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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에 사업가 찰스 노먼 페이가 '시카고 관현악단' 이라는 명칭으로 창단했고, 동시에 초대 음악 감독으로
시어도어 토머스를 초빙해 그 해 10월 16일에 첫 공연을 개최했다. 토머스는 악단의 합주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악단의 전용 공연장을 새로 짓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토머스는 1905년 폐렴으로 타계했고,
후임으로는 1899년부터 토머스 밑에서 부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던 독일 출신의 프레데릭 스톡이 임명되었다.
토머스 타계 직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악단 명칭이 '시어도어 토머스 관현악단' 으로 바뀌었고, 1913년에
현재의 것으로 다시 변경되었다. 스톡은 1942년 사망할 때까지 무려 38년 가까이 음악 감독직을 역임했고,
이 기간 동안 레코드 취입과 세계 유명 연주가들과의 협연 무대, 동시대 유명 작곡가들의 신작 공연 등의 기회가
자주 마련되어 악단의 유명세를 높이는데 이바지했다. 스톡 사후 벨기에 출신의 데지레 드포가 제3대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는데, 평판은 전임자들보다 별로 좋지 않아 5년 도 재임하는데 그쳤다. 드포의 후임이었던 아르투르
로진스키도 단원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아 겨우 한 시즌 머무른 것이 고작이었다. 로진스키 퇴임 후 악단 운영진은
차기 상임지휘자로 독일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초빙하려고 물밑 작업에 들어갔다. 푸르트벵글러는 미국인들의
음악적 수준을 매우 낮게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거부 의사를 밝혔다. 당시 음악계도 시카고 심포니가
한번 찔러보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 보았지만, 의외로 시카고 측의 의중은 진심이었다. 시카고 심포니는
푸르트벵글러에게 베를린 필의 네 배에 달하는 파격적인 연봉을 제안했고, 그럼에도 일년에 시카고에 불과 몇 주만
체류하면 된다는 객원지휘자 수준의 의무만을 요구했다. 거의 간판만 걸어 놓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의 제안이라
푸르트벵글러도 이에 마음을 돌려 계약 성사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미국의 많은 음악인들이
대대적인 반대 운동을 벌였다. 표면적으로는 반나치의 명분을 걸었지만, 실제로는 푸르트벵글러의 미국 진출에
대한 밥그릇 지키기 싸움의 성격이 컸다. 소요가 확산되자, 푸르트벵글러와 시카고 심포니 측 모두 계약 의사를
철회하여 결국 무산되었다.
결국 1950년 체코 출신의 유망전도한 젊은 지휘자 라파엘 쿠벨릭이 상임지휘자에 취임했다. 쿠벨릭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일 고전파, 낭만파 등 주류 레퍼토리에 정통했을 뿐만아니라 체코 음악을 연주 곡목에 적극
추가시키고 창단 최초로 고음질 테이프 녹음을 취입하는 등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문제는 무려 푸르트벵글러가
거론되던 자리에 그가 앉았다는 점이다. 푸르트벵글러 영입 실패로 실망한 시카고 평론가들은 30대 중반에 불과한
애송이 쿠벨릭이 영입되자 그에게 과할 정도로 비판적인 평론을 가했다. 또 쿠벨릭 본인의 다소 깐깐하고 비타협적인 성격 때문에 오케스트라와 다소 마찰을 빚기도 했다. 쿠벨릭이 당대 거장 지휘자들에 비해 크게 깐깐한 성격이라
보긴 어렵지만, 당시에는 30대 중반의 새파란 신예 지휘자였을 뿐이었다. 결국 시카고 심포니와 쿠벨릭과의
파트너쉽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쿠벨릭의 후임으로는 헝가리 출신의 프리츠 라이너가 취임했다. 라이너는 소위
독재자형 지휘자의 전형으로 꼽히는 인물으로 엄격하기로 소문난 지휘자였다. 라이너의 엄격한 조련을 거치면서
시카고 심포니는 미국에서 메이저급 오케스트라로 명성을 확실히 하게 되었다. 라이너와 시카고 심포니는 RCA에서
많은 양의 음반녹음을 취입했다. RCA는 1954년 상업용 레코드사로는 처음으로 스테레오를 본격적으로 도입하였는데, 이는 타 음반사에 비해 몇 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라이너는 취임 직후부터 몇년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스테레오로 음반을 녹음하는 혜택을 누렸다. 스테레오 음질로 녹음된 라이너와 시카코 심포니의 음반들은 당시
음악애호가들과 오디오 매니아들에게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악단 명성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했다. 8년간 독재
집권하면서 시카고 심포니의 명성을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놓은 라이너는 건강이 크게 악화되어 1962년에 사임했다. 이후 죽기 직전까지 '음악 고문' 이라는 직책으로 가끔 악단을 이끌었다.
라이너 사후에는 프랑스 출신의 장 마르티농이 임명되어 1968년까지 재직했다. 그 자신도 작곡가이기도 했던
마르티농은 청중들이 원하는 독일 레퍼토리보다는 상대적으로 듣보 레퍼토리나 실험적인 현대 음악을 자주 올렸고
그나마 알려진 곡들도 본인의 고향인 프랑스 음악이 많았기 때문에 보수적인 관객들이 외면했고 평단의 반응도 냉정
했다. 애초에 마르티농은 시카고 심포니 이사진이 우선적으로 고려했던 지휘자가 아니었지만, 다른 유력한 후보들이
모두 거절하는 바람에 시카고 심포니의 포디움에 오르게 되었다. 마르티농 시절 악단 인기가 떨어지자 위기 의식을
느낀 이사진은 마르티농 임기 후 거장급 지휘자를 영입하기 위해 물밑작업을 시작했고 결국 라이너 임기말부터
구애해왔던 솔티와 계약을 맺는데 성공했다. 솔티는 런던 코벤트가든 등의 스케줄이 꽉 차 있었기 때문에 당장
스케줄을 내줄 수 없어 어윈 호프먼이 한 시즌 동안 음악 고문 대리라는 임시직으로 공백기를 메웠다.
1969년 게오르그 솔티가 제8대 음악감독에 취임했다. 이미 1962년 프리츠 라이너가 퇴진할 무렵 시카고 심포니
경영진은 라이너의 후임으로 솔티에게 접촉한 적이 있었지만, 솔티가 런던의 코벤트가든 오페라의 업무가 과중해서
거절한 바 있었다. 결국 마르티농의 후임으로 시카고 심포니로 왔지만 여전히 코벤트가든과의 계약 중에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임기 초기에는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를 수석객원지휘자로 영입해서 지휘자로서의 임무를 분담했다. 솔티 재임기에 악단 창단 이래 첫 유럽 순회 공연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전속사 데카에 음반을 취입했다. 이 가운데
명반들도 여럿 탄생하였다. 솔티는 시카고 심포니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악단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는데, 자신과
반대 성향의 지휘자인 줄리니를 설득 끝에 수석객원지휘자로 영입했고, 줄리니 이후에도 자신과 성향이 대조적인
아바도를 그 자리에 영입했다. 또 솔티는 전임 지휘자들이 별로 다루지 않았던 오페라에도 손을 대 녹음과 콘서트
형식 상연을 시도하기도 했다. 솔티는 날카로운 외모와 강렬한 지휘 스타일과 달리 실제로는 포용력 있는 아버지
리더쉽의 지휘자였는데, 시카고 심포니 외에도 격연 다녔던 다른 미국 오케스트라들에서 단원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은 지휘자였다고 한다. 솔티는 자신이 너무 오래 머무르는 것이 악단의 발전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1991년
스스로 사임했다. 이미 몇년전부터 사임을 계획했었기 때문에 솔티와 악단 경영진은 후임 지휘자 선임을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고, 솔티가 높이 평가해 적극 추천했던 다니엘 바렌보임이 후임 상임지휘자로 발탁되었다. 악단과의
관계는 좋은 편이라, 퇴임 후에도 여러 차례 객원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솔티 역시 상임지휘자에서 물러난
후에도 시카고 심포니는 자신에게 자식과도 같은 악단이라면서 깊은 애정을 표시했다.
솔티의 후임으로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부임해 2006년까지 재임했다.
바렌보임도 악단과의 궁합이 좋은 편이었고 여러 청중들에게도 호응을 받기는 했다. 솔티 재임시절 시카고 심포니는
기량은 훌륭하지만 단조롭고 기계적인 연주를 한다는 평을 많이 받았는데, 바렌보임이 재임하면서 악단의 사운드가
다소 유해지고 유려함이 더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바렌보임은 음악 감독으로서 악단 발전 기금 등을 모으러 다니는
행정 업무가 너무 과중하다고 종종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푸르트벵글러를 숭배했던 바렌보임은 가장 미국적인
소리를 지닌 시카고 심포니보다 베를린 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의 공연과 음반작업을 더 즐기는 듯 보이기도 했다.
바렌보임이 유럽 활동에 주력하기 위해 사임한 뒤, 악단 측에서는 새로운 음악감독을 찾기 전까지 네덜란드 출신의
베르나르트 하이팅크를 수석지휘자로 영입했다. 하이팅크는 시카고의 과중하기로 유명한 행정 업무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음악감독이 아닌 수석지휘자에 머물었다. 동시에 1995년부터 수석 객원 지휘자로 자주 초빙되었던
프랑스의 저명한 현대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피에르 불레즈에게도 계관 지휘자라는 명예 호칭을 수여했다.
2008년 5월에 악단 측은 제10대 음악감독으로 이탈리아 출신의 리카르도 무티를 영입한다고 발표했고, 무티는
2010/11년 시즌부터 5년 계약으로 직책에 취임했다.
미국 중부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악단으로 상당한 존재감을 갖고 있는데, 미국 전체적으로도 기량에서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탑을 가르고 있다. 특히 금관악기 파트의 출중함으로 유명하다. 미국에서도 금융과 여타
산업이 크게 발전한 시카고에 연고를 두고 있기 때문에 자금력에 있어서 세계에서도 가장 유복한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단원 연봉 수준도 세계최고급이다. 이 때문에 여기서 객원으로라도 지휘한 지휘자는 이력에 꽤 강조해
넣기도 하며,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와 클라우디오 아바도 같은 지휘자들도 여기서 수석 객원 지휘자라는 직함으로
활동하며 공연과 녹음을 진행한 바 있다.
녹음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16년에 시작했는데, 스톡 지휘로 미국 순회 공연 중 뉴욕의 컬럼비아 그래포폰에서
취입한 것이 첫 번째 음반으로 기록되고 있다. 주로 취입한 음반사는 컬럼비아, RCA, 데카 등이며, 이외에도 도이체
그라모폰을 비롯한 여러 음반사들에 약 900여 종 이상의 녹음들을 남기고 있다. 1925년에는 라디오 방송 공연도
시작했고, 이후 텔레비전의 보급과 함께 미국 각지의 방송국에서 연주회 실황이 생중계되고 있다. 다만 음반 시장이
위축된 2000년대 이후로는 여느 악단들과 마찬가지로 악단 자체 음반사를 따로 차려서 운영하고 있는데, 2007년
부터 'CSO 리사운드(CSO Resound)' 라는 이름으로 공연 실황을 인터넷 다운로드 음원과 CD로 판매하고 있다.
정명훈도 여기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 실황을 취입한 바 있다. 간혹 영화의 OST 녹음에도 참가하며,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인 '판타지아 2000' 에서도 제임스 러바인의 지휘로 모든 수록곡을 녹음한 바 있다.
악단 상주 공연장인 오케스트라 홀은 미국 유수의 콘서트 전문 공연장으로 꼽히며, 미국 정부에서 한국의 국보에
해당하는 '역사적인 건축물' 로 지정해 특별 관리하고 있다. 1997년에는 오케스트라 홀과 병설된 리허설 홀,
레스토랑 등을 통틀어 '심포니 센터' 라고 부르고 있다. 비시즌기인 여름에는 시카고 근교의 하이랜드 파크에서
개최되고 있는 라비니아 음악제(Ravinia Festival)에서 정기적으로 공연하고 있는데, 이 때는 음악제 음악
감독의 지휘로 공연한다. 합창 붙는 작품의 경우 1957년에 창단된 악단 병설 합창단인 시카고 교향 합창단
(Chicago Symphony Chorus)이 참가하고 있다. 여기서는 일상적인 관현악 연주회도 열리지만, 오페라나
발레 등의 무대 작품에서도 반주 악단으로 공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직은 다르지만, 1919년에 스톡에 의해
창단된 시카고 시빅 오케스트라(Civic Orchestra of Chicago)도 악단 홈페이지에 병설 단체로 올라와 있다.
이 악단도 자체 공연 활동을 주로 하고 있지만, 음대나 음악원에서 배출된 연주가들이 관현악단 단원으로 일하기
위한 실전 경험을 쌓는 일종의 교육 코스로도 이용되고 있다. 실제로 시카고 교향악단 단원들 중에도 시빅
오케스트라의 정단원 혹은 부단원으로 재직하다가 올라간 이들이 꽤 많다.
2010/11 시즌 부터 상임 지휘자를 맡은 리카르도 무티는 CSO를 단단한 앙상블과 더욱 깊이 있는 음악적 해석을
요구하며 악단을 리빌딩한다. 동시대 현대 작곡가의 작품 위촉에도 앞장서 2018/19 시즌에도 세계 초연
곡을 공연 프로그램에 올린다. 무티의 2018/19 시즌은 비교적 평범한 레파투어로 이루어졌고
Bernard Haitink, Pablo Heras-Casado의 노장 Esa-Pekka Salonen, Michael Tilson Thomas,
Mikko Franck 등 중진, Andrés Orozco-Estrada, David Afkham, Jakub Hrůša 등 신예 지휘자를
조화롭게 객원 지휘자로 초대하여 다양한 시각에서 새 시즌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있다.
플륫 수석 Mathieu Dufour가 베를린 필 수석으로 옮겨가 절치부심한 무티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수석
Stefán Ragnar Höskuldsson을 수석으로 임명하지만, CSO의 아킬레스건인 세대교체 문제점을 더욱
들어내 보인다. 4관 편성에 수석, 부수석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CSO는 주요 수석들의 장기 집권에 힘입어?
세대교체의 주기가 다른 오케스트라에 비해 현저하게 늦어진다. 1939년 생으로 78세의 나이로 현역 트럼본 수석
Jay Friedman은 1962년 23세에 입단하여 2년후 25세의 나이로 CSO 트럼본 수석으로 임명돼, 1948-
2001년 무려 53년간 트럼펫 수석을 지낸 전설적 트럼펫터 Adolph Herseth와 함께 CSO 브라스 앙상블을 견고
하고 브릴리안트하게 발전 시켜 시카고 사운드를 탄생시켰다. 55년 동안 시카고 트럼본 수석을 지키고 있는 그가
2018/19 시즌에도 참여가 예정되어 경이로운 면은 있으나 세대교체에 큰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어 안타까운 점도
보인다. 이와같이 현대 오케스트라가 시대적 요구인 강력한 화력을 갖추려면 5관편성이 절대적이라는 점을 CSO를
통해서도 우리는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는 고전, 낭만, 현대, 동시대 작곡가의 작품을 고루 소화해야 하는 현대
오케스트라로써 갖추어야 할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우리나라 오케스트라들이 지향하는 미국 시스템은
클래식 종주국의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유럽 오케스트라 시스템과는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어 이제는
우리들이 심사숙고하여 우리나라 오케스트라 발전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예를 들어 이제는 각 도시에 있는 우리나라 오케스트라들을 천편일률적인 시스템에서 각 도시에 맞게 다양한
시스템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시점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5관 편성의 오케스트라도
필요하지만, 지방 도시 오케스트라는 각 도시의 현실에 맞게 오케스트라를 경량화가 필요하다. 4관 편성을 목표로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의 오케스트라들이 완벽한 2관 편성으로 정예화하여 단원연봉을 높여, 지방 오케스트라들이
취약한 단원의 급료로 인해 겪고 있는 양질의 단원 확보에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독일 함부르크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41명의 정예 단원으로 이루어진 Deutsche Kammerphilharmonie Bremen의 시스템을
우리는 연구하고 관찰해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CSO의 한국인 단원으로는 부악장의 스테파니 정과 바이올린 배소영, 비올라 최성희가 있다.
2018年 5月 18日 franciscopaik.
단원 구성: 1.Vn. 2.Vn. Viola. Cello. K.Bass.
악장 1,포함 17명. 16명. 13명. 11. 9명.
......................................................................................................................
Fl. Ob. Cla. Bn. Hr. Tp. Tb. Tu. Tim. Pe. Hf. Pi. 총인원.
3명. 4명. 4명. 4명. 5명. 3명(-1). 3명. 1명. 2명. 4명. 2명. 1명 - 102명.
2018/19. season.
Riccardo Muti,
Andrés Orozco-Estrada, Pablo Heras-Casado, David Afkham, Giancarlo Guerrero,
Bernard Haitink, Edward Gardner, Fabien Gabel, Mikko Franck, Simone Young,
Esa-Pekka Salonen, Jakub Hrůša, Michael Tilson Thomas, Emmanuel Krivine,
Marin Alsop, Daniel Barenboim.
Alexander Gavrylyuk, Simon Trpčeski, Nicholas Angelich, Emanuel Ax,
Pablo Sáinz Villegas(guitar), Paul Lewis, Nicola Benedetti violin, Hilary Hahn,
Stefán Ragnar Höskuldsson(flute), Lisa Batiashvili, David Fray, Daniil Trifonov,
Benjamin Grosvenor, Charles Vernon(bass trombone),
2018/19 시즌 주요 program.
Prokofiev Sinfonietta
Shostakovich Symphony No. 13 (Babi Yar)
Verdi Aida
Cherubini Overture to Anacréon
Berlioz La Mort de Cléopâtre (The Death of Cleopatra)
Bizet Roma
Respighi Pines of Rome
Schuman Symphony No. 9 (Le fosse Ardeatine)
Mozart Requiem
Gershwin An American in Paris
Stephenson Bass Trombone Concerto [World Premiere, CSO Commission]
Tchaikovsky Suite No. 3
Mozart Overture to Don Giovanni
Mozart Symphony No. 40
Rimsky-Korsakov Sheherazade
Mozart Overture to The Marriage of Figaro
Mozart Piano Concerto No. 20
Stravinsky Apollon musagète
Stravinsky Suite from The Firebird
Rossini Il viaggio a Reims Overture
Vivaldi Piccolo Concerto in C Major, RV 444
Benshoof Concerto in Three Movements
Beethoven Symphony No. 2
Wagner Overture to Tannhäuser - Riccardo Muti
Mahler Symphony No. 3
Sibelius Nocturne and Ballade from King Christian II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 1
Rachmaninov Symphony No. 1 -Andrés Orozco-Estrada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3
Tchaikovsky Symphony No. 1 (Winter Dreams) -Pablo Heras-Casado
Beethoven Coriolan Overture
Beethoven Piano Concerto No. 5 (Emperor)
Dvořák Symphony No. 7 - David Afkham
Ginastera Four Dances from Estancia
Rodrigo Concierto de Aranjuez
Chabrier España
Piazzolla Sinfonía Buenos Aires -Giancarlo Guerrero
Beethoven Piano Concerto No. 2
Bruckner Symphony No. 6 -Bernard Haitink
Wagner Overture to Rienzi
R. Strauss Four Last Songs
Nielsen Symphony No. 4 (The Inextinguishable) - Edward Gardner
Bartók Dance Suite
Debussy Printemps
Brahms Piano Concerto No. 2 - Fabien Gabel
Rautavaara A Requiem in Our Time
Sibelius Violin Concerto
Rachmaninov Symphony No. 2 - Mikko Franck
Smetana Má vlast - Daniel Barenboim
Mozart Eine kleine Nachtmusik
Mozart Violin Concerto No. 3 (Strassburg)
Mozart Flute Concerto No. 2
Mozart Symphony No. 25 - Robert Chen concertmaster and violin
R. Strauss Also sprach Zarathustra
Bartók Bluebeard's Castle - Esa-Pekka Salonen
Liszt Prometheus
Wagner Siegfried's Rhine Journey and Funeral March from Götterdämmerung
Brahms, orch. Schoenberg Piano Quartet No. 1 - Simone Young
Smetana Má vlast - Daniel Barenboim
Stravinsky Concerto in D for String Orchestra
Prokofiev Violin Concerto No. 2
Tchaikovsky Symphony No. 6 (Pathétique)
Wagner Overture to Rienzi
R. Strauss Four Last Songs
Nielsen Symphony No. 4 (The Inextinguishable) - Michael Tilson Thomas
Borodin Symphony No. 2
Dvořák Violin Concerto
Shostakovich Symphony No. 9 - Jakub Hrůša
Mantovani Threnos [World Premiere, CSO Commission]
Prokofiev Piano Concerto No. 3
Bridge Lament
Copland Symphony No. 3 - Marin Alsop
Berlioz Roman Carnival Overture
Chopin Piano Concerto No. 1
Zemlinsky The Mermaid - Emmanuel Krivine
belius Night Ride and Sunrise
Bruch Violin Concerto No. 1
Mendelssohn Symphony No. 3 (Scottish) - Fabien Gabel
역대 Music directors.
1891–1905 Theodore Thomas
1905–1942 Frederick Stock
1943–1947 Désiré Defauw
1947–1948 Artur Rodziński
1950–1953 Rafael Kubelík
1953–1962 Fritz Reiner
1962–1963 Fritz Reiner (musical advisor)
1963–1968 Jean Martinon
1968–1969 Irwin Hoffman (acting music director)
1969–1991 Georg Solti
1991–2006 Daniel Barenboim
2010–present Riccardo Muti
부악장 Stephanie Jeong. 바이올린 배소영. 비올라 최성희.
Adolph Herseth, 53(1948 - 2001)년간 Legendary 트럼펫 수석.
Jay Frie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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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카고 심포니의 2018~2019 시즌의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바렌보임이 지난 2006년 음악감독직 사임 후 처음으로 다시 시카고의 지휘봉을 잡는다는 점입니다 음악외 행정업무에 많은 불평을 호소하던 바렌보임은 이전 행정집행부와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그들이 대부분 자리를 떠난 지금에서야 다시 돌아오게 된 것 같습니다
시카고에서 바렌보임의 업적은 숄티가 구축한 시카고 사운드에 유려함과 부드러움을 더하고 훌륭한 수석 연주자들을 많이 뽑았다는 것입니다 플룻 수석 Dufour, 오보 수석 Izotov, 트럼펫 수석 Martin 전부 바렌보임에 의해 젊은 나이에 선택된 연주자들이고, 이들의 환상적인 연주을 전부 접해본 저로서는 베를린 필 수석에 필적하는 기량을 지니고 있다고 여러차례 평가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 이들 모두가 타악단으로 이직한 상태이고 Dufour는 베를린 필, Izotov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Martin은 뉴욕필의 수석입니다 무티에 대한 시카고 언론의 평은 대단히 좋은 편이나 왜 탁월한 기량의 수석 주자들이 시카고를 떠나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호른 수석 Clevenger의 후임을 아직 선출하지 못했고 노령의 트롬본 수석 Friedman의 후임, 그리고 트럼펫 수석 Martin의 후임을 잘 선정하는 것이 시카고로서는 현재 큰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바렌보임은 젊은 시절 숄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고 그의 후임이 되기 위해 많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후 시간이 흘러 시대의 거장 지휘자로 명성을 쌓아감에 따라 유럽에서의 음악활동에 더 매진하였으며 그의 최종 목표는 베를린 필 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시카고의 음악감독직은 베를린 필 상임이 되기 위한 징검다리였던 것이죠
1999년 아바도의 후임 자리를 놓고 래틀과의 경합에서 패한 뒤 미국에서의 음악활동에 더욱 흥미를 잃은 것으로 보이며 결국 시카고의 음악감독직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후 무티가 물러난 라스칼라의 수석지휘자로 취임하자 시카고 언론은 바렌보임의 최종 목표는 카라얀이 비공식적으로 차지했던 지위인 General music director of Europe이 되는 것이라 비난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시카고는 나름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으나 어쨌든 시대 최고의 거장들을 지속적으로 보유하여 악단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현재 미국 메이저 악단은 더 이상 유럽 출신 마에스트로들에게 선호되는 자리가 아니며 따라서 차선책으로 커리어 확장을 원하는 전도유망한 젊은 지휘자들을 음악감독으로 선출하였습니다 엘에이의 두다멜, 보스턴의 넬손스, 필라델피아의 네젯-세귄이 전부 그런 예이죠 이런 상황에서 시카고만 유럽의 저명 마에스트로인 하이팅크 및 불레즈를 수석 및 수석객원으로 그리고 이후 무티를 음악감독으로 임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은 처지에 있었다고 해야할 것 입니다
장문의 댓글 감사드립니다.CSO 운영진의 변화가 있었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Defour의 베를린 필 행은 프랑스 출신이라 이해를 하지만 Izotov, Martin의 이적, 저는 이해가
안됩니다.특히 전통의 시카고 부라스 핵인 Martin의 뉴욕 행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휘자와의
문제가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군요. 제가 정확한 정보가 부족해 알수는 없으나
무티가 단원들에게 인간적으로는 매력이 없어 보입니다.
독일의 상징 베를린 필을 원하는 바렌보임, 이것은 유대계의 숙원이었고 드디어 페트렌코를 앞세워
해냈습니다. 세계 문화 예술계를 좌지우지하면서 불공정한 행위를 일삼는 유대계 자본에 대적하려면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의 단합된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성장하고 있는 우리의 4세대 음악인들을 위해서라도 선배 음악인의
깊은 사고와 행동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여집니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힘이 없다는 것에
비통함을 느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