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을 보겠습니다.
1 주인이 되신 여러분, 정당하고 공정하게 종들을 대우하십시오. 여러분도 하늘에 주인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4장 1절은 3장의 끝 절이 되었어야 하는데 잘못 나누어진 것입니다. 성경 전체의 장을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나눈 분은 13세기의 신학자이자 켄터베리 대주교였던 스테판 랑튼 경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장을 나눌 때, 한 장의 끝에 두었어야 할 문장을 다음 장의 첫 절에 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결론적인 문장이 주는 명쾌함을 새로이 시작하는 글의 앞에 두고 싶어 하는, 두괄식 문장을 추구하는 스타일의 학자였거나, 하나로 길게 연결되었던 글을 인위적으로 나누는데 대한 부담감 때문에 끝맺음에 해당하는 문장을 오히려 다음 장의 첫 부분에 넣어 장과 장이 단절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느낌을 갖게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이유건 저런 이유건, 13세기라는 시대가 오늘날처럼 성서비평학이 광범위하게 발달한 시대가 아니었고, 본문에 대한 분석이나 주관적 해석이 용납되지 않아 그 시대적인 한계를 극복하기는 어려웠기에, 800년 전의 사람으로서는 대단한 석학이었겠으나 어쩔 수 없이 이런 아쉬운 결과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7~8절을 보겠습니다.
7 나의 모든 사정은 두기고가 여러분에게 알릴 것입니다. 그는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함께 종이 된 사람입니다.
8 내가 그를 여러분에게 보내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의 사정을 알고 마음에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들고 골로새 교인들에게 갈 사람이 두기고랍니다. 그런데 이 두기고라는 사람은 에베소 교회에도 바울의 편지를 전달할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21~22절을 보겠습니다.
21 사랑하는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내가 지내는 형편과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그 밖의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알릴 것입니다.
22 우리의 사정을 알리고, 또 여러분의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고, 나는 그를 여러분에게 보냅니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유사성을 나타내는 부분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빌레몬서에 등장하는 오네시모라는 형제를 같이 보낸다는 내용이 담겨있는데, 바울이 보낸 서신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써놓은 글 같습니다. 이어서 여러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함께 문안을 한다며 서명을 하는데, 실제로 사도 바울과 함께 지냈던 사람들의 이름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추신이 붙어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이 편지를 읽은 다음에는 라오디게아 교회에서도 읽을 수 있게 하고,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오는 편지도 골로새 교인들이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내용과, 아킵보라는 사람에게 주님 안에서 받은 직분을 유의하여 완수하도록 일러달라고 부탁하는 내용, 그리고 사도 바울이 친필로 서명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18절을 보겠습니다.
18 나 바울이 친필로 문안합니다. 내가 갇혀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바울이 친필로 문안한답니다. 그러니까 이 문안인사만 바울이 친필로 했다는 뜻입니다. 감옥에 수감되어 있기에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없었고 누군가 대필했다는 것인데, 이것 또한 이 편지가 바울의 진서라고 주장하기 위해서 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