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시국들어 가는 문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그 안에서는 설명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미리 그림을 보고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듣고 입장하라고 위에 그림들이 광장에 많이 비치되어 있고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설명을 듣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피에타
판테온 원형 천정
바티칸 시국 대전차 경기장 진실의 입 포로 로마노 스페인광장
판테온 콜로세움
기념문
어쩌면 이번 여행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이태리 로마로 향하는 길은 부푼 가슴으로 더 한층 설레기만 한데... ROMA를 거꾸로 하면 AMOR!! 사랑의 도시 '로마'는 한마디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매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도시 전체가 커다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옛 유적을 그대로 보존한 채 현대문명과 멋진 조화를 이루며 관광객들에게 소매치기와 좀도둑 천국이라는 악명이 높지만 연간 천 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지만 육지 수상교통의 중심지라고 한다.
이태리는 인구는 약 5800만 명 정도이고 우리나라의 1.4배의 면적을 가지고 있는 르네상스의 화려한 꽃을 피운 나라이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겪으며 승전국과 패전국의 위치에 서기도 했지만 자동차산업과 패션 산업, 관광 등으로 부유한 북부이태리와 지중해를 중심으로 농업과 어업이 주를 이루는 가난한 남부 이태리가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호텔을 출발하여 먼저 바티칸 시국으로 향했다. 우리가 일찍 갔는 것 같은데 벌서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여름에는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로마 안에 바티칸 시국은 면적은 0.44제곱키로 미터이며 인구는 약 1000명이라고 한다. 먼저 성 베드로 성당으로 갔는데 서기 32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서 베드로 무덤에 세워진 바실리카식 성당으로 1506년 교황 바실루스 2세에 의해 개축이 시작되어 마침내 1626년 교황 우르반 8세 때 성 베드로성당으로 완공 되었다고 한다.
성 베드로 성당의 돔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크며 성당 내부에는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 있는데 사람들이 운집하여 도저히 부근에 접근하기조차 힘이 들어서 멀리서 카메라를 잡았더니 후레쉬도 터뜨리면 안 되고 엉망으로 사진이 나온 것 같다 . 세계에서 제일 큰 성당이란 말처럼 그 내부는 정말 웅장하고 여러 교황과 성인들의 조각상과 종교화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성 베드로 광장은 좌우 폭이 240M로 30만 명의 군중을 수용할 수 있는데 정면으로 성 베드로 성당의 입구가 있고 그 좌우로 반원형의 회랑에 그리스 식 건축 원주 284개가 서 있다. 그리고 광장 중앙에는 서기40년 칼리굴라 황제가 이집트에서 운반한 높이 25.5M 무게 320톤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매주 일요일이면 교황의 집무실 창문이 열리면서 광장에 모인 군중들에게 강복을 내린다고 한다.
바티칸 박물관은 14세기 아비뇽 유폐를 마치고 교황이 바티칸으로 되돌아 온 이래 교황의 거주지가 되었다. 이 궁전은 20개에 달하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곳의 소장품은 역대 교황들이 모은 것을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 미술과 미술사적으로 진기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새 교황을 선출할 때 추기경들이 모여 선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화가 미켈란젤로가 그린 벽화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가 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최후의 심판' 그림 앞에는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 정말 대단한 그림이다.
먼저 들어오기 전에 가이드한테 설명을 듣고 들어오긴 했지만, 입이 다물어 지지 않을 정도의 대작 앞에서 과연 미켈란젤로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탄과 벅찬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천정을 보니 ' 천지창조'가 찬란하게 그려져있다. 그 곳에 들어간 사람들은 모두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목이 아프도록 천정화를 본다고 거의 바닥에 앉거나 옆 긴 의자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는 비킬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겨우 한자리 차지하여 목이 휘도록 탄성과 경이로움으로 위대한 작품에 흠뻑 취하고 싶었지만 정해진 시간 때문에....
최후의 심판에서 잠시 눈 돌려 천정에 그려진 천지창조, 구약과 신약을 그린 그림 역시 경탄치 않을 수 없다. 그냥 쳐다보기만 해도 목이 아픈데 어이 혼자서 저 대작을 다 그릴 수 있었을까? 불가사의한 일 같이만 생각된다. 미켈란젤로란 천재화가와 조각가의 대단한 열정 앞에서 그 천재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불같이 샘솟는다. 과연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
그래서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쳐 보니 1475.3.6.--1564.2.18. 을 살다간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대표적 조각가이며 화가이며 건축가이며 시인이라고 한다.
카노사 출신의 귀족 로도비코 디 리오나르도 시모니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인 사이에 태어났으며 유년시절을 피렌체에서 보내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4세 때 당시 유명한 화가 도메니코 밑에서 그림공부를 했는데 그 당시는 우리나라처럼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을 때였다고 한다. 그러다 선생님의 추천으로 피렌체 실력자이자 예술가들을 후원하던 메디치 가문이 거느리는 화가 집단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대 로렌초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시스티나 성당 천정 벽화는 1508년 교황 율리오 2세가 미켈란젤로에게 그림을 장식할 것을 명하여 4년 동안 발판위에 누워서 작업을 하였고 이로 인해 관절염과 근육 경련을 일으켰으며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감안료로 눈병도 생겼으나 1512년 마침내 작품을 완성하였으며 천정벽화에는 복음서에 언급한 천지창조와 구약성서의 4가지 사건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의 감동을 안고 점심 식사 후 에는 벤츠투어를 하였다. 돈은 좀 들지만 하나라도 더 보고 싶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그곳에서 40년 동안 가이드를 하면서 이태리관광 가이드 자격증까지 취득한 노련한 분까지 합세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먼저 진실의 입에 가서 모두 손을 집어넣으면서 사진을 찍는다고 관광객들이 모두 익살스런 표정으로 그레고리 팩을 흉내 내고 있다. 그 진실의 입 석판이 강의 신 '플라비오'의 얼굴을 조각한 것이라 하며 확실한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중세 때 로마시대 하수구 뚜껑이였다는 추측이...
다음으로 대전차 경기장에 갔다. 장방형의 길쭉한 경기장은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지어 졌으며 영화 벤허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1인승 이륜 전차 경기가 벌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무너진 흔적만 남아 있는데 그 크기가 너비 664m 곱하기 124m에 이른다고 한다. 이 건물은 로마에서 제일 오래된 건축물 중에 하나로 과거에는 2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경기장이었다고 한다. 로마의 역사와 견줄 수 있으며 중간 중간 계속 증축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그곳에서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고...
다음에 포로 로마노란 곳에 갔다. '포로'라는 뜻이 공공 광장이라는 의미로 '포럼'이라는 말의 어원이 여기에서 생겼다고 한다. 이곳은 상업 ,정치, 종교 등 시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관들이 밀집해 있던 지역으로 로마 중심지로서 로마제국의 발전과 번영 그리고 쇠퇴와 멸망이라는 로마 2500년 역사의 무대가 되었고, 중심이 되는 곳을 제외한 많은 건물들이 283년에 대화재로 소실 되엇다고 한다.
스페인 광장은 17세기 스페인 영사관이 있던 곳으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팩'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로 한국에 널리 알려져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 광장은 137개의 스페인계단과 트리니티 디몬트 교회 (삼위일체교회)의 종탑 및 오벨리스크가 이채롭다. 광장에는 보트 모양의 대리석 분수가 있는데 베르디의 아버지 페에트로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바르카시아(조각배분수)라고 불리우며 여행자들에게 쉴 자리를 제공하는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판테온의 pan은 '전부' theon은 '신' 이란 뜻으로 로마의 모든 신에게 봉헌하기 위하여 BC25~~17년에 건립한 신전이다. 잦은 외침과 오랜 풍상 속에서도 청동 문과 둥근 천장은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고대 로마 유적 중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 건축물로16개의 웅장한 정면 기둥은 코린트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고 원형 천장은 격자무늬 장식이 5열로 천정을 덮고 있으며 그 중심은 지름 9M의 둥근 원이 뻥 뚫려 있어 하늘이 그대로 보인다. 가이드 말로 비가 그곳에 내리지 않는다, 내린다, 하는데 빗물이 차서 밑에 하수구가 있으며, 6월 20일 낯 12시에 햇빛이 기둥을 비친다고 한다. 일종의 해시계 같은...
다음에 그 유명한 트레비 분수에 갔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교황 클레멘스 13세에 의해 분수 설계 공모전이 이루어졌는데, 이때 당선된 니콜라 살비의 작품이며 이 분수 물은 ' 처녀의 샘' 이라고 불리며, 이는 전쟁에서 돌아온 목마른 병사에게 한 처녀가 샘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에서 분수가 설계되었기 때문이라고...
또한 이 분수에서 등 뒤로 동전을 한 번 던지면 로마를 다시 찾을 수 있고, 두 번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번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다는 전설이 있다. 나는 기어이 딸에게 동전 두개를 던지라고 ㅎㅎㅎ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동전을 던지는데 동전들은 로마 시에서 정기적으로 수거하여 자선사업에 사용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 유명한 콜로세움에 갔다. 로마의 상징이기도 한 거대한 원형 경기장으로 당시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물이며 AD72년에 네로 궁전의 뜰에 있었던 인공연못에 건설을 시작하여 80년에 완성된 대형 원형투기장 겸 극장인데 생사를 겨루는 검투사와 짐승의 격투가 있는 날이면 80개 정도가 되는 출구에 5만5000명이 넘는 관객이 입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대 로마 유적지 중 가장 큰 규모로 최대지름 188m, 들레 527m, 높이 57m의 4층으로 된 타원형 건물이라고 한다. 안에는 들어 가 볼 수 없었고 제일 마지막에 크게 보이는 얼굴이 원형 경기장을 만든 사람의 얼굴이라고 하며 보이는 건물에 전체적으로 구멍이 숭숭 흉하게 뚫어져 있는데, 그곳에서 나온 철이 700톤이나 된다고 하는데 천사성의 대포알이 되었다고 한다. 그 옆에 있는 기념문은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위해서 로마 시민과 원로원이 만들어 주었는데 315년 그 시대에는 예술가들이 귀해서 다른 곳에서 조각을 뜯어다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 저기 구경하기 바빠서 저녁은 시간에 쫓기어 김밥 도시락을 받고 로마 파우치오 공항을 출발하여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다. 다음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 독일 하이델베르크와 괴테 하우스 등을 보고 한국으로 올 예정이다
늘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보내면서...
나날이 고운 날 보내시고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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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그리운 별밭 원문보기 글쓴이: 정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