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계불교대학 제21기(주간반)거사들의 사찰순례 기록 입니다
이번 순례는충청남도의 불교유적지를 중심으로 이루어 졌읍니다
공주의 마곡사 갑사 신원사 부여의 무량사 논산의 관촉사 그리고
보령의 성주사 사적지를 보고 왔는데 특별하다면 순례지에 사찰이 현존하지
않고 불교 문화재만 남아있는 사지를 다녀 온 것이라 할수 있읍니다
오래전 불교문화에 관심이 없었거나 적었을때 다녀온곳도 있었지만
불교공부를 하면서 조금은 향상된 눈으로 여러 불교문화를 접하면서
예전에 몰랐던 것들이 새롭게 다가왔고 도반들과 함께한 탐방이라
즐거운 추억으로 남게 되었읍니다
오늘은 이번 순례의 첫번째 탐방지인 마곡사로 가겠 읍니다 마곡사는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에 있으며 태화산의 지맥에 의해 둘러 쌓인 명승지에 자리 하고
있는 이지역의 대표적 고찰 입니다 국사봉으로부터 남쪽으로 흘러 내리는 마곡천의
상류가 계곡 사이에서 동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바꾸며 돌아가고 있는 우회지역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산수가 겸비된 승지로 이름이 높다고 하네요
특히 이곳의 형세는 태극형이라 하여 택리지, 정감록, 등의 자료에는 전란을 피할수
있는 우리나라 십승지의 하나로 소개 되어 있기도 합니다
빼어난 자연 경관 못지 않게 마곡사는 오랬동안 이 지역 불교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
해 온 거찰의 면모룰 지니고 있는데요 사찰의 규모 뿐만 아니라 유구한 역사와 전통 등의
여러 측면에서 이 지역 최고의 사세를 갖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사찰의 사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마곡사는 충청남도 지역을 총 관장하는
사찰로서의 위상을 부여 받고 있는 대표적 절 이 라고 확신 할수 있는 곳 이기도 합니다
일주문 입니다
태화산 마곡사 이정표 입니다
마곡사로 들어가는 제일 첫번째 문인 해탈문 입니다 중생의 번뇌로부터 벗어나 열반의 경계로 들어가는 의미가 있죠
해탈문 안에 금강역사와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문을 지키고 있읍니다
천왕문 입니다 안에는 사천왕 외에 중수기 현판이 있읍니다
극락교 다리를 건너기전 왼쪽에 영산전 산신각과 함께 있다
명부전 안쪽으로 영산전 외에 매화당 수선사 등 요사로 보이는 건물들이 았다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조선시대1651년 (효종2) 각순대사가 중수 하였다 보물800호 이다 영산전 안에는 불단에 일곱 여래상이 봉안 되었고 그 밖에 1910에 조성한 신중 탱화와 근래에 만든 금고가 있다
영산전 내부1
영산전 내부2, 영산전은 천불전 이라고도 하는데요 숙종8년(1682)에 조성 되었다고 합니다
영산전 내부의 천장일부 입니다 바랜 채색이 영산전이 아주 오래된 건물임을 실감케 합니다
영산전에서 나와 주변의 자연을 마음에 담고 있는 보경거사
산신각 입니다
천왕무에 들어와 명부전 영사전 산신각에 참배를 올리고 내려오면 태화천을 가로지르는 극락교가 있읍니다
극락교에서 기념촬영1
극락교에서 기념촬영2 성해거사와 개심거사
기넘촬영3, 마주보고 왼쪽부터 보경 성해 선성 거사 입니다
성해와 선성 거사 입니다
극락교를 건너와 천왕문 쪽을 뒤 돌아본 모습 입니다
범종루 입니다
연화당 입니다
심검당 인데요, 심검이란 칼을 찾는다는 뜻이니 칼은 바로 반야검을 뜻한다고 합니다 반야는 지혜를 뜻하는데 반야를 칼이라고 한것은 그것으로서 어리섞음을 끊어 버리기 때문이라고 함니다
심검당이란 현판을 쓴 사람은 정조 연간 청백리로 이름난 송하 조윤형(1725~1799)인데 그는 자하 신위(1769~1847)의 장인으로 그의 초서와 예서는 송나라의 미원장의 경지에 이르헜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대단한 명필 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여러 차례 지방 고을의 수령을 지내면서도 뒤주에 남은 곡식이 없고 담장이 허물어져도 고치지 못할 정도로 가난 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인품을 보여주듯 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대자 글씨는 심검이라는 말의 뜻에 아주 적합하다
고 하겠읍니다
가운데 검은색을로 보이는 건물이 고방입니다
집안에 보관하기 어려운 물품을 보관하기 위해서 집 바깥에 따로 만들어 두는 집채를 말 합니다
고방 2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인데 통나무에 홈을 파서 활용한 아이디어가 그시대의 상황을 들려주는 이야기 인듯 십읍니다
정면에서 바라다 본 5층석탑과 대광보전 입니다 대광보전은 조선시대 중기 1592년 (선조25)의 임진왜런때 소실 된 것을
1651년 (효종2)에 각순대사와 당시의 공주목사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광보전 뒤로 2층의 대웅전이 보
이는데요 이런 계단식 불전 배치 구조는 화엄 종찰에서 자주 보이는 특징 이라고 합니다
보물1260호 마곡사 석가모니 괘불탱화 입니다
괘불 탱화는 특별한 날이아니면 보기어렵고 전각의 내부를 살펴보아도 눈에 띄지않아 자료로 대신 합니다
이탑은 우리가 흔이 접하는 석탑과 다른 모양을 보이고 있는데요
방형의 기단위에 상륜부가 라마형식으로 조성되어 있는 모양을로 중국 원의 영향을 밭은 고려말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전 세계에서 3기 밖에 없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시대 중기 1592년의 임진왜란때 무너져 그 속의 귀중품은 당시에 없어졌다고 하며 1984년 보물 제 799호로 지정 돠었 읍니다
대광보전 우측 문위에 그려진 벽화 입니다
대광보전 일부와 대웅보전 전각 입니다
답사팀의 거사들이 응진전과 백범당 쪽을 향해가고 있읍니다
백범이 기거 했던 백범당의 마루와 벽인데 시각적 표현을 높이기 위해 지붕과 뜨락을 트리밍 한 모습 입니다
김구선생이 황해도 안악에서일본 장교를 죽이고이곳으로 피신 한적이 있는데 훗날 다시 이곳에 들려 그날을회상
하였다고 하는데요 김구선생이 걸었다는 길은 명상길로 이름을 바꿔 달았더라고요
저도 바쁜걸음으로 그 길을 걸었읍니다
보경거사가 김구선생 모형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다른장소로 옮기려다가 부탁을 합니다
백범 김구선생이 쓴 양심건국 앞에서 마음에 든다며 형님 저 여기서 한장 박아 주이소이소... 하모 하모...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금당으로서 경내의 전체가람 배치상으로는 해탈문 천왕문과 일직선상에 놓여 가장 중심되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수 없으며 소실되었던 것을 조선시대 말인 1813년 (순조13)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하고요, 보물 제 802호 입니다
대광보전의 비로자나불 입니다 부처님께서 앉아계시는 좌향이 법당 가운데서 문쪽을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고 법당의 서쪽끝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계시다고 하고요. 이런 좌향은 부석사 무량수전과 같다고 합니다
공간배치를 이렿게하면 불당으로보다 설법을 하는 법당으로서의 효용이 더 낳을것 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주불이 서쪽에 앉아서 동쪽을 바라보시고 계시는 모습은 이 두곳 외에 동래 범어사의 미륵전과 화엄사 각황전에서 확인 할수 있는데 이 절들은 한결같이 화엄 십찰에 속하는 대화엄종찰들이다 따라서 이곳 마곡사도 화엄종과 어떤 연관이
있지 않겠나 하는 짐작을 할수 있을것이다라는 밑을만한 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전각이 세워진 시기가 정조 12년 (1788)인데 그 시절은 조선의 불교가 화엄학의 중흥을 이루고 있을때 이고 또1909년에
지은 심검당 번와기에 화엄살림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최근 까지 이절은 화엄학의 종지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추측 하게 한다
보경거사와 백의관음도 입니다,백의관음도는 대광보전 후불벽화고요 마곡사가 남방화소로 북방화소인 금강산 유점사 및
경산화소인 수학산 흥국사와 함께 대대로 화승을 배출해 내던 화승절이었으므로 그 내력이 이어져 왔음인지 우리나라불화의 거장인 송광사의 석정스님도 그의 맥이마곡사라고 합니다 1925년에 모신 대광보전의 신중탱화를 그린 금호 화상이 바로그의 중조사에 해당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금호 보응 일섭 석정으로 화맥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그러한 그림재주의 백미는 본전불단의 후불벽 뒷면에 그려진 백의관음상인데 보타락가산에 안락좌로 앉아 있는 관세음보살의 표현도 훌륭하거니와 그 배경 산수와 보살 뒤쪽으로 크게 쳐놓은 대나무 그리고 보살의 발 아래에 그린 화초들의 화초들의 기법이 18세기 후반 조선회화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보경거사의 참배 모습을 앞쪽으로 항하게 한것은 그림과 실제의 인물을정면으로 매치시켜 경건한 불심을 표현 하고자한 사진 작가의의도가 포함 되었디
조사전 입니다
조사당 내부 입니다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의 영정도 보이는 데요 21기가 대학원 수업을 받을때 교실의 벽면에 걸려 있었던 스님들 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촬영 하였 읍니다
조사당 내부 입니다2
대웅보전 입니다,대웅보전은 조서시대 중기 1592년(선조25)의 임진왜런 소실 된 것을 1651년(효종2)에 각순대사와 당시의 공주목사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전각 안 에는 석가불 약사불 아미타불의 삼존상이 봉안 되어 있으며 존상마다 뒤에 후불탱화가 걸려있다
그리고 관음보살좌상이 있으며 탱화로는 후불탱화 3점 외에 영산탱화 신중탱화 등이 있다
대웅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삼존상은 목불로서 석가모니 약사불 아미타불 좌상 이다
태화천 징검다리 위에서 한가로움을 즐기는 장난기 어린포스의 21기(주간반) 동문 거사님들
성해와 개심거사도 즐거운 표정 입니다
선성 성해 보경 눈 감아도 뚜렸 하게 떠오르는 얼골들 이지요
태화천 물은 흘러 어디로 갈까요 마곡사에 추억을 담고 우리는 다음 행선지 로 발길을 옮 깁니다
이 글을 올리는데 사찰문화연구원 발행 전통사찰총서,문화재청과 재단법인 불교문화연구소의 한국의 사찰 문화재,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연구원의 한국의 사찰벽화, 최완수저 대원사발행의 명찰순럐, 한국의사지 문화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
석불에새긴 정토의 꿈 글 최성은 사진 안장헌, 늘와 발행의 석등 홍선저자 등 입니다
좋은자료써 주신 모든 분뜰께 감사 합니다 ()()()...
이번불교문화 사찰 유적지 답사선정은 개심거사가 추천하였고 성해 회장의 추인을 받아
실시 하였읍니다 선정기준은 대한불교 조계종, 전통사찰로 역사와 불교문화의 확인과
불교문화의 숨소리가 멈추지 않은 사지에 기준을 두었으며 비교적 가까운 충청남도의 사찰과
사지를 선정하여 찗은시간이지만 알차게 탐사 해야겠다는 취지도 포함되어 있었읍니다
보령시청에서 개최되고있는 성주사지의 사진 전시회를 보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린것이 무척이나
아쉬움이 남았읍니다 개인적으로 시간을 마련하여 다녀올 예정 입니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펼쳐진 탐사 내내 각자가 하나 같이 즐거운 탐사가 될수있도록 마음
써주신 성해 회장님과 함께한 21기주간반 동문 들께 감사드립니다
숙박은 생각지도않은 선성 거사님의 처재내 집에서 이루어 졌는데 늦은시간까지 대접해 주신
내외분 들께도 감사 드립니다
개심, 김유성,
첫댓글 개심거사님 수고하셨 습니다 . 개심거사님 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 면 내가 빨려들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매년 2회 다니는 슨례
인데도 갈 때마다 설레
고 즐겁습니다. 함께
해주신 거사님 감사드 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