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외적표시는 순종과 봉사이다
믿음은 내적표시도 있다. 내적표시를 주장하면 신비주의가 되기 쉽기 때문에 침묵한다.
그리고 나홀로 믿음으로도 삶의 원천이 되고 충분히 행복하다
아버지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기 위해 글로 표현하고자 한다
1992년 나의 소임은 도티병원 주방이었다.
병원소임은 8분의 수녀님과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등 전문직과 일반직으로 구성되었다
수녀님들이 맡은 분야는 접수실, 입퇴원, 검사실, 약국, 병실, 중앙부, 수술실, 주방이었다.
아침 7시 30분부터 4층성당에서 당직수녀님이 그날 퇴원환자, 수술 준비하는 환자,
움직일수 있는 환자 또는 보호자들과 함께 30분가량 아침기도를 드렸고,
저녁 7시 당직수녀님은 접수실소임을 하고 그외 수녀님들은
각자 맡은 병실에서 교리를 30분간 하고 소녀의 집 4층 성당에 모여 종과경 기도를 하였다
1992년 3월16일 나는 종과경(終過敬)을 가기 위해 병원문을 나서는 순간 하늘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평소와는 달리 하늘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유난히 밝고 붉은 하늘을 쳐다보며 소녀의 집 성당에 들어가서도 창문을 통해 하늘을 보고 있었다. 잠시 후 뒤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소년의 집 원장 수녀님 방으로 모두 모이라는 전갈을 듣고 모두 내려갔다.
원장수녀님으로부터 필리핀에서 소식이 왔는데 신부님께서 선종하셨다고 전해 주신다.
순간 모두 놀라면서 후덜덜 떨리는 걸음걸이로 성당에 다시 모여 종과경을 드리고 오랜 침묵기도를 드렸다.
소년의 집 2층 성당은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을 기리는 빈소가 차려지고 신문, 방송을 통해 선종
소식이 세상에 전해졌다. 2층 성당을 향하는 복도양쪽에는 추모화한으로 가득차기 시작하고
녹번성당을 비롯하여 많은 신자들과 지인들의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연도를 드리는데 신부님의 영정사진은 환하게 웃고만 계신다.
3월25일 성모영보 대축일 까지 열흘 동안 수많은 분들의 추모객이 다녀가셨다.
3월25일 장례미사는 아침6시 체육관에서
미국인 서강대학교 배신부님과 그리스도회 김 요셉신부님의 집전미사였다
그 날 오후 5시에는 마리아수녀회 사업체가 있는 곳은 똑같이 빈소를 치우는 시간이었다.
체육관에는 이 피아수녀님, 권 글라라수녀님과 저는 5시를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아버지 신부님께서 내 머리위에 안수하시는 것이 아닌가!
신부님 특유의 부드러운 두 손을 살짝 머리위에 닿을 듯 말듯한 촉감 !
5시가 되어 영정사진의 검은띠를 내리고 제대 모든 도구들을 성당으로 옮기고 흰색 국화꽃도 모두 따서 모으면서 신부님 친히 오셨구나 ! 혼자 생각하며...
몇년 후 은평마을 소임을 하면서 어느 날 송 스콜라스티카 수녀님과 신부님 빈소 이야기를 하며
그 날 은평마을에서도 5시를 기다리며 기도하시는 중 저와 똑같은 느낌과 경험을 한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 신부님의 안수와 강복을 믿고 있다
첫댓글 그 당시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많은 수녀님들이 은밀하게 영적인 축복을 받았음을 기억합니다.
아멘
과학적인 증명은 할 수 없지만,
이러한 개인적 체험을 하신 수녀님들의 이야기를 모아보았으면 합니다.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신지요?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수녀님들이 이런 체험은 이야기를 잘 안하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