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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廉義篇(염의편)
- 염의란 염치와 의리를 뜻하며, 이는 청렴하고 결백하여 수치(羞恥)를 안다는 말이다. 스스로 이를 지킴으로 욕됨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
24-1. 印觀이 賣綿於市할새 有署調者以穀買之而還이러니 有鳶이 攫其綿하여
(인관 매금어시 유서조자이곡매지이환 유연 확기면
墮印觀家거늘 印觀이 歸于署調曰 鳶墮汝綿於吾家라 故로 還汝하노라 署調曰
타인관가 인관 귀우서조왈 연타여금어오가 고 환여 서조왈
鳶이 攫綿與汝는 天也라 吾何爲受리오 印觀曰 然則還汝穀하리라 署調曰 吾與
연 확금여여 천야 오하위수 인관왈 연즉환여곡 서조왈 오여
汝者 市二日이니 穀已屬汝矣라 하고 二人이 相讓이라가 幷棄於市하니 掌市官
여자 시이일 곡이속여의 이인 상양 병기어시 장시관
이 以聞王하여 竝賜爵하니라
이문왕 병사작)
인관이 시장에서 솜을 파는데 서조라는 사람이 있어 곡식으로써 이것을 사 가지고 돌아가더니, 솔개가 그 솜을 채 가지고 인관의 집에 떨어뜨렸거늘 인관이 서조에게 돌아와서 말하길, “솔개가 너의 솜을 내 집에 떨어뜨렸으므로 너에게 돌려보낸다.”하니 서조가 말하길, “솔개가 채다가 너에게 준 것은 하늘이 시킨 것이다. 내가 어찌 받을 수 있겠는가.”고 하였다. 인관이 말하길, “그렇다면 너의 곡식을 돌려보내리라.”하니 서조가 말하길, “내가 너에게 준 지가 두 장이 되었으니 곡식은 이미 너에게 속한 것이니라.”고 하고, 두 사람이 서로 사양하다가 솜과 곡식을 다 함께 시장에 버리니, 시장을 맡아 다스리는 관원이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서 다 같이 벼슬을 주었다.
⋇ 印觀(인관) : 신라 때 사람.
⋇ 署調(서조) : 신라 때 사람.
⋇ 以穀買之(이곡매지) : 곡식으로 이를 사다. 곡식을 주고 이를 삼.
⋇ 墮(떨어뜨릴 타. 부서질 타) : 떨어뜨림.
⋇ 還汝(돌아 올 환. 너 여) : 너에게 돌려주다.
⋇ 天也(천야) : 직역하면 “하늘이다”이나, “하늘이 시킨 것이다”로 풀이 하는 것이 타당함.
⋇ 吾何爲受(오하위수) : 내가 어찌 받을 수 있겠는가?
⋇ 然則(연즉) : 그렇다면. 그러하면.
⋇ 市二日(시이일) : 저자(市場)가 두 번 지남.
⋇ 穀已屬汝矣(곡이속여의) : 곡식은 이미 그대에게 속한다. 곡식은 이미 그대의 것이다.
⋇ 相讓(상양) : 서로 사양함. 서로 양보함.
⋇ 掌市官(장시관) : 시장을 관장하는 벼슬아치.
⋇ 聞(들을 문. 알릴 문) : 여기서는 “알리다”의 뜻.
⋇ 竝賜爵(병사작) : 모두에게 벼슬을 내림.
(해설)
부자가 되고 싶은 꿈을 꿀 때 흔히 하는 말로 “하늘에서 돈벼락이라도 떨어졌으면”하고 푸념을 한다. 땀 흘리는 노력보다는 일확천금을 선호하는 마음은 사행성을 조장한다. 경마니 카지노니, 경정 등에 사람이 몰리는 것을 보면 이를 증명해 준다. 요즈음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각종 복권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환상은 보물 사냥꾼에 금광을 찾는 탐사와 해저 유물에까지 그 손길을 미친다. 유사 이래로 한탕을 갈망하는 욕망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특히 경제가 불황을 겪거나 사업 등의 실패로 인해 막다른 골목에 다 달았을 때 돌파구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악순환이 반복되지만 식을 줄 모르는 열기는 늘 뜨겁기만 하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확률을 믿고 온 몸을 던진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잣대가 부의 크기로 평가되는 세태가 부른 우리들의 또 하나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경제도 세계화되어 國富(국부)의 개념도 개인의 재산도 확대되다 보니 상상을 초월할 숫자로 다가온다. 새로운 부를 창조하는 사업의 발굴에 온 세계가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 점차 1등만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다 보니 경쟁 또한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한 번 뒤처지면 원상복귀는 어려워지며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한다. 국가 또한 마찬가지로 점차 가속도가 붙는 경쟁 속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변신과 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양심에 거슬리는 부끄러움이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이를 벗어나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때때로 철면피를 자랑하는 별종도 있게 마련인데,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하랴 하는 심리가 바닥에 자리 잡고 있다. 노력의 대가에 비해 턱없이 낮은 처우와 발버둥 쳐도 가난이란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허탈감에 사로잡혀 불쑥불쑥 찾아오는 유혹을 과감하게 물리치지 못한 결과물일수도 있다. 물질만능 사상이 지배하는 사회구조 하에서 더욱 심화되는 빈부의 격차는 박탈감과 허탈감을 상승시켜 소위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막가파식의 행동을 부추기기도 한다. 배금주의가 맹위를 떨치다 보니 부에 집착이 너무 강해지면서 점점 염치를 잃어간다 한탄을 한다. 부동산 개발과 맞물려 지가상승은 형제간의 유산다툼으로 비화되고, 각종 사업 등과 연관된 민, 관 정계의 먹이사슬 같은 비리의 사슬이 연일 보도되며, 선물이냐 뇌물이냐 늘 시끌시끌한 정의가 새삼스럽지도 않다. 잠잠하다 싶으면 불쑥 수면위로 부상하는 각종 사건들이 “○○ 공화국”이란 오명으로 회자되지만 근절되기는커녕 점점 더 은밀해지고 과감해 지는 형태로 진화될 뿐이다.
불확실성의 시대라 모든 것이 혼돈과 무질서해 보이기에 그 어둠과 혼란에서 광명의 빛줄기 같은 존재로서 원칙과 기본이 존중되어야 한다. 염치와 의리가 회복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長頸烏喙(장경오훼)
- 관상에 대한 것으로, 목이 길고 입이 새처럼 뾰족함. -
范蠡(범려)가 越(월)나라 句踐(구천)을 평한 말로, 이런 인상을 가진 사람은 끈기 있고 괴로움을 함께 할 수는 있으나, 시기심이 강해서 안락은 함께 할 수 없는 상이라 하였다.
(출전 史記 越世家) ※ 喙(부리 훼), 蠡(좀 먹을 려).
(范蠡 遂去 自齊遺大夫種 書曰 “蜚鳥盡 良弓藏 狡兎死 走狗烹 越王爲人長頸烏喙 可與共患難 不可與共樂 子何不去?” 種見書 稱病不朝 人或讒 種且作亂 越王乃賜 種劍曰 “子敎寡人伐吳 七術 寡人用其三而敗吳 其四存子 子爲我從先王試之” 種遂自殺 : 범려 수거 자제유대부종 서왈 “비조진 양궁장 교토사 주구팽 월왕위인장경오훼 가여공환난 불가여공낙 자하불거?” 종견서 칭병불조 인혹참 종차작란 월왕내사 종검왈 “자교과인벌오 칠술 과인용기삼이패오 기사존자 자위아종선왕시지” 종수자살 - 범려가 벼슬을 버리고 제나라로 가서 대부 文種(문종)에게 서신을 보냈다. “나는 새가 없으면 좋은 활은 창고에 보관되고,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삶아진다. 월왕은 장경오훼의 상이라 환난은 같이 하나 안락은 같이 할 수 없으니 월왕에게서 떠나시오.” 문종이 편지를 보고, 병을 칭하며 입조하지 않자 반란을 하려 한다 참소를 당하였다. 월왕이 문종에게 검과 함께 “오나라를 정벌할 때 일곱 가지 계책을 가르쳐 주어 그 세 가지를 써서 오나라를 물리쳤소, 나머지 네 가지는 그대에게 있으니 선왕을 뒤쫓아서 시험해 보기 바라오.” 문종은 이를 받아 들여 자살하였다.)
5일장
닷새 만에 돌아오는 장날에 장에 못가면 안달을 하고, 그것이 심하면 머리 싸매고 눕기까지 하는 병을 “돌뱅이병”이라 한다. 일종의 심신병으로 닷새 만에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병이라 하여 그럼 이름을 붙었을 것이다.
그만큼 시골장날은 가지 않고 배겨내지 못하는 신나는 현장이었다. 그곳에 집산하는 물산만 보아도 눈이 뒤집히는데 약장수는 배꼽을 거머쥐게 하지요, 허벅지 드러내놓은 색주가는 오금을 저리게 하지요, 입으로 불을 뽑는 차력사는 간담을 서늘케 한다. 윗 고을에 소도둑이 들고 아래 고을 과수가 아랫배가 부르며, 옆 고을 큰 애기가 곡마단에 팔리어 갔다느니…, 신나는 정보를 그곳에서 듣는다.
겉보리 한 됫박만 자루에 부어 주면 막걸리 한 사발에 도마 위의 내장고기 두어 점-거기에 국말이밥 한 그릇에 허리띠 풀고 배꼽을 노출시킨다. 나뭇짐 팔고난 지겟다리에 건고등어 한 마리 사서 매어달고 석양을 등지고 돌아오는 파장길- 그 아니 신나겠는가.
장날은 물건을 사고파는 유통이라는 실질적인 기능 말고도 정보와 사교와 낭만과 유흥기능이 복합된 우리 한국인의 원점이었다.
18세기의 기록인 “임원십육지”에 보면 조선팔도에 30∼50리 거리마다 1,051개의 시장이 있었는데, 그 중 닷새 만에 열리는 5일장이 905개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가운데 1만 명 이상의 장꾼이 집산하는 큰 장으로 경기도의 송파장, 사평장, 안성장, 공릉장, 충청도의 강경장, 덕평장 전라도의 전주장, 남원장, 경상도의 마산포장, 강원도의 대화장을 쳤다. 장돌뱅이는 대체로 정월보름을 쇄고 집을 떠나 초파일 전에 돌아오는 초파일 돌뱅이, 단오 날 돌아오는 단오 돌뱅이, 동짓날 또는 그믐 전에 돌아오는 돌뱅이로 대별되었다. 그래서 시장 상인들이 많이 사는 개성에는 추석동이니 동지동이니 한날에 태어난 아이가 많다고 했다. 같은 생일의 아이들이 자라서 계를 묻어 상업자본형성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정조 때 기록을 보면 固城場(고성장)에서는 여성들의 파워가 굉장하여 사내들이 자칫 상도의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도가의 여장부지휘로 집단폭행을 했다 하니 시장은 우리 한국 서민 여성들의 활달한 기품을 보존시켜온 남녀평등의 온상이요, 남존여비의 저항전선이기도 했다. 근대화 과정에서 유통구조의 변화 때문에 5일장이 사양길에 접어들더니 근간에 자가용족의 팽창이 배경이 되어 서울 근처에 5일장이 부활, 활기를 띠고 또 나름대로 낭만과 향수가 깃든 각종 시장문화가 되살아나고 있다 한다. 근 7만∼8만 명이 집산한다는 성남의 모란장도 그중 하나다. 유통단계가 단축되어 값싸게 거래한다는 장점 말고라도 국제화시대에 한국의 원점을 부활시킨다는 차원에서도 전국적으로 부활, 육성시켜 나갔으면 한다.(이규태 코너 1986년)
24-2. 洪耆燮이 少貧甚無料러니 一日早에 婢兒踊躍獻七兩錢曰 此在鼎中하니
(홍기섭 소빈심무료 일일조 비아용약헌칠량전왈 차재정중
米可數石이요 柴可數駄니 天賜天賜니다 公이 驚曰 是何金고 卽書失金人推去等
미가수석 시가수태 천사천사 공 경왈 시하금 즉서실금인추거등
字하여 付之門楣而待러니 俄而姓劉者來文書意어늘 公이 悉言之한데 劉曰 理無
자 부지문미이대 아이성유자래문서의 공 실언지 유왈 이무
失金於人之鼎內하니 果天賜也라 盍取之닛고 公이 曰 非吾物에 何요 劉俯伏曰
실금어인지정내 과천사야 합취지 공 왈 비오물 하 유부복왈
小的이 昨夜에 爲窃鼎來라가 還憐家勢蕭條而施之러니 今感公之廉价하고 良心
소적 작야 위절정래 환련가세소조이시지 금감공지염개 양심
自發하여 誓不更盜하고 願欲常侍하오니 勿慮取之하소서 公이 卽還金曰 汝之爲
자발 서불갱도 원욕상시 물려취지 공 즉환금왈 여지위
良則善矣나 金不可取라 하고 終不受러라 後에 公이 爲判書하고 其子在龍이 爲
량즉선의 금불가취 종불수 후 공 위판서 기자재룡 위
憲宗國舅하며 劉亦見信하여 身家大昌하니라
헌종국구 유역견신 신가대창)
홍기섭이 젊었을 때 심히 가난하여 말할 수 없더니 하루는 아침에 어린 계집종이 기쁜 듯이 뛰어와서 돈 일곱 냥을 바치며, “이것이 솥 속에 있었습니다. 이만하면 쌀이 몇 섬이요, 나무가 몇 바리입니다. 참으로 하늘이 주신 것입니다.”고 함에 공이 놀라서 말하길, “이것이 어찌된 돈인고.”하고 곧 돈을 잃은 사람이 와서 찾아가라는 등의 글을 써서 이를 대문 위에 붙여 두고 기다렸더니, 얼마 아니 되어 성이 유(劉)라는 사람이 찾아와 글 뜻을 물었다. 공이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 주니 유가 말하길, “남의 솥 속에다 돈을 잃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참으로 하늘이 주신 것인데 왜 이를 취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라 했다. 공이 말하길, “나의 물건이 아닌데 어찌하겠소?”하니 유가 끓어 엎드리며 말하길, “소인이 어제 밤 솥을 훔치러 왔다가 도리어 가세(家勢)가 쓸쓸한 것을 불쌍히 여겨 이것을 놓고 돌아갔더니, 이제 공의 염결함에 감복되고 양심이 스스로 움직여 다시 도둑질을 아니 할 것을 맹세하옵고 늘 모시기를 원하오니 걱정 마시고 이것을 취하시기 바랍니다.”고 했다. 공이 곧 돈을 돌려주며 말하길, “네가 좋은 사람이 된 것은 참 좋으나 돈은 취할 수 없느니라.”하고 끝끝내 받지 않았다. 뒤에 공은 판서가 되고 그의 아들 재룡(在龍)이 헌종(憲宗)의 장인이 되었으며, 유도 또한 신임을 얻어서 몸과 집안이 크게 번영하였다.
⋇ 洪耆燮(홍기섭) : 조선조 헌종(憲宗) 때의 사람. 본관은 남양(南陽). 청렴하기로 이름이 높았으며, 벼슬이 판서(判書)에 이름.
⋇ 無料(무료) : 헤아릴 수 없다. 측량할 수 없다.
⋇ 早(일찍 조) : 여기선 “아침.”
⋇ 婢兒(비아) : 여자 아이 종.
⋇ 踊躍(용약) : 좋아서 뜀.
⋇ 米可數石(미가수석) : 쌀이 몇 섬이나 됨.
⋇ 柴(섶 시. 땔나무 시) : 땔나무.
⋇ 駄(탈 태. 짐 실을 태) : 짐의 수효를 셀 때 쓰는 단위인 “바리.”
⋇ 推去(추거) : 찾아 감. 추심하여 감.
⋇ 門楣(문. 문미 미) : 문 위에 가로로 댄 상인(商人)방.
⋇ 俄而(아이) : 얼마 아니 되어. 이윽고.
⋇ 悉言之(다 실. 언지) : 빼놓지 않고 다 말함.
⋇ 理無(이무) : ~할 까닭이 없음. ~할 이치가 없음.
⋇ 果(실과 과. 과연 과) : 여기서는 “과연” “참말로”의 뜻.
⋇ 盍(덮을 합. 어찌 아니할 합) : 어째서 아니 하는가? 왜 아니 하는가?
⋇ 俯伏(구부릴 부. 복) : 끓어 엎드림.
⋇ 小的(소적) : 소인(小人).
⋇ 窃鼎(절정) : 솥을 훔침.
⋇ 蕭條(맑은대쑥 소, 조) : 쓸쓸한 모양. 여기서는 “극히 가난함”의 뜻.
⋇ 廉价(청렴할 염. 착할 개) : 청렴함.
⋇ 勿慮取之(물려취지) : “염려하지 말고 이것을 취하십시오.”
⋇ 在龍(재룡) : 홍기섭의 아들로 자는 경천(景天), 헌종(憲宗)의 장인이 되어 익풍부원군(益豊府院君)에 봉해짐.
⋇ 國舅(국구) : 임금의 장인.
⋇ 見信(견신) : 신임을 받는 것.
(해설)
가난이 죄는 아니지만 때론 가난이란 이유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쓰라린 홀대를 받는 빌미가 되며, 뒷전으로 밀려 할 말도 못하는 경우를 경험하기도 한다. 가난하더라도 어떠한 마음을 지니는가가 중요한데, 비록 재물이 없어 남처럼 풍족하고 넉넉한 씀씀이를 못 한다 하더라도 마음만은 가난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가난을 자랑하라는 말은 아니고, 그 가난 속에서도 가슴에 품은 커다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자기를 수련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는 말아야 한다. 지름길로 가려고 꼼수를 부리고 부정하며 정의롭지 못한 방법이거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요행을 바라는 짓은 오히려 자신을 망칠 뿐 아니라 그 노예로 전락하여 평생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최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악순환 고리를 자른다는 것이 쉽지 않고 바라보는 시야도 좁아져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되고 마는 비운을 자처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한번 더럽혀지고 오염된 마음을 정화시키는 데는 많은 시간을 요하며 중간 중간에 포기하고픈 욕망의 괴로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늪에 빠진 것처럼 몸부림칠수록 더욱 깊게 빠져드는 마약과도 같은 중독성이 강한 것이기에 그러하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쾌락과 심신을 현혹시키는 마력이 강하기에 그 유혹을 뿌리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는 당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래서 늘 강조하길 “처음 발을 내딛기가 힘들지 한 번 시작하면 습관화되기에 조심하여야 한다.”라고 말을 하지요. 모든 일들이 그러하지요. 좋고 선한 일은 실행하기가 힘들고 어렵지만, 나쁘고 악한 일은 쉽게 혹은 무의식적으로 행할 수가 있는 특징을 지니기에 자신의 의지로 견제하지 아니하면 아차 하는 순간에 잘못을 저지르는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선친의 유언을 죽을 때까지 지킨 고려 말의 최영장군 같다면야 시비가 없겠지만, 과연 몇 사람이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대장부라 불릴 사람이나 가능하다 했는데, 이 시대에 대장부는 과연 몇이나 될까. 대개 “이게 웬 떡이냐”하며 생각지도 못한 행운에 떨린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얼떨떨해 할 것이다. 見物生心(견물생심)이라 했다. 자신이 간절하게 가지고 싶어 했던 물건이었다면 두말하면 잔소리가 되고 말 것이다. 廉恥(염치)는 잠시 내려놓고 기쁨에 오두방정을 떨리라. 좋은 일에는 꼭 나쁜 일이 함께 한다 하여 好事多魔(호사다마)라 말을 한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얻는 부는 대가를 치루기 마련이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감수하여야 하는데, 좋은 일은 자신의 탓이요 좋지 아니한 일은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심리가 발동하여 원망과 저주를 퍼붓는다. 모든 일이 자신에 의하여 일어난다는 것을 잊어버린 채로. 사소한 일도 선하지 않으면 하지 말라는 옛 선인들의 가르침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 닿는다.
三字獄(삼자옥)
- 莫須有(막수유)의 獄(옥). 어물어물 처리한 獄事(옥사) -
宋(송)나라의 秦檜(진회)가 충신 岳飛(악비)를 죄로 몰 때에 韓世忠(한세충)이 진회에게 그 죄를 묻자, 그런 일이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고 한다(飛子雲與張憲書 雖不明 其事體莫須有 : 비자운여장헌서 수불명 기사체막수유 -악비 아들 악운이 장헌에게 편지를 보낸 일이 분명치 않지만 그럴만한 일이 아마도 있을 것이요). 이에 한세충이 "莫須有三字何以服天下 : 막수유삼자하이복천하 - 아무도 있을 것이란 세 글자로 어떻게 천하를 납득시키겠소)"라 하였다 한다. (출전 宋史 岳飛傳) ※ 檜(노송나무 회)
岳鄂王墓(악악왕묘) - 趙孟頫(조맹부) -
鄂王墳上草離離(악왕분상초이이) 악왕 무덤 위에 풀이 무성하고
秋日荒凉石獸危(추일황량석수위) 황량한 가을 石獸(석수)가 웅크리고 있네.
南度君臣輕社稷(남도군신경사직) 남으로 피난 간 군신들 사직을 저버렸고
中原父老望旋旗(중원부노망선기) 중원에 남은 늙은이들만 악왕의 군기를 기다렸네.
英雄已死嗟何及(영웅이사차하급) 영웅은 이미 죽었는데 탄식한들 무엇 하리.
天下中分遂不支(천하중분수부지) 천하가 나누어지니 이제 의지할 곳 없네.
莫向西湖歌此曲(막향서호가차곡) 서호를 향해서는 이 노래를 부르지 마오.
水光山色不勝悲(수광산색불승비) 물빛 산색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네.
※ 鄂(땅 이름 악), 頫(머리 숙일, 살펴 볼 부), 稷(기장 직), 旋(돌 선).
登黃鶴樓(등황학루) - 崔顥(최호) -
昔人已乘黃鶴去(석인이승황학거) 옛사람이 이미 황학을 타고 갔으니
此地空餘黃鶴樓(차지공여황학루) 이 땅에는 공연히 황학루만 남았구나.
黃鶴一去不復返(황학일거불부반) 한 번 황학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白雲千載空悠悠(백운천재공유유) 흰 구름만 오랜 세월에 매임 없이 유유하다.
晴川歷歷漢陽樹(청천역역한양수) 갠 날 강 저편에 한양 거리의 나무들 역력하고
春草萋萋鸚鵡洲(춘초처처앵무주) 앵무주에는 봄풀만 무성하구나.
日暮鄕關何處是(일모향관하처시) 날은 저무는데 고향은 어디란 말인가
煙波江上使人愁(연파강상사인파) 강물 위에 연파 자욱하여 나를 서럽게 하누나.
※ 返(돌아올 반), 悠(멀 유), 萋(풀 우거진 모양 처).
24-3. 高句麗平原王之女가 幼時에 好啼러니 王이 戲曰 以汝로 將歸于愚溫達
(고구려평원왕지녀 유시 호제 왕 희왈 이여 장귀우우온달
하리라 及長에 欲下嫁于上部高氏한대 女以王不可食言으로 固辭하고 終爲溫達
급장 욕하가우상부고씨 여이왕불가식언 고사 종위온달
之妻하다 盖溫達 家貧하여 行乞養母러니 時人이 目爲愚溫達也러라 一日은
지처 개온달 가빈 행걸양모 시인 목위우온달야 일일
溫達이 自山中으로 負楡皮而來하니 王女訪見曰 吾乃子之匹也라 하고 乃賣首飾
온달 자산중 부유피이래 왕녀방견왈 오내자지필야 내매수식
而買田宅器物하여 頗富하고 多養馬以資溫達하여 終爲顯榮하니라
이매전택기물 파부 다양마이자온달 종위현영)
고구려 평원왕의 딸이 어렸을 때 울기를 잘하여 왕이 희롱하여 말하길, “너는 장차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리라”고 했다. 자람에 상부(上部) 고씨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하니, 딸이 임금으로서 식언(食言)할 수 없다 하여 굳이 사양하고 마침내 온달의 아내가 되었다. 대저 온달은 집이 가난하여 다니며 빌어다가 어머니를 봉양하니 그때 사람들이 보고 바보 온달이라 하였다. 하루는 온달이 산속으로부터 느릅나무 껍질을 짊어지고 돌아오니 왕녀가 찾아와 보고 말하길, “나는 바로 그대의 아내라.”하고 곧 수식(首飾)을 팔아 밭과 집과 살림 그릇을 사서 매우 부유해 지고, 말을 많이 길러 온달을 도와서 마침내 이름이 나타나고 영달하게 되었다.
⋇ 高句麗(고구려) : B⋅C 38년경 주몽(朱蒙)이 세운 나라.
⋇ 平原王(평원왕) : 고구려 제25대 왕.
⋇ 好啼(호. 울 제) : 잘 욺. 울기를 잘함.
⋇ 歸(돌아올 귀) : 여기서는 “시집가다(嫁)”의 뜻임.
⋇ 溫達(온달) : 평원왕의 사위로서 많은 무공을 세움. 처음에는 “바보 온달”로 불렀고, 이런 일화가 후세에 전해지게 됨.
⋇ 及長(미칠 급. 장) : 성장함에 이르러.
⋇ 下嫁(하가) : 임금의 딸이 지체가 낮은 사람에게 시집 감.
⋇ 上部高氏(상부고씨) : 고구려시대의 귀족 가문의 하나.
⋇ 食言(식언) : 거짓말.
⋇ 盖(덮을 개) : 대개. 대저.
⋇ 時人(시인) : 그 때의 사람들.
⋇ 自(스스로 자. ~로부터 자) : ~로부터.
⋇ 吾乃子之匹也(오내자지필야) : 나는 바로 그대의 배필이다.
⋇ 首飾(수식) : 비녀 따위의 머리에 장식하는 물건.
⋇ 田宅器物(전택기물) : 밭과 집과 살림 그릇.
⋇ 頗(자못 파. 매우 파) : 자못. 매우.
⋇ 資(재물 자. 도울 자) : 여기서는 “돕다”의 뜻.
(해설)
어떠한 계기를 통하여 換骨奪胎(환골탈태)하는 결정적 상황이 누구에게나 일생을 통하여 세 번 찾아온다고 말한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확실하게 잡을 수 있기 위해서는 평소에 자신을 갈고 닦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가 왔음을 알고 거기에 동승할 수 있다고 한다. 타인에 의해서도 있겠지만, 자신이 원하며 준비한 단계에서 오기도 한다. 자신이 갖고 태어난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믿음과 격려로 성공하기까지 헌신적이고 현명한 도움을 아끼지 않는 內助(내조)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신분의 차가 극명하였던 시대에 지고의 신분을 버리고 비록 어린 시절에 농담 비슷한 말로 하였던 것을 실천에 옮겼다는 것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여자의 몸으로 그러할진대 남아 대장부로 태어나 자신이 한 말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허다한 세상에 귀감이 되지 아니하면 그 무엇이 그것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세상만사가 마음먹기 달렸다고 하지만 여니 사람의 이성으로는 결단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인 태생이 달랐다 하더라도 그 속에 도도하게 흐르는 정신은 지금도 눈을 떼기 어려운 감동을 준다. 우리의 속담에 “한 우물만 파라”는 말이 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인생에 이것저것 손대다 보면 전문성도 떨어지며 안정성도 결여되어 죽도 밥도 안 되는 모호한 상황에 빠져 들기에 이를 경계하여 자기의 재능을 빨리 발견하고 그것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라는 말이다. 무엇이든 십년이란 세월을 투자하면 그 방면에 전문가 소리를 듣게 된다고 하고 이삼십년이면 匠人(장인)이요, 사십년이면 明匠(명장), 그 이상이면 入神(입신)의 경지라 부르질 않습니까.
온달이란 바보스럽지만 효성이 지극하고 착한 심성을 지녀 모든 이들이 그를 천대 시 하되 그 인간됨은 칭송하였던 바 그 바탕이 흙속에 묻혀 있는 진주 같은 존재였기에 이를 알아보고 그 재능을 일깨워 주는 촉매제 역할을 한 평강공주의 혜안도 높이 살만 합니다. 인재를 알아보고 그 재능에 맞추어 일을 맡기는 適材適所(적재적소)란 말은 예나 지금이나 한 조직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일인데, 타인의 재능을 알아보는 혜안을 지닌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유능한 인재를 키우기는커녕 장차 자신의 라이벌이 될까 두려워 폄훼하고 위해를 가하며 방해하는 예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이 세상사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잘 만나야 한다고 말을 하지요. 끌어주고 밀어주며 상호 보완할 줄 아는 사람을.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데, 조금만 잘나가거나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어 먹는다. 요령이 생기고, 교만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산업의 아킬레스건이었던 분야가 바로 기초의 부실이었던 것으로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음은 주지의 사실이었지요. 지금에야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상품이 점차 늘어가는 괄목한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이는 끊임없이 연구비를 늘려온 결과물이 아닐까요.
疑心暗鬼(의심암귀)
-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대수롭지 않은 일까지 두려워서 불안해한다. 동류로 杯中蛇影(배중사영) -
어떤 사람이 소중히 아끼던 도끼를 잃어버리고, 이웃 아이를 의심하였다. 그의 걸음걸이나 안색을 보니 그가 훔쳐간 것 같았고, 그의 말투를 들어보아도 그가 훔쳐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그 사람은 골짜기를 파다가 잃어 버렸던 도끼를 발견하였다. 다음날 다시, 이웃집 아이를 보니, 이번에는 그 아이의 동작이나 태도가 전혀 도끼를 훔친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人有亡鈇子 意其隣之子 視其行步 竊鈇也顔色 竊鈇也 言語 竊鈇也 動作態度 無爲而不竊鈇也 俄而抇其谷而得其鈇 他日復見其隣人之子 動作態度 無似竊鈇者 : 인유망부자 의기인지자 시기행보 절부야안색 절부야 언어 절부야 동작태도 무위이부절부야 아이골기곡이득기부 타일부견기인인지자 동작태도 무사절부자)(출전 列子 說苻篇)
(출처 네이버 블로그 몽촌) ※ 鈇(도끼 부), 竊(훔칠 절), 俄(갑자기 아), 抇(팔 골).
소의 졸업식
졸업시즌을 당하고 보니 “소의 졸업식” 생각이 난다. 일본의 어느 동해안 어느 한 벽지 소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학생이 아홉 명 밖에 안 되는 과소학교인지라 교장선생은 세 마리의 송아지를 입학시켰다. 아이들이 외로워하고 학교가 너무 허전해서였다. 세 어린이가 한 마리씩 “신입생”을 담당하였다. 잘 먹는다 하여 “먹새”, 힘이 세다 하여 “억새”로 이름을 지어주고 외양간의 청소며 먹이며 간병을 맡게 했다. 방과 후면 들판이나 갯가로 끌고 나가 풀을 뜯기고 소가 누워 있으면 소등을 베고 누워 구름을 보며 시도 지었다. 물론 養牛日記(양우일기)도 썼다.
“소를 예뻐한다는 것이 뭣인가를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보고 있지도 않고, 또 친구들이 보고 있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소가 보고 있지도 않은데도 소를 위해 무엇인가 일한다는 것이 정말 소를 예뻐한다는 것임을…” 소를 둔 싱그러운 인간교육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하여 소의 졸업식 날이 왔다. 졸업식장에는 화한을 두른 세 마리 졸업생이 서 있었다. 학생들은 각기 소 이름을 쓴 졸업장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성을 내도 성을 내지 않는 너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느니 “딴 곳에 가 살더라도 너무 먹지 말고 감기에 조심하라”느니…. 이렇게 졸업장을 읽고 모두들 엉켜서 울었다. 학생수가 6명으로 준 이 학교에서는 올해도 여섯 마리의 염소학생을 입학시켰다 한다. 아마 이제쯤 염소의 졸업식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옛날 우리나라 학문에서도 이 같은 소의 졸업식이 있었다. 영남학파인 南冥(남명) 曺植(조식)문하에서는 글을 읽다가 필업-, 곧 졸업을 하면 졸업장 대신 짐승 한 마리씩을 주는 것이 관례였다. 후에 정승까지 오른 鄭擢(정탁)이 필업을 하고, 문하를 떠나갈 때 남명선생은 “뒤란에 소 한 마리 매어놓았으니 몰고 가도록 하라.”고 했다.
물론, 그 소가 실제로 있는 소가 아니라 마음의 소인 것이다. “자네는 기가 세고 조급하여 자칫 넘어져 다칠 것이 걱정되니 소를 몰고 가라는 것이네.” 소처럼 둔중하게 세상사는 것으로 그의 결함을 교정시켜주는 교훈적 소인 것이다. 큰일을 당했을 때마다 이 마음의 소를 상기하여 처신했기로 오늘의 내가 있었다고 만년의 정탁은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게으르면 닭을 주고, 야심이 많으면 염소를 주고, 주의력이 산만하면 거위를 주고, 약삭빠르면 돼지를 주고, 느리면 말을 주는 짐승의 졸업식이었던 것이다. 받고나면 시들어 버리는 꽃이나 주고, 값비싼 시계나 선물하고 불고기나 사 먹이는 요즘 졸업식에 비해 얼마나 뜻있는 졸업식인가.
(이규태 코너 1990년) ※ 擢(뽑을 탁).
자료출처-http://cafe.daum.net/sungho52
박광순선생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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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