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선물
최 화 웅
조종(弔鐘)이 울리는 어두운 세밑에 등불을 밝힙니다. 12월생인 저는 오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역마직성이 솟구칩니다. 거칠고 어리석은 세상을 떠나 정처 없이 떠도는 오디세우스가 되고 싶은 것일까요? 시베리아의 백야(白夜)와 북극의 극야(極夜)를 헤치는 한겨울의 고독한 방랑자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리아는 아직 어리고 그렇다고 홀로 불쑥 떠날 수 없는 처지입니다. 매주 몇 차례의 혈액투석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친구와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나섭니다. 그리고는 공항 출입국장에서 떠나고 돌아오는 숱한 사람들의 심시와 활주로에서 들려오는 이착륙소음에 귀 기울입니다. 이별하고 만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이입(感情移入)이 자연스럽게 공감을 이룹니다. 젊은 날 해외취재와 여행, 그리고 순례를 회상하면서 낡은 기행문을 뒤적이거나 비디오와 영화를 보며 들뜬 마음을 달래기도 합니다. 그러든 어느 날 EBS채널과 ‘sky Travel’에 꽂혔습니다.
EBS에서 제작한 세계테마기행 ‘숲과 호수의 나라, 휘바! 핀란드’와 ‘오광록의 노르웨이기행'이 스칸디나비아반도에 대한 여행욕구의 끈을 더욱 탱탱하게 당겼습니다. 세계테마기행 다큐멘터리 ’휘바! 핀란드‘는 사진작가 이한구씨의 리포트로 제작한 1부, 북극으로 가는 문, 라플란드 2부, 마법의 시간, 극야 3부, 숲과 호수의 나라 4부, 섬들의 낙원, 올란드로 방영되었습니다. 4시간을 곰작 없이 누워있어야 하는 혈액투석을 ‘즐거운 투석’으로 받아들이는 저는 책과 TV를 보고 클래식을 들으며 나의 시간을 가집니다. ‘휘바! 핀란드’를 시청하면서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핀란디아’의 선율이 잃어버린 젊음의 열정을 추적하는 듯 했습니다.
1부, 북극으로 가는 문, 라플란드
발틱 해의 은빛 도시 헬싱키로부터 북극여정은 시작되었습니다. 라플란드의 원시림에서 눈 덮인 크리스마스트리를 헤치며 원주민 사미족을 찾아갑니다. 산타할아버지의 안내로 순록무리가 이끄는 눈썰매를 탄 해맑은 동심이 북유럽의 땅 끝으로 달려갑니다. 북으로 올라가는 길, 핀란드의 최북단 마을 누오르감을 지나 스칸디나비아대륙의 끝 뷰고니스에서 북극해의 어둠과 매서운 추위와 맞닥뜨리며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연거푸 물었습니다.
2부, 마법의 시간, 극야
겨울에 해돋이가 없는 ‘극야’의 땅, 핀란드 북부지방은 혹독한 추위와 적막이 지배하는 땅. 시베리아의 해넘이를 거부한 ‘백야’와 다른 ‘극야’를 살아가는 핀란드 북부마을 사리셀카 사람들은 남태평양 섬사람들보다 더 밝고 따뜻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산타클로스가 안내하는 북극권의 첫 마을, 로바니에미에서 만난 핀란드 사람들은 자연이 곧 삶이었습니다. 눈처럼 희고 순수한 핀란드 사람들의 감성은 화실에서 만나는 캔버스 같았습니다. 누오르감에서는 극야의 하늘에 펼쳐지는 빛의 파노라마, 오로라가 우리를 묵상의 신비에 들게 했습니다.
3부,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를 달리 표현한 말, 수오미(suomi)라는 말이 실감날 만큼 스크린에는 호수와 섬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핀란드 최대의 호수이자 항해자들의 천국, ‘사이마’호에는 무려 1,400개의 크고 작은 섬들을 그물처럼 얽어 아름다운 휴양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올라빈린나 성이 있는 사본리나에서 사이마 호수와 아름다운 풍경, 에스커릿지가 대자연의 절경을 보여주었습니다. 호수의 유빙과 은빛 자작나무숲은 여행자는 고독한 정령이 되어 순결한 북극의 사랑을 풀어놓으며 전통 스모크사우나로 추위를 녹입니다.
4부, 섬들의 낙원, 올란드
중세의 목조건물이 즐비한 역사의 도시, 라우마는 꿈꾸는 동화의 나라 였습니다. 필란드인의 인내 정신, '시수(sisu)'의 근원, ‘보마르순드 요새’와 ‘칵스텔홀름 성’이 강대국 스웨덴과 러시아에 낀 핀란드를 잦은 침략으로부터 지키려고 했습니다. 6,500개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섬으로 이뤄진 올란드 제도는 오늘도 석양에 온몸을 내맡기고 눈을 감은 채 침묵합니다. 지난날 리스본의 그 슬픔과 한 맺힌 파두(Fado)의 선율처럼 험한 뱃길에 내놓은 남편을 기다리는 올란드 아내들의 몸부림이 파도를 탔습니다.
‘휘바! 핀란드’ TV프로그램에 꽂힌 저는 손녀 리아를 위한 인문학 학습과 새해선물을 마련했습니다. 선물은 할아버지의 은행적금입니다. 지금 막 세 돌을 지난 리아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입학하는 시기에 떠날 배낭여행경비를 마련해주기 위해섭니다. 리아가 다양한 인문고전을 읽고 클래식에 귀 기울이며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 꿈과 상상력을 키우며 ‘더불어 살고 함께 나아가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손녀딸 리아를 향한 할아버지의 마음이고 꿈입니다. God with us.^^*
눈 오는 날의 미사
마 종 기
하늘에 사는 흰옷 입은 하느님과
그 아들의 순한 입김과
내게는 아직도 느껴지다 말다 하는
하느님의 혼까지 함께 섞여서
겨울 아침 한정 없이 눈이 되어 내린다.
그 눈송이 받아 입술을 적신다.
가장 아름다운 모형의 물이
오래 비어 있던 나를 채운다.
사방을 에워싸는 하느님의 체온,
땅에까지 내려오는 겸손한 무너짐,
눈 내리는 아침은 희고 따뜻하다.
첫댓글 참으로 훌륭한 할아버지를 둔 리아는 행복한 아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세계테마기행과 한국기행은 제가 즐겨 보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언제나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는 것이 비록 저의 역마직성 때문만은 아닐 거란 생각 또한 해 봅니다.겨울 매서운 한파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이 글 읽으면서 떠나 볼까 합니다.12월20일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건강 잘 챙겨 주소서!!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그렇게 다 지나갔습니다.
고맙습니다.^^*
전 과연 그럴수 있을까요?
붙잡힌 네시간을 이토록 멋지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매주 몇차례의 혈액투석치료를
받으면서도 오디세우스가 되고픈 열망을 지닐 수 있을까요?
최첨단의 의료기술이 나날이
눈부신 변화를 해서 시베리아와 오로라를 체험하신
여행기를 꼭 읽고 싶네요.^^
늘 전 홧팅을 외칩니다.
감사합니다.
Merry Christmas!
손녀를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을 느낍니다. 새로 오실 주님의 평화와 사랑이 국장님과 가정에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할아버지의 마음 아니겠어요?
저희들에게 오실 아기예수을 다 함께 기다리며 멀리 있는 손녀딸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조종이 울리는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십시오.
Amazing Christmas!!
손자를 향한 마음표현을 배우고 갑니다.
손자가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에 자라면 버릇이 없다고들 하죠.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맹목적인 사랑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공동체의식과
창의력을 길러주는 인간애가 요구되는 게 아닐까요?
손주를 향한 사랑은 숭고한 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비로소 손주를 통해서 영생에 든다고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손주가 삶의 의미이고 가치가 아닐까요?
오늘도 티노씨와 맛있는 점심 나누세요.^^*
참 멋진 할아버지이십니다..^^*
늦깎이 할아버지의 다짐이지요.
손주와 더불어 사는 바람직한 할아버지상을 꿈꾸었습니다.
더욱 생각하고 애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은빛 세계의 핀란드를 상상하며 다가오는 성탄을 맞이함이 좋습니다.
손녀딸을 향한 할아버지의 사랑이 참 정겹네요.
필리핀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 선물 마련하느라 SM mall 이 북적대더군요.
건겅하시고 평안한 나날 되셔요~^^*
수빅만의 토마스&아기토비님을 상상하면 행복해집니다.
잘 지내시죠?
이사 이후로 엘사는 성탄준비에 바쁜 성가대에 매달리고 저는 투석일상입니다.
저는 투석 이후 첫 성탄을 맞아 고마우신 투석실 의료진에게 전할 마음의 선물준비에 흥겹습니다.
작은 선물에 성모님의 거룩하신 사랑을 듬뿍 담으려고 합니다.
"God with us!!"
'즐거운 투석'으로 받아들이시는 선생님의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리아를 위한 할아버지의 선물이 정말 멋지네요.
아마도 리아가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함께 살고 함께 나아가기'에
동참하리라 믿습니다.
엘사 형님가 함께 기쁜 성탄 되시길 빕니다. ^*^
요즘 엘사는 방문객 맞기에 즐거운 나날이죠.
틈나시면 리아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성탄 전후로 큰 추위는 없다죠? 다행이에요.
온 가족이 다 함께 사랑의 크리스마스를 보내세요.
"God with us!!"