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의 끝무렵이 오면 사찰들은 ‘부처님 오신날’을 준비하기 위해손길이 바빠진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세상에 오신 날이 음력으로 4월 8일. 올해는 양력으로 5월 6일 화요일이다.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부처님 오신날이 크리스마스와 함께 공휴일로 기념되고 있어참 좋다.
붓다의 가르침을 따라 살기 위해 매순간 깨어있기를 실천하는 우리들에게 있어, 부처님 오신날 만큼 중요한 날이 또 있을까. 조선조 때 유교의 입김이 심해 불교가 쇠퇴하기는 했다만, 삼국시대로부터 계속되어온 그 질긴 전통을 뿌리 뽑기엔 한민족 신앙의 관성 에너지가 만만찮았다.
사월초파일이면 사찰들은 여기저기 밝혀진 연등들로 화사함이 극에 달한다. 한국은 물론이요, 불교국가에서라면연등행사, 관등놀이, 탑돌이 등 다분히 종교적인 놀이를 행하며 우리의 스승이 지구별로 몸을 나투어 오신 날을 축하한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나는 과연 붓다의 생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나, 의문이 들었다. 더 이상 교회를 나가지 않지만 예수의 탄생과 사역, 그리고 고난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는 줄줄 외울 정도로 잘 알고 있다. 이는 ‘사도신경(Credo)’이라는, 니케아종교회의에서 채택돼, 미사 때마다 또는 예배 때마다 외우는 기도문 덕이 크다. 매주 암송을 반복하면서, 예수의 생애는 구구단처럼 뇌의 한구석을 움직이는 시스템이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스승 붓다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떤 삶을 살았었는지는, 가끔씩 책을 들여다봐야 비로소 이야기를 엮어 나갈 수 있을 정도밖에 안 된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면 TV에서는 앞을 다투어 예수의 생애를 다룬 영화들을 방송해준다. 사월초파일이 다가온다고 고타마 싯다르타의 일생에 대한 영화를 방송해주는 TV 채널은 그닥 보질 못했다.
그래도 유튜브란 것이 있어, 다행이다. 검색어로 Buddha를 쳐넣었더니 몇 개가 걸러진다. BBC와 PBS에서 제작한 ‘싯다르타 고타마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라는 동영상이 눈에 띄었다. David Grubin이 제작하고 연출했다는 이 다큐멘터리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적절히 사용해,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붓다의 발자취를 따라가볼 수 있게 했고 동시에 실사로 표현하기 힘든 그의 탄생설화와 에피소드들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흥미를 갖고 볼 수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의 목소리 나레이션은 티벳 독립 운동에 늘 앞장서고 있는 로맨스그레이 배우, 리처드 기어가 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몇 명의 불교전문가들을 인터뷰했는데 이들의 얼굴 생김새와 표정이 하나 같이 보살들이다. 늘 붓다의 삶을 명상하며 깨끗하게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그들의 인터뷰가 이 다큐멘터리를 더욱 빛나게 해준 것 같다. 자, 당신은 붓다의 생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나와 별 관계 없는 역사상 위인의 이야기처럼 객관적 사실들만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우리 스승이 태어나 각성하고 견성한 후 열반에 이르기까지, 삶의 발자취를 하나씩 뒤따르며 그의 고뇌와 희열을 나의 그것처럼 개별적으로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이건 기독교 신자들이 아주 잘 하고 있다. 예수를 나의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하고 매일 개별적이고 친밀한 사귐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던지.)
이 다큐멘터리를 본 후에는 2600여 년 전 신앙의 대상인 고타마 싯다르타가, 뼈와 살을 가지고 이 땅 위에서 살아 숨쉬었던, 배고픔과 목마름을 느꼈었던, 우리와 똑같이 기쁘고 슬픈 감정을 가졌었던, 그로 인해 꿈에 부풀었다가 폭삭 좌절하기도 했던 역사적 인간으로 느껴질 것이다.
붓다 출생 당시 인도의 정치적 상황
붓다가 태어난 곳은 현재로 치면 네팔 타라이 지방, 룸비니 동산 인근이다. 당시엔 네팔에 속한 것이 아니라, 중부 인도에 속한 카필라 밧투라는 작은 도시 국가였다. 붓다가태어났던 기원전 624년 즈음의인도는 전제군주 국가들의 등장으로 작은 도시국가 수준의 공동체가 점차 제국주의화 되던 때다.
붓다가 태어난 카필라 밧투는 사미띠라는 의회를 중심으로 족장 가운데 대표를 교대로 선출하는 독립된 자치 공동체, 즉 공화정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러니 왕국이라고는 하지만,붓다의 아버지인 숫도다나(슈도다나)왕은 전제군주라기보다는 사미띠(Samitti)의 라자(Raja), 즉 의장또는 수장 정도라고 봐야 옳다. 거기에다 카필라 밧투의 인구는100만여 명 정도니 남가주 지역의 동포를 모두 합한 숫자 정도나 될까. 일단 규모면에서 붓다는 주변 대제국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 약소국에서 태어났던 것이다. 게다가 붓다의 고국은 당시 위세를 떨치던전제군주국, 코살라국에 예속돼 있다가 붓다가 성도를 이룬 뒤에는, 끝내 병합되고 말았다. 붓다가 왕자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우리는 그의 탄생과 어린시절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경향이 없잖다. 좀 사는 집 아들이었던 것은 틀림 없다만, 번쩍번쩍 으리으리한 로마제국의 영화처럼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붓다의탄생 이야기는 상징으로 가득하다. 박혁거세, 김알지 등 고대 임금들은 물론이요, 예수와 알라에 이르기까지 정상적으로 태어난 위인이 어디 있을까. 이는 절대왕권의 상징이나 종교적 신앙의 대상은,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고 믿던 인간들의신념 때문일 게다.
붓다의 탄생 이야기는 당시 정형화되었던 형식을 따른 것 뿐이다. 즉 유독 붓다의 탄생만을 신격화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당시 불전문학들은 종교적 대상이나 위대한 스승들에게 부여했던 정형화된 형식을 고스란히 가져다가 붓다의 전기를 기술했다. 예수는 어떤가. 아버지도 없이 처녀에게서 태어났다고 하지 않던가.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인들의 탄생을 신성화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니 문자 뒤에 숨어 있는 상징들의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1. 흰 코끼리의 꿈을 꾸다.
당시 처한 정치적 상황이 갑갑하다 보니 붓다의 부친, 숫도다나왕은 오매불망 아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렸고 그 아들이 장성해 강력한 정치적 지도자가 되기를 소망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숫도다나왕은 50이 넘도록 아들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아내 마야부인(Mahamaya)이 침실에 누워있는데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가 연꽃을 들고 나타와 마야부인에게 이를 바치더란다. 코끼리는 마야부인의 침실을 세번 돌더니 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왔다. 마야부인이 깜짝 놀라 일어나보니 꿈이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이 부분을 앙리 마티스의 스케치처럼 아름답고 몽환적으로 그려냈다.
이 꿈을 이상히 여긴 부왕 숫도나다는 장안의 용하다는 해몽가들을 불러들여 도대체 무슨 꿈이냐고 물어 보았다. 해몽가들은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면 깨달은자를 낳게 될 태몽이라고 대답했다. 붓다의 일생을 여덟 가지의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는 전기서,‘팔상록’에서는 이를 ‘도솔내의상’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도솔천에 있던 붓다가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몸을 나투어 지구별에 내려왔다는 것이다.
2.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시다.
꿈을꾼 이후, 마야부인은 태기를 보이며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늦둥이를 보게 된다는 기대로 숫도다나왕은매일같이 희색이 만연했을 터이다. 달이 차오르자, 마야부인은 당시 전통에 따라 몸을 풀기 위해 친정으로 향하고 있었다. 쉬지 않고 친정집을 향해 가던 중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룸비니 동산에서 휴식을 취하게 됐다.
그때 룸비니 동산에는아쇼카 나무(무우수 나무라고도 불린다)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마야부인이 아쇼카 나뭇가지를 잡으려는 순간,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태자가 탄생했다. 나뭇가지와 이파리들이 그늘을 드리우며 신생아를 보호하는 것 같았다. 아쇼카 나무는 '근심이 없는 나무'로 해석된다. 즉 왕비가 아쇼카 나뭇가지를 잡고 태자를 낳았다는 것은 아무 고통없이 순산했음을 의미한다. 분만실에 들어간 산모들은 해산할 때,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대지만 아이를 수중속에서, 그것도 완전히 이완한 후에 낳으면 아무런 해산통도 없다고들 한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캘린더에 의하면 이 나툼의 순간은 기원전 624년경 음력 4월 8일 경이었다. 팔상록에서는 이 모습을 '비람강생상'으로 기술하고 있다.
태자가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했다? 이 무슨 귀신 까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자, 다빈치코드는 아니지만 옆구리가 상징하는 바를 다른 사료들을 통해 해석해보자. 인도 고대 종교 문헌인 베타에 수록돼 있는 '원인(原人)의 노래'를 보면,인간의 탄생이 카스트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있어 최하위인 노예, 수드라는 브라만의 발바닥에서 태어났으며, 평민인 바이샤는 다리, 무사인 크샤트리아는 옆구리, 그리고 제사장인 브라만은 입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불전문학에서는 당시의 상징체계를 빌어,붓다가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씀으로써 크샤트리아 즉 무사 계급에서 태어났음을 표현한 것이다.
3. 천상천하 유아독존
아기가 태어나자 하늘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내려와 태자를 목욕시켰다고 한다. 구룡사를 지키는 용들도 아니고, 웬 용이 한두 마리도 아닌 아홉 마리씩이나 떼로 내려와 아기를 목욕시켰을까. 이것 역시 새겨들어야 한다. 9는 동서남북의 4방향, 그 간방의 4방향, 그리고 중앙방향을 모두 포함하는 숫자다. 즉 이 세상 모두가 붓다의 탄생을 기뻐했다는 뜻이다. 예수 생일 축하하러 동방박사가 먼 길을 와서 옥합을 깼다는 얘기나 내용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는 구절이다.
태자는 태어나자마자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동서남북으로 각각 일곱 발자국씩 걸어갔다고 한다. 하늘은 공(空)을, 땅은 물질(色)을 나타낸다. 즉 물질과 정신이 분리된 형이상학적 존재가 아니라 '나'라는 주체적 삶 속에 통일되어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당시 전통 브라만교에서는 정신과 물질을 분리해 보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붓다의 탄생은 바로 이같은 세계관의부정을 상징한다.
붓다가 동서남북 사방으로 걸어갔다는 것은 공간을 나타내는데 특히 붓다가 앞으로 펼치게 될 보편적 진리의 무한한 영역을 상징한다. 동서남북의 4,각각 7발자국이니 4×7=28이라는 등식이 나오는데 이것은 28숙, 즉 별들의 흐름, 다시 말해 시간을 나타낸다.
또한 7이란 육도(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 천)의 윤회를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로 나갔음을 상징한다. 즉 붓다가 윤회를 벗어나 해탈을 이루리라는 예언이다. 기독교에서도 6은 악마의 숫자다. 6도 윤회를 벗어난 것이 곧 해탈,7이란 숫자는 상징하는 바가 많다.
그러자 그 걸음걸음마다 연꽃이 피어올랐다. 연꽃은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 꽃잎은 티끌하나 묻지 않고 깨끗하다.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올랐다는 것은 태자가 비록 보편적 인간과 같이 한계상황을 안고 태어났지만 육도의 윤회에서 벗어나 성불하리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걸음걸음마다 연꽃이 피어오르자, 태자는"하늘 위와 하늘 아래 내가 가장 존귀하다(天上天下唯我獨尊).”는 유명한 탄생게를 했다. 이 탄생게야말로 붓다의 탄생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해준다. 당시 인도 사회의 전통 종교는 브라만교. 예수가 출현했을 때의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브라만교는 제식 만능주의와 브라만 지상주의 등 문제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붓다의 탄생은 신에 대한 복종과 희생을 뛰어 넘어, 인간에 대한존엄을 강조하는 시대로 전환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신을 등불 삼고 자신에게 의지할 것이지, 남에게 의지하지 말라. 법을 등불 삼고 법에게 의지할 것이지,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 《대열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