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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도서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l 이영훈 교수의 환상의 나라 1
조던 추천 3 조회 1,812 18.11.23 11:42 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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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11.23 11:52

    첫댓글 소장님의 책 "한국의 1000원짜리 땅 부자들" 책을 읽고 있습니다. 많은 도움을 롤모델인 소장님께 받고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 18.11.24 07:49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한글은 인도의 드라비다 문자에서도 차용했지요...실제로 제가 90년대에 인도의 한지방을 가보고 벽에 한글 비슷한 글자가 적혀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랬습니다. 그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어서 상세한 정보를 알수가 없었는데...이후 알아보니...맞더군요...드라비다 문자형태 차용...물론 뭔가를 만들때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기는 어렵겠지만...그냥 참고로...또한 한글은 의미단위의 분절음이 거의 없는 소리글자라...문장 이해도에 문제를 내포한 불완전한 글자이죠...그래서 일부 한자병기 문제로 의견이 분분한게 바로 이런 이유인데....이런거 이야기 하면 국뽕들에게 온라인에서 몰매예상...ㅎㅎ

  • 18.11.23 18:32

    한자도 고립/표의문자라 역시 문제가 많지만...한글 또한 표음문자라 불완전한건 사실이죠...그래서 일본문자 표기가 히라가나와 카타카나(외래어 표기) 및 한자차용(음독/훈독따로) 등등 복잡하게 저리 되버린것 같네요...특히 언어 공부할때 이런 부분들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한건 사실이죠...좀 다른 이야기지만...인도영화(Life of pie)에서 보면...엄마,아빠가 우리말과 발음이 똑같습니다. 완전 깜놀...<라이프 오브 파이>는 참 잘만든 인도영화죠...언제 봐도 잼있네요...<슬럼독 밀리어네어>도 잼있구여...추천드림.

  • 18.11.23 18:38

    @캡틴큐 신분제를 완전 정착, 공고히 함으로써 노비지옥을 만든건 세종때 완성되었다고 보는게 거의 맞겠지요. 조선사회의 지배층들이 원한건 안정된 지배구조였죠...변하지 않는 세상...기득권의 천만년 유지 등...결국 나중에 조선이 멸망할수 밖에 없었던 주요원인이죠...고인물은 썩게 마련이니...

  • 18.11.23 18:21

    다른거는 생각의 차이니 그렇고
    본문에 세종의 아버지는 세조가 아닌 태종이구요
    양반과 노비가 얘를 낳으면 무조건 노비가 아니라 노비여자가 얘를 낳으면 노비고 양반 여자가 얘를 낳으면 양반이었네요!
    그리고 한글은 양반중 여자들과 평민들을 위해 만든 글이었구요!
    그래서 양반인 최만리라는 유교 성리학자가 창제에 대해 대단히 비판했고 양반들은 한글을 언문이라해서 낮게 봤죠!
    또한 사대라는 자체가 꼭 나쁘게만 볼게 아닙니다!
    사대는 큰 나라를 섬기는게 아닌 큰 사상을 섬기고 작은 나라로써 통치 명분을 가지기 위해 스스로 사대를 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조공 또한 스스로 조공을 바침으로써 더 많은 하사품을 받기도 했죠!

  • 18.11.23 18:25

    역사는 보는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국수주의는 아니나 모든 임금이 다 장점만 가질 수 있는것은 아니구요! 그런의미에서 세종은 성군이전에 우리 역사에 의미있는 일들을 많이 한 업적이 우선 평가되고 있는 왕이라 생각됩니다! 세계적으로 한글의 우수성은 익히 알려졌구요!

  • 작성자 18.11.23 19:00

    @마왕 세조는 태종으로 고쳤습니다.

    양인+노비=노비
    양반+노비=노비라고 썼습니다.

    노비+양반여자 = 양반? 이게 맞나요?

    틀린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최만리 얘기가 나옵니다.
    최만리로 인해 세종이 진취적인 임금으로 되는데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이정명의 '뿌리 깊은 나무'라는 소설이지요.
    세종실록에 나온 내용 중 최만리가 반대하여 최만리를 하루 가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을 소설로 쓴 것이죠.

    그러나 정다함의 '中國과 國之語音의 사이'라는 논문이 있습니다.
    정다함이 평가할 때 최만리는 한자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대주의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나옵니다.
    그러나 세종은 그정도가 아니라 더 사대에 충실하기 위해

  • 작성자 18.11.23 19:04

    @마왕 표음문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왕조실록에서 조선이 명에 보낸 문서에서 명을 능멸하는 표현이 있어서 명 태조가 조선을 사신을 감금하고 문서를 쓴 사람을 잡아 보내라고 한 사건이 있었죠.
    그래서 세종은 이러한 것이 바로 한자의 음을 제대로 훈독하지 못한 잘못이 크다 하여 세종은 한자의 음을 훈독할 보조문자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즉 15세기 국제질서에서 조선이 더 소중화로서 명에 더 사대를 하기 위해 중화의 기준으로 교정할 필요가 있어서 표음문자인 한글을 만든다는 내용을 말합니다.

  • 작성자 18.11.23 19:08

    @마왕 즉 더 사대하기 위해서는 한자만으로는 부족하고 우리가 쓰는 말을 표현한 한글로서 더 중화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역사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아니라 팩트가 무엇인가? 에 대해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린 백성은 사대부를 얘기한 것이며 " 정광 교수의 '한글의 발명' 에서 나온 내용을 국어하계에서는 반박하는 논문조차 발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명성황후 즉 민자영이 뮤지컬까지 만들어지면서 국모로 대접 받았지만 사실 세금을 걷어 일만이천봉에 제사를 드리면서 조선을 멸망시킨 병X같은 인물로 격하 되었죠.

  • 작성자 18.11.23 19:12

    @마왕 조선도 지금 제대로 된 역사의 시각에서는 선비의 나라가 아닌 착취의 나라로 격하되고 있고 세종도 성군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역사적 재평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글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글자인 것은 맞지만 그것의 원천이 위구르, 파스파, 투르크 문자를 베낀 표음문자입니다.

    마치 스티브잡스의 스마트폰을 아주 잘 베낀 삼성의 갤럭시 처럼 말이죠.

    역사적 사실은 역사적 사료로서 검증되어야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지금의 중국처럼 독재정권을 연장시키려고 민족주의를 불어 넣는 과정에서 과장된 역사입니다.
    이러한 역사는 앞으로 교정되어져 갈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역사적 사료 즉 팩트로서 말이죠.

  • 작성자 18.11.23 19:27

    @마왕 그리고 세종이 백성이 일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은 논리로서도 말이 안 됩니다.
    세종은 사대를 완성한 왕이라는 것이 역사적인 진실입니다.
    상복을 입고 3년 상을 치르는 것뿐 아니라 고려때까지 하던 하늘의 제사를 스스로 지내지 않는 점 등 명나라 사대를 완성한 왕이라는 사실은 차고도 넘치는 증거가 있어서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말이 안 되는 것이 이렇게 명나라의 사대를 완성한 왕이 도대체 왜 명나라의 한자와 반대가 되는 한글을 만들었느냐? 에 대한 논리적인 뒷받침이 안 되는 것이죠.
    그렇게 명나라에 사대를 하려면 최만리처럼 한자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것이 세종의 논리와 맞습니다.

  • 작성자 18.11.24 10:38

    @마왕 그러기에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논리가 세종이 말하는 백성은 일반 백성이 아니며 노비는 더더욱 아니며 노비제를 그것도 양천제를 완성한 왕이기 때문에 그래서 세종이 얘기한 어린 백성은 사대부가 맞다고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종은 사대부를 위해 한글을 만들어 명나라애 더 사대를 한 왕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래서 세종은 성군은 고사하고 역사의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왕이죠.

  • 18.11.23 20:29

    지금의 시각으로 세종을 재단한 의견같네요. 우리가 지그 친미하듯이 친명한 것이고 3년상도 명의 의혹을 지우려는 시도일수있죠..결국 영토확장을 했으니까요..측우기나 신기전 개발등에서 보이듯이 세종은 임금 노릇하려고 했구요..당시 노비는 여진에서 귀화한 인구증가에 기인한것이 크다는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 18.11.23 20:50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고 성리학에 기반한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슬람원리주의자 애들 이해가 안 되지만 그곳에 살고 태어났으면 그런 세계관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겠죠. 때문에 당시의 시대의 관점에서 봐야지 구지 지금의 시각으로 재단하는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지 의문도 듭니다. 장점이 하나이고 단점이 열이라도 그 장점 하나늘 부풀려 현재에 유용하게 사용할 궁리는 해야 하는데... 역사적 사실은 늘 새로이 쓰여지고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세종 팔아서 현재 우리에게 좋은 역할하게 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작성자 18.11.23 21:12

    지금의 시각으로 그때를 재단하는 것은 저도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중국이라는 큰 나라에 옆에 붙어서 살아남으려면 사대를 했어야 한다는 말도 맞습니다.

    다만 조선의 사대가 유래없는 사대라는 것이죠.

    명나라가 망했는데도 불구하고 명나라의 초대황제 제사를 일제시대때까지 지낸다거나 왕의 책봉을 명나라에서 받는 것은 베트남도 안 했던 일인데 조선은 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조선은 명나라를 쳐들어 가지 않겠다고 정규군을 편성도 하지 않았습니다.
    왕실을 지키는 궁궐 수비대만 있었죠.
    명나라가 있는데 정규군이 무슨 소용이냐?

  • 18.11.23 21:13

    @조던 유래없는 사대는 성리학이 거의 종교수준으로 의식속에 녹아들어서 그런거 같습니다. 뒷부분 조던님의 의견에는 동감합니다

  • 작성자 18.11.23 21:18

    @조던
    그러나 그것 때문에 임진왜란, 많은 백성이 도륙 당했으며 병자호란으로 백성이 청나라로 끌려 간 것이 인조 때였죠.

    그것이 다 사대를 해도 너무 한 조선의 실패라는 것이죠.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18.11.23 21:15


    노비는 여진족에서 왔건 안 왔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고려때 노비가 4%에서 조선의 노비가 40%로 급격히 늘어난 것은 세종의 공이 크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상 유래없는 노예제 국가로 조선이 들어간 것에 대한 과는 분명히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 18.11.25 08:48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나중에 명을 멸망시킨...후금을 건국한 지배자 누르하치는 황실의 성을 한자어로 <애신각라>로 하였고 이말은 해석이 분분한데..신라를 사랑하고 생각한다라는 뜻입니다. 애초에 신라멸망후 고려건국 초기에 만주로 넘어간 일부 신라왕족이 당시 부족국가 형태로 흩어져 있던 여진족들을 통합하여 만든 금나라의 시조가 김함보 즉, 신라사람이었죠..그래서, 누르하치는 조선에 대해 처음에는..부모의 나라로 대접하여 절대로 침략을 하지 않을테니..자기들과 합쳐서 명을 정벌하자고 했는데..이미 성리학에 물들어 있던..조선에서는 세상 돌아가는 정세를 전혀 모르고, 수차례 거절끝에...결국, 후금(청)의 침입으로

  • 18.11.25 08:48

    나중에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두손들고 나와 머리를 9번 땅에 쳐박는...저사단이 나게 된거지요...비굴한 역사죠...고로, 조선이 명에 사대를 한것도 외부적 힘의 강자에게 잘붙어서 국가안위를 유지하기 위한것이라기 보단...이미 지배계급 세력들에게 성리학이 뼛속까지 물들어...어떻게 보면 거의 맹목적이라고 할수 있을정도로...세상 돌아가는 것도 전혀 모르고...인과 예, 형식과 의리만 강조하던 먹물들 땜에 그당시 나라가 절단나게 된것이라고 봅니다. 또, 내부적 당파싸움에서 잘못된 판단을 한 일당들이 주요 세력을 형성한 원인도 있겠지요...후에 청(후금)의 만주족들은 황실의 성씨를 김씨로 바꾸었다고 하네요...헐~

  • 18.11.24 21:32

    @캡틴큐 결론: 조선이 망한 원인은 먹물양반들과 성리학 때문인것 같습니다. 중국 한족들에게 빌붙어서 나라가 잘된 적은 한번도 없죠..무예를 천시하고 과학기술을 홀대하였으며, 글잘읽고 시짓는 글재주로만 인재를 뽑고, 나라를 운영하였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봅니다. 심지어는 위대한 발명가 장영실도 나중에 결국 쫒겨났죠..임진왜란도 마찬가지 사례라고 봅니다.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던 율곡선생과 전쟁의 신으로 추앙받는 이순신이 그토록 모함을 당하였으니..어찌보면 지금 이수준까지 이나라가 온것이 가상하다 할정도입니다만..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두번다시 비극을 되풀이 하지 말아야겠습니다..그럴려면 외교를 잘해야 겠습니다.

  • 18.11.24 09:59

    @캡틴큐 표면적으로 선한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건 아니죠...조선초기 주인에 의해 맞아죽는 노비도 많이 생겨나고, 사회적 문제가 되니...세종이 나름 선한의도(?)로 노비를 보호하고자 법령을 만든것이 결과적으로 노비숫자만 대량양산 하게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하는 분석이 있더군요...결국 아무리 선한의도나 정의감으로 법을 만들어내도 책상머리에서 제대로 된 현실을 읽지 못하면, 악용되거나 현실에 맞지않는 부작용만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한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것 같네요...결론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간에..상관없이..추후 결과가 안좋으면 꽝~..실패라고 봅니다. 그래서 조선은 견고한 노예제 국가가 되고만거죠..

  •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책이네요 감사합니다

  • 18.12.02 12:18

    건설적이고 훌륭한 의견교환까지 아름답고 새로운 사실들도 알게되어 좋았습니다
    후금의 건국이 신라에서 이주해간 세력이라니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 18.12.02 12:40

    질문입니다
    내용중에 중국 주변국가에 대한 말씀이 있는데 베트남이나 조선, 후금그리고 일본등 이들 나라들도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을수 없는 지정학적위치에 놓여있어 많은 교역과 문화교류가 있었을 것인데
    어떤나라(조선)는 목숨을 걸고 사대를 하면서 군대도 양성하지 않는데 후금이나 일본은 사대는 거녕 강력한 군대를 양성하여 중국을 직접공격하여 정복하고 오랫동안 지배하는 차이는 어디에 원인이 있을까요?
    조선이 중국을 대하는 태도는 다른 주변국가들과 달라도 너무 다름니다
    이해가 되지않는군요 설명부탁드려도 될련지..

    감사합니다!

  • 작성자 18.12.02 13:04

    정도전이 성리학을 들여오고 세종이 사대를 완성하면서 완전한 속국으로 들어간 것이죠.
    조선 내내 사대를 하면서 현재의 김정은 체제처럼 사교화 됩니다.
    중화사상으로요.
    그것이 명나라가 멸망하면서 더 커지게 됩니다.

    계승범 교수의 정지된 시간이라는 책을 보시면 훨씬 이해가 잘 가실 것입니다.

  • 18.12.02 13:17

    @조던 감사합니다! 책까지 소개해주시고..

    집단화된 사상이 종교보다 더욱 무서울수가 있군요
    세뇌까지 되어있으니..
    맹목적이고 지속적인 학습으로 다른 생각은 할수도 없고..

    국가와 민족은 어떤사상, 어떤제도를 갖추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는군요

    개인도 마찮가지라고 봐지는군요

  • 18.12.02 13:04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민족의 단점이 이념이나 사상에 너무 쉽게 빠져들고 심취하는 경향들이 있는것 같습니다

    자각된, 깨어난 개인이 되지 못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주변국(일본이나 중국등 )에 비해 남한은 모든나라의 종교가 다들어와서 종교의 천국이 되어있고 북한은 유일사상,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매몰되어 있으니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한민족의 한단면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서 사기꾼이 많은나라, 사기를 친놈보다 사기를 당하는 사람을 되례 욕하는 민족!
    각성된 개인으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유행처럼 번지는 또다른 사상에 경도되지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 18.12.17 12:30

    어제 뒷풀이때 말씀하셨던 세종에 관한 글이군요~ 조던님 글 정주행해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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