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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자 시집 해설
자연주의적 사랑, 그리고 주지 않은 언질에 대한 화답
박윤배 (시인)
귀 간질이는 그 어떤 언질조차도 주지 않고
짧고 빠르게 세상에 미련 없어
무정히 떠나간 얼굴하나 떠올리게 합니다
-이성자 시 <원추리> 일부
1.
고도인 한 소읍에 시인 이성자가 산다.. 거기가 한때 번성했던 옛 가야국이 봉긋한 무덤을 남긴 고령이다. 자신은 아픈 줄도 모르고 아픈 사람들에게 치유를 위한 약을 건네주며 산다. 시를 쓰며 산다. 그가 다른 사람들과 차별성 있는 어떤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니, 나는 실상 그를 모른다. 아무튼 그가 고령이란 곳에 산다는데 의미가 있으며 그렇게 살고 있는 삶의 현장들이 그의 시 속에 속속들이 투영되고 있음은 시인으로서의 이성자가 고령에 살고 있는 뚜렷한 명분이자 이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단지 시로 시인 이성자를 알고 싶다. 시집을 상재하기 위해 해설을 부탁해 온 시들을 나는 읽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인가 읽어 내려가는 동안 여타의 시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모호성이나 다의성이 별로 눈에 띠지 않는다는 것이다. 난해하거나 다중의 의미 장치를 마련해둔 시들은 일단은 들어가는 문을 찾아서 안쪽의 의미를 접근하다보면 비유든 관념이든 풀리게 마련인데, 이성자 시인의 시는 그러한 장치가 없다. 당연 들어가는 문이 따로 없으니 나가는 문도 필요치 않다. 이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읽어내고 있으며 치미는 감정을 여과 없이 나열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쉽게 읽힌다. 그렇게 읽혀진 시는 단지 아우라 만으로도 내포된 의미는 전달된다. 독자의 읽는 고민들 덜어주는 듯 보이는 시편들은 그 내용의 지향하는 바가 자연이며 자신 안의 어떤 갈등 고민들도 결국에는 인간을 둘러싼 자연에 가닿음으로 스스로 치유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그의 시에 등장하는 자연이란 대게 고령이라는 지형과 무관하지 않다. 알약을 닮았을 능이 있는 고령의 풍광들은 시인인 이성자의 사유를 어둠이 아닌 환한 세계로 회천강을 데려와 씻기고 있음에 사랑도 죽음도 바람과 강과 길을 만나 무형화 되는 과정이 시안에 고스란히 장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시를 몇 개의 유형별로 분류하여 살펴보면 첫째; 삶의 주면 풍경으로 자신의 사유를 녹여낸 시편들을 거론할 수 있겠고 둘째: 그가 자주 등장시키는 자연 즉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풍(風)에 대한 시인의 감정의 변화를 낱낱이 읽을 수 있다. 셋째; 슬픔도 고통도 행복과 긍정으로 마무리하는 원만한 심성의 표현을 만나게 된다. 넷째; 깊이 있는 사유를 관념적이거나 어려운 시말이 아닌 평범한 문장 속에 버무려 넣은 유연한 시작법의 특장을 꼽을 수 있으며 다섯 째; 삶의 체험을 타자의 언어를 통해 연륜에서 얻어진 원칙에 가까운 인생철학을 시어로 녹여내는 힘이 이번 첫 시집이다. 그가 세상에 내어놓을 서정의 전형에 가까운 이번 시집에서 또한 주목되어지는 것이다.
2..
주변 풍경 속에 자신의 감정을 실어낸 그의 시를 나열해보면 <장미꽃 삼단 서랍장>, <너를 부른다>는 아마도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의 식물군중 개여귀라는 식물을 통해 행복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으며 <모듬내길> 1,2 연작은 고령의 회천강을 끼고 나 있는 산책길을 통해 길에 대한 사유를 “길에서 길을 잃어버린 길을 /찾는다, 나이에 무거운 종하나 매달아/닳고 닳아 뭉툭한 가슴이 /산책삼아 별 뜬 밤 *모듬내길 다녀오니/어느새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 라고 시말로 엮어 놓았으며 여타 시편들도 장소를 거론한 시들은 <화본역><영시암><주름은 길이다><의자와 나><유등연지><원추리><남강에 앉아서 ><꽃은 달을 마신다><황강><행옹당>< 홍련암><봉평 메밀꽃잎 술><봉정암>등등이다. 시인에 그가 길을 통해 만났던 지명과 보고 들은 이야기들이 모두 시가 되는 걸로 보아 그의 시는 다분히 발품으로 얻어진 산물이지 않을까? 제목에서 이미 지명과 장소를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시집의 전편 시들을 읽다보면 그는 그가 머문 어떤 장소에 대한 애착이 유독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가 살고 있는 고령을 중심으로 한 그의 시편들은 시로 쓴 관광 안내자료 같은 느낌도 배제할 수 없는 요소로 보여진다. 인간은 길에서 나고 결국 길에서 생을 마감한다고 볼 때 그 길은 실재하는 길 일수도 혹은 한 생의 완성 과정상에 놓여진 길 일 수도 있겠다. 시인 이성자는 그러고 보면 길 위의 시인이자 길에서 또 다른 길을 찾아가는 마치 순례자 같은 시적 행보가 시 전편에서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그가 쓴 시중에서 언젠가는 승객들로 붐볐을 간이역 하나가 매우 인상적이다.
물결 일렁일 때 마다 꽃잎은 속삭였다
못물은 이내 홍련 향기 가득하고
바람이 지나갔다는 흔적인지
이제는 지워진 수많은 이름들
운동장 만국기로 걸렸다
펄럭인다, 느티나무는 이끼를 덮고도
내일이면 보내고 맞이할 봇짐 하나씩
발차시간 없는 기차에 실린다
우리는 여름 뙤약볕을 피해
더운 입김 뿜으며 냄비 우동을 비웠다
지는 꽃잎 놓쳐버린 꽃받침처럼
내일이면 여전히 빈손으로 떠나야하는
푸르도록 그리운 화본역花本驛
바람에 눕는 우산이끼 위에서
산모퉁이 돌아 나오는 기차처럼
나머지 생은
꽃잎 위에서 미끄럼을 타련다
- 이성자 <화본역花本驛 > 전문
과거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 오르던 화본역 지금은 쓸쓸한 추억을 안고 찾아온 관광객들이 과거의 시간과 현재를 믹서하고 쓸쓸함 뒤에 어떤 미래의 힘을 얻고 간다. 화본역을 시인 이성자는 “느티나무는 이끼를 덮고도 내일이면 보내고 맞이할 봇짐 하나씩 발차시간 없는 기차에 실린다”고 표현하고 있으며 “바람에 눕는 우산이끼 위에서 산모퉁이 돌아 나오는 기차처럼 나머지 생은 꽃잎 위에서 미끄럼을 타련다”라고 자신의 의지를 감성의 언어로 드러내고 있다. 하여 있는 그대로의 화본역이 시인의 정신 안에 들어와서 새롭게 설계되고 건축되고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봉산댐이 내려다보이는 망향동산에 서서
굽이굽이 휘몰아쳐 지나는 물살을 본다
물은 길은 수천 년을 지나오면서
주름길을 내었다, 세월의 흔적처럼 땅위에
김선우의 시‘완경’이 그러했듯
내 어머니처럼 주름지고 말라버린 강
수없이 오고간 마음도 그 주름에 있듯이
수없는 사연들 흘러왔다 흘러간 것이다
상류, 아로새겨진 세월을 휘돌아 오는 바람
물고기 입술 빛 몽환을 간지른다
젖어들게 하는 길의 곡선에 스며든 풀섶에 앉아
무엇을 낚으려 낚싯대 드리운 노인들
또 하나의 완경完經일 수도 있겠다
- 이성자 시<주름은 길이다>
앞서 본 구체적인 장소를 드러낸 경우의 시 <화본역花本驛>의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도 그의 시 전편에는 대게 그 시가 생겨나는데 있어 장소성이 바탕에 깔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소개하는 이성자 시<주름은 길이다>의 경우도 시인의 위치는 지금 봉산댐이 내려다보이는 망향동산이다. 그곳에서 휘몰아치는 물살을 보다가 어머니를 생각한다. 여자의 늙음 곧 폐경을을 다룬 김선우라는 시인을 생각한다. 이때 바람은 상류를 돌아서 물고기의 입술빛 몽환을 간지른다는 직관을 얻는가 하면 낚싯대 든 노인의 무엇을 낚으려는 동작 속에서 어머니의 완경과 일치됨을 발견한다. 억지스럽지만 그의 이러한 사유는 제목에 드러나는 직관으로 다시 한 번 주목하게 한다. 사람의 몸에 생기는 늙음의 징표 같은 주름을 시인은 길이라 표현하고 있으니 결국 강도 물의 길이고 그 물에서 물고기를 건지려는 늙은 노인 또한 길을 데리고 길 위에 선 것 아니겠는가. 물과 바람의 이러한 현상들을 더 절실하고 실감나게 하는 등가물로 가져옴으로 그가 그려내는 길 위의 여정은 실재의 장소를 탐닉하다가도 어느새 은근 슬쩍 깊이 있는 사유를 장치화 하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앞서 전제한 문이 별도로 없는데도 시안에 사유의 통로를 두는 시도 시<주름은 길이다> 외에도 여럿 보인다.
한편 이성자 시인의 시는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풍(風)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 다양하게 변주되기도 한다. 그의 시에서 나무 나 풀은 곧 그 자신으로 환치된다고 볼 수 있으며 심리상태를 드러내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바람이나 물(이슬, 강 비)등을 어떤 반응을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자연 속으로 동화되는 자신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모습을 시말을 통해 보여준다. 살펴보면 나무나 물: 개여귀, 자작나무, 버들, 떨켜, 가문비나무 , 느티나무, 금강송, 구절초, 상추, 장미꽃, 배나무, 벚나무, 복숭아나무, 등등 많은 식물들이 시의 전반에 도배되어 있다. 이는 그 만치 식물성에 민감하게 눈길을 주고 있는 것이며, 화(火)는 다양한 빛으로 해 달 등등 사물의 색을 관찰하고 묘사에 끌어들이는 것을 볼 수 있고, 지명과 생명의 성장 기반이 되는 땅 즉 죽음의 전부를 끌어안는 땅을 노래하는가 하면 바람을 자신의 자유의식과 결합시키려는 의도를 시 전편에서 중의적인 바람이 아닌 구체화된 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바람으로 환치하려는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시인 이성자는 자연변화에 남달리 민감한 시인임에 틀림없다. 다시 말해 그가 시의 뜻과 내용을 전개함에 있어 자연친화적인 관찰과 언어를 능숙하게 아니 친숙하게 사용한다고 보여진다. 그가 얼마나 자연에 대한 긴밀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지 아래 시를 통해보자.
이건 봄이 아니라고
묵은 낫들 들어올려
활짝 핀 복사꽃 가지를 자른다
새 혓바닥 같이 뾰족한
새순에 찔려 빙그르르 돌리는 눈물
그 곳 너에게로 향하던
내 보드라운 마음은 이미 없다
질라재비 질라재비 눈물에
번지는 내 그림자
하르르 하르르 무너져 내리는 꽃잎처럼
생이 손 상처 위로 소슬바람 분다
후끈후끈 달아오른
복숭아나무 아린 상처에
내리는 보슬비는
쓰리다
-이성자 시 <봄빛 >전문
목 길게 빼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어데 확 쓸어 담는다고
담길 무엇 아니지만
물 밖
무엇 담으려고
목 길게 빼고
어룽지나
여름이 가는
길목에서
- 이성자 시 <물꽈리아제비> 전문
이성자의 시 내용을 보면 사랑에 관한 주제가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슬픔도 고통도 행복과 긍정으로 마무리하는 따뜻한 심성의 그는 나름 슬프고 고통스럽다가도 그에 사랑의 결말은 늘 행복이다. 사랑이 아픔이나 고통에서 머물지 않고 행복이나 희망으로 결론지어진다. 어쩌면 이는 자신이 문제를 제시하는 동시에 처방전까지 써놓았다는 느낌을 준다는 말이다. 아마도 자신이나 자신이 쓴 시를 읽고 나아닌 다른 사람이 아프기를 바라지 않는 걸까? 그건 약을 다루는 직업정신인지도 모른다. 그는 읍내의 약국에서 일한지가 오래되었고, 남녀 간의 사랑 뿐 만 아니라 실재로 노약한 사람들의 “아프다” 라는 말을 늘 일상에서 들으며 지내기에 시에서도 그런 구조를 가져가는 것 아닌가, 추측해본다. 일견 그는 외강내유의 심성 소유자 아니겠는가, 하는 결론에 도달 한다.
붉음으로 온통 순환되어버린
나무의 왼쪽 가슴자리에
생겨난 떨켜
가을이면 어김없이
겨울을 만나기전에 먼저
나무가 내려놓는 고해의 자세다
상처에 남는 떨켜는
하릴없이 서성이는 마흔이
남기고 싶은 쓸쓸함의 흔적이다
수종이 너무 좋아서
아끼고 아껴 두었던 나무가
뿌리를 지키기 위해서
잎사귀를 먼저 내리듯이 그렇게
우리는 만났던 것
그대와 나
떨켜의 자리로 남았으면
아픔 없이 남았으면
그랬으면
- 이성자 시 <떨켜의 자리>
연지蓮池의 파문에 눈 찔린 물고기
어리석게도 아주 어리석게도
어긋나는 사랑, 눈먼 사랑을 하였다
아이라인을 그릴 때처럼
두 눈을 갖고도 한쪽 눈을 감아버린 당신은
내 지고지순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였다
아프다 슬프다 이런 말이나 지껄이는 게 전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당신은 알게 하고 훌쩍 떠났다
눈물이 흐르니까 아프구나!
목안이 조여 오니까 답답하구나!
그리우니까, 막연히 애달아 하다가
눈이 멀어 놓쳐버린 사랑을
가시연꽃 얼룩진 핏빛 자리에서 본다
정말 이별이란 건 말이야
산 그림자를 어둠이 되 덮는 것
미끄덩한 지느러미는 가졌으나 마나
물에 빠져 지표를 잃는 것
남아 있는 외눈의 방향으로 허우적거리듯
물고기 연지를 돌고 돈다
-이성자 시 < 외눈박이 물고기> 전문
깊이 있는 사유를 관념적이거나 모호한 시말이 아닌 평범한 생활 속 언어로 문장 속에 버무려 넣은 유연한 시작법의 특장을 그의 시는 또한 지녔다. 해서 그의 시들을 읽는 동안 이해불가의 고민 다윈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나 곱씹어 보면 다음 문장 같은 경우는 예사로운 문장이 아니다.
<길에서 길을 잃어버린 길을 /찾는다>,<남은 한쪽 발은 언제까지 안전할까 >,<바람이 바람 속으로 분다/숨죽인 바람이 낮선 바람을 지나/ 눅눅한 대지에 잠든 양을 깨운다>,<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물이 범람한 자리는/얼룩이 남더라 >, <내 어머니도 나도 피었다가/ 리라꽃 처럼 깜빡 지지 않을까>,<늘어진 바람 때문에 강물은 아프고 /무게에 겨운 의자는 삐거덕거린다>,<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많은 물의 속도에도/나 머리 푼 갈대를 꺾어 던져준다>등에서 보여주는 직관의 형태는 아주 자연스럽게 문장 안에 스며들었다가 다시 독자의 뇌를 적신다.
또한 그의 시를 만만찮게 하는 요소는 삶의 체험을 타자의 경험언어를 통해, 연륜에서 얻어진 원칙에 가까운 인생철학을 시어로 녹여내는 힘인데 그러한 시들을 한번 보자
참 괜히 왔다간다
땅을 한숨으로 물고 가는 저 할머니도
한 송이 꽃이었던 젊은 날이 있었겠다
그 어디에도 울기 좋은 곳은 없더라는
시간 앞에서 외로움은 그들의 식량
약국인 내 몸에 들어와 앓는 소리를 낸다
온 몸에 종양덩어리들 주렁주렁 매달고
촉석루 뒷마당에 밀려 선 석류나무처럼
그렁그렁 그렇게 산 날들이
골병이 들어 울퉁불퉁 박힌 상처로 남은 자리
속까지 익지 못한 석류에게
위로의 방식도 모르는 슬픔이란 벌레는
꿈틀꿈틀 기어간다
-이성자 시 <왔다 간다> 전문
고목나무 등걸 같은 손 꼬옥 붙잡고
'구미 국화축제'를 구경한다
낙동강 만발한 국화꽃 꽃잎들 사이를
두리번거리며 낮선 풍경을
눈 속에 새기는데
차올라 파문을 일으키는 강물은 눈물
살아온 세월 아무것도 아닌 것 모른 채
그저 자식 멕이고, 입히고, 시부모 모시고
팔십 평생 살아왔다는 할머니 푸념
그 푸념 주저리주저리 내려앉은 국화는
-아이가. 참말로 시상(세상) 좋데이
-내 우째 이런 별천지를 다 와 보것노
-고맙니더 고맙니더 할머니의 탄성에
눈가에 방울방울 눈물 맺는다
왈칵 뜨거워진 내가
꽃 풍경 꾹꾹 눌러 담고 하늘을 쳐다보는데
아. 한평생 돌아가는 길 고단하던 삶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의 나날들도
잠깐이더라는
할머니의 거칠지만 따뜻한 손은
차갑지만 보드라운 내 손을 꼬옥잡는다
국화향기 속을 빠져 나온 낙동강 강물은
좋아서 흐르는 할머니의 눈물을 데리고
하늘과 맞닿은 물의 수평에 들고
- 이성자 시 <꽃만 봐도 눈물이>전문
“참 괜히 왔다간다” 라고 약국에 찾아온 손님, 아마도 할머니로 여겨지는 한 사람이 자연스레 한숨 섞어 내뱉는 한마디가 시인 이성자를 가슴 철렁하게 했을 수도 있겠다. 노인이 흔하게 내뱉은 이 한마디가 결국은 속까지 익지 못한 석류에게 위로의 방식도 모르는 슬픔이란 벌레를 알게 한 것이고 그 벌레가 오랫동안 꿈틀꿈틀 기어가는 걸 느꼈을 시인은 상상을 통해 그 어디에도 울기 좋은 곳은 없더라는 시간 앞에서 외로움은 늙고 병들고 아픈 그들의 식량임을 절감하고 있는 것을 위 시 <왔다 간다>를 통해서 또 인생철학적인 시어를 획득한다. 그 아래 시 <꽃만 봐도 눈물이>는 '구미 국화축제'라는 현장에 그저 자식 멕이고, 입히고, 시부모 모시고 팔십 평생 살아왔다는 할머니를 모시고 꽃구경 가서 얻는 현장 체험의 산 경험언어로 보인다. 한평생 돌아가는 길 고단하던 삶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의 나날들도 잠깐이더라는 할머니의 말을 그대로 시 안에 박아 넣고도 무리 없이 눈물과 강물을 수평이라는 개념으로 마지막을 처리한 점도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처럼 여타의 시편에서도 타인과의 감정 나눔을 자연적인 등가물들과 무리 없이 연결하는 힘은 그의 서정시가 가지는 유려한 장점인 것이다.
3.
자연적인 등가물들을 가져와서 시말로 노래한다는 것의 커다란 함정은 어쩌면 막연한 관망으로 끝나는 시를 쓰게 될 공산이 크다. 이 시집에 등재된 시들도 다소 그러한 면이 없지 않다. 이는 안일한 서정시일 것이고 시인의 감정이 독자에게는 허황하게 인식될 경우가 종종 있으며 아마추어와 프로 혹은 취미로 시 쓰기와 책임감을 가지고 시를 쓰는 시인의 경계가 모호하기에 좀 더 시를 쓰는 자신의 동적인 개입과 독특한 상상 그리고 깊이 있는 사유를 한편 한편의 시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미 지면으로 여러 사람에게 읽혀질 때는 그만한 책임이 시인에게는 분명 따른다. 따듯한 온정과 연민만으로는 좋은 시를 쓸 수 없듯이 어느 기성 시인도 시말로 뱉어내지 못한 신선한 충격이 필요하다. 매번 수작의 시를 쓸 수는 없겠지만 해설을 맡은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유형의 시가 당분간 이성자 시인이 천착해야 할 시의 경향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권유하고 싶다.
마른 멸치에게도 저녁에는 된장을 먹인다
항아리에서 수년을 보낸
누런 된장을 두어 숟가락 풀어 넣자
보글보글 끓는 바다를 떼 지어 몰려다니는 멸치들
모시조개는 바닥으로 눕혀놓고
감자알은 파도를 잠시 가려주는 바위로 놓아둔다
어머니 냄새는 달디 단 젖내가 되어
회전낙법으로 저녁의 집안을 구르며 누빈다
커튼이며 식탁 모서리 푸릇한 청춘은
씀벅 씀벅 어섯 썰어서 파 맛에 닿는다
팽팽한 긴장감을 지그시 누르는
팽이버섯은 매운 시집살이
은비늘 번뜩이던 그때를 회상하는지
마루 끝에 나앉아 파도소리 듣고 있다
멀리 가서 아니 계신 어머니가
된장찌개에 서린 김처럼 후루룩 말리더니
묵직한 그물의 밤을 당겨 올린다
이성자 시 <된장찌개>
밀가루 반죽을 욕심껏 쭈욱 미니
이리 펴지고 저리 펴지는 것이
본래의 형체는 어디가고
못나고 조잡스런 밀가루 반죽만 한 덩이
이게 나인가, 덩그렇다
마술사 어머니 스르륵 굴린 반죽은
가운데는 볼록하고 가에는 얇아서
방망이 모양대로 끝자락을 둘둘 말아 쥐니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쓸려
손끝에서 반죽은 제대로 출렁인다
도공의 손길이 그러했듯
어찌 저리 힘 하나 안 들이는 듯
어머니는 자연스러운가
쓸데없는 힘 잘 다스릴 줄 몰라
헛 손짓으로 빚은 내 반죽은
우르릉거리는 천둥에 불과하지
마른 먼지 들썩이는 날
그래도 어설픈 반죽 썰어 끓이니
뿌예진 눈앞에 그리운 어머니 얼굴
김발로 서려오고
이성자 시< 손칼국수>전문
마지막으로 시인 이성자는 조밀하고 상상의 변주가 시간의 주름을 접었다 펴기를 반복하는가 하면, 시간과 장소도 경계가 없는 싯점의 변화가 다양한 위 시 두 편은 그가 묶어내는 이번 시집의 큰 수확임이 분명하다. 사유가 깊고 울림도 크다. 또한 그가 꿈꾸는 <시인의 집에는 > 이라는 시는 결국 길의 여정 끝에서 만날 집 아니겠는가. 사물의 경계를 허물고 화사한 부터가 되는 경지며, 사냥이 요란하지 않는 황새의 경지며, 절구가 된 시인이 언어의 연꽃을 빻는 경지에 이르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축하를 보탠다. 이 시집이 결국 시인 이성자에게 슬픔이 주지 않고 떠난 언질에 대한 화답이었으면 한다.
오래된 독 옆으로
큰 키 자랑하는 부용이
두어 송이, 앞 다투며 피었다
물레방아 흐르는 물에
산줄기 내려와
백련 수련 벙글리면
작은 연못은 화사한 부처다
젖은 논길의 황새가
벼 포기 속에서 건져 올린 먹이
사냥이 저리 요란하지 않음에
세상만사 제쳐둔다 해도 좋다
두 팔 벌려 받은 맑은 빗물이
절구통속에 가두어졌으니
절구가 된 시인은
언어를 빻아 연꽃을 피운다
부는 바람에 긴 머리카락 흩날리는 날
시인의 마음밭에 피었던 꽃은
물살에 흔들리다
시름겹다
-이성자 시 <시인의 집에는> 전문
첫댓글 이성자 선생님, 시집발간 축하드립니다
고령 노을 생각나요/축하합니다
김주명 선생님 감사합니다. ^^
송영태 선생님 감사합니다. ^^
오타 등 수정 중 ㅎㅎ
이성자님!
시집 발간 축하드립니다.
많이 사랑 받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