이 된 당신의 힘입니다.
―「겨울 나무」 전문
이처럼 손경찬은 날마다 면회를 오는 아내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용기를 주기 위해 언제나 당당한 모습으로 접견을 하고 돌아서면 아내를 걱정한다. 이러한 부부간의 진정하고 따뜻한 사랑이 가슴 뭉클하게 한다. 손경찬의 시에서 반전(反轉)의 밝고 따뜻함은 아내의 힘이라 짐작된다. 해마다 가장 추울 때 생일을 맞는 아내가 마음 아파할까 봐 생일날에 고개를 들어 하늘도 보고 강물도 보라며 사부곡(思婦曲) 「아내에게」까지 띄운다. 그것은 그 하늘과 강물에 손경찬이 기다리는 봄이 있기 때문이다.
또, 손경찬이 30대 후반에 결혼하여 낳은 무남독녀인 딸아이를 끔찍이 사랑하고 아끼는 속내를 시의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 딸은 '작은 우주'이며 '우주의 본체'이다. 이러한 까닭은 딸이 재롱을 부리고 아빠의 따뜻한 사랑과 자상한 보살핌을 필요한 때에 함께 있지 못했던 아픔과 미안함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손경찬의 마음은 「어린이날에」, 「가족」이라는 시에 잘 나타나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사랑하는 아빠의 마음은 「장미꽃 한 송이」 「동짓날」에도 진하게 배어 있다. 장미꽃처럼 밝고 화사하게 자라 온 아이에게 정말 고마워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감옥에서 딸을 그리워하면서 쓴 시라는 점에서 더 절절하다. 이러한 아빠의 딸 또한 아빠에게 커다란 기쁨과 행복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행복한 날」이라는 시에서 알 수 있다. 감옥에서 손경찬이 '꽃구름 되어 푸른 하늘을 날으'는 행복을 느낀다는 구절에서 그의 마음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랑해 아빠'로 시작되는 딸애의 편지
'오늘 『곰보빵』이란 책을 읽었는데
어려운 일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시련이
감동적으로 그려진 그 책을 보며
이제까지 불평만 한 나를 돌아보게 되었어…'
딸아이는 힘내라며
엄마보다 아빠를 아주 쬐금 더 사랑한다며
'나 이쁘지?'로 끝맺었네.
오, 행복한 날,
음지의 가을꽃 같던 맘 사라지고
꽃구름 되어 푸른 하늘을 날으네.
―「행복한 날」 전문
흔히 주위에서 아내와 자식을 칭찬하거나 자랑하면 '불출'이라고 하지만 손경찬의 경우는 다르다. '감옥'이라는 닫힌 공간과 함께 단절된 시간의 흐름을 통하여 아내와 딸아이에게 '가족'이라는 동일체적 혈연의 정과 소중함을 뼛속 깊이 아로새기는 다짐에 다름 아니다. 「홀로 걸어가지 않으리」라는 시에서 그가 앞으로 가족과의 삶의 동반자로서 운명적인 행복 만들기를 하겠다는 결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 하겠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 손을 잡고 걸으리 / 민들레 웃음도 보고, 벚꽃 구경도 하며…….'라는 구절은 손경찬의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행복한 생활 설계의 결연함이 드러난다.
시는 생활 그 자체이지 결코 관념이거나 이상의 산물이 아니다.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진하게 우러나는 아픔이고, 그 아픔을 함께 느끼자는 공감 형성의 노래임을 볼 때 손경찬의 시는 정당성을 갖는다. 그가 체험하고 느낀 생활시가 주류를 이루는 것은 그가 일찍이 부모를 여의면서 전개되었던 파란만장한 인생 체험 자체가 무엇보다 시적(詩的)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시인 릴케도 '시는 감정이 아니라 체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기에 손경찬의 그동안의 삶의 체험이 진실한 울림이 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에 쉽게 와 닿고 끝내는 진한 감동에 젖어들게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시는 시로서의 격식과 시혼이 깃든 시다움을 지녀야 한다는 입장에서 볼 때에 손경찬의 시에 있어서 시적 함축성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딸은 열두 살 어린이,
성격까지 나를 닮아 정직하고, 다혈질이지만
인정 많고 영민하다.
감옥에 온 지 2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딸 생각하며 편지를 쓴다.
―「어린이날에」 부분
딸아,
내 삶을 두들겨
널, 저 인류의 번영 위에 반듯한 그릇으로 올려놓으리라.
―「딸에게 2」 부분
위에서 보듯이 단순한 이미지의 나열이나 염원을 서술하고 있는 것은 시어의 선택과 함축적인 기교가 다소 뒤떨어지는 작품이다. 이러한 결점은 오히려 흠이 없는 시를 만들어 가는 전문적인 시적 과정으로 보여 정겹기도 하다.
3. 날마다 건져 올리는 물미역 같은 추억들
짐승은 모르나니 고향이나마
사람은 못 잊는 것 고향입니다.
생시에는 생각도 아니 하던 것
잠들면 어느덧 고향입니다.
조상님 뼈가 묻힌 곳이라
송아지 동무들과 놀던 곳이라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지마는
아 아 꿈에서는 항상 고향입니다.
―김소월의 「고향」 부분
위에 인용한 시도 그렇지만 '고향을 생각하니 애간장이 녹는구나' 하고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이 '고향'은 누구에게나 엄마 품처럼 따뜻하고 아늑한 그리움의 대상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못 잊어 하고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특히 고향을 떠나온 사람에게는 어린 시절의 애틋한 추억이 담겨져 있는 고향을 일컬어 '뼛속까지 사무치도록 그립고 꿈속에서도 가 보고 싶은 곳'이라 하지 않는가. 손경찬에게 고향 영덕도 그의 삶의 원동력이 되어 무한량의 크기로 가슴속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그의 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손경찬에게 있어서 고향은 지나온 길이었고, 또 앞으로 필연적으로 가야 할 길인 동시에 절대적인 전설로 존재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마음은 언제나 고향과 함께한다. 그에게 고향은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에도 가족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다. 고향은 희망을 향해 다가서게 하는 기대감을 주며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손경찬은 지방 자치가 처음으로 실시되던 해에 군의원에 당선되어 여러 가지 활기찬 의정 활동을 하면서 고향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의 다음 시는 그가 영덕을 영원한 삶의 터전으로 마음에 담고 지역 발전을 기원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내 고향 영덕은 자랑거리 참 많다.
백 리 길 넘는 천혜의 청정 해안
먹을거리 대게
놀 거리 월월이청청
볼거리 해맞이공원, 옥계계곡
사월이면 복사꽃도 수두룩하다.
지금은 온 나라가 5․31 지방 선거 북새통
영남은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따 놓은 당상(堂上)이라고
오직 한나라당 공천 받기에 목숨 건다나.
내 고향 영덕군민들은
한나라당 자손도 아니요
열린우리당 핏줄도 아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정당이 아니라
영덕 발전에 힘쓸 참 일꾼, 능력 있는 심부름꾼.
명사 20리 고래불해수욕장 바라보며 우뚝 선 등대처럼
정의와 봉사 정신으로 낮은 곳에서 일할 책임감으로
당당하게 빛나는 후보가 보석처럼 나와야 한다.
역사 속에 빛이 되는 영덕을 위해
군민들과 하나 되는 참다운 일꾼을 선택하는 것은
영덕 사람들의 신성한 의무.
영덕은 꿈꾼다.
다 같이 잘살고 그래서 더욱 아름답기를.
영덕은 한나라당도 열린우리당도 자유선진당도 아니다.
영덕은 영덕만으로 자랑이다.
―「내 고향 영덕」 전문
위의 시는 자나 깨나 고향 발전을 바라는 고향 사랑의 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자신이 고향을 위해 열심히 일해 왔고, 앞으로도 고향을 위해 일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 혹은 맹세의 절규가 시의 여러 곳에서 읽힌다. 그의 시가 보여 주는 영덕과 고향 사람들은 그의 깊은 신앙처럼 우러나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고향 사랑하는 마음을 불현듯 일깨운다. 손경찬이 고향을 소재로 한 시 속에서 그리움으로 피는 것은 '고향 그 자체'와 '친구와 고향 사람들'로 구분된다. 그에게 고향 그 자체인 고래불해수욕장, 송천다리, 상대산, 칠보산, 축산항 방파제 포장마차, 축산 어시장 등이 물미역 같은 추억을 건져 올리게 해 준다. 그런가 하면 친구와 고향 사람들은 따뜻한 마음의 위안으로 엮어지고 있다.
감옥 마룻바닥에 앉아
책 읽고 신문을 봐도
마음은 늦은 오후 환하게 열고 오는 편지 기다린다.
오늘은 효탁 선배가 보낸 편지에서
왁자하게 풀어지는 고향 내,
마음의 먼지 씻긴 눈물 흐른다.
맑은 물 굽이치는 오십천
파도치는 고래불 백사장
갈매기 낮게 나는 축산항이 내게 손짓한다.
내일은 누가 또 고향 소식 보내올까
고향으로부터 오는 편지가
감옥에 풀어 놓는 싱싱한 냄새로
또 하루를 견딘다.
―「고향으로부터 오는 편지」 전문
고향 자체가 그의 마음의 안식처라면 고향의 친구나 사람들은 위로와 사랑으로 견딤의 힘이 되어 준다. 위의 시는 그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 문화의 발전으로 육필 편지가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세상사의 희로애락과 쓴 사람의 인정이 그대로 묻어 있는 편지는 그 교감에 있어서는 인터넷 메일이 따를 수 없다. 이것은 아늑한 그리움의 정이 가슴을 촉촉이 적셔 주는 손경찬의 편지를 노래한 시에서 증명된다.
친구의 편지는 꽃보다 아름답다
얼마 전에는 그립다
눈물겹더니만
오늘은 고향 얘기 칡넝쿨로 우거졌다.
초등학교 동창회 이야기 쏟아 놓으며
동심으로 돌아가 즐겁던 중에
내 소식에 기도 한 송이씩 모았다며
우정 꽃다발 아름 안긴다.
내년 동창회 때는
다 함께 만나 학교며 온 동네가 들썩이도록
한바탕 멋지게 신명내어 보잔다.
다음에 또 쓸게, 사랑한다.
꽃보다 향기로운 친구의 편지가 만국기 휘날리는 모교 같아
내 마음 가을 하늘이 된다.
―「친구의 편지」 전문
앞의 「고향으로부터 오는 편지」나 「친구의 편지」는 그가 받는 편지의 반가움을 기쁘게 표현하고 있다. 손경찬은 힘든 3년여 동안의 감옥 생활을 하면서 많은 독서와 함께 시작(詩作)과 편지를 쓰면서 의미 있는 시간으로 가꾸었다. 서신 기록에 의하면 그가 가족이나 고향 사람들, 친구 혹은 지인들에게 정성을 들여 쓴 편지가 무려 7천여 통이나 된다고 한다. 대단한 놀라움이다. 이것은 그가 그 짧은 시간에 이 많은 시를 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깨닫게 해 준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고향 산천이나 고마운 사람들을 오매불망 그리워했다. 손경찬이 감옥에서 소담스럽게 가꾸고 알뜰히 다듬은 그리움의 정성은 겨울을 헤치고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매화처럼 읽는 이로 하여금 그윽한 향기를 느끼게 한다. 사람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다고 했다. 손경찬의 다음 시는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감옥은 낭떠러지 그러나 새로운 도약의 장
또 다른 시작이란 걸 고향 사람들이 가르쳐 주었다.
가슴으로 적어 보낸 고향 편지와
사연 많은 영치금이
사랑의 증표로 가슴에 새겨지는 걸 알았다.
감옥에서 깨달았다.
어판장 생선 파는 아지매들의 인심,
고추 팔은 농민후계자의 정성,
생활보호비 받아 떼어 준 독거 할머니의 눈물 같은 돈,
사람이 보물이며 아픔을 치유하는 귀한 약초임을.
감옥에서 배웠다.
내가 꼬깃꼬깃 접은 사랑의 채무서
가슴 속주머니에 넣어 둔 빚쟁이라는 걸.
수백 리 길 달려와 풀어 놓고 간
고향 사람들의 많고도 큰 사랑 빚 탕감을 위해서도
이 감옥 빨리 벗어나 새롭게 더 빛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차가운 마룻바닥은 오늘도 나를 가르친다.
―「고향 사람들」 전문
위의 시는 손경찬이 인간적인 아름다운 향기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시는 목소리를 높여 외쳐 부르는 구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진실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삶의 기쁨과 슬픔이 생생히 묻어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손경찬의 시는 어린 시절의 비참하리만큼 힘든 생활과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적절히 토로(吐露)해 내면서 그것을 희망으로 반전시키려는 다부진 결의를 보여 준다. 그의 시는 고향과 이웃과 가족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함께 절망을 희망으로 피워올리는 노력의 흔적이 짙게 깔려 있다. 이것은 두보(杜甫)의 실제와 호흡과도 일치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당나라 시인 두보에게는 사랑하는 조국과 이웃, 가족이 있었다. 그의 삶이 고난의 연속이더라도 결코 좌절하거나 비관하지 않았고, 오히려 담담한 마음으로 생을 노래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리얼리티(reality)가 있다. 시에 한정하면 경력이나 작품 수에서는 차이가 많아 비교하는 것조차 어색하지만 사실성(reality)에 기초한다면 거리가 멀지 않다. 두보에게 조국과 사랑하는 처자식이 있었듯이 손경찬 그에게도 사랑하는 고향 영덕과 고향 사람들, 그리고 가족이 있다. 손경찬의 시가 감옥이라고 하는 닫힌 공간에서도 고향을 그리워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구구절절하고, 새로운 삶의 싹을 틔우려는 극복 의지로 볼 때 두보와 견줄 만하지 않은가.
4. 감옥, 사색하고 공부하는 학교다
감옥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유의 구속과 사회와의 단절이라고 하는 부정적 상징성 때문에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곳이다. 누구든 사회생활을 하다가 행동의 자유를 구속당하여 감옥 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당사자의 억울함과는 별개로 사회적 지위나 명예에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불문가지려니와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함께 경제적 손실을 가져다준다. 그러기에 감옥은 사람들로 하여금 일생 동안 두려운 기피의 공간으로 존재한다.
겹겹이 자물쇠를 달아 낮과 밤을 가두어 버렸다
계절의 바뀜을 모르니 등불만 바라볼 뿐
낮게 깔린 천장에 눌려 이 방은 뜨거운 손
나무 바닥 사이로 물이 가득하니 한증탕이랄밖에
서거나 앉거나 누워 봤자 이 바닥을 벗어날 수 없다
악취 풍기는 변통에 똥오줌이 가득 차 흐르고
비비적거리는 어깨 사이로 줄줄이 땀이 흐른다
죽어 버려진 몽퉁인 양 온몸에 기어오르는 개미야
구더기나 바퀴벌레와 함께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살덩이야
물어뜯는 모기 떼를 후려치는 손바닥에 피가 얼룩지고
살찐 쥐들이 갉아 댄 손가락은 상처투성이다
저녁 어스름에는 미쳐 가는 치들의 외마디 소리를 듣는데
새벽 무렵에는 사형수의 호곡 소리가 복도를 울려온다
바라건대 잠시라도 이마를 펼 수 있으려나
벽이건 사람이건 기댈 수만 있다면
―보양, 「수인(囚人)」 전문
위의 인용 시는 반체제 문인의 대표 격인 보양이 9년간 옥살이를 하면서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겨내지 못할 충동에 휩싸여 쓴 시다. 우리의 감옥 환경이나 현실과는 차이가 있지만 감옥 내의 처절한 상황과 그 안에 갇힌 재소자들의 불안한 심리 상태가 잘 묘사되어 있다. 손경찬이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용광로처럼 뜨겁게, 때로는 얼음처럼 차갑게 시로 토로하고 있는 그의 아픔, 절규의 편린들이 보양의 시를 떠올리게 했다. 송사에 휘말려 재판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재판 과정을 잘 모르겠지만 자유가 구속된 상태에서 제1심 재판과 항소심 그리고 상고심으로 이어지는 오랜 기간은 재판을 받는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에게까지 힘들고 고통스러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손경찬은 감옥 경험을 해 본 어느 사람과 비교해도 분명 다른 점이 많은 유별난 사람이다. 제1심에서 징역 15년을,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상태에서도 그는 담담하게 그때의 마음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손경찬이 재판을 받을 당시 자신의 죄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므로 높은 형량에도 불구하고 심적 동요가 없었다고 하지만 장기 구속 상태에서 감당하기 힘든 절망감을 안겨 주었으리라. 그의 담담함은 절망의 벽을 허물기 위해 자신이 내면을 향해 다짐하며 부르짖는 절규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마침내 정의의 봄은 와서 / 원심을 파기한다는 가슴을 적시는 빗소리(「고향 편지」)라 한 것은 재판의 오류에 대한 항의와 그때까지 그가 가뭄에 갈라지는 논바닥처럼 얼마나 절망적이었던가를 드러내 보인 것이다. 이 시는 재판에서 사실을 올바로 다투지 않거나 그 시기를 잃어버릴 경우 잘못된 재판으로 한 개인이 희생되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하며 분통 터지는 일이겠는가. 이미 형을 산 사람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지만 손경찬이 감옥에서 시를 썼고, 주제 또한 감옥살이인 작품이 적지 않기에 언급이 불가피했다.
손경찬은 감옥에 온 까닭을 '소중한 가족이 중심인물로 등장하고, / 그 주인공인 내 전모가 천천히 재생된다. / 바쁘게 정신없이 달리느라 / 잊고 산 참 자유(自由)의 정체성 깨닫는다.'(「수의(囚衣)를 입고」)는 시로 가족의 소중함과 자신을 더 잘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 갇힌 공간에서 학습의 새 움이 돋고 / 용기가 움직이고 / 희망이 버티고 서 나를 지킨다.'(「마음은 자유롭게」)는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표현이다. 그러나 다음 시를 보면 그러할 수밖에 없는 손경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때는 다니지 못했다
가난이 발목을 잡고,
배고픔이 책가방 빼앗았다.
끈질기게 늘어지는 가난을 달래느라
마음 다스릴 여유 없었다.
지천명 눈앞에 두고
꿈도 꾸지 않던 음지 학교에 들어와
연령 제한 없는 소수 정원 교실에서
밤새워 책 읽고, 시 쓰고 토론하며
인생 공부한다.
쉬는 시간처럼 고향 산수(山水)가 마음 창으로 들어와 앉는다.
칠보산 깊은 골짜기와 봉우리
고래불 20리 백사장 길
동해 바다에서 천천히 쉬지 않고 달려온 파도 소리도 들린다.
보물을 캐듯이
진귀한 음식을 맛보듯이
날마다 마음 밭을 기름지게 가꾸어야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학교, 부지런히 배워야지.
―「학교」 전문
위의 시를 보면 손경찬이 감옥을 인생을 새로 여는 공부의 장(場), 연찬의 장(場)으로 여기고 있다. 그 특유의 집념과 극기력으로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메우려 노력하는 비장함이 힘든 감옥 생활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거의 3년여 암담한 시간을 날마다 마음 밭을 기름지게 가꾸며 지내겠다는 결의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남아 있던 지적 한계(知的限界)를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러한 그의 각오는 지천명을 바라보는 그에게 얼마나 신선한 충격이며 장한 일인가. 그의 배움에 대한 열의는 감옥을 '기숙학교'라고 단언하기에 이른다.
손경찬은 자신이 잊혀진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해 준 고향 사람들에게 사랑의 빚을 진 채무자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향 사람들을 잊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고향 발전에 이바지하는 '새롭게 더 빛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소임 의식이 감옥에 있는 시간마저도 생산적인 희망의 에너지 충전의 시간으로 바꾸게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손경찬의 시를 보면 그가 불교 신자가 아닌가 싶다. 법화경(法華經)에 나오는 상불경보살(常不經菩薩)은 '살아가는 생활에 매사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뜻으로 자신에게도 '나는 불행하고 희망이 없는 사람으로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세운 뜻을 굽히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을 일컬어 불교에서는 '상불경보살'이라고 한다. 손경찬은 자신의 삶 속에서 그릇된 잘못을 지혜의 방향으로 가꿔 나가고, 극한 상황 속에서도 쉼없이 노력하는 점이 상불경보살을 떠올리게 한다.
'인생은 본인의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도 되고 지옥도 된다'는 평범한 진리처럼 손경찬은 감옥을 학교처럼 여기며 독서와 시 창작과 7천여 통의 편지를 쓰면서 결코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감옥에서의 시간을 새로운 삶의 지혜에 보탬을 주는 계기로 백분 활용함으로써 프리즘의 효과를 얻고 있으니 시적인 평가 외에 재소자 개인의 신분에서 보아도 교정 당국이 바라는 개과천선(改過遷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수용 생활이라는 것이 개인의 행동 자유를 구속하는 속성으로 인하여 호락호락하지 않음은 당연하다. 손경찬이 재소자로서의 감옥 생활에서 느끼는 애환이 구구절절 시에 흘러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구속 당시 손경찬은 도의회 의원의 신분으로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소중히 여겨 왔을 터라 충격은 더 컸으리라. 그럼에도 그는 영덕은 자유로워야 한다며 의원직 사퇴를 결심한다. 통상적으로 볼 때 국회의원이나 지방의회의원이 구속이 되어 재판을 받아도 스스로 의원 직을 사퇴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손경찬의 자진 사퇴는 대의(大義)의 아름다움과 함께 애환이 묻어난다. 고향을 자신의 생명보다 사랑하는 손경찬의 마음은 「영덕은 나의 생명줄」이란 시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5. 캄캄한 깊은 밤, 깨어 있는 자의 기쁨
캄캄한 깊은 잠이
내 삶 위에 떨어지네
잠자거라, 모든 희망아
잠자거라, 모든 욕망아……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선과 악의
기억마저 사라진다
오, 내 슬픈 이력아!
―베를렌, 「캄캄한 깊은 잠」 일부
위 시는 프랑스의 시인 베를렌(1844~1896)이 감옥 속에 갇혀서 언도 판결을 받는 날의 절망을 나타낸 시이다. 재판을 기다리는 미결 재소자들에게 있어서 감옥은 암흑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들은 재판을 받기 위하여 검찰과 법원으로 수차례 출정을 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출정은 감옥에 있는 일보다 사람을 더 지치게 하기 때문에 빨리 끝나 구치소 내 자기 방으로 되돌아가 쉬고 싶은 귀소 본능을 자극한다. 감옥에서의 캄캄한 밤은 잠자리는 불편하지만 밖에서와 똑같이 잠 속에서 자유롭고 평온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손경찬이 감옥의 밤을 착한 숨소리만 가득한 감옥의 밤 / 어둠의 이불 속으로 거룩한 평화 임한다(「감옥의 하루」) 하고 예찬한 마음에 공감한다.
평화의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도 여전히 감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위기가 어둡다. 형사 사건을 다투는 피고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혐의에 대하여 무죄 판결이 최상의 결과이고, 구속 재판을 받고 있는 경우에는 몸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신의 재판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보석(保釋) 신청을 한다. 보석이 허가되기를 바라는 것은 구속된 사람의 하나 같은 바람이다.
탈진할 정도로 기다리고도
여전히 보석(保釋)만 기다리는 그에게
드디어 교도관이 보석이다며 준비하라고 한다.
모두들 박수를 치는데
그만이 어리둥절하여
혹시 꿈 아닙니까? 정말입니까?
눈물 그렁그렁 거듭 묻는다.
나도 박수 치며
마음 손 주머니 속으로 넣는다.
감옥에서 보석(保釋)은 다이아몬드보다 값지다.
내게 보석(保釋)은 아득한 이야기지만
이 암울한 시간을 보석(寶石)으로 세공할 수는 있으리라.
보석을 움켜쥐듯 주먹을 꼬옥 말아 쥔다.
―「보석(保釋)」 전문
위의 시에서 보듯이 감옥에서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끼리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끈끈한 정 같은 것이 흐르지만, 막상 동료가 보석 허가를 받아 출소를 하게 되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진하게 배어나는 허전함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손경찬은 그 허전함마저 보석(寶石)을 세공하는 마음으로 바꾸려 한다. 이는 그가 대단히 긍정적인 사고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려 준다. 미결수 방은 보석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재판이 끝나고 형이 확정되어 기결 방으로 이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 좁은 공간에서도 만남과 헤어질 때는 인간적인 정이 피어난다. '미결일 때는 죽일 놈 살릴 놈 하다가도 / 형이 확정되어 방을 떠나게 되면 / 치약, 비누, 사탕 봉지에다 감기약까지 챙겨 준다.'(「감옥의 정류장」) 그렇지만 보석이 아닌 이감은 본격적인 감옥 생활의 시작이므로 손경찬은 '내 마음 천 리 길, 아득하다'고 한다.
감옥에서는 사회에서 자유롭던 일상 활동들이 다 제한을 받으며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필요한 최소한의 용품 구매도 정해진 날에만 가능하고, 운동은 하루 한 시간,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 이발은 한 달에 한 번……. 이러한 까닭에 재소자들은 운동이나 면회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루 종일 방에서 생활을 해야 한다. 감옥의 하루는 단조롭고 지루하다. 손경찬은 「감옥의 하루」라는 시에서 자벌레처럼 더딘 시간의 행보를 또 하루가 또박또박 기어간다.고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새벽 기상에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의 지루하고 단조로운 감옥의 하루 일상을 재미있는 표현으로 독자의 눈길을 끈다.
새벽 여섯 시,
짐승처럼 털고 일어나 나란히 두 줄로 앉아 점호 기다린다.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인다.
고슴도치 머리, 까까머리, 제비초리, 가마가 둘인 머리도 있다.
또 하루가 또박또박 기어간다.
아침 설거지 마치고
마룻바닥에 앉아 있는 하루 일과
잠시 한눈파는 사이 아침 햇살이 미끄러져 들어와 앉는다.
나는 잽싸게 몸 내밀어 수면제 같은 햇살에 푹 빠진다.
찰나의 평화가 서럽다.
접견 가다 취사장 앞 운반을 기다리는 배식 행렬 본다.
이마가 빛나는 소지는 밥통 내려놓고
아픈지 허리에 손대고 몸 뒤로 젖힌다.
고단한 새벽 밟고 가만가만 밥 짓던 어머니의 큰 이마가
내 생각의 문 벌컥 연다.
머리맡에 가지런히 접어 둔 죄수복 위로
빽빽하게 어둠이 몰려온다.
밤은 죄명을 묻지 않는다.
사형수도, 강도도, 사기꾼도
공평하게 덮어 준다.
착한 숨소리만 가득한 감옥의 밤
어둠의 이불 속으로 거룩한 평화 임한다.
―「감옥의 하루」 전문
위의 시를 보면 손경찬이 긍정적일 뿐만 아니라 낙천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마음이 무거운 새벽에 점호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에도 앞에 앉은 사람들의 뒤통수를 보는 눈은 시를 읽는 이를 즐겁게 한다. 이렇게 명랑한 그의 시적인 눈길은 정해진 시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흘러가는 하루를 한 마리 자벌레의 걸음으로 대치를 하기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어두운 공간에 잠시 들어온 햇살과도 어울리는가 하면, 고단한 재소자 봉사자들의 힘들어하는 모습에서 이 세상에 없는 어머니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이마가 생각의 문을 벌컥 연다'고 비약을 한다. 그리고는 시침을 떼듯 다시 오는 밤마다 따라오는 어둠은 죄의 유무 경중(有無輕重)을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덮어 주는 이불이기 때문에 밤은 평화가 깃드는 거룩한 시간이라고 단언한다. 이러한 시적 단언은 밤에 잠을 자면서 누리는 자유를 은근히 유추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어쩌다 특식으로 나온 끓인 「라면」에 감격하는 모습이나, 「쥐」가 주는 쓸쓸한 웃음이나 연휴에 빨래를 개며 '볕 좋은 가을 오후를 돌돌' 마는 눈은 다분한 그의 시적 끼를 보여 준다. 그의 시적 끼는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물은 죄를 미워하지 않고
죄명도 묻지 않고
차별 없이 엄마의 손길로 때를 씻긴다.
사형수 강도 사기꾼…….
물의 세례를 받는 이 순간만큼은 천진한 아이가 된다.
대신 더러워진 물만이 불평 없이 저 바다를 향하여
정화의 고행 길 떠난다.
―「목욕하는 날」 부분
위의 시는 철학적 향내와 함께 감옥 속의 한계와 인간으로서의 아주 작은 기본 욕구인 씻음을 축복처럼 작은 행복이라 하여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감옥 하면 캄캄하게 막힌 벽이 연상된다. 갇혀진 상황의 일상성만이 계속되고, 자신과 타인의 고통이 함께 수용되는 극한 장소인 감옥의 면면들이 손경찬의 시에서 마치 사실화 같은 풍경으로 펼쳐진다. 손경찬은 「감옥의 군상들」에서 '밖에서 살피지 못한 세상 그늘의 천태만상 다 있다.' 말한다. 이것은 이웃과 단절되는 삶의 방식과 그 아픔들이 비단 푸른 수의를 입은 재소자들만의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한 부분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풍겨내고 있다.
세속과 타협할 수 없는 고고한 삶을 살다 간 '푸른 오월' 노천명 시인이나 프랑스의 유명한 베를렌 시인, 자유중국의 대표 시인인 보양은 그들의 옥살이 경험을 보석처럼 세공하여 주옥같은 시를 빚어내었다. 이처럼 손경찬도 감옥 속에서도 새롭게 태어나려는 극복 의지를 보여 준다. 감옥은 들어오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 새사람이 되어 사회로 돌아가기 위해 존재한다. / 감옥, / 잘 보면 기숙학교다. 기필코 잘 견디고 당당히 나가리라.(「기숙학교」) 이 짧은 시에는 현재의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잘 극복하고 다시 사회로 돌아갔을 때, 더불어 사는 사회의 일원으로 더 잘 살겠다는 의지가 들어 있다.
누구의 인생에나 시련이 닥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앞날의 새로운 발전을 위한 선물로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다. 시련은 슬기롭게 헤쳐 나갈 때에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보약이 되고, 보석이 된다. 손경찬이 갑자기 당한 수용 생활은 자칫하면 무의미하게 허송세월로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아니하고 풍부한 독서와 사색을 하는 한편 팔십여 편이 넘는 시를 썼으니 분명 남다르고 현명하고 지혜로우며 대단하다고 아니 할 수 없다.
손경찬의 시 내용만을 가지고 편견 없이 해설하면서 손경찬이란 개인의 독특한 '퍼스낼리티' 느꼈다. 즉 그의 인간적 매력은 고난 속에서도 굴함이 없는 당당함과 남다른 극복 의지와 성실한 노력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고난 속에서 시(詩) 꽃을 피우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사회에서 평온한 상태에서도 글을 쓰고 책으로 엮어낸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손경찬은 감옥에서 뒤늦게 시 공부를 하고, 한 편, 두 편, 시를 만들어 가는 습작 과정에서 '소쩍새가 울고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또한 그렇게 울던' 처절한 순간순간의 고비를 잘 넘겨 드디어 한 권의 시집에 담아내었다. 그런 의미에서 손경찬이 일궈낸 시적 성취는 그의 시가 잘되고 잘못됨을 떠나서 대단한 일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고 본다.
고단한 인생에서 한숨과 눈물이 스며 있는 감옥이라는 어두운 면면들이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지만, 이 시집을 읽다 보면 때론 혼자 슬며시 웃음 짓게 되고, 때로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이것은 시적 기교나 성취도가 부족한 대신 손경찬의 강인하고도 순수한 내면의 진실이 그대로 녹아 있기 때문이다.
6. 에필로그
시 해설에 있어서 마무리에 종합적인 언급은 필요가 없다. 그러나 손경찬의 시를 자세히 읽고 시에 나타난 의미와 정신을 해설해 온 입장에서 덧붙이고자 한다. '시는 오늘을 살며 우리의 진실을 증언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분명 손경찬의 시는 읽는 이로 하여금 시적 모티브에 공감을 갖게 한다. 그것은 상처와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그의 강렬한 의지와 그리하여 마침내 이룬 꿈의 결실에서 찾아볼 수가 있는 것이다.
손경찬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파란만장했던 젊은 시절의 한(恨)과 열정, 쓰라린 상흔의 파도가 부풀어 아픔을 더욱 부채질해 너울져 왔지만 손경찬은 그러한 고난들을 그의 고향 앞바다 깊숙이에 침잠(沈潛)시키고, 새해 아침에 떠오르는 해처럼 그의 눈에 비치는 세상 만물은 밝고 신선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싱싱하고 건강하다.
손경찬의 시는 '상처받을까 두려워하는 것은 실제로 상처를 받는 것보다 더 괴롭다고 너의 마음에 새겨 두어라. 꿈을 추구하고 있을 때 마음은 결코 상처받지 않는다. 그것은 추구하는 순간순간이 신과의 만남이고 영원과의 만남이기 때문이다라는 파울로 코엘로의 「연금술사(鍊金術師)」의 명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에서 '연금술'은 자신의 보물을 찾아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뜻하는 말이다. 손경찬은 시를 통하여 연금술을 이미 보아 왔고, 손경찬 자신이 그의 삶에서 이룰 수 있는 꿈을 추구하는 연금술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위대한 것은 작은 것 속에, 무한한 것은 형태의 구속에서 발견된다. 손경찬이 감옥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가슴속에 보석처럼 간직될 한 권의 시집을 만들어 낸 그 자체야말로 분명 위대하고 무한한 아름다움이리라. 손경찬이 마음을 갈고 닦아 시를 쓰듯 참다운 정신세계를 흩트리지 않고 새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정진해 나간다면, 마치 어둠 속에서 태양이 떠오르고 바위틈 속에서도 어여쁜 꽃이 피어나듯이 그가 꿈꿔 온 소망을 이루어 낼 수 있으리라. 또한 그토록 그리워하는 고향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하리라 믿는다.
손경찬이 감옥에 있었던 세월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고향 사람들과 친지 또는 지인들로부터 끊임없는 관심과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헤아려 볼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그가 스스로 지어 온 업(業)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하면, 그의 시에서 잘 나타나고 있듯이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손경찬의 인생사에서 응어리진 한이 구깃구깃 표출될 수도 있으련만, 그는 아무런 원망 없이 열정적인 삶을 살았고, 질곡(桎梏)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신을 매몰차게 채찍질하고 자아의 내면을 닦는 부단한 노력과 극기의 정신이 확신을 심어 준다.
손경찬이 캄캄한 어둠 같은 감옥에서 희로애락의 사연을 담아 한 자, 한 자에 정성을 들여 쓰고, 눈물 같은 그리움을 타전했던 7천여 통이 넘는 '서신'이 확신을 증명해 준다. 또 손경찬이라는 인간성이 녹아 있는 처절하리만큼 아름다운 바로 이 한 권의 시집도 믿음을 더해 준다.
손경찬의 처녀 시집 『기숙학교』에 담겨진 시혼들은 혼탁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혼돈과 어려움의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삶에 대한 건강하고 소중한 가치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눈물꽃이다. 우리가 시를 읽고 사랑을 하며 사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참된 의미를 찾기 위함이 아니던가?
누군가? 나의 서러운 한 권의 시집을
소중히 읽어 벌레 먹지 않게 할 이?
위의 시는 당나라 시인 이하(李賀)의 시 일부분이다. 이 시에 비쳐나는 시인의 욕망에 한술 더 떠, 누가 이 밤 잠 못 이루며 세사에 시달려 고뇌가 별빛처럼 빛나고 있는 손경찬의 시를 읽으며, 인생의 고난을 생각하고 그 고난을 이겨내고 진실한 삶의 행복으로 승화되기를 기도해 줄 것인가?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고마운 분을 위하여 서러운 눈물꽃, 진주처럼 내면적인 성장이 아름답게 얼비치는 시(詩)에 부치는 나의 해설 또한 희망의 이름으로 바치겠다.(끝)
첫댓글 손형!!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인것 같소, 내가 26,7년 전에 이런 행운을 만나고도 알지도 느끼지도 못했구려..보지못하고 만날수는 없지만 이공간에서 손형을 느끼기에는 충분합니다. 한때는 웃기도 또 한때는 다투기도 했는데 다 지난 부질없는 일들인것 같고....나의 잘 못이 있다면 용서하소.. 멀리서 손형을 존경하며 흠모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기숙학교~ 왜 그렇게 표현을 했는지 알것같내요.
좋은글들을 쓰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든....기숙학교!
살아 온 많은 이야기들을 오랜 시간 들어왔는데도 " 기숙 학교" 마음으로 내 뱉는 삶의 진솔함에 다시 울컥 해 옵니다.
예총회장님의 말씀처럼 참으로 마음의 힘이 센 사람, 꽉 막힌 공간도, 길이 없는 길도 거침없이 열어내는 참으로 큰 사람임을 다시 느낍니다.
한편 한편 혼이 담겨있는 글이라 숨고를 새도 없이 읽었지만, 댓글을 달기는 좀... 하루 또 하루를 보내고 이제야 ...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깊고도 진실하게 다 드러나 있어 많이 놀라고,울림과 감명이 퍽 깊었습니다.
또한 세상에 상처없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그 상처가 정말 아파보여서...자신을 다그치는 부분에서는 또 사람됨의 폭과 깊이를 느낄수 있어 좋았습니다.
시집이 출간되면 늘 곁에 두고 한편씩 되새김하며 차근차근 읽어가겠습니다.
세상 모든 인연은 우연이며, 필연이라더니, 작년 이맘때쯤 '봄날의 인연'이 인생길을 밝혀주는 좋은 인연으로 오래오래 이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두서없이 올립니다
아이쿠, 시집발간은 또 언제 하셨어요?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기숙학교"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뱅뱅 돌기에 아차 하고 생각났습니다.
포항 흑구문학행사 때 저녁을 사신 자리에서 대중에게 기숙 이야기를 말씀하셨죠.
지금 생각하며 아하~ 합니다.
발간행사 하셔야죠^^`
상속 받은거라곤 외로움과 가난, 슬픔 뿐이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절망을 넘어 희망으로 역전환시킨 님의 삶이 경의롭습니다. 그러한 힘든 고비를 슬기롭게 넘겼기에 오늘의 손경찬 시인이시며 수필가를 있게 한 것 같습니다. 열심히, 성실히 살아온 인생행로에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기숙학교...단숨에 다 읽었습니다. 파란만장한 한 인간의 역사 속에서 아픔을 디디고 일어서는 기지개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얼음장 밑에서도 숨을 쉬며 봄을 기다리는 물고기의 발돋움을 만났습니다. 절망의 뜰에 피는 꽃이 되시기를...시집 발간을 아주 많이 축하 드립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자신의 일대기를 알리기 힘드셨을텐데...감동입니다.
이런말 들어보셨는지요...'성공자의 과거는 비참하다'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아직은 잘모르는 분이나 분명 성공자라 할수있을 꺼라 믿습니다.
외로움과 슬픔 이겨 내시며 사회공헌하심이 어느누가 박수갈채를 보내지 않을까요?
회장님으로 첫 대면 했으나 시인으로 다시 보입니다...시집 발간 축하드립니다.
좋글에 잠시 머물다가 갑니다
하던일이 있어 마무리 되면 시간이 주어지는대로
영상을 만들어 드릴까 생각합니다
좋은시간되세요
영화한편을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듯하신 우리회장님에 일세기 ,,,다시맘이 아려오지만 이제는 ,,그런 아픔은 ,,영원히 가시는걸음마다 ,,행복하시길,,
진정성이 묻어나는 시
감동 받으며 잘 읽었습니다.
일세기님의 시집상재를 축하합니다.
시인이 가장 행복할 때는 한 사람이라도 시집을 읽고 감화를 받아 그를 움직일 수 있다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 아니겠는지요. 아마도 동감을 가진 사람들이겠지요. 일세기님의 시집 잘 읽어보았습니다. 체험에서 우러나온 시라 그런지 저도 동감이 가는 구절이 많네요. 욕심내서 희망하기를 지금도 교도소에서는 어둠에 힘들어 하는 분들에게 어둠이 있어야 빛이 더 밝아 보인다는 것을 깨달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푯대로 이 시집을 삼기를 바랍니다
아~~아~~!"기숙학교"읽어내려가는 내내 가슴이 여미어 뭐라 표현해야할지.....!
모음,자음 한자한자마다 뼈아픈 사연들.. 드러내기 힘드셨을텐데.어떻게 이렇게 정열이 잘~나열하셨는지요!
상대산과 대진앞바다, 영해 어물전..눈앞에 살아오신 고향 길들이 한편의 드라마 처럼 아련거려집니다!
언젠가 한편의 드라마로 펼쳐 지시길 기원합니다!늘~건강하셔요(^^)
손경찬 회장님께서 걸어오신 발자취를..
꾸밈없이 토해내신..감동 스토리군요.....^^
뜨거운 이슬이 흘러..콕콕! 찍다가 가옵니당...__(())__
작년에 처녀시집을 내셨군요.
늦었지만 진심으로 출판을 감축드립니다.
앞으로도 2집 3집...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시집이 순산하시기를 염원합니다.
처녀시집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선생님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어서 가슴이 아리고 따뜻합니다.
기숙학교가 뭘 뜻하는걸까? 했었습니다..
더 이상 저의 느낌과 감정표현을 옮긴다는것이 참 힘이듭니다.
들어올때 마다 천천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글 좋은 시 ...
주말 아침..긴 글을 단숨에 읽었습니다. 젖은 성냥개비 하나로 백두산을 태울 운세라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고 가족애에 가슴 따스해 가며...1789, 계영선덕이라는 낱말이 선명하게 남는군요. 긍정과 희망은 삶을 빛나게 하나봅니다. 늘 건강하셔요^^
엄마의 어린기억
눈시울 아파서요
늘 건강하세요*
트래킹에서 만났을 때는 이런 분인지 몰랐습니다. 외모로 보아 강한 분이라는 것은 짐작했지만 내면은 참 아름답고 멋진 분이시군요. 저는 시를 잘 모르지만 너무 좋았어요. 앞으로 뜻하시는 일 잘 이루시길 빕니다.
조금씩 천천히 읽어 내려 가며 가슴 한켠이 울컥하며 뜨거워지는 군요....
그야말로 소설속에서나 경험 할수있는 폭풍같은 삶을 사신것 같네요...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어쩌면 그렇게도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할수 있는지....
아름다운 분이신것 같아요...
아이를 데리고 병원 다녀오는 KTX속에서 기숙학교시집을 읽어내려간다
계획되지 않은 특이한 상황의 인연으로 만나 몇번의통화와 메세지로 참으로 상처가 많은사람이구나!! 라고 느껴졌던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되는것같다....
이 세상에 올때에 선택해서 가지고온 드라마의 대본이 참으로 혹독하게 준비된 역활인것을... 이유는 반드시 있을터....
그 고통과 고난속에서 더많이 베풀고 선의의힘을 발휘할수있는 그릇이 되길 담금질을했고 그것을 통해 깨달음의 기회를 더 많이 주신것 같다
신의 무한한 사랑과 축복임을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