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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617 (월)
- 돗통시와 뒷간귀신- 나 혼자만의 공간, 화장실(化粧室) ②
- 문화, 여행 (42)
드디어 오늘부터 지루한 장마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장마쯤이야 매년 겪는 일이니 대비만 잘 하면 되는데,
올해는 또 얼마나 무서운 태풍이 오시려는지요...
옛날 수출하던 시절의 여름철에 장마로 인해 선박이 들오질 못해서 수출에 차질이
있었다고 보고하니까, 그 때 사장님께서 “야 이놈들아 여름 이맘때면 장마가
온다는 것을 아직도 몰랐느냐?“하시면서 질책하시던 생각이 납니다.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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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어 <화장실>이야기를 계속합니다.
5. 우리나라의 공중화장실
외국을 다녀보시면 아시겠지만 외국에서는 급할 때 공중화장실을 찾기가 어렵고
또 대부분 요금을 내고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불편한 곳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요즘 도심의 건물들이 화장실을 개방하지 않는 곳도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는 공중화장실의 숫자가 비교적 많고 또 급하면 웬만한 가게나
음식점을 가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가 있는데, 더욱 괜찮은 것은
우리나라의 공중화장실이 점점 깨끗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고속도로휴게소 공중화장실의 청결정도는 우리나라가 외국보다
훨씬 앞서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길을 걷다가 화장실 찾기 보다는 자동차로 어디를 가다가
화장실이 급할 때가 더 문제가 될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지방 나들이를 할 때, 급하면 공공기관이나 파출소를 이용하는데,
휴일에도 당직이 있어서 편리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공중화장실에는 몇 가지 불가사의(不可思議)가 있습니다.
(1) 남성용과 여성용 화장실 변기 숫자
- 공중화장실과 관련하여 제법 자주 언론매체에 올라오는 기사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 공중화장실에서의 남성용 변기와 여성용 변기의 숫자의 차이입니다.
- 여성은 생리적 차이 등으로 남성보다 화장실에 오래 있을 수밖에 없고
또 오로지 변기만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은, 대소변을 가릴 줄 아는
돌이 갓 지난 나이의 어린아이들도 모두 아는 사실이겠습니다.
- 그리고 어느 연구에 의하면, 공중화장실 사용시간이 평균적으로
남성은 2분, 여성은 5분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화장실 사용시간이 두 배 이상
길다고 하는 결과도 있어서, 해외에서는 여성 변기를 남성 변기보다 두 배 이상
많이 설치하고 있는 나라도 많다고 합니다.
-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나라 공중화장실 설계자들은 <여성용 : 남성용변기>를
<1:1> 또는 오히려 남성용을 더 많이 만들어 놓아서 여성화장실 앞에는
언제 어디서나 줄을 길게 서게 만드는 것일까요????
--- 이렇게라도 하여 “남성우월감”을 만끽하려던 것이었을까?
* 그런데 2012. 12. 05일자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지금까지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수용인원이 1,000명 이상인
공연장, 관람장, 전시장 등에 대하여는 남녀변기 숫자 비율을 <1:1.5> 이상이
되도록 규정하였는데, 이상하게도 여기에는 ”고속도로휴게소“는 포함되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 그래서 2013년 하반기부터 고속도로휴게소 내 여성화장실의 변기 수를
남성용보다 최대 1.5배로 늘어나도록 조치한다고 합니다.
(2) 공중화장실의 위치
- 건물의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빌딩에서는 그렇다 치고,
전철역이나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남성용 화장실이 입구에서 오른 쪽에 있는 경우도 있고, 왼쪽에 있는 경우도
있고, 또 길게 들어가는 복도에 있는 경우에는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경우도 있고 먼 곳에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 그래서 꽤나 급한 경우에는 우왕좌왕하는 것을 여러 번 봅니다.
- 우리나라의 모든 기준들이 아직도 많은 부분이 표준화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잘 이해하고 있지만, 설계하고 관리하는 곳이 동일한 전철이나
고속도로 휴게소는 왜 화장실 위치를 표준화 하지 않을까요?
- 이는 아마도 “화장실”을 “뒷간”이라 하여 천시(賤視)하는
오랜 관습에서 오는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해봅니다.
(3) 외국인이 말하는 우리나라 공중화장실
- 외국인들이 느끼는 우리나라의 공중화장실에서의 이상한 것으로,
- 여자(아줌마)가 긴 막대기(대걸레)를 들고 아무렇지도 않게
남자들 사이를 누비며 청소하는 것과,
- 대변기 옆에 꼭 놓여있는 휴지통 또는 쓰레기통의 용도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4) 간이 공중화장실
- 2012. 12. 03일에 “고유명사가 보통명사화 된 것들 (1)”에서
영어로 <porta John>이라는 ”간이화장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간이화장실”에도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지금은 “간이화장실”을 만드는 회사가 꽤 여럿 있어서
무슨 행사만 있으면 서로 경쟁이 치열하다고 합니다.
- 사실 화장실은 “깨끗하고 위생적”이면 됐지 뭐 요란할 필요는 없는데,
“간이 공중화장실”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 우리나라는 1980년대 중반까지는 어떠한 공공행사이건 간이화장실을
거의 설치하지 않아서 행사가 끝나고 나면 온통 난장판이었다고 하는데,
공식적으로는 1985년 육사에서 열렸던 “제5회세계양궁선수권대회” 이후
설치가 크게 늘어났다고 합니다.
- 공공행사에서의 간이화장실은 처음에는 남녀공용 간이화장실만 있다가
장애인용이 추가되었고, 최근에는 여성전용 간이화장실도 설치되는 경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 지난 2013년 초의 박근혜대통령 취임식 때는 취임식장 안에
여성전용 간이화장실이 따로 설치되어 눈길을 끌었는데, 종전의 역대 대통령
취임식장에는 남녀공용 간이화장실과 장애인용 간이화장실만 설치돼 있었으나
이번에는 남녀공용 간이화장실이 18개, 여성전용 간이화장실이 4개,
장애인용 간이화장실이 7개 설치됐다고 합니다.
- 이를 형태별로 보면 소변기 89개, 대변기 203개이었다고 합니다.
즉, 여성용이 남성용보다 훨씬 많았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 실제로 취임식 당일 남자화장실은 거의 100미터에 이르기까지
줄을 섰는데, 여자화장실은 오히려 한산해서 남자들이 여자화장실까지
사용했다고 하던데, 이건 또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 이의 원인은 참석자의 80%가 남자이어서 그렇다는데,
어쨌든 여자들은 “별 희한한 일도 다 있네!!!”하며 재미있어 했다고 합니다.
* 참고로 이번 취임식 행사용 의자 7만 개는 중소기업체 10여 곳이
각각 수천 개씩 모아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해당업체에서 각각 자리를
배정받아 설치하고 또 그 업체들이 책임지고 의자의 먼지를 닦고,
행사가 끝난 다음에는 각자 수거해 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요즘은 남성용 대변기 2개와 소변기 4개, 여성용 5개 그리고 세면대 1개로
이루어진 “트레일러 형 간이화장실”도 있고, “꽃향기가 나고 음악이 흘러나오고
속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표시가 되는 첨단시스템까지 갖춘 간이화장실”까지
등장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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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름다운 화장실 운동
- 우리나라에서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하계올림픽, 2002년 월드컵,
그리고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을 개최하면서 벌인 여러 가지
사회운동 중에는 “화장실 개방하기 = 열린 화장실”,
그리고 “깨끗한 화장실 운동” 등이 있습니다.
- 그런데 “화장실 개방하기“는 이미 모든 건물주들이 깡그리 잊어버린 듯한
느낌이어서 개방하지 않는 곳이 많은데, 길가다 급할 때는 참으로 난감합니다.
- 그렇지만 “청결”에 관하여는, “사단법인 문화시민연대 중앙협의회”라는 곳에서
계속하여 “친절-질서-청결”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아름다운 화장실”을 매년 선발하여 공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 남양주시에도 “아름다운 화장실”로 선정된 곳이 여러 곳이 있는데,
그 중에서 몇 군데만 소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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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 화장실 >
-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화도하수처리장 안에 있는데,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앞에는 높이 92미터의 인공폭포가 있어 장관인데,
한번쯤 들러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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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팽이 화장실 >
-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수락산유원지에 있는데 역시 2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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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모나이트 화장실 >
- 남양주시 가운동 황금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데 이곳도 2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 암모나이트(Ammonite) :
- <암모나이트>란 지금부터 약 4억 년 전의 <고생대 지류기(실루아기) = 古生代
志留紀 = Paleozoic era Silurian period)>에서 약 6,500만 년 전의
<중생대 백악기 = 中生代 白堊紀 = Mesozoic era Cretaceous period)>까지
살았으며, 특히 <중생대 주라기(쥐라기) = 中生代 侏儸紀 =
Mesozoic era Jurassic period)>에 번성했던 조개의 일종으로
“암몬조개”, “화석조개”라고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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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제14회 아름다운 화장실 >
- 조선일보와 행정안전부, 문화시민운동중앙협의회가 공동 주최한
“2012년 제14회 아름다운 화장실” 공모는 전국에서 응모한 156곳 중에서
“숲을 주제로 한 시각적 효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지하철 신분당선 청계산입구 역 화장실”이 대상을 받았습니다.
- 수상 대상은 <대상 - 지하철 신분당선 청계산입구 역 화장실 (1 곳)>,
<금상 - 임진각 관광안내소 (1 곳)>, <은상 - 제주국제공항 등 (5 곳)>,
<동상 - 목포역 등 (22 곳)>, <특별상 - 광개토대왕함 등 (3 곳)>,
도합 32 곳인데,
- 이들에 대하여는 2012. 12. 26일 서울국립민속박물관에서 시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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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화장실에 얽힌 다른 이야기들
<화장실>하면 생각나는 몇 가지 이야기를 들춰봅니다.
가. 제주도의 뒷간 = 돗통시
- 동남아시아나 태평양의 여러 섬들에서도 보이는 바와 같이
제주도는 지리적으로도 한정되고 또 환경도 척박하여 예전부터 생활이
무척 어려웠으므로, 주요한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하며 또 비교적 기르기가 쉬운
돼지를 집집마다 한두 마리 씩은 꼭 키웠다고 합니다.
- 제주도의 돼지는 집안의 크고 작은 일에 꼭 필요했고 또 돼지의 배설물은
화산재로 덮인 메마른 밭과 옷감에 물들이는 감 열매 등의 과일나무에 거름으로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돼지를 무척 소중히 여겨서 소홀히 다루지 않았는데,
돼지의 생육상태가 그 집안 주인의 정성과 됨됨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여 외부 사람이 방문했을 때는 “돼지를 참 곱게 키웠습니다.”라고 칭찬하는
것이 곧 집주인을 칭찬하는 말이므로 기쁘게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 제주도에서는 <뒷간>을 <통시>라 부른다고 하는데, 특히 제주도의 <통시>에서는
돼지를 한두 마리 씩 꼭 키웠기 때문에 <돼지 = 돗(표준어로는 “돝”)>를 붙여서
<돗통> 또는 <돗통시>라고 불렀습니다.
* 제주도에서 <돗통시>를 볼 수 있는 곳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제주민속촌박물관”, “성읍민속마을” 등이라고 합니다.
- 이러한 형태는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민간 뒷간>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형태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함경북도 회령과 강원도 양구,
경남 통영, 거창, 함양, 전남 광양 등지에도 있었다고 하며 중국의 내몽골 일대와
일본의 오키나와, 필리핀 등에도 두루 분포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 제주도의 <돗통시>는 주거하는 집의 부엌에서 먼 곳에 돌담을 둘러쌓아서
뒷간을 짓고 그 위에 지붕을 덮은 후 뒷간 안에 앉아서도 밖을 쉽게 내다
볼 수 있도록 쪽문을 해서 달았습니다. - 이는 제주도에서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왜구나
또 후 에 몽고군의 침략 등 외침이 잦아서 모든 생활양식이 외침을 쉽게 식별하고
재빨리 피난 할 수 있도록 발전된 형태라고 합니다.
- <돗통시>의 아랫부분은 돼지우리와 통하게 되어 있어서 사람이 이곳에 들어가면
돼지가 달려와 사람의 배변을 재촉하는 뜻으로 꿀꿀거리는데,
어떤 곳은 밑 부분을 돼지우리 쪽으로 경사지게 하여 분뇨가 자연스럽게
미끄러지게 한 곳도 있고 돼지의 주둥이나 머리를 뒷간 밑 부분으로
밀어 넣을 수 있도록 작은 통로를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고 합니다.
- 어떤 경우에는 돼지의 혓 바닥이 사람의 엉덩이를 핥거나 코로 문지르게 되는
일도 종종 벌어져서 돼지를 쫓는 작대기를 꼭 갖추어 놓았다고도 합니다.
- 이렇게 <돗통시>에서 키운 돼지는 “똥돼지”라 불리는데 그 맛이
매우 좋았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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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끼 돼지의 호칭
- 새끼 소는 “송아지”, 새끼 말은 “망아지” 그리고 새끼 개는 “강아지‘라고
하는 등 “새끼 짐승”에게는 어른 짐승의 뒤에 작은 것을 일컫는 접미사 ”아지“를
붙여서 말합니다.
- 그러면 새끼 돼지는 뭐라고 할까요? --- “동아지”???
⇒⇒⇒ 어느 분에 의하면 이의 답은 “돼지”라고 합니다.
이분에 의하면, 원래 돼지라는 말 자체가 “새끼 돼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는데, 옛날에는 어른 돼지를 “돝”이라고 부르고,
새끼 돼지는 “돝아지 - 도아지 - 되야지 - 돼지”로 말이 변해왔다는
주장입니다.
* 그러면 새끼 고양이는 ? --- “공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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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뒷간귀신 = 측신(廁神) = 측간신(厠間神) = 측간귀신(厠間鬼神)
다음 내용 중의 일부는 2010. 04. 19일과 04. 21일에 아인학당에 올렸던
<우리 집에 계시는 신들 (1), (2)>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1) 가신신앙(家神信仰)
-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민간신앙(民間信仰)”, 또는 “민속신앙(民俗信仰)”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마을 어귀에는 “장승”과 “짐대”가 있었고 마을로
들어가면 “당산(堂山)”과 “서낭당” 또는 “성황당(城隍堂)”, “국사당(國師堂)” 등이
있어서 마을의 안녕과 길복(吉卜)과 번영을 지키는 신들이 있어서 마을사람들은
여기에 “당굿(=당산굿)” 등의 제사를 지내고 굿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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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짐대”는 지금까지는 “솟대”라고 알고 부르던 것인데,
<문화재청>에서는 이를 “짐대”라고 고쳐 써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 <문화재청>에 의하면, “솟대”는 일반적으로 “솟대”, “솔대”, “소대”,
“소도” 등으로 불려 지는데, 그 어원은 옛 마한(馬韓)의 “소도(蘇塗)”에 세워진
“신목(神木)”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서 “소도(蘇塗)”는 북과 방울을 매단
장대를 세워놓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신성지역을 말합니다.
즉, “솟대”는 “신간(神竿)”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 그러나 “짐대”란 우리 민속에서 “짐대”, “진대”, “돛대”라고 부르며
긴 장대 꼭대기에 오리나 기러기를 얹은 “마을수호신”을 가리킨다고 하며,
이것은 “당간(幢竿)”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 대표적인 “짐대”는 제가 즐겨 찾는 강릉시 강문동의 “진또베기”입니다.
- “짐대“와 ”솟대“에 대하여는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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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우리의 집에는 “성주신”, “삼신”, “조왕신”, “조상신”, “터주신”, “대문신”,
“측간신”, “업장군”, “외양간신”, “용신”, “도장지신”, “노적지신”, “장독지신”
등등의 “가신(家神)”이 집안 곳곳에 있어서 가족의 번창을 돕고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고 행운을 준다고 믿어서 각각 그에 맞는
때마다 굿을 하는 등으로 정성을 들여 모셨습니다.
- 이러한 “가신신앙(家神信仰)”은 단순한 미신으로 여기기보다는 밖에서나
자신의 집에서나 항상 몸가짐을 바로하고, 말을 삼가고, 주위의 모든 것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2) 뒷간귀신 = 측신(廁神) = 측간신(厠間神) = 측간귀신(厠間鬼神)
- 우리의 집에서 <뒷간>은 가신(家神)의 하나인 <뒷간귀신>이 관장하고
있습니다.
- 이 <뒷간귀신>은 지방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무척 다양한데,
다른 말로는 <측신(廁神)>, <측간신(厠間神)>, <측귀(廁鬼)>, <치귀>
<측간귀신(厠間鬼神)>, <측도부인(厠道夫人)>, <변소각시>, <변소장군>,
<칙시부인>, <칙간조신>, <부출각씨(跗出閣氏)>, <통시귀신>,
<정낭각시> 등등 전국각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 그런데 이 귀신의 이름으로 보아 “젊은 여성신격(女性神格)”으로 보이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 집안의 귀신들은 대개 무병장수와 복을 가져다준다고 하는 착한 귀신들인데
<뒷간귀신> 만은 성품이 별나서 잘 받들지 않으면 화를 입히는
“못된 귀신”이라고 믿었습니다.
- 즉, 이 귀신은 젊은 여성답게 신경질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를 놀라게 하면 해를 끼친다고 믿어 왔습니다.
- 이 귀신은 매달 “6일-16일-26일”에 <뒷간>에 와서 머물지만
그 외의 날에는 밖으로 나다닌다고 합니다.
- 그래서 “6자가 들어있는 날엔 <뒷간>에 가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뒷간>을 항상 안채나 사랑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두었습니다. 특히 상류 가정의 <안채뒷간>은 부엌 옆 마당의 디딜방앗간 벽에
붙여 두는 것이 보통이었고 심지어 <사랑채뒷간>은 대문 밖에 두기까지
했습니다.
- 따라서 이러한 풍습은 밤늦게 드나들 때에는 더욱 공포심을 자아내게 하였으며
이러한 공포심이 <뒷간귀신>의 존재를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확신하게
만들었습니다.
- 이 귀신은 자기의 쉰다섯 자나 되는 긴 머리카락을 발가락에 걸고 세는 것이
일과인데, 사람이 <뒷간>에 들어갈 때, 기척을 하지 않고 갑자기 문을 열면,
이 귀신이 놀라 긴 머리카락으로 사람의 머리를 덮쳐 <뒷간>에 빠뜨리거나
또는 이 귀신을 만난 사람들은 이때부터 앓다가 결국 죽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 그래서 <뒷간>에 갈 때는 세 걸음 내지 다섯 걸음 정도 앞에서 두서너 번
기침 소리를 내면 귀신이 피한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우리의
어르신들은 <뒷간> 앞에서 꼭 “으흠!!!”하고 헛기침을 하십니다.
- 어쩌다 <뒷간>에 빠진 사람은 며칠 안에 죽게 되거나 재액을 얻게 되므로
그 때는 “똥떡”을 만들어 <뒷간> 앞에 가서 비손하고,
그 떡을 먹으면 재액이 소멸된다고 합니다.
* 비손 : 신에게 두 손을 비비면서 소원을 비는 일
- 옛날 시골에서는 흔히 어린이에게 "똥떡 구워준다"든가
"다리 밑에서 똥떡 어미 애를 주워 왔다"든가 하면서 놀리기도 했습니다.
- 심지어는 한술 더 떠서 그 "똥떡 어미가 너를 데리러 온다."는 말로 거듭 놀려서
정말인 줄 알고 겁에 질려 우는 아이를 보고 웃는 민간 풍습이 있었습니다.
- 얼마 전까지도 강원도에서는 <뒷간>을 지은 뒤에 반드시 길일(吉日)을 받아
밤에 <뒷간>에 불을 켜놓고 그 앞에 음식을 차린 다음 <뒷간귀신> 부적을
써놓고 예를 갖추어 탈이 없도록 해달라고 고사(告祀)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고,
특히 시월상달 고사(告祀) 때는 반드시 <뒷간>에 떡을 바쳤으며,
또 아이들이 똥구덩이에 신발을 빠뜨리거나 사람이 빠졌을 때에도
떡과 여러 음식을 해 놓고 액땜을 빌었다고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뒷간귀신>이 노해서 탈을 일으킨다고 믿었습니다.
- <뒷간귀신>은 한번 화가 나면 “무당굿”을 해도 들어주지 않으며
당사자는 대개가 죽는다고 합니다.
(3) <뒷간귀신> 설화(說話)
그러면 <뒷간귀신>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 어느 나라나 옛날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구비문학(口碑文學)”이 있고
이러한 이야기를 노래로 표현한 “구비서사시(口碑敍事詩)”가 있습니다.
* 예전의 식자(識者)층(層)들은 자신들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종이에 적거나
또는 비석(碑石) 등에 새겨서 남겨놓았지만, 글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단지
입에서 입으로만 전할 뿐이었는데, 이것을 <구전(口傳)> 또는 “입으로 새긴 비석”이라는
뜻의 <구비(口碑)>라고 합니다.
- 종이나 돌에 새긴 기록은 불에 타거나 비바람에 마멸(磨滅)되어 없어지기도 하지만,
구전되어 온 속담이나 설화(說話) 등은 오늘날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에서의 “구비서사시(口碑敍事詩)”에는 대체로 “서사민요(敍事民謠)”,
“서사무가(敍事巫歌)” 그리고 “판소리”가 있습니다.
- 일반적으로 “서사민요(敍事民謠)”는 짧은 단형(短形), “서사무가(敍事巫歌)”는
비교적 긴 형태의 장형(長形)이고, “판소리”는 구조가 복잡한 장형(長形)을
보이고 있는데, “서사민요(敍事民謠)”는 누구나 부를 수 있지만
“서사무가(敍事巫歌)” 즉, “무당서사시(巫堂敍事詩)”는 특별한 자격을 얻어야
하며, “판소리”는 광대의 전문적인 수련을 거쳐야만 구연(口演)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 이중 “서사무가(敍事巫歌)”의 기원은 고대 무속제전(巫俗祭典)까지 소급되는데,
즉, “영고(迎鼓)”, “동맹(東盟)”, “무천(舞天)” 등과 같은
고대 제천의식(祭天儀式)이나 “단군제(檀君祭)”, “동명제(東明祭)”,
“혁거세제(赫居世祭)”와 같은 “국조제(國祖祭)”는 고대의 무속제전(巫俗祭典)이며,
이러한 제전(祭典)에서 형성된 신화(神話)가 오늘날까지 전해온 것이
바로 “서사무가(敍事巫歌)”라고 합니다.
- “서사무가(敍事巫歌)”는 소설이나 설화와 같이 고유한 등장인물이 있고,
그 인물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 줄거리를 갖추고 있으며,
일명 “본풀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신의 유래를 설명하므로 붙여진 명칭입니다.
- 이는 또한 무속신(巫俗神)의 이야기이고 무속의식(巫俗儀式)에서 구연(口演)
되므로 “무속신화(巫俗神話)“이며, 청중들 앞에서 악기 반주에 맞추어 줄거리를
노래한다는 점에서 “구비서사시(口碑敍事詩)”이기도 합니다.
- 우리나라 전역에 “서사무가”가 있지만 특히 “서사무가”가 가장 풍부한 곳은
제주도라고 합니다.
- 그래서 제주도에서 전해오는 “서사무가” 중에서
<뒷간귀신>이 좌정(坐定)하는 내용을 먼저 올립니다.
(3-1) <조왕신(竈王神)>과 <뒷간귀신>의 좌정(坐定)
(3-1-1) < 조왕신(竈王神) = 조왕(竈王) >
- “조왕(竈王)”은 가신들 가운데 부엌을 관장하는 “불의 신( = 화신-火神)”으로서
“조왕신(竈王神)”이라고도 부르며, 또 “조왕각시” 또는 “조왕할매”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보아 여성신격입니다.
- 이 신은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계하고 특히 “재산신(財産神)”으로
되어 있으며 또한 아기를 점지하는 역할이 있어 아녀자들에게는 “삼신”과 더불어
“성주신” 다음으로 중요시 되는데 부녀자들에게는 가장 무서운 “가신(家神)”으로
여겨집니다.
- <조왕신>의 신체는 작은 오지뚝배기나 종지에 물을 담아 부뚜막 위에 모시거나
솥의 바로 뒤쪽 벽에 모시거나 하는데, 아침마다 물을 갈아줍니다.
- 우리나라에는 “며느리가 불씨를 꺼뜨리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불은 모든 부정(不淨)을 가시어 신성하게 하고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며
가운(家運)의 상징이기도 한데, 이를 <조왕신>이 다스린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3-1-2) <조왕신>과 <뒷간귀신>의 좌정(坐定)
* 제주도 “서사무가” 중 <문전본풀이>에 <조왕신>과 <뒷간귀신>의 좌정에 대한
다음의 전설이 있습니다.
- 남선고을의 남 선비와 여산고을의 여산부인이 부부가 되어
간고(艱苦)한 생활을 하며 아들 일곱을 두었습니다.
- 어느 해 흉년이 들어 남 선비는 부인의 당부를 듣고 무곡(貿穀)장사를 하러
오동고을에 갔는데 간악한 노일제대귀일의 딸의 꾐에 빠져
바둑 두기로 재산을 탕진하고 그곳에서 귀일의 딸을 첩으로 삼고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며 살았습니다.
- 장사 나간 남편이 삼 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여산부인은 남 선비를 찾아
오동고을로 가보니 그러한 기막힌 상황이었습니다.
- 하는 수 없이 남편과 첩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첩은 본처에게 목욕을 같이 하자고 꾀어 주천강 연못에 빠뜨려 죽이고
본처의 옷을 입고 본처 행세를 합니다.
- 남편을 데리고 남선 고을로 돌아온 귀일의 딸은 일곱 아들을 죽이려 했으나,
막내아들 녹디성인의 지혜로 귀일의 딸의 정체가 드러나자,
남 선비는 도망치다가 정낭(집안 출입로에 가로로 걸쳐놓은 굵은 막대기)에
목이 걸려 죽어 <주목지신(柱木之神 = 정살지신 : 제주도의 문신(門神)의
일종인 대문신(大門神)>이 되고,
귀일의 딸은 변소로 도망쳐 55자나 되는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목을 매어 죽어
<뒷간귀신>인 <측도부인(厠道夫人)>이 되었습니다.
- 일곱 형제는 서천꽃밭에 가서 환생(還生) 꽃을 구하여 주천강 연못에 가서
죽은 어머니를 다시 살려낸 뒤, 어머니에게 "춘하추동 네 계절을 물속에서만
살았으니 몸인들 춥지 않겠습니까? 하루 세 번 더운 불을 쬐면서 조왕할머니로
앉아 얻어먹고 계십시오."하고 어머니를 <조왕신>으로 좌정시키고,
일곱 형제는 “동-서-남-북-중앙의 대장군” 및 “일문전(앞門神)-뒷문전(뒷門神)”
으로 좌정하였으니, 이에 곧 여산부인은 <조왕신>이 되어 부엌을 관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 이렇게 하여 그 뒤로는 <조왕신>과 <뒷간귀신>은 처첩(妻妾)으로
둘의 사이가 좋지 못하여 <뒷간>과 <부엌>은 멀리 떨어져야 좋다고 하며,
또한 일반 가정에서는 이 <뒷간귀신>을 두려워하여 <뒷간>을 함부로 고치지
않았으며, 땔감이 없어도 이 <뒷간>의 나무는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 이를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면, <조왕신>이 된 여산부인은 아들들을 기특하게
여겨 <큰 아들은 상정주>, <둘째는 중정주>, <셋째는 하정주>, <넷째는 처신>,
<다섯째와 여섯째는 오방신장(五方神將)>, <일곱째는 문전(門前)을 차지하는
문신(門神)>을 하도록 하였으니, 남편은 <주목지신(柱木之神 = 정살지신 =
문신(門神)의 일종인 대문신(大門神)> 그리고 첩은 <뒷간귀신>이 되었으니
이렇게 하여 집안에 신(神)들이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3-2) <뒷간귀신>에 대한 중국의 전설
중국에서는 정월 보름 저녁에 <뒷간귀신>에게
일 년 동안의 집안의 안가태평(安家太平)을 기원하는 치성(致誠)을 드리는데,
이 <뒷간귀신>의 좌정에 대하여 다음의 두가지전설이 있습니다.
곧 “자고(紫姑)의 전설”과 “척고(戚姑)의 전설”입니다.
(3-2-1) “자고(紫姑)”의 전설
- 먼저 “자고(紫姑)”의 전설을 소개하면,
-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채양(菜陽)이라는 곳에
“하미(河媚) = 자고(紫姑)라고도 부름”이라는 영민하고 예의 바르며 예쁜 처녀가
살았는데, 유랑극단에서 연극하는 사람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 그런데 어느 날 유랑극단이 수양(壽陽)이라는 곳에서 공연을 하는데,
수양(壽陽)의 자사(刺史) 이경(李景)이 “하미(河媚)”가 탐이 나서,
그녀의 남편을 죽이고 그녀를 첩으로 삼았습니다.
- 이에 악독한 성품을 가진 이경(李景)의 본처인 조고(曺姑)는 질투심이 나서
정월 보름날 밤에 <뒷간>에서 남 몰래 그녀를 죽였습니다.
- 그 뒤 “하미(河媚)”의 원혼은 <뒷간>에 머물면서 때때로 나타나
자기의 억울한 죽음을 이경(李景)에게 하소연하므로
이경(李景)이 이 사실을 측천무후(則天武后)에게 알렸습니다.
- 측천무후(則天武后)는 “하미(河媚)”를 불쌍히 여겨 <뒷간>의 신으로 봉하고자
천제(天帝)께 아뢰니 천제(天帝)도 가련히 여겨
그녀를 <측신(厠神) = 뒷간귀신>으로 명했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지금도 중국 여인들은 정월 보름날인
“상원절(上元節) = 정월 대보름날”에 <뒷간귀신>인 <자고신(紫姑神)>에게
제사를 올리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 <고(姑)> :
- 우리말 뜻으로 “시어미”, “고모(姑母)”, “고종(姑從)” 등의 뜻이 있으나,
중국어에서는 “아가씨”, “부인”의 뜻도 있어서 “고낭(姑娘) = 꾸냥”이라하면
“아가씨“, ”처녀“의 뜻이 됩니다.
(3-2-2) “척고(戚姑)”의 전설
- 다음으로 “척고(戚姑)”의 전설을 소개하면,
- 한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전쟁터에서 “척의(戚懿)”라는 예쁜 소녀를
알게 되어 첩으로 삼고 “척부인(戚夫人)”이라 불렀습니다.
- 그런데 유방(劉邦)의 총애를 받던 “척부인(戚夫人)”이 아들 여의(如意)를
태자로 세우려 하다가 정비(正妃)인 여태후(呂太后)의 미움을 받고 있던 중
고조(高祖)가 죽자, 태후가 “척부인(戚夫人)”의 아들을 독살하고
“척부인(戚夫人)”을 잡아 <뒷간>에 가두고는 손발을 자르고 눈을 불로 지져
멀게 하고 약을 먹여 벙어리로 만든 뒤 “인체(人彘 =사람 돼지)”라 불렀습니다.
- 여태후(呂太后)는 자신의 이들이며 고조(高祖)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혜제(惠帝)에게 <뒷간>에 가서 “사람돼지”를 구경하라고 하였는데,
혜제는 그 “사람돼지”가 바로 “척부인(戚夫人)”이라는 것을 알고는
너무 놀라서 그 뒤로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 그 뒤 “척부인(戚夫人)”이 죽자 사람들이 그녀를 불쌍히 여겨
<측신(厠神) = 뒷간귀신>으로 좌정시켰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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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두 번에 걸친 <화장실 이야기>를 모두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오방장신 조왕신 자고 많이 듣던 얘기인데 이런 설화가 있었군요. 어렸을적 마을 당산이 우리 집안에 있었는데 사당 안에는 큰 돌을 중앙에 가두고 벽에는 제단과 초상화가 있었는데 단군 이신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고 사당 주위는 돌담으로 우리 주거지와는 분리되어 있는데 문제는 바로 돌담 옆이 화장실이라 어두운 저녁에는 무서워 어머니나 아버지를 불러 밖에 계신지 계속 확인 하매..ㅎㅎ 돌아가신 어버지가 생각납니다.
집안에 마을 당산이 있었다면 집이 무척 컸던 모양입니다. 저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 민간신앙에 더욱 관심이 가는데, 집안 뿐만 아니라 바깥의 자연에도 무척 많은 신들이 계셨지요. 어쩌면 그러한 신앙들이 오히려 인간에게는 더욱 친근하고 가까운 것이 아닌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네 화장실은 왜 그리 으슥한 곳에 있는지 지금도 시골에 가서 밤에 화장실 가려면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더구나 오늘 같이 빗방울이라도 날리고 으스스하게 바람이라도 불어 나뭇잎이 스스슥 소리를 내는 날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릴적 기억이 더욱 새록새록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