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 후 한국에 첫발을 디딘 곳
나바위 성당은 전라도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의 하나로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金大建, 보명 芝植, 1821~1846, 안드레아) 신부가 1845년 조선교구 3대 교구장이신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그리고 11명의 조선 교우들과 서해를 통하여 귀국하여 첫발을 내디딘 곳이다. 나바위 성당은 김대건 신부 일행이 한국 땅을 밟은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성당이다.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는 화산(華山)이 있는데, 산이 너무 아름다워 우암 송시열이 붙여 준 이름이다. 이 산의 줄기가 끝나는 지점에 넓은 바위가 있는데 이를 ‘나바위’라고 한다. 오늘날 화산 위에 자리 잡고 있어 화산 성당이라고도 불리는 나바위 성당은 이 너른 바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김대건 신부는 1836년 12월에 15세의 어린 나이로 고향인 경기도 용인의 골배마실을 떠나 1845년 8월 17일 상해 인근의 금가항 성당에서 페레올(Ferr´eol, 高, 1808~1853, 요셉)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고 한국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 그 후 김대건 신부는 조선에서 함께 출국했던 교우 11명과 함께 페레올 주교, 다블뤼(Daveluy, 安敦伊, 1818~1866, 안토니오) 신부(1857년에 주교가 됨)를 모시고 상해를 떠나 조선으로 향했는데, 도중에 폭풍을 만나 망망대해를 표류하며 갖은 고생 끝에 제주도를 거쳐 42일 만인 1845년 10월 12일 밤 이곳 황산포구 나바위 기슭에 상륙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바위 성당은 김대건 신부 일행이 한국 땅을 밟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베르모렐(Vermorel, 張若瑟, 1860~1937, 요셉) 신부가 1897년에 설립해 1906년에 성당 건물을 완공하였다. 화산 정상의 김대건 신부 순교비는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에 세워졌다. 나바 위 성당은 1916년에는 목조벽을 벽돌조로 바꾸고 고딕식 벽돌조 종각을 증축했다.
한옥 목조 건물에 기와를 얹은 성당은 특히 회랑으로 인하여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어 지방 문화재(사적 제318호)로 지정되었다. 성당 내부는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는 한국 풍속을 따른 듯 남녀 교우가 서로 구별하여 앉을 수 있도록 남녀 입구가 다르고 앉는 곳도 칸막이로 막았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1907년 계명학교를 세워 1947년 폐교될 때 까지 일제의 탄압 속에서 애국 계몽 운동을 통한 구국에 앞장섰고 신사 참배에 저항하던 사제와 신자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한국 전쟁 당시에는 죽음을 무릅쓰고 성당을 지킨 사제 덕분에 단 며칠을 제외하고는 매일 미사가 계속 봉헌된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
나바위 성당은 1955년에 성 김대건 신부 순교비를 세우고 1991년에는 피정의 집을 건립하였다. 300여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피정의 집 대건 교육관 외에도 소규모 피정자들을 위한 피정의 집이 따로 있고, 취사를 할 수 있는 설비도 마련되어 있다. 또 피정의 집 앞 운동장은 2천 평 규모의 대지로서 야영장으로도 활용된다.
▒ 나바위 성당
화산 천주교회의 초창기 명칭.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는 “화산”이라는 산이 있다. 산이 너무 아름답다고 해서 우암 송시열이 붙여 준 이름이다. 이 산의 줄기가 끝나는 지점에 광장같이 너른 바위(나바위)가 있다. 화산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나바위 성당은 이 너른 바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897년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華山里) 나바위[羅岩] 부락에 주임으로 부임한 베르모렐 신부가 나바위에 있는 동학 농민 운동 때 망해 버린 김여산(金如山)의 집을 1,000냥에 사들여 개조하고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나바위는 옛날 선착장으로 이용하던 곳이다.
▒ 순교비와 망금정
화산 정상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 순교비는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에 세워졌다. 상해를 떠나 42일간 바닷길로 입국할 때 타고온 라파엘호의 크기를 본떠 세운 것이다. 목선의 길이 15자가 순교비의 높이가 되고 넓이 6척이 순교비의 둘레가 된다.
이곳에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가 첫발을 내디딘 것을 기념하여 나바위 성당이 설립된 후 초대 대구교구장이신 드망즈 주교가 해마다 5, 6월이면 연례 피정을 화산 정상에 있는 나바위에서 가졌다. 개인 피정 장소로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인 이곳의 아름답고 조용한 분위기에 감탄한 베로모렐 신부는 피정을 하시는 주교님을 위해 1915년 정자를 지어 드렸다. 이 정자를 드망즈 주교는 망금정이라 이름 붙였다. 금강을 바라보며 세분 성직자의 아름다운 영혼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장소이다.
▒ 목숨 버려야 목숨 건지는 (나바위에서) <김영수> ▒
흰 구름들 자우룩 내리는
결 고운 바위산 나바위에는
바위 속에서도 나무들 무성합니다
망금정(望錦亭)에서 바라보는 금강과 황산벌엔
영원한 청년의 숨결 가득하고
나는 그리움으로 밀려오는
거룩한 상처의 향내 맡습니다
목숨 버려야 목숨 건지는 노래
하늘과 땅 맞닿는 여기 언덕에서
나는 바람 한 점에도 손 가벼워지기를
햇살 한 올에도 어깨 따뜻해지기를
촛불 속에서 눈을 감습니다
내가 살아서 죽고
또한 죽어서 살아날 때
나는 비로서 작은 미소 하나로 남아
숨은 나뭇잎 하나 깨우는 것입니까
이윽고 흰 구름들이
설렘의 숲으로 하늘 가득 우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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